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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1일 예수영성수련회
발표자 평산
이현필의 신앙과 영성
믿음은 인격의 완성입니다
1. 그리스도의 형상은 사랑입니다.
복음은 율법이상이며 초월입니다. 은혜로만 성취되는 길이며, 영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성립 시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사람의 완결입니다. 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 이루어 받은 것이 저의 소원이오, 목적입니다.
배추 한 포기에도 은혜와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 수고만큼 된 것은 율법입니다. 그 이상 된 것은 은혜입니다. 무엇이나 은혜와 율법은 떠날 수가 없습니다. 물질에 안팎에 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은 바깥이요, 은혜는 속입니다.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을 본받으려 하면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면 대단히 평안합니다.
<일기> (1961. 10. 9)
그리스도의 형상이 제 안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제 소원입니다. 주님께옵서는 모든 인류를 부모요, 형제요, 자매처럼 여기셨습니다. 저와 만나는 이는 누구나를 부모나 형제나 자매로 여겨져야 뵐 자격이 있다는 것이 알아집니다.
주님 참 그랬습니다. 꼭 형제로만 보여지면 뉘집을 찾아갈 필요가 없사옵나이다. 명심케 해 주옵소서. 사도들은 모든 이를 부모형제요, 자매요, 자녀같이 여기셨나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제 안에 자리 잡어지이다. 아멘.
제가 그리스도처럼 부모 형제 친척 친구를 위해서 공로를 세우는 저 되기 원하옵나이다. 저 사람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버지 소원은 제가 그리스도의 형상 본뜨고 사모하는 일이옵나이다.
아버님 뜻 알려 주셨사오니 열절熱切히 사모하게 해 주옵소서. 아버님 원만 이루워지이다. 제 원은 아버지 원이 제 원 되어지이다. 제 소욕은 아버지 원에 비하면 죄된 것이오니 치워 주소서. 그리스도의 성상을 제 맘 안에 모시고 좋게 살아나가게 축복주소서. 노인들을 어머니처럼 모시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공로를 아는 것이요, 친구의 자녀 돌보는 것이 친구를 대접하는 도리인가 봅니다. 사업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형상 닮는 일입니다.
<일기> (1961. 10. 8)
2. 천하제일의 중대사는 믿음으로 자기를 지키는 일입니다.
제 자유가 바늘만큼이라도 없어져야겠습니다. 제 인격이 닦아져서 빛을 발하려면 아버지의 완전하신 것처럼 저도 완전해져야겠습니다. 주님께 붙잡혀야만 인격에 변화가 오겠습니다.
<일기>(1960. 11. 10)
저로 하여금 설 자리에 서서 마땅히 살필 일만을 살피게 해 주시옵소서. 저 하나 바로 되는 일이 참말 천하가 잘 되는 일인가 합니다.
<일기>(1962. 11. 5)
저 한 사람 믿는 일이 제일 위대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일기>(1964. 1. 16)
제 몸 하나 지키는 것이 천하에 제일 중대사임을 깨닫습니다. 제 몸만 여태껏 지켰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주님 저를 안전히 보전해 주시옵소서.
<일기>(1964. 2. 22)
거룩하게 거듭나서 살아야겠습니다. 저의 완성을 재촉하십니다. 저만 완성된다면 모든 것은 실로 가능하나이다. 구제도 구속사업도 가능합니다.
<일기>(1964. 3. 5)
3. 성화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조알을 심어가지고 조의 줄기 대를 얻자고 심은 것이 아니요, 그 조알을 얻자고 심은 것이니, 조알은 조알이라는 답이 나옵니다. 농부의 목적이 조알을 심어 조알을 얻자는 것이라면, 그 조알의 줄기는 지나가는 과정을 구경하는 것입니다.
천주의 영혼의 농사에 있어서도 영혼을 심어 육신을 얻자 함이 아니요, 다시 빛난 영혼을 얻으심이 목적인 것입니다. 그 육신은 그 영혼의 영글 동안 지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서속 농사에 있어서의 조, 수수의 줄기대 시절 같은 과정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수수를 심어놓고, 그 수수 알이 영글기를 기다림이 사람의 뜻이며, 사람을 낳아놓고, 그 영혼이 성화되기를 기다림이 천의天意입니다.
4. 자기완성이 우주 완성입니다.
자기완성이 우주 완성이며, 역사의 완성인데 인생은 죽었기 때문에 역사가 파괴되었고, 우주가 파괴되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막대기 끝에 구리 뱀을 든 것 같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죽은 우리가 살아야겠습니다. 세상도 내 속에서 살고 나를 찾아야겠습니다. 나를 어찌 찾을까요? 자기 죽음을 알고 십자가로 연합해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영생은 오래 사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우리는 영생의 삯을 받았으니 소중합니다. 삶의 의미와 의의를 찾고자 하는가요? 우주 완성도 역사완성도 예수로 이루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자기를 찾으면 자기와 세계와 우주, 역사가 완성 됩니다.
<순결의 길 초월의 길> pp. 37-38
5. 물질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주님을 삼년 따라 다니던 가롯유다는 예수를 은 30에 해당 못 된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 값에 팔았고, 제사장들은 은 30보다 해독이 더 크므로 예수를 사서 없애고자 애를 썼습니다.
