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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경의 10기 극장.
1부, 벗는 용기
<피할 수 없으면 부딪혀라.>
9기 여행의 마지막, 그제야 나를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9기 문집의 마지막에도 적었다시피 올해 내 목표 중 하나는 나를 더 잘 아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와는 다른 평가를 들을 때면 항상 의문을 갖고 기분 상해있었던 것이 9기 때의 내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평가를 받았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와 얼마나 다를지가 마음에 걸려 두려웠던 것 같다. 그로인해 수용적이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올해 다시 10기 여행을 하며 또다시 같은 평가를 받고 있는 나를 보았다. 우유부단하다. 처음엔 역시 수용적이지 못했다.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또다시 나를 탓하기보단 다른 이유를 찾았다. ‘나는 우유부단하기보다 나보단 남을 더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신중한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고 우유부단하단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을 피해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나중에 내 일을 하는데에 있어 문제가 되었다. 여러 가지의 일을 처리할 때 남의 의견을 완벽히 수용하려하고 너무 신중하다보니 일이 빠르게 진행이 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프로젝트 수뇌부장을 할 때 그랬다. 다수의 의견을 들으려다보니 목표가 흐려지고 중구난방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정말로 난 우유부단했다. 조금 더 일찍 이 사실을 받아들였으면 개선하려 했을 텐데.. 반성하게 되었다. 두려움을 피해 합리화를 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는 참혹했고 프로젝트 수뇌부장이라는 직책에 있으며 자기확신이 없는 사람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드디어 우유부단하단 것에 직면하기로 했다. 내 의견에 확신을 갖고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내가 우유부단했다보니 금방 고치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더욱 더 내가 우유부단한 사람임을 인식하고 개선하는데 집중했다.
한 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많지만 하나로 정리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큰 나머지,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고 그것은 정리가 되지 않은 우유부단하게 보이는 내 모습이었기에 모든 생각을 하나의 결론짓는 연습을 했다.
행동했다. 결정을 했어도 쉽게 마음이 굳혀지지 않아 행동하지 않는 내 모습이 우유부단한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을 한다면 즉각 움직이는 연습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오기 귀찮은 날임에도 새벽에 일찍 나와 내 할 일을 했다.
내 일에 더욱 집중했다. 올해는 특히 책임지는 위치에 많이 도전했다. 다른 일에 집중하게 되고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 일을 놓지 않으려 더욱 집중했고 다른 일에 새려고 하지 않았다.
이 후, 평가가 조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기보단 카리스마 있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고 나도 나를 믿으며 더욱 단단해진 것 같다. 내 단점을 회피하기보다 직면했을 때 비로소 더욱 중심 잡힌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우유부단했다. 우유부단, 그게 뭐라고 두려워했던 것일까. 무엇이 두려워 회피했던 것일까. 단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고치면 그만일 것을. 두려움 때문에 회피하는 모습보다는 직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더 나다운 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 여행에서 목표했던 대로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수많은 옷과 장신구를 달고 살고 있었다. 남들에게 받는 관심과 기대로 하나씩 입어온 부담스러운 것들이다. 한 겹씩 내가 입은 것들을 벗어가며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솔직한 내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재경의 옷은 하나씩 벗겨져간다. 훌렁~
<두려울 땐 행동하라.>
올해 난 하반하 11기 스텝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을 듣고 나서 그동안의 실수를 용서받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고민도 많아졌었다.
집에 돌아가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반하에서 학생이었다가 스텝이 되는 사람으로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군대는 언제 갈지, 내 주위 사람들을 만나고 싶을 땐 어떻게 할지, 등 고민들로 가득 찼었다.
그리고 하반하 11기로 인해 내가 얻고 잃을 것들을 계속 비교해보며 같은 고민을 계속 했었다. 고민이 끊이질 않을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고민을 나눴다.
그러면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나를 느꼈다.
주위사람이 긍정적이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부정적이면 덩달아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것도 느끼며 주위 사람의 중요성과 내 주관의 중요성을 느꼈다.
사실 고민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일은 없었다.
