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1935~ ) : 자비와 관용으로 인류평화를 심다 / 허우성

[Wondam:원담]

달라이 라마(1935~ ) : 자비와 관용으로 인류평화를 심다 / 허우성

•  입력 2023.04.06 13:43

특집 | 세계를 가르친 현대불교의 스승 10인

티베트의 운명

14대 달라이 라마(1935~ )는 정치적 불교도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정치와 불교는 분리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종교적 은둔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가 대승불교 전통에 있다는 점, 최근 300여 년의 티베트 전통에서 달라이 라마의 직위가 종교적, 현세적 지도자였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티베트의 슬픈 운명이었을 것이다.

티베트 현대사는 참 슬프다.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폭압은 일본의 조선 탄압보다 10배, 100배 더 무자비해 보인다. 1950년 10월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던 그 무렵, 8만의 인민해방군이 티베트 서부지역을 침공했다. 달라이 라마는 1987년 미 의회 인권대회 연설(워싱턴 DC)에서, 과거 수십 년 동안 총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1백만 명 이상의 티베트인이 대학살을 당하고, 최소한 그만큼의 티베트인이 종교적 신념과 자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고 말했다.

1958년 캄과 암도 지역에서 티베트의 자유 투사와 중국군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다. 달라이 라마는 자서전에서 중국군의 잔혹 행위를 이렇게 기록했다.

십자가형, 생체해부, 희생자들의 창자를 들어내거나 손발을 자르는 일은 보통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머리를 베거나 태워 죽이고, 죽을 때까지 때리거나 산 채로 매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희생자들이 ‘달라이 라마 만세’를 외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그들의 혀를 손으로 찢었다.

저항군 가담자들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무자비한 고문과 처형이 뒤따랐다. 이들에게 고문을 가한 사람들은 강요당한 승려였다. 이들은 대중 앞에서 독신 서약을 부정하도록, 심지어 다른 사람을 죽이도록 강요당하기도 했다. 비구니 승려에 대한 성적 고문도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왜 자서전을 썼을까? 티베트의 실제 상황을 진실을 모르는 선량한 중국 인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에게 과거사 기록은 잔혹한 현실의 고발이 아니라 공동의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초대였다. 이런 자세는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1989)에도 나타났다. 침략자 중국에 대한 분노나 원한, 무장봉기의 선동 대신, “나는 억압자와 친구를 포함한 우리 모두를 위해, 인간적인 이해와 사랑을 통해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데, 우리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선한 일에 억압자도 초대한 것은 상호의존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 즉, ‘적’이 바로 이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이 원리는 “우리로 하여금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더 넓은 마음으로, 분노 같은 파괴적인 감정에 덜 집착하게 해줍니다. 따라서 더 많이 용서하게 합니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각 나라는 깊이 상호 의존하고 있고,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적―바로 당신의 이웃―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당신 자신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서전 말미에서 마오의 총구에 자비의 빛을 맞세운다.

마오 주석은 정치적인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부분적으로만 옳았다.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일시적일 뿐이다. 결국에는 진실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사람들의 사랑이 승리한다. 정부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인간의 정신은 승리하고야 만다. ……나는 기도했다. 자비와 깨달음의 빛이 전 세계를 비추고 공포와 억압의 어둠을 쫓아내기를!

그는 여기에서 진실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이 승리한다고 말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 사랑을 인간 본성과 관련짓기도 한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티베트의 독립 대신 자치라는 중도적 해법조차 거부해왔다. 마오쩌둥과 시진핑은 총구가 자비보다 한없이 강하다고 할 것이다. 격변하는 세계사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한국은 주권 국가인가

