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세상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전혀 상관없는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 관계가 없는 경우가 드물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기 전부터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알았을 것이고, 철학자의 주장으로 인해 아 그런가.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철학자의 주장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사람이라고 해도 살아보면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으면 살아가는 데 힘이 든다는 사실은 발견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만 관계를 맺으며 살까? 하고 무료한 시간 속에서 생각에 잠겨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동식물은 모두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생존을 위한 DNA가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동물과 식물 역시 그들이 생을 온전히 보존하고 영위하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꿀벌이 꽃에서 꿀을 채집하여 먹어야 살 수 있지만 여기서 꽃이 꿀을 생산하지 않으면 생명을 보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꽃은 꿀을 만들어 꿀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DNA를 후손에게 남기는 작업에 꿀벌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듯이 서로 돕고 이로운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흔히 동물의 왕이라고 일컫는 사자를 보라.
수사자는 사냥도 잘 하지 않고 암사자 무리가 사냥한 것을 무리의 우두머리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먼저 식사를 하는 얌체 건성은 가졌지만, 암사자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서로 합동작전을 펼쳐 먹잇감을 쉽게 사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흔히 말해 인간만이 사회성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구할 때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협력해서 사냥하면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도, 성공률이 높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서로는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종과 상관없이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맺는 예도 있고 같은 종끼리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듯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은 유아독존으론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님을 볼 수 있다.
아물면 스스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 중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인간이니 당연히 관계를 맺어야만 이 삶이 순조롭다는 사실을 깨우치는데 크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오직 목숨만을 위해서 서로 협력하면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전쟁과 같은 불행한 일들은 만들지 않아도 되겠지만 인간이 가진 욕심과 사악함이 늘 도사리고 있어 약육강식에 의한 싸움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면서 느끼는 것 중 가장 슬픈 것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영토를 관장하면서 노력하며 살면 될 것 같은데 괜히 이웃의 영토를 넘보고 전쟁을 일으켜 조용히 그리고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의 목숨을 해치는 범죄행위를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려옴을 느낀다.
나쁘다는 것은 상대방이 원치 않음에도 싸우자고 덤벼드는 것임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도 나쁜 짓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지만, 그 속에는 포악함이 욕심과 더불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해보지 않은 것이 딱 하나가 있다.
그것은 내 욕심과 욕망 때문에 상대의 의사와 상관없이 싸움해본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왜 상대방에게 싸움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은 에너지가 너무 많아서 누군가와 결투를 벌여 그것을 소진하는 방법으로 이용했겠지만, 사실은 은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사람은 폭력성이 존재하거나 욕심이 가득 차 있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싸움질을 하지 않은 이유는 없다.
그냥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신사적인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고 굳이 누군가 싸움으로 무엇을 얻을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모두와 관계가 원만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분명 아니다.
그것은 필요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않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이다.
요즘 흔히들 인맥이 넓은 사람이 잘살아온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나쁘지 않겠지만 두루뭉술 알고 지내는 관계가 진정한 의미의 관계일까에 대한 의구심은 든다.
참 멋대가리 없는 삶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것이 내 방식이었나보다.
그러니 굳이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두는 식이다 보니 많은 사람과 인맥을 만들지 않았지만 늙어 생각해도 큰 미련이나 후회 따위는 없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것이 좋다는 논리도 존재한다.
그것은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굳이 도움을 받을 목적이 존재하지 않다면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항상 존재해서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 관한 관심은 꺼두고 살아온 게 아닌가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누군가든 필요한 사람과는 관계를 맺으면서 사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인맥이 넓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클럽에는 수많은 회원이 있다.
그 많은 회원을 모두 알고 친하게 지내는 것은 힘이 들고 꼭 그래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존재하지 않아 그냥 적당한 숫자만큼만 속내를 얘기하고 지내는데 삶의 방식일 수 있고, 살아오면서 복잡하게 얽힌 관계 때문에 머리 아픈 경험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에 의하여 만들어졌는지 몰라도 얘기하고 싶은 것은 수많은 관계만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적당히 스스로 관리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치만큼 관계를 설정하여 사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늙으면 행동반경에도 제약이 생긴다.
기민함이 줄어들고 생각의 폭도 한계가 있어 사람의 이름과 품성을 익히는데도 어려움이 있어 굳이 다 알고 다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있어 그냥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평하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설정하여 살다 보니 알고 지내는 사이쯤으로 한계가 설정되어 있어 삶이 편하다는 사실이다.
사실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 말해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관계도 굉장히 예민한 부분이 존재한다.
본인의 생각만으로 상대방을 대하면 결국은 분란이 생겨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다고 수많은 하객 앞에서 약속한 사실과 상관없이 이혼하는 부부도 많이 보듯이 이 작은 단어가 가지는 힘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삶이 행복해지고 윤택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느낀 사실은 관계가 복잡할수록 인간의 삶은 힘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잡한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이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생각의 폭도 좁아지니 그 많아야 한다는 인맥도 하나 둘 정리하고 꼭 필요한 관계가 아니라면 내려놓는 방식도 좋은 게 아닐까 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서 언제가 도움이 될 사람이라는 인식하고 관계를 맺었다면 노인의 처지가 된 시점에서는 반듯이 정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삶을 끝없이 영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들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고 내가 맺은 관계를 원만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마지막 순간 세상사 모든 것 버려두고 떠나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알고 있다면 그것은 틀렸다.
올 땐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는 옷 한 벌은 걸치고 가는 게 인생이니까 그래도 한평생 살면서 육신 가릴 거죽 데기는 건졌으니 대단한 것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네가 욕심내면서 만들어 놓은 관계도 미련처럼 움켜쥐고 절대로 놓을 수 없다고 바동대도 소용없는 짓임을 알아야 한다.
바쁘게 살아왔으니 쉬엄쉬엄 살겠다고 말하면서 웃는 사람이 많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그것이 옳으냐 그러냐에 대한 해답은 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내가 설정해놓은 관계에 대한 한계가 존재하고 삶의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흘려듣고 만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미 오래전에 떠난 사람들의 이름을 핸드폰에서 지워가고 있다.
그것은 당신과 나의 관계를 끊어낸다는 의미보다 그냥 조용히 내려놓고 있다는 의미일 뿐이지만 굳이 내 핸드폰 속에 저장해둔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잊혀저 가는 것은 당연하다.
흔히 말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진리가 알려주었듯이 그렇게 다가오고 사라지는 지는 것이 관계의 철칙이기 때문에 탓하거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다.
잊으려고 몸부림치는 관계는 좋은 관계는 아니다.
원한이 있거나 신세를 진 사이이기 때문에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대부분이듯이 좋은 관계는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즐거웠고, 소원해져 사라지는 그것만큼 좋은 관계는 없다는 것이 요즘 혼자 생각하는 관계의 의미다.
가끔 지나온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있다.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배시시 웃음이 입가에 떠오르면 좋은 관계이고 입술을 깨물고 싶으면 좋은 관계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냥 만들려고 한다면 훗날 웃음이 배시시 떠오르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네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인데 그것만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이고 보면 참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