난 스텝제안을 받은 것이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뜩 고민이 너무 커져서 밤늦게 혼자 운동장 구령대에 나가 누워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난 지금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질 만큼 대단한 능력을 가지지도 않았었다.
부모님께 손 벌려 살고 싶지도 않고 독립을 해 가정을 꾸려나가고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쓸데없는 고민 때문에 지금의 내 일도 놓치고 마음이 붕 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반하 11기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또 다른 선택에 있을 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집이라던가, 친구들이라던가.
마음을 완전히 굳히기 위해서는 걱정되는 부분들을 모두 해결해야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마음이 다 서지 않았지만, 그날 난 써니쌤을 믿고 스텝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또다시 이 문제에 있어서 누가 뭐라고 해도 다른 고민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난 무언가 하겠다고 결정한 이상 그 결정은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은 이렇게 먼저 결정을 하고 되돌릴 수 없으니 딴 마음을 갖지 말자며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스텝결정을 하고 난 후에 난 다시 내 본래 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우린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그 곳에 정처해서 고민을 오래 하게 된다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디를 가야하는지 놓치게 될 수 있다.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과거에 대한 환상, 아쉬움, 그리움에 묶인다면 현재의 인생을 즐길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자신의 과거에 아쉬워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우린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최고의 선택지를 고른다.
인생에는 또다시 수많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하는 선택에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올해, 어느 길을 선택하던 그 길마다의 배움이 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세상엔 ‘만약’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가정할 때 쓰는 말이다.
마음속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자주 가정을 한다.
‘만약’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속엔 사실 두려움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궁금증도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두려움은 일시적일 뿐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궁금하면 일단 해보는 거야.
<시작이 반이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지금 이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 이야기는 결정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지금 이야기는 결정을 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년 여행이 끝나갈 무렵, 써니쌤과 상담을 했었다.
그 때 써니쌤께서는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10기 스텝으로 초대하려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9기 문집에도 춤을 추지 않아 아쉽다는 말씀을 하셨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춤을 추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곰곰이 이야기해보았다.
그 때 나온 결론은,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도 없고 춤을 가르쳐보지 않아 방법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춤을 열심히 카피하면 정작 나만 춤추려는 의지를 가진 것 같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는 결론도 나왔다.
그리고 해결방안을 찾아봤고 올해는 춤을 가르쳐보기로 했다.
하반하에서의 일상은 여전히 바빴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칠 기회가 왔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정해서 1주 동안 열심히 준비해야하는 프리위크가 찾아온 것이다.
작년 내내 춤을 가르치는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시작을 하려니 조금은 떨렸다.
그렇지만 일단은 춤 수업을 열겠다고 모두의 앞에서 선언을 했고 그렇게 6명의 친구가 내 수업에 자원했다.
춤을 가르친다고 한 순간부터 선택해야 할 순간들이 많이 찾아왔다.
어떤 춤을 춰야할지 정해야할 때나, 춤 인원이 너무 많아 인원을 조정해야 할 때나, 연습시간이 나지 않아 어떤 일에 비중을 적게 둬서 연습시간을 늘려야 할지, 등 선택의 순간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때마다 난 나를 믿는 방향으로 선택을 했다.
선생님으로서 그런 선택을 하며 항상 목표를 이루니 나 자신을 믿는 힘도 강해졌다.
나를 믿는 힘이 강해지면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도 있었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흥이 나지 않을 때, 일부로 기분 좋은 척 큰 소리로 말을 한다거나, 화가 난 척을 한다거나, 쉰다고 하면서 혼자 춤을 추고 있다거나,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눈치가 보이는지 쫄래쫄래 따라했고 재미를 느끼는지, 나중엔 춤에 더욱 흥미를 느끼며 열정으로 나에게 보답을 해주었다.
귀엽고 감사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 걱정이 현실이 되면 어떡할까라는 두려움으로 시작했지만, 올해 춤을 가르치며 그것들은 단지 걱정뿐이었단 걸 느꼈다.