한국 정부와 언론은 중국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비판을 종종 외면한다. 그를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칭송하고, 보리심과 공성을 바탕으로 탐진치 삼독을 없애야 내면의 평화가 시작된다는 그의 가르침은 무사통과다. 하지만 중국식의 중앙집권적 민주주의 곧 반자유적 전체주의 체제에는 자유, 민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달라이 라마의 현실 진단은 보도하기 꺼린다. 소위 중국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이런 현실주의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있었다. 1959년 망명 이후 최근까지, 달라이 라마는 유럽과 미국, 남미, 소련, 일본과 대만 등 총 55개국을 방문한 것 같다. 대만은 세 번, 일본은 1967부터 2018년까지 여섯 번 정도 방문했다. 하지만 한국 불교도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한국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기간인 2000년에는 방한 일정까지 잡았지만,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런 중국 눈치 보기는 중국몽(夢)에 취한 문재인 정권에서는 거의 당연시되었다. 윤석열 정권은 어떤가? 여전히 부족하다. “GPS가 고장 나면 길을 잃는다”는 최근의 기사(예영준)가 그것을 지적한다. 윤 정권이 ‘보편 규범, 인권 중시’를 공약해 놓고 크림 결의, 신장 규탄에서 모두 빠져 결과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압박이 통하는 나라’로 자처했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한국 정부는 2022년 10월 6일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와 관련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그런데 20여 일 뒤 10월 31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중국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 · 영국 · 일본 · 호주 등 자유민주 진영 50개국이 참여했다. 그런데 한국은 빠졌다. 이 기사는 이런 변심이 중국 눈치 보기의 결과라고 본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한 · 중 정상회담은 성사시켰다. 하지만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는 국정기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인권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공약은 어긴 셈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 비해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독립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다. 달라이 라마처럼 중국 정부를 적이 아니라 이웃으로 보면서도, 지정학적인 숙명 운운하며 주권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당당한 자유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인간 본성에 맞다

이는 달라이 라마가 세계 곳곳을 방문해서 사람의 행 · 불행을 관찰하며 얻은 신념이다. ‘불성’이란 말 대신에 인간 본성, 마음, 정신, 열망, 사랑이라는 말을 세계사적인 맥락에서 사용한다. 아래는 1994년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연설의 일부다.

수 세기 동안 인간사회는 엄격한 권위주의적 규율에 의해서만 통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미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자유 · 진실 ·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인간 본성의 핵심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의 사건들은 간단히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인간 마음의 막강한 힘이고, 그 결과 역사를 형성하는 데 막강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동유럽의 평화적 변화였습니다. 과거에, 억압받는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항상 폭력에 의지해 왔습니다. 이제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의 뒤를 이은 이 평화적 혁명은 미래 세대들에게 성공적인 비폭력적 변화의 엄청난 사례를 보여주었습니다. …… 우리의 후손들은 1989년을 평화투쟁의 패러다임으로 되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6개 이상의 국가와 수억 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전례 없는 규모의 진정한 성공 스토리가 그것입니다. …… 사람들은 단순히 괴롭히고,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정신에 반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유 · 진실 ·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우리 인간 본성의 핵심에 있다고 한다. 그는 동유럽의 평화 혁명이 그 열망의 힘으로 얻어낸 결과로 본다. 현대사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이런 이해는 불교계를 넘어가 일반인에게도 큰 영감을 줄 수 있다.

동유럽의 평화 혁명은 자비, 정의, 평등이라는 불교 원리를 실천한 것이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대표자의회 연설〉(1992)에서 불교 원리와 자유민주주의가 둘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말하자면, 민주주의, 자유, 정의가 갖는 가치는 모든 곳에서, 특히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전체주의 체제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true and free democracy)로 바뀌고 있는 동유럽 국가에서는 더욱 널리 인정되고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온 국민은 이제 자유와 독립을 얻고 있습니다. …… 40년 넘게 티베트 본토의 우리 형제들은 기본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억압적이고 폭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살아왔습니다. …… 머지않아 중국인은 티베트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기쁜 날, 티베트에 있는 티베트인과 망명자들이 자유 티베트에서 재회하는 날이 오면,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로 불리는 현재의 전체주의 체제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줘야 할 것입니다. 그런 민주주의 아래에서 우창, 캄, 암도의 티베트 3개 지역에 사는 인민들이 모두 사상, 표현,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 저는 티베트 민주주의가 자비, 정의, 평등이라는 불교 원리들에서 영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미래의 티베트 정치 시스템은 의회라는 다당제를 비롯해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3개 기관을 두고, 각 기관은 다른 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모두 동등한 권력과 권한을 갖기를 바랍니다.

