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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호숫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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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담소식 문화대혁명이 중국불교에 끼친 영향 / 서대원
Wondam:원담 추천 0 조회 149 23.10.27 07:1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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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10.28 11:51

    첫댓글 티베트 자치구에서는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최소 2,176개에 달하던 티베트 불교 사찰이 1976년 기준으로 단 10개만 남게 되었으며 가장 크고 티베트 내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사원이었던 간덴 사원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었고, 절의 건축 자재들은 인민해방군 군대 막사와 중국 관리들의 주택으로 재활용되었다. 수많은 승려들이 추방되고 고문을 당하다 학살당했다. 홍위병들은 비참한 모습의 시체들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대로변에 전시했다고 한다. 나머지 승려들은 강제 환속되었으며 아예 대중들 앞에서 알몸으로 남녀 승려 및 민간인 남녀 간의 성관계를 강제하고 아기의 출산을 확인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이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시 몇 개만 들자면, 5~9대 판첸 라마의 무덤들이 파괴되었고, 철거된 사원의 터에 있던 불상들은 한마디로 말해 점토 불상들은 비에 녹아내렸고, 구리 불상들은 부서져 더미로 쌓였으며, 금불상들은 먼 곳에 있는 제련소에서 녹여졌다.심지어 수많은 경전 및 관련 문서들은 문자 그대로 화장실 휴지로 사용되었는데, 이 경전들 중에는 무려 8세기경에 인도에서 직접 가져온 산스크리트어 사본들도 있었기 때문에 만약 만약 사본들이 그대로 살아 남았다면

  • 작성자 23.10.28 11:55

    세계 불교사가 다시 쓰였을 것이라고 한다. 간덴 사원에서 가장 신성하게 모셔지던 쫑카빠(1357~1419)의 등신불을 모시고 있던 탑은 "구습과 결별했음을 보이라"며 승려들로 하여금 스스로 탑을 부수고 등신불을 꺼내어 불에 소각하게 하였는데 홍위병들이 물러나자 불을 놓은 승려가 직접 불 속에 뛰어들어 불에 타다 남은 유골을 구출했다. 후에 유골은 인도에 있는 달라이 라마에게 보내지고 유품과 사리를 수습하여 다시 탑을 세웠다. 포탈라궁도 파괴될 뻔 했으나 역시 문화재를 지키려 했던 주은래가 편지를 보내 "이런 건물이 하나쯤은 남아 있어야 후에 봉건계급이 어떻게 농노들을 착취했는지 교육할 수 있다"라고 회유함으로써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포탈라궁 언저리에 있던 달라이 라마의 직속사원인 남걜 사원과 옛 티베트 의회 건물은 파괴되었다. 문화혁명은 권력욕에 찌든 모택동이라는 뒷방 늙은이가 자기 권력욕을 위해 인민들을(특히 홍위병) 부추겨 4천년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중화 문명을 중국인 손으로 스스로 부숴버리게 한 초대형 반달리즘이었다. -위키피디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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