걱정을 한다는 것은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걸 말하기 때문에 언제든 노력만 한다면 해결할 수 있다.
일단 시작을 하면 반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시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반을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인생의 반을 얻기 위해 시작을 하는 용기를 갖길 바란다.
<인생 최악의 날을 최고의 순간으로.>
올해 나는 역사를 썼다.
내 인생 두 번째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다.
12월 16일.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유리창 너머로 솟아올라가는 지면과 주위에서 들리는 “어어어어어어!!!!! 재경아 안돼!!!!!!!!!!!!” 소리를 듣고 난 후, 바닥에서는 물이 차오르고 정적이 찾아왔다. ‘뭐지? 꿈인가.?’ 마음속에서는 정말 이 생각밖에 안났다.
문집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문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고민도 했다.
‘그냥 이대로 여기에 숨어있을까.’ 죄책감에 문 밖으로 나가는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졌다.
컴컴한 독방에 갇혀 살았던 죄수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기분이었다.
문 밖의 세상은 너무 환했다.
그렇지만 도랑에 쳐박혀있는 저 트럭을 보며 환했던 세상도 어두워짐을 느꼈다.
잠시 청년농부의 꿈을 접어두고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꿀 정도로 수없이 많은 감정 동요가 일어났다.
대장님께서 멀리서 솔라티를 타고 오신다.
“윤아!!!!!!!!!!”. 대장님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사건의 진범은 나인데.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써니쌤은 심각한 표정으로 어딘가 전화를 하고 계신다.
지게차 아저씨다.
나는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스키를 타고 오는 길이었다.
꾸벅꾸벅 잠에 들려던 찰나, 윤쌤께서 갑자기 내 운전면허증이 몇 종이냐고 물으신다.
“2종 보통이에요.”
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냥 없다고 말하면 좋을 걸.
그 후 트럭이 길가 변에 세워진다.
“한번 해봐!”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설랬다.
나는 트럭 보조석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다 보니 긴장의 기색이 역력했다.
무난히 운전을 잘 해가는 듯했다.
안전에 안전을 기했다.
긴장을 풀기위해 가벼운 농담도 던졌다.
“저 믿죠?^^ 사고가나도 같이 가는 겁니다.”
정재경 이런 멍청이.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말은 씨가 된다던 것이 사실이라도 된 듯, 급격도로 꺾어지는 학교 입구를 보고 긴장한 나머지 브레이크 페달의 위치를 못 잡았고 결국 다 같이 저 깊은 도랑 속으로 가버렸다.
이렇게 일이 벌어졌다.
일이 벌어진 후, 어떻게라도 문제를 해결해야하는데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연락을 할 수 있는 핸드폰도,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돈도, 트럭을 끌어올릴 수 있는 힘도, 아무것도 없어 한탄스러웠다.
동시에 날 믿어주신 것에 대한 대가가 반대로 너무 크게 돌아가니 죄송했다.
내 말의 씨가 이렇게 강력했을 줄이야.
트럭사건은 일단 써니쌤이 부른 지게차가 와 일단락되었다.
비록 몇 시간 전의 일이지만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기에 긍정적이게 생각하려고만 했다.
‘그래, 우선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고, 둘째론 죽지 않아 다행이고, 셋째론 조상님의 얼굴을 보지 않아 다행이야. 하. 하. 하.’
부정적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정신이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난 이불 속에 조용히 들어가 마음을 정리했다.
‘마음을 다시 잡고 내 일에 빨리 돌아가자. 이 감정 때문에 내 일을 못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더 손해일 뿐이야. 앞으로 내가 하반하에서 더 열심히 일해서 갚아나가면 되는 거야.’라며 그날 있었던 트럭사건을 고스란히 마음속에 묻었고 다시 내 일에 열심히 임했다.
신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트럭의 수리비는 600만원이 나왔고 모두들 트럭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너무 죄송한 나머지 사과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들까지 참여하는 총회의 시간을 빌어 모두에게, 특히 윤쌤과 써니쌤, 대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이 있었다.
