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물결을 타는 것일까. 올해로 세시즌째를 맞은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KPBPAㆍ이하 선수협)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2000년 1월 창립총회를 계기로 씩씩하게 닻을 올린 선수협은 1ㆍ2기 '강성' 집행부에 이어 과도 체제나 다름없는 '중도' 3기 집행부를 거쳐 올 스토브리그를 맞았다. 처음의 색깔이 상당히 누그러졌다. 굵직굵직한 현안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너무 빨리 달아올랐던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삐걱대는 4기 출범
4일 경주에서 열린 선수협 총회 분위기는 예년과 좀 달랐다. 각 구단이 대표 선정에 진통을 겪어 선수협 회장단 구성이 뒤로 미뤄졌다. 지명도가 있는 선수들 대부분은 선수협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한다. 각 팀 선수들로부터 많은 공감대를 얻은 '진정한 대표'가 선출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왜?
구단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수협 집행부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려왔다. "주장은 할 수 있어도 선수협 대표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주소다. 메이저리그처럼 엄격하게 비지니스 관계로 만날 수 없는 선수와 구단. 선후배 사이에서의 상명하달식 위계질서 등 한국 특유의 야구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경우에는 선수대표는 전적으로 선수노조와 관련된 공식 업무를 처리하고, 나이 많은 선수가 한국의 주장격인 클럽하우스 리더(특별한 직함은 없다)가 돼 팀 분위기를 이끈다.
▲선수협의 새방향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선수협의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 자유계약선수(FA) 기간 단축, 대리인제도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다. 올해부터는 선수협의 모토가 현실화되는 추세. 일부 잘 나가는 특정 선수들을 위한 제도 개선보다는 고른 혜택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최저연봉, 상해보험, 은퇴후 취업알선 등 다가오는 현안들의 해결을 위해 뛰고 있다. 최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가 '해외에 진출하면 FA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결정한 데 대해 선수협측이 크게 반발하지 않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선수협의 새로운 갈림길이 될 수 있는 4기 집행부 구성의 진통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들이 힘겹게 첫 단추를 끼웠던 1기 집행부다. 두시즌이 지난 지금 이들의 행보가 묘하게 엇갈리고 있어 흥미롭다.
부회장이었던 SK 최태원은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선수 생활의 중요 기로에 선만큼 이곳 저곳 세심하게 마음 쓸 여유가 없다. 후배들 모두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 최태원과 마찬가지로 부회장을 지냈던 양준혁은 야구인생의 갈림길에 놓였다. FA 선언을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결실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양준혁은 4일 총회에 모습을 드러내 후배들을 다독거리기도 했다. 최고의 '입'으로 화제를 뿌렸던 대변인 강병규는 연예인이 됐다.
▲한가지 제언
한국프로야구의 시장은 메이저리그는 물론 이웃 일본과 비교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20년의 성인이 됐지만 덜 익은 곳 투성이다. 선수협은 그동안 KBO와 각 구단을 상대로 몇차례 '모 아니면 도' 식의 극한 대립을 하면서까지 싸워왔지만 생각만큼 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용병 쿼터' 문제를 둘러싸고 포스트시즌 보이콧을 선언했다가 별 명분없이 물러나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선수협은 결코 실패작은 아니었다. 2년전 첫 발의 큰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때다.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일지]
▲2000.1.22-오전 1시20분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창립총회 개최
▲3.10-선수협ㆍ한국야구위원회(KBO)ㆍ정부가 3자회동을 열어 시즌 끝난 뒤 선수협 결성하기로 결정
▲12.18-제2기 선수협 출범
▲12.20-송진우 등 집행부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
▲2001.1.19-문화관광부 중재로 타협안 도출(선수협의 사단법인을 유보하고 선수들의 자율의사로 대표를 뽑기로 결정)
▲1.26-제3기 선수협 출범
▲9.7-KBO 5차 이사회에서 외국인선수 엔트리를 2002시즌에도 현행 '3명 보유, 2명 출전'으로 확정
▲9.19-선수협은 선수관계위원회를 소집, 강경대응을 선언
▲10.4-긴급 대의원총회를 열어 외국인선수 엔트리가 2명으로 축소되지 않을 경우 포스트시즌 보이콧하기로 결정
▲10.6-보이콧 철회 결정. 이호성 회장과 사장단 대표 이남헌 사장, KBO대표 이상국 총장이 3자회담을 갖고 용병문제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
▲10.11-3자회담 개최. 비공개 회의에서 서로의 입장만 재확인.
▲12.4-2001 선수협의회 정기총회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