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8장 21-35절 용서의 중요성
예수님께서 죄를 범한 형제에 대하여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처럼 여기되 그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내 이름으로 모여서 죄지은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가운데 나도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마음 속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지?”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여쭈어보았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베드로에게서 일곱 번은 대단한 것입니다. 상당히 급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오늘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에게 대단함 위에 더 대단함을 요구하셨습니다. 22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것은 엄청난 요구입니다. 한 번의 용서도 제대로 못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은 일곱 번 용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곱 번을 일흔 번이나 계속 반복해서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신적인 용서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용서가 가능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신적인 용서를 하라고 베드로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용서의 마음을 주시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마음을 주실 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마음을 함께 주십니다. 헤아림이 없이는 상대방을 용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거기에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주신 새마음을 주실 때 용서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천국이 무엇인지를 종들과 결산하는 임금을 통하여 설명하십니다. 23-27절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임금은 임금에게 빚진 종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빌려 간 그 액수가 얼마나 많은지 무려 1만 달란트를 빚졌습니다. 1만 달란트는 천문학적인 돈입니다. 이 돈은 예수님 당시 국가 예산과 맞먹을 정도로 큰 돈입니다. 임금은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갚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신하들에게 대안책을 제시합니다.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하라” 판결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이 종이 엎드려 절하면서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하고 간구합니다. 자신도 가족들도 빚을 갚는다고 노예가 되는 것은 엄청난 아픔이요 슬픔입니다. 사실 자신도 이 빚을 갚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연장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는 간구하는 것을 보면서 임금은 그를 긍휼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일만 달란트를 조건없이 탕감해주었습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이 수천 만원을 누군가에게 빚을 졌는데 그가 여러분의 집과 땅과 자녀들을 다 가압류해서 가져가려고 하는 상황이라 잠도 못자고 전전긍긍하다가 다음날 찾아가서 사정사정 했더니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수천만원을 조건없이 탕감해주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 사람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가고 싶은 그런 홀가분한 마음과 기쁨으로 가족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 집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 도중에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백 데나리온은 노동자가 100일동안 받는 급료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대부분 일당이 15만원 정도하는 데 거기에 100을 곱하면 100데나리온이 됩니다. 약 1500만원 정도가 되는 돈을 그 사람이 빌려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적은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임금에게 탕감받은 그 액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됩니다. 코끼리에게 매달린 개미 정도 밖에 안되는 돈입니다. 하지만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았던 이 종은 그 사람을 보자 마자 기쁨이 다 사라졌고 오로지 돈을 받아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차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달려가 “너 왜 내돈 안갚아 빨리 갚아”하자 그 사람이 땅에 엎드리면서 간곡히 말합니다. “조금만 참아 주소서 내가 갚겠습니다”
이 동료가 행한 이 행동은 이 일만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임금앞에서 행했던 간곡한 표현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종은 자기의 동료의 그런 행동 뒤에 있는 간곡한 마음을 돌아보는 긍휼함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도 역시 임금이 자기를 긍휼히 여긴 것처럼 긍휼히 여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종은 자기에게 빚진 사람에 대하여 마음을 완고하게 했습니다.
사실 이 돈은 조금만 노력하면 갚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갚을 기회를 우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종은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는 “네가 그 돈을 다 갚기 전에는 절대로 못나와”하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본 임금의 다른 신하들이 그 감옥에 갇힌 사람을 딱하게 여겨서 임금에게 가서 말합니다. “임금님께서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주셨던 그 사람이 자기가 빌려준 돈을 안갚는다고 돈을 빌려간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이 대노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다시 잡아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임금님이 말합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리고는 노한 주인은 그 사람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옥졸에 넘겼습니다. 이 비유를 드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용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마음으로부터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마음으로부터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용서해주는 그 용서를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주변의 형제 자매가 여러분들에게 잘못했을 때 받는 충격은 심히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남에게는 용서해라고 말해도 자기가 당하면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서 정직하게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용서가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한 번 두 번 기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용서의 마음을 주실 때까지, 여러분들에게 잘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시면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용서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뻐받으시며, 여러분들이 드리는 예배도 기뻐받으시며, 여러분 안에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회복시키십니다. 이것이 용서를 통해 보여지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가져다 쓴 것은 도저히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태어나 그 창조물들을 먹고 마시고 생활하시면서 사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난 후부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사용하신 것을 액수로 따진다면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너 이 세상에 태어난 후부터 내가 창조한 것을 먹고 마시고 생활했는데 그것을 다 갚아라”하고 말씀하시면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팔아도 갚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루에 들이마시는 산소의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하루치 마시는 산소의 양도 많은데 어떤 분은 50평생 들이마셨고, 어떤 사람은 60평생을, 어떤 사람은 70-80평생을 들이마시면서 사셨습니다.
산소만 마신 것이 아닙니다. 공기중에 있는 수많은 공기들을 다 마시고 살았습니다. 물은 또 어떻습니까? 하루라도 마시지 않는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다닌 땅의 통행료를 내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내야할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결산한다고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얼마나 갚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여러분들은 지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누군가로부터 받은 몇 천원, 몇 만원을 손해본 것에 대하여 잃어버리지도 않지 않습니까? 물론 어떤 사람은 수백 만원 돈을 날린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수천 만원을 손해본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손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가 잘 되십니까?
그런데 돈 문제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 특히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용서하면 하나님이 주신 그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을 쉽게 하셨는지를 알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속죄를 위한 제물로 받으시기 위해서, 그리고 화목제물로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 어린 아이 하나를 제자들 앞에 세우시고 천국은 이 어린아이 같이 받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십니까? 왜 천국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귀한자라고 하십니까? 어린아이는 영적인 순수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잘못을 빠르게 용서하고 다시 친구가 되어 놉니다. 용서도 빠르고 화평도 빠릅니다. 천국의 모습이 이 어린아이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어린아이 같이 이 하나님께 범죄한 이 죄악세상을 용서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십자가로 이끄셨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여러분들과 하나님 사이에 원수되었던 벽이 무너지고 화평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마음을 가지고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심으로 인해 여러분 안에 천국을 회복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천국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은혜가 진심으로 용서하시는 여러분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