“사람 한명 얻는 것 치곤 600만원은 싼 값이죠,” 윤쌤이 한 말씀이었다.
그 때의 그 말씀이 너무 감사했다.
장난스럽게 “윤쌤은 절 얻으셨습니다.^^” 라며 말했지만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다행이도 지금은 트럭사건이 한때의 추억으로 남게 된 것 같다.
트럭사건 이후, 나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트럭사고가 난 그날은 내 인생 최악의 날이지만 어쩌면 그날은 윤쌤이 나를 얻고, 내가 윤쌤을 얻는 계기가 된 최고의 순간이지 않을까.
2부, 알맞은 옷
<?→!>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거에는 아이돌이란 꿈을 가지고 아이돌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 데뷔를 생각하는 한 아이였지만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회사를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그 꿈을 향해 또다시 수많은 회사의 오디션도 보고, 또 보고 계속 도전했지만 좋은 결과는 항상 없었다.
항상 나이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온 나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니까 말이다.
그래서 꿈이 없는 아이가 되었다.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본 부모님은 하반하 9기를 권해주셨다.
꿈을 찾으러 하반하 9기에 갔다. 하지만 그곳은 즐겁게 노는 여행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매일 같은 이른 기상과 항상 유동적인 빠듯한 일정, 그리고 공부만 하는 곳이었다.
난 분명 꿈을 찾으러 온 건데 왜 이런 혹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생활에 점차 적응을 했고 꿈을 찾는 것을 잠시 접어둔 채, 나를 찾는 것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9기의 여행을 그렇게 끝이 났다.
10기를 오게 되었다.
이번엔 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하반하 세계여행학교는 코로나로 인해 세계를 둔 채, 한국에서 여행을 결정했다.
강원도의 어느 한 산골짜기에 있는 폐교를 구입해 머물 곳을 정했고 모두들 강원도 영월 밤치마을의 한 폐교에서 하반하 영월 1기라는 이름을 걸고 여행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머무는 여행은 참 특별했다.
한곳에 머물 수 있어서 그런지 도전해볼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
영월 1기의 가장 큰 방향이 정해졌던 때는 2학기가 시작할 때, 9월 1일이었다.
영월학교 맞은편 고추농사를 하시는 사장님께서 일손이 필요하다며 우리들을 써주셨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을 도우며 일하는 학생으로 거듭났다.
그렇게 고추밭, 도라지밭, 더덕밭, 수수밭, 사과밭, 콩밭, 등등 각종 밭을 다니며 농사활동 경험을 쌓았다.
꼭두새벽부터 일을 나가 쉴 틈 없이 일을 하고나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가있었고 농사일을 하며 일하는 것도 은근 재미있었지만 어떻게 하면 더 농산물을 상품성 있게 팔지, 어떤 방법으로 유통이 되는지, 앞으로 농사의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사장님들만의 의견을 듣는 것도 일종의 재미가 되었다.
농사일을 도왔을 뿐 아니라 더덕장아찌, 각종 김치를 포장해 편지와 함께 상품을 만들어 파는 일도 해보았다.
난 이런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 학생들을 지휘하는 학생협동조합장의 위치에 서 있었다.
우리가 힘들게 일을 하고 번 돈을 관리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고 다른 조합원들보다 앞에 나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배웠다. 농사일을 하는 것이나 가공을 하는 것이나 유통을 하는 것에도 흥미가 가고 점점 꿈을 꾸기 시작했다.
더덕 밭의 김장식 사장님께서 앞으로 농사짓는 일이 기업화가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정말 정신이 번쩍 드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점점 모두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한국 대표 착한농사기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앞에서 배우며 생각이 점점 커지고 마음속에서는 그런 기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다.
난 청년농부의 꿈을 넘어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청년농부라는 꿈도 내 꿈으로 향하는 일종의 과정이자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 중 유튜버도 있고, 하반하협동조합의 임원도 있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수많은 과정이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난 어디까지 그 목표에 가까워 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인생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반복하며 .(마침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협동조합장의 위치에 있으며 무수한 궁금증을 가졌고 느낀 점이 많았다.