달라이 라마에게 중앙집권적 민주주의는 종종 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혁명 이전의 동유럽, 중국과 북한의 민주주의는 거짓 민주주의다. 중국식 민주주의는 중국 인민에게는 자유 없는 전체주의이며, 폭압적인 정권 아래 살아가는 티베트인과 같은 소수민족에게는 한족(漢族) 우월주의가 겹쳐서 더욱 폭압적이 된다. 그런 곳에는 자비, 정의, 평등이라는 불교 원리도 없고, 삼권분립도 없고 사상, 표현, 행동의 자유도 없다.

달라이 라마가 세계인권선언 50주년 인권기념일(1998.12.10)에 메시지를 낸 적이 있다. 인권선언과 불교 원리가 상통한다고 본 것 같다. 세계인권선언은 UN이 1948년 12월 10일에 발표한 선언문이다. 그 안에는 인류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양도할 수 없는 고유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라고 하고, 어떤 국가에 소속된 개인이라도 인권이라는 고유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거기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 의견 표현의 자유, 평화적인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가 낸 위의 기념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 평등, 존엄성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고로 모든 인간은 그것들을 쟁취할 권리가 있다. 인권보장은 제3세계 국가에도, 티베트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는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원칙이 모든 국민과 정부가 따라야 할 자연법”이라고 천명했다(다람살라, 1998.12.7).

이런 인간 본성론에 따르면, 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의 다른 이름이거나 좌우 민중 상호 간에 억압이 될 뿐이다.

정당한 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달라이 라마는 〈전쟁의 현실〉이라는 글에서 전쟁과 대규모 군사시설, 군국주의, 핵전쟁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글에서 정당한 전쟁은 옹호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은 나치 독일의 폭압으로부터 문명을 구원했으니 정당했고, 한국전쟁은 부당한 공격에 대항했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기회가 되었으니 정당한(just) 전쟁이었다고 한다.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비판은 매섭고 강하다. 그 체제가 의식주를 제공한다고 해도 “우리 속 더 깊이 있는 본성을 지탱할 소중한 자유의 공기”를 주지 않고, “(우리를) 그저 반쪽짜리 인간”으로 “단지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만족하는 동물”로 취급한다고 보고 있어서다.

혼합경제 시스템 선호

달라이 라마는 자유의 공기가 온전한 인간의 필수조건이라 했지만, 자유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혼합경제론을 주장한다.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가 실제로 실현되기만 하면 불교에 가깝다. 그런데 현실을 보니, 노력의 결실이 자신에게 직접 오는 경우 개인적인 동기가 더 커진다. 그런데 사회 전체를 위하라고 하면 그런 동기는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미래 경제 시스템은, 우리가 양쪽 시스템의 좋은 점을 포함한 혼합경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1991).

〈미래의 티베트 정책 지침〉이라는 제목의 티베트 대표자의회 연설에서(1992), 그는 티베트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양극단을 피하고 조세제도는 소득 기준에 근거할 것이라고 하고, 티베트는 자유경제를 지향하겠지만 경제정책은 국가와 대중의 이익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했다.

달라이 라마에게 무조건의 자유에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반시장적 통제 경제에서 개인적 동기 무시와 비효율성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본적 인권의 박탈이다. 시장통제는 정치 검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 것 같다.

중국 정부에 대한 충고

그는 2002년 한 성명에서 “중국인 형제자매가 자유와 민주주의,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것”을 진심으로 소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성명에서(2011년) 중국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구는 인류에 속하고, 중국인민공화국은 13억 국민에 속한다. 중국 국민에게는 국내와 해외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태에 대한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국민이 충분히 알게 되면, 그들은 선악을 구분할 능력을 갖는다. 검열과 정보 제한은 기본적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모욕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그 정책이 옳다고 간주한다면, 그들은 이들 정책을 자신 있게 공표해야 하고, 정밀한 검토를 받아야 한다.’

