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 교수들의 비애

지잡대 교수들의 비애   “잡상인 및 대학교수 출입금지”고교 3학년 별도 교무실이나 전체 교무실 출입문에 붙어있는 게시문구라고 한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이런 자조적인 문구가 횡행 하는 데는 내가 대학교수로 재직시에 학교 홍보활동 하러 동서남북 발로 뛰던 경험에 비춰 보건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있음직한 이야기다. (심지어는 전국잡상인연합회(?)에서 우리를 뭘로 보고 저급한 대학교수랑 동급으로 취급하느냐고 반대시위를 한다는 농담도 있다.) 대학소개 책자를 들고 교무실 문을 뺄쭘히 열고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히고 들어서면, 만나야 할 교사는 책상 위 컴퓨터에 머리를 처박고 게임에 몰두하면서 아예 대학교수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가 하면, 아래위로 한 번 쓱 훑어보고는 ‘저기 저 구석에 던져두고 가세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20년 초부터 고교 졸업자수가 대학 정원을 넘어선다고 한다. 지잡대(지방에 소재한 잡다한 대학)중에서 특히 2년제 전문대학들은 대학의 존망과 학과의 존폐를 걸고 입시활동에 전력투구한다. 한 고교에서 대학홍보활동 허락을 얻어내려면 대개 한 고교를 3번은 기본으로 방문해야 한다. 첫 번째 방문은 3, 4월 학기 초다. 학기 초라 고교 선생님들도 매우 바쁘다. 이 눈치 저 눈치 본다. 찾아간 고교의 분위기가 어떤지, 3학년 부장과 담임 진용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를 정탐하는 단계이다. 담임 중에 혹시 학교나 고향의 선후배나, 선후배의 친구의 친구라도 연이 닿는다면 대박 용천여의주다. 대학 홍보물이 별도로 준비되지 않는 대학은 개인 돈을 써서 최소 음료수 박스 하나는 들고 학교마다 찾아 간다. 입시홍보비가 적은 국공립 대학들은 다른 항목에 책정된 국비를 입시홍보비로 전용하기 위해 총장을 위시하여 말단 담당자까지 머리를 싸매고, 감사에 걸린 대학은 모집인원 축소 등 철퇴를 맞는다.   두 번째 방문은 여름방학쯤이다. 이때는 홍보회 가능 여부를 탐색하는 단계다. 내가 다녔던 지잡대 중에서도 전문대학은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기껏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 마치고 귀가한 후인 저녁 야자시간에나 큰 인심 쓰듯 10분 여 허락해 준다. 홍보물품을 양손에 들고 낑낑대며 강당에 가보면 홍보회에 참석한 고교 학생수가 홍보하러 온 각 학과 교수수보다 적을 때도 있고, 심지어 서너 명 앉혀 놓고 홍보영상 돌리고, 홍보기념품 돌리고, 최대한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 ‘우리 대학은 원서만 쓰면 무조건 합격이다. 그러니 다른 대학 가더라도 우리 대학원서 한 장 써두면 최악의 경우 보험용 아니겠나?’ 이런 식이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한 학생이 최소 4~6 개 대학에 지원을 한다. 합격해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원서를 한 장이라도 건지면 쾌재를 부르면서, 자기학과 원서가 아닌 경우는 물에 빠진 생쥐 꼬락서니로 귀가한다.   3단계는 대학홍보회다. 운이 좋아, 또는 모종의 뒷거래가 있어서 고교가 협조를 해 주면 수 십 명씩 모인다. 교수들은 차례로 각기 제 학과 홍보에 침을 튀긴다. 전혀 원서를 못 받는 학과가 있는가 하면, 인기가 있어 무더기로 원서를 받는 학과가 있어 일희일비한다. 심지어 인기 학과 교수는 입시설명회에 오지도 않는데, 자기학과 원서는 한 장도 못 받은 타 학과 교수가 대신 원서를 전해 주는 비애를 누가 알까?.   자, 이제 수시 모집이 끝났다. 물론 목표량에는 한참 모자란다. 그래서 신주단지 모시듯 원서관리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원서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학생들이 거부감 가지지 않을 정도의 주기로 몇 차례 전화 설득을 한다. 교언영색이 따로 없다. 아예 다른 학교 가기로 맘먹고 수신 거부를 걸어버리는 얘들도 많다. 이 메일 주소로 별도 작성한 학과 홍보지를 보낸다. 부모님 전화번호가 적혀 있으면 부모님께도 온갖 감언이설로 호소한다. 예비 등록기간이 오면 더 바빠진다. 각 학과별 등록실적이 실시간으로 학내 인트라넷에 공지된다. 죽을힘을 다했어도 대부분 학과가 미달로 끝난다. 그 과는 소속된 모든 교수가 총장실로 불려가서 호된 질책을 받는다.   본시에 희망을 건다. 하지만 약 80%가 모모한 대학 수시에 합격한 상태라 대학홍보강당은 퀭하니 찬바람이 분다. 애처로운 교수 낯빛을 안타까워하는 담임 몇 분은 반 아이를 불러 모모대학으로 가라고, 학비 싸고 취업률 높다고 을러보지만 콧방귀만 뀐다. 수시 모집에 이미 합격했고 나이트클럽 하나 없는 그 먼 시골까지 왜 가느냐는 항변이다. 정시 모집 마감시간이 가까워 온다. 혹시 이삭줍기라도 할까 하여 이 학교 저 학교 떠돌아 다녀 보지만 문전박대만 당하고 돌아온다. 드디어 마감이 끝났다. 모집기간을 연장해 보지만 효과가 없다. 그럼 인원 미달을 면할 방책이 무엇이냐? 질문은 있으나 답이 없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대학 설립인가를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바꾼 이후 전국에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탓이다. 교육부에서는 대학 평가를 통해 자연 퇴출을 해마다 유도를 하고는 있으나 지지부진이다. 30세 중반까지 죽을힘을 다해 외국까지 가서 석, 박사 학위까지 받고 바늘구멍 같은 절차를 거쳐 대학교수 되었다고 온 동네 입구에 축하 플래카드까지 걸었는데, 교수님 호칭 듣자마자 종치고 막 내릴 대학들의 수많은 젊은 교수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거기다 이 대학 저 대학 떠도는 보따리 장사, 시간강사가 수 만 명이다. 그 일은 또 어찌할꼬?   필자: 정윤범(경남도립거창대학 17년간 근무. 2년 전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