이젠 목표를 마무리 지기 위해 달릴 뿐이다.
올해 협동조합장의 위치에 있게 해준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감사하고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투자해주신 부모님들, 그리고 농활이란 것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사장님들, 모두에게 감사하다.
<나는 나다울 때 제일 자연스럽다.>
나는 하반하 9기 2학기 학생회장을 했었다.
하반하 9기를 지내며 하반하 비밀병기 회장, 정우진이란 친구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여태 본 남자 중 제일 남자답고,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포스가 있고, 정말 회장다웠고 등등의 극찬을 하는 아이들 때문인지 그런 남자다운 빡센 형님이 되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반하 9기 때부터 빡센 형님이 되어보겠다며 선언을 하고 다녔다.
우선 빡센 형님의 이미지를 위해 양아치 같은 외모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기 땐 귀에 피어싱 똭!하고 머리도 빡빡 밀고! 뫄~ 음청 진지한 컨셉으로 갈거여!”
그렇게 한국에 돌아가 피어싱을 하고 머리는 밀지 못한 채로 10기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자기소개부터 망했다.
“안녕하세요. 전 정재경재경재경재 정재경입니다.”
그렇게 입이 닳도록 빡센 형님이 되어보겠다며 떠벌릴 때는 언제고……. 난 그런 큐티뽕짝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드는 것보단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빡센 형님이 되고 싶었다.
언젠가 그런 이미지는 다시 가질 수 있을 거야란 생각을 갖고 하반하 10기 생활에 집중했다.
하반하 10기가 국내 여행을 마치고 나면 그 여행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큰 나무 합판에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풀어내는 일을 했다.
그 때마다 난 수뇌부로써 항상 앞서 일을 하는 리더의 역할을 했다.
아이들이 생각대로 협조해주지 않는 모습에 빡센 형님의 이미지를 더 갖고 싶다는 갈망이 커져갔던 것 같다.
하반하에서 그나마 빡센 형님을 떠올리라면 수경형님일 것이다.
난 그런 수경형님의 모습부터 조금씩 얻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인 강한 표현으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압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속에서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하반하 학생협동조합의 일로 사랑이와 야외 싱크대에서 야채를 씻고 있었다.
사랑이와 담소를 나누며 요즘 하반하가 어떤지 물어봤다.
요즘 하반하 형님들의 분위기가 날이 서있다며 맏형님 두 분이 음과 양같은, 물과 불같은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예전의 내 부드러웠던 모습에 대해 그리워하는 듯한 언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맏형님들이 모두 빡세서 그 밑에서 기죽었을 아우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 빡센 형님대신 숨구멍 같은 형님이 되어 올해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강해야할 때 강하고 부드러울 땐 부드러운 형님이 되길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빡센 형님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아직까지도 몇몇 선생님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은 즉, 자연스럽지 않단 것 아닐까.
난 내 모습을 확 바꿔 꾸미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연스러운 내 모습에 한층, 한층 새로운 모습을 입혀가며 성장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어 가는 방법이 아닐까싶다.
내 색깔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모습을 찾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에 나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걸림이 없는, 언짢음이 없는, 불편함이 없는 행동이야 말로 자연스러운 나. 즉 나다운 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다울 때 제일 아름다운 것 같다.
비록 우진 이라는 친구의 그런 이미지를 얻진 못해 아쉬웠지만 언젠가 나도 아이들에게 누군간와 닮은 형님이 아닌 재경형님다운 재경형님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군가 이 질문을 당신에게 한다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올해 하반하 영월 1기 친구들의 일기장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의무였던 적이 있다.
그 질문은 처음 던졌을 땐 나를 되돌아보려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쓸 것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그날 일어났던 사건에 있어 나는 어떤 행동을 받았고, 했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런 것들을 적었다.
