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분열: 지상 나라의 불완전성(왕상11-16장)
{솔로몬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 천하가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정한 수가 있었더라}(왕상10:23-25)는 말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치세를 함으로써 얻은 영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 나라는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대로 살 때 흥왕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들로부터 존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이 강대하고 그의 지혜가 온 땅에 퍼지므로 모든 열왕들이 솔로몬을 사랑하고 흠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각국 나라들의 공주를 솔로몬의 후궁으로 보내며 서로 화친을 맺고 친교를 나누길 바랐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애굽은 대단히 큰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바로의 권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로가 자기의 딸을 후궁으로 줄 정도였다면 솔로몬을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국가 간의 화친을 확인하기 위해서 서로 혼인관계를 맺음으로써 조약을 유지하여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후궁이란 실상은 인질의 성격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왕의 아내로 돌아와 있기 때문에 항시 국빈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네들의 풍습에 따라 의식주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특권도 있었으며 자기네들이 섬기던 종교까지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가는 솔로몬의 이상과 정치이념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인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려 나가는 일은 처음부터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솔로몬이 그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도 자신의 수완으로 얻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다스렸기 때문에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거꾸로 명성을 얻은 후 솔로몬은 세상 열왕들과 같은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방족속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통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변질되거나 오염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솔로몬은 1천여 명의 후궁을 둘 정도였고, 저들이 각기 자기들의 신들을 섬길 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나이 들어 늙어지자 함께 예전에도 참석할 것을 종용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이방의 우상들을 위한 산당을 짓기도 하고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패역해지자 하나님은 솔로몬을 책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증한 우상숭배를 자행하고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어기었으므로 이스라엘 나라를 나누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왕상11:9-13). 그뿐만 아니라 다윗 이후부터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던 주변 국가들이 반란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반역하는 무리들이 점차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에브라임 족속인 여로보암이 정면으로 솔로몬을 대적하기에 이릅니다.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솔로몬에게서 10지파를 빼내어 새 왕조를 세울 수 있도록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에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하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애굽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으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돌아와 르호보암을 대적하기에 이릅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용하여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교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12:4)고 르호보암에게 일렀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자기가 친하게 여기는 젊은이들의 가르침을 따라 오히려 채찍으로 백성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답하자. 여로보암을 위시로 한 백성들이 반기를 들고 맙니다(왕상12:6-15 참조). 그 결과 유다와 베냐민의 1지파만 남고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북쪽 세겜성을 도읍지로 정하고 북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을 중심한 남유다 왕국과 북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북 왕국을 건설한 여로보암은 매년 절기 때마다 남쪽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려가 제사를 드리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바뀌어 자기를 살해하고 남 왕국과 연합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벧엘과 단 두 곳에 각기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곳에서 분향하며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 유다 지경으로 가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손에서 10지파를 떼어내 여로보암에게 준 것은 솔로몬과 르호보암이 우상숭배에 빠졌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나누어 여로보암의 손에 맡기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의당히 순결하게 하나님의 섬겨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상에 빠짐으로 스스로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에게 이르기를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네가 만일 내가 명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의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11:37-38)고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로보암이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북이스라엘 왕국을 다스린다면 하나님은 이 나라를 아주 귀하게 여기시고 다윗의 왕국과 같이 여기실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원래 하나님이 북이스라엘 왕국을 여로보암을 통해 건설하실 때는 성별되고 공의로운 나라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자신의 정치적인 지위와 수명에 위협을 느끼고 자기 마음대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설치해 놓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데서 기인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 왕으로 삼으시고 모든 권세를 주셨지만 여로보암은 벌써부터 자기 의지대로 그 나라를 유지해 나가고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금송아지란 하나님을 부인하고 금송아지를 섬기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되 하나님의 형상을 금송아지로 바꾸어 놓은 것으로 제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혼합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피조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피조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떠받드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일정한 절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대로 절기를 만들어 제사 드리는 행위는 북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남 유다와의 완전한 단절을 유도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돈독히 하고자 하려는 시도였으나 이러한 사상은 결국은 하나님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인본주의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에 불과합니다. 매사를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으면 과연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답게 여기면서 섬길 수 있겠습니까? 결코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할 때는 제사할 때는 하나님께 제사할 때는 특별하게 선택된 제사장에게 의하여 거행되어야 하는데 여로보암은 레위인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아 정통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에서 완전히 이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마음대로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꾸었는가 하면 절기도 바꾸고 제사장을 세우는 규례까지도 무시해 버림으로서 남 유다 왕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과느 전혀 다른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버린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명칭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어느 것 하나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대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나름대로 규정해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하면서 실상은 자신의 권위나 이상이나 체면을 더 많이 앞세우는 행위들이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그리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면 결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긴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여로보암의 사악한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은 먼저 경고를 하십니다. 곧 여로보암이 벧엘에서 분향을 하고 있을 때 선지자가 나타나 이처럼 가증한 산당과 여로보암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하고 그 제단이 깨어질 것을 선언하십니다(왕상13:1-3). 그러자 여로보암이 손을 들어 그를 붙잡으라고 소리치자 그의 손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과 같이 그 제단이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선지자의 기도로 여로보암의 손이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기는 했지만 여로보암은 끝내 그 마음을 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했습니다(왕상13:32-34).
이러한 여로보암에 대해 선지자 이히야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너의 이전 사람들보다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의 노를 격발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왕상14:7-9)고 하시면서 여로보암의 가문을 철저하게 멸망시키실 것과 다시는 이스라엘을 돌아보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나답 역시 자기 부친의 죄악에서 떠나질 못했습니다.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왕상15:26)함과 같이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지자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저주하셨던 말씀대로 바아사를 세워 철저하게 심판하심으로 여로보암의 모든 집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왕상15:27-32).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합니다(왕상15:33-34). 하나님은 선지자 예후를 보내셔서 그러한 악행을 꾸짖으셨으나 끝내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정책을 버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은 바아사 집안까지도 심판하십니다. 그 뒤를 이어 오므리가 강력한 군주로서 세력을 키워 나가고 사마리아에 도읍을 정하고 주변 국가들을 정복해 나감으로써 전례 없는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오므리 역시 여로보암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성경은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여 그 헛된 것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케 하였더라}(왕상16:25-26)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솔로몬의 대외전략정책의 실패가 하나님의 지상왕국을 분열시켰고 여로보암의 혼합주의 정책이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볼 때 이 지상왕국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영원한 새 왕국을 바라보아야 함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