2012년 11월 시진핑 주석 취임(2013.3.14) 넉 달 전, 달라이 라마는 한 연설에서 시 지도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대했다.

‘세계의 흐름은 개방과 민주주의, 자유와 법치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아무리 강력해도 세계 흐름을 따라야 한다. 중국의 새 지도부는 그러한 현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덩샤오핑은 사실로부터 진실을 추구한다고 했다. 그들은 현실에 근거한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비현실적인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2022년 시 주석의 3연임 성공과 강화된 공산당 일당 독재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이것이 덩샤오핑의 사실 존중의 원칙을 어겼다고 하고 크게 실망할 것 같다. 2022년 11월 청년을 중심으로 일어난 코로나 봉쇄 반대를 외친 중국 내의 백지 시위는 진실과 정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인간 본성이나 사랑의 표출일까? 이런 본성이나 사랑에서 나온 힘이 언젠가 독재 체제를 허물고, 진정한 삼권분립식 민주주의를 성취할 수 있을까?

달라이 라마의 네 가지 책무

달라이 라마는 슬픈 티베트에 태어난 사실을 두 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전생에 나쁜 업을 쌓은 탓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로 본다.(1991) 그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한탄 없이 최소 네 가지 책무를 희망을 품고 수행하고 있다.

첫 번째 책무는 자비심, 용서, 관용, 만족, 자기 훈련 같은 인간적 가치를 증진하는 것이다. 내 삶 속에서 이런 가치를 증진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얻어진 내면의 평화가 국가 간의 평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구현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두 번째 책무는 세계의 주요 종교적 전통들 간 종교적 화합과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다. 그는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연설(2001)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교리와 철학의 내용 간 차이와 상관없이, 세계 모든 주요 종교들은 한 개인을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종교는 사랑, 자비, 인내, 관용, 용서, 겸손, 자기 훈련 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 분야에서도 다원성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 번째는 티베트인에 대한 책무이다. 그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로서,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티베트인의 자유로운 대변인 역할을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티베트인과 중국인 사이에 상호호혜적인 해결책이 마련되면 그의 세 번째 책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네 번째 책무는 불교와 과학의 공동연구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과학과 불교 수행 간에 존재하는 연관성에 집중해왔다. 이는 두 분야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증진시키기 위해서였다. 관련 연구 모임인 ‘마음과 생명 컨퍼런스(Mind and Life Conference)’를 1987년 다람살라에서 시작했다. 그는 인간의 심리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연구하는 데 티베트불교 전통이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오타와 연설).

결론

달라이 라마는 자비와 공을 가르친다. 하지만 그에게 진정한 자유민주 국가와 독재국가의 차이는 허상(虛像)이 아니라, 현실이고 진실이다. 자비, 정의, 평등을 불교 원리라 하고 이를 다당제와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 체제와 연결한 것은 불교 경전에서가 아니라 격동하는 세계사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얻은 관찰의 결과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티베트인으로서 사람은 날 때부터 자유와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그것이 행복에 필수적임을 알았다.

한국인, 한국인 불자는 무슨 책무를 지는가? 자비심, 용서, 관용, 만족, 자기 훈련 같은 인간적 가치를 내 삶 속에서 증진하는 것이 첫째 책무이다. 두 번째는 다른 종교인과 잘 지내는 것이고, 세 번째는 자유, 평등, 민주,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를 잘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북한에 당당해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인류의 스승인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신의 탐진치를 잘 다스려 자비심을 기르는 것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는 그 자비심을 확장해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그에게 자비심과 자유, 그리고 평화는 모두 하나다.

허공계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중생계가 존재하는 한

나 역시 그곳에 머물 겁니다.

세계의 고통을 물리칠 때까지.

— 달라이 라마의 기도

허우성 woohuh@hanmail.net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저서로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과 역서로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문명 정치 종교－마하트마 간디의 도덕 정치사상》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경희대 비폭력연구소 소장.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