사소한 일에도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했고 질문에 답을 할수록 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누구인가?>
10.22 - 나는 스스로 바로 서려는 사람이다. 뭔가 내 스스로 힘이 빠질 때도 알고 붕 뜰 때도 느끼고 남이 느끼는 것을 나도 느낀다. 항상 그걸 알아도 마음속에서의 갈등이 바로 서려는 것을 방해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바로 서야한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
나는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아빠가 하반하 여행 초에 베풀 줄 아는 걸 가르쳐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내게 박힌 것 같다. 내 능력이 되는 한에 따라 더 베풀고 싶어짐을 느꼈다. 내가 준비가 되어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더욱 베풀게 되었다. 아빠가 왜 그걸 가르쳐주고 싶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감사 창고를 쌓고, 인생에 복을 쌓고, 사람을 끌어 모으는 에너지도 그 부분에서 얻게 되는 것 같다.
10.26 - 나는 모두와 함께 다 같이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독단적인 결정으로 팀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반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리더라는 자리가 결정을 하고 이끌어 나가야하는 부분이 있고 그 역할이 크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결정이 가끔은 다 같이 하는 일을 나 혼자 했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어서 싫다. 싫다라는 말을 내가 여태 쓴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말로는 툭 뱉었을 수도 있지만 싫다라는 걸 일기장에 적으니 기분이 참 신기하다.
10.29 - 오늘 수경형님과 잠시 충동이 있었다. 나도 내 바람이 있고 수경형님도 수경형님만의 바람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각자의 행동이 작은 불씨가 되어 사이가 틀어졌었는데 풀고 싶었고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결국 사이가 잠시 틀어졌던 이유는 나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는데 감사하면서 죄송했다. 누군가에게 실망했다는 말을 할 때나 들을 때 어쩌면 어느 정도의 기대가 밑바탕에 깔려있음을 알고 있어야 할지 모른다.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고 비로소 누군가에 대한 신회가 생길 때 기대가 생기지만 이면으로는 실망의 가능성도 점점 커지기에 조심해야 할 부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내가 해왔던 행동에 기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단 게 감사했다. 사실 전에도 누군가에게 기대 받는 사람이란 사실을 느낄 기회는 충분했지만 인지하지 못했기에 놓쳤던 것 같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존재이려나. 내가 인지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깊게 생각하고 관찰해본다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으려나.
11.05 - 지금의 나는 무엇에 힘을 써야할까. 수뇌부 장, 총소감문 담당, 협동조합장, 정산팀장, 워커팀장, 2번 큰형님, 학생.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가 아니기에 매번 바쁘고, 바뀌는 상황에 대처해야하기에 혼란스럽고 손발이 남아나질 않는다. 총소감문 담당으로 총문을 쓰려하면 수뇌부 장으로서 다른 수뇌부원이 확인을 받거나 의견을 물으러 와서 수뇌부 장의 역할을 해야 하고, 학생으로서 공부를 하려하면 정산팀장으로서 팀원을 챙겨야하고, 말을 듣지 않는 팀원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공부를 안 하면 2번 형님으로서 모범이 되지 못해 위치에 타격을 받고. 결국 가른 하나의 내 역할은 놓치고 내 올해의 목표인 토익에 대해서도 시간을 못 쓰고. 어느 것을 우선순위라 정해놓을 것도 없이 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기에 참.... 신경쓸 것이 많고 어지럽다. 내 일을 해내는 것이, 더 극한으로 가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힘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지만 정작 지금 일에 바빠서 하고싶은 것을 찾는 여유시간을 갖진 못했다. 남들은 지금 얼만큼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앞으로 난 한정된 시간 안에 더 현명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다른 어떤 것보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생각을 하게 해줄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고 이 무게 또한 일종의 기회라고 느낀다.
나를 찾는 질문을 계속하던 도중, 남이 없을 때 나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 지란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키가 크다, 잘생겼다, 인자하다는 모든 평가들은 남이 없었다면 과연 알 수 있었을까.
내가 온순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온순하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이고, 춤을 잘 춘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춤을 잘 추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서이기 때문인데, 과연 남이 없으면 나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관찰하고 하반하 사람들을 관찰했다.
나름 나를 정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려했지만 모든 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남이 없이는 말할 수 있는 것을 나로선 찾을 수 없었다.