예수를 평가하는데 사람마다 다릅니다. 예수를 평가하는 걸 보아서 그 사람의 인격의 가치를 측량할 수 있습니다. 인격이 고귀할수록 예수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고, 자기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여인은 은 30보다 3배나 더 귀한 가격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고, 발바닥에 입까지 맞췄습니다. 무한한 사랑을 표시했습니다. 주님께서 그 발로 걸어 오셔서 그녀의 고귀한 인격이 천하게 윤락되었을 때 건져주심에 감사한 것입니다.
과연 물질보다 인격이 얼마나 고귀한 것입니까? 물질 가지고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자기의 인격이요, 또한 다른 사람의 인격입니다. 기계보다 사람이 몇 만 배 더 고귀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인격의 고귀함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역적같이 알게 됩니다.
아!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순간의 향락을 위해서 고귀한 인격을 떨어 뜨려 버리는 일입니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영적으로 아는 사람은 인류의 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순결의 길 초월의 길> pp. 69-
6. 믿음은 그리스도의 신격에 부딪치려고 올라가는 일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는 사업으로는 책망 들을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 향한 일편단심만이 요구됩니다. 교육도, 구제도, 전도도 아닙니다. 치산치수治山治水나, 도로 수선 같은 토목사업이나 건축사업도 아니요, 병원, 고아원, 불구자 요양원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믿는 데 있어서 여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눈에 뜨이니 불가불 버려두고 지날 수가 없어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이것이 주요한 목적이 아닙니다.
또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가 나선 것도 아닙니다. 그걸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을 흠모해서 찾는 길입니다. 어디까지나 주님을 만나 뵈려는 타는 마음인데, 그 마음에 긍휼의 기름이 있어서 불쌍한 것을 볼 때 불이 붙는 것입니다. 자비의 손이 뻗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 나설 수도 없었거니와 중도에 목적을 전환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저 그리스도의 자비하신 인격에 도달코자 하는 목표만이 뚜렷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스도만 중심삼고, 성령의 인도로 천군천사들 호위 아래 성도들의 기원의 성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최고 목표 즉, 모든 부정한 정욕과 자기의 옅은 욕망을 버리고 고결한 신격神格에 부딪치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군은 정욕과 싸우는 것이요, 사람이나 병이나 짐승이나 천재지변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병이나 불행의 근원은 사악한 자기 욕정과 간사에 있습니다. 공명정대하고 정의에 입각하여 생활하는 데는 불행이란 그림자가 감돌 수 없는 일입니다.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순결의 길 초월의 길>pp. 66-67
7. 신앙과 인격과 수양
믿을수록 인격이 나아지지 않으면 사탄과 같아집니다. 그러므로 저급한 신앙은 도리어 약한 짐승을 만듭니다. 참 신앙의 필요가 얼마나 절감된 지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참된 인격은 참 신앙의 뿌리를 둡니다. 거짓된 인격과 거짓된 신앙은 서로 떠날 수 없습니다. 사업적 신앙, 도둑질하기 위한 믿음, 살인하기 위한 믿음은 배격합니다. 참 신앙과 아주 다릅니다. 참 된 인격이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같이 되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너그럽고, 누구나 사랑하며, 예수님같이 하나님 아버지만 신뢰하고, 변치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풍파를 만나도, 아무리 혹독한 형벌을 만나도,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조금도 마음과 태도에 요동이 없습니다. 참 된 인격을 생각지 못하는 생활은 진실로 헛되고, 아깝고, 가련한 것입니다. 각각 자기의 무엇보다 귀하고 보배스런 인격을 날마다 생각하고 배양할 것입니다. 그것이 수양입니다.
수양이란 공부가 아닙니다. 직업이 아닙니다. 인격의 실력을 얻은 일입니다. 모든 일에 굳센 의지와 밝은 이성을 가지고 사리를 판단 처리하며 순수한 정서로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며 가장 공정하게 대하여 편벽이나 어그러짐이 없도록 하는 수련입니다.
이 연습을 날마다 시간마다 대하는 사람마다 일마다 모든 물건까지 나타내서 쓰는 연습이니 함부로 지내심이 없으심 원합니다. 양철통 하나 두는 것도 수양하는 이가 두는 것은 달라야 합니다. 흙 위에 그냥 두거나 밤이슬 맞는 곳에 두지 않습니다. 외못 한 개, 흙덩어리 하나를 제자리에 놓아주는 이가 됩니다. 사실은 제 인격을 제가 아무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다른 분들의 인격은 제 생명처럼 존엄하게 여기면서 과오로 말미암아 모순을 범한 것인가 합니다.
제 인격을 생각한다면 다른 분의 모순을 조금도 지적하지 않을 것이며 과오나 실수를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보배스런 인격들을 스스로 모르고 짓밟는 것들이 하도 분해서 울분과 혈기를 부리고 있으므로, 진실로 두렵고 떨리는 바이며 부끄럽고 모범될 수 없는 점을 한하는 바입니다. 아버지 주님의 명령을 못 받을 터이면 이 땅 위에 더 살아 무엇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형제자매들 사랑치 못한다면 참으로 쓸데없는 인생이로소이다. 주님! 주님만 사랑케 하소서. 제 마음을 빼앗아 가소서. 온전히 빼앗으셔 주님 수중에 두소서. 주님 이름으로 비옵니다.
<순결의 길 초월의 길> pp. 6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