하반하 생활을 하며 은연 듯 모두가 각자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이, 외모, 성격, 행동, 모든 것이 비교 될 수 있었다.
아우들의 말투나 선생님들의 말투만 본다 해도 이미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형님들에게 대하는 아우들의 태도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에서 모든 것이 비교로 인해 만들어진 행동들이었단 걸 느꼈다.
비교한다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비교가 곧 성장의 원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더 설명을 하지 않아도 왜 그런지 이해할거라 생각한다.
남에게서 부러운 부분을 닮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말이다.
우린 살면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런데 과연 주위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난 어디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색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색을 입으며 변한다.
날 만나는 사람 역시 나의 색을 입으며 그들의 색도 변한다고 본다.
나의 색이 내 주위 사람들에게 번졌는데 그들의 일부가 나이고 나의 일부도 역시 그들이 아닐까.
난 매일 사람을 만나며 변한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동안 내가 남에게 이로움을 받은 만큼 나 역시도 남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올해 나에게 많은 성장을 할 수 있게끔 당신의 색을 입혀준 선생님들, 학생친구들, 부모님들, 주위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첫댓글 따뜻한 사람
정직한 사람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춤 잘추는 사람
베풀줄 아는 사람
재경이가 모두다 갖고 있는 것들이야
이런것들을 더 단단하게 키운다면
너만이 가진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아닐까?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도 기대만땅이다^^
재경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만큼 다른 아이들을 이해해주려는 마음씀이 깊은 재경이를 보며 좋은 형님이 있어서 아이들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지. 또 몸치 유민이가 춤을 추는 것을 보면서 재경이가 가르치는데 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
내년에는 선생님으로 함께 한다니 더욱 반갑고^^
앞으로 해내가는 경험들이 재경이를 정말 재경이 답게 만들어주길~^^
작년에서 문집을 쓰면서 너 자신을 마주하기 힘들었던 걸로 아는데 올해도 역시 문집 쓰느라 올해도 고생많았구나.
그만큼 너의 고분분투한 흔적이 많이 느껴진다. 덕분에 너 자신을 대할 때 훨씬 편해졌겠지~^^
근데 트럭 사고가 있었던 걸 이제서야 알았어. 읽으면서도 아찔했어.
다치지 않은것과 그 일을 잘 처리해주신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고, 대가를 치렀지만 덕분에 사람을 얻게 되었다니 정말 다행이다.
네가 복이 정말 많은 아이라는 걸 항상 명심하고 네가 받은 복을 하바나에서 잘 펼치는 올해가 되기를 바래.
재경이 지금까지 잘 살아줘서 고맙다...
눈빛이 따뜻한 재경아~~
다른 학생들의 문집을 통해서든, 선생님들의 평가를 봐도 재경이는 이미 하반하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고 모든 이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고 있는것이 확실한걸~~
올해 스텝으로써 함께 하는 동생들 잘 부탁할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니 스텝 정재경의 활약을 기대할께~~!!!
p.s 춤에 관심도 자신도 없었던 세훈이를 즐길수있는 아이로 돕고 가르쳐준거 너무 너무 고마워~~!!!
재경형님 ㅎㅎ
너무 수고 많았고 고마워
그 많은 농산물들도 고맙고
항상 따뜻하고 노력하는 모습
고맙고 감사해
2021 더 좋은 한 해가 되고
행복과 평안으로 꽉차길
기도하며
온유하고 자상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재경이. 몸치인 아이들이 다들 그 어렵다는 방탄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재경이가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구나란 느낌이 들었어.
올해 수뇌부장, 총소감문 담당, 협동조합당, 정산탐장, 워커팀장, 2학기 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총합한 스텝샘이 되는구나. 준비된 스탭이라 잘 해나가리라 믿어.
너의 2021년을 응원한다.
위에 댓글에 다 내가 하고싶은 말씀들을 다 해버려셨네! 내 눈에 재경이 어떤 스타일도 소화 해내는 능력자로보여~
도윤이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