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꿈터 봄나들이 후기
느림보꿈터의 봄나들이를 다녀온 건 나름 선택의 결과였다. 지난 주 월요일에 느림보꿈터에서 행사 알림 문자가 왔을 때 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날은 남편이 골프간다고 미리 말해둔 날이여서 애들이랑 같이 갈 수 있는 모임이 생긴 게 고마워서 바로 신청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남동생에게 같은 날 맥도날드 행사에 참석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참가 가족수를 좀 채워야 해서 참가비 4만원도 내 줄테니 애들 데리고 참석을 해달라는 거였다.
동생이 말한 행사의 작년 사진이 있는 블로그를 보니 느림보꿈터 일정이 없었으면 조금 생각을 해볼만하기도 했다. 물론 더 어린 아이들이 대상인거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 애들이 못 놀 정도는 아니였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게 비교되었던 것은 느림보꿈터는 나물 캐서 양푼비빔밥을 먹겠다는 모임인데, 동생이 제안한 모임은 점심으로 햄버거를 주고 아이들에게 라면, 쥬스를 준다는 모임이었다. 아, 이렇게 비교될 수가. 물론 동생이 맥도날드의 협력회사인 맥키코리아(맥도날드 패티 만드는 미국회사)를 다니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나름 그 모임도 참가비로 좋은 일 하는데 쓴다는 취지로 만든 모임이지만- 동생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미안하다고 하며 느림보꿈터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역시’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 전날 우리집에서 일박을 한 애들 친구들과 아침에 서둘러 헤어지고 구파발역으로 갔다. 약속한 출구에 나가니 알던 얼굴들, 알듯한 얼굴들이 있었다. 알든 모르든 반갑다. 느림보꿈터 모임이 그렇다. 괜히 마음이 열린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 우리 애들이랑 비슷한 아이들을 만난 거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잘 몰라도 일단 크게 인사를 하고 시작을 한다.
국립생태원 식물생태조사원이신 김미희선생님과 함께 도심숲을 걷기 시작했다. 생강향이 난다는 생강나무부터 시작해서 설명도 듣고, 선생님이 찾으라고 미션 주시는 식물들을 찾으면서 걸었다. 함께 가는 분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온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애들도 슬슬 재미있는지 발걸음이 가벼워져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고 보니 애들이 뒤에 선 적은 없는거 같네-하면서 걸었다. 사람이 알아야 보인다고, 선생님이 설명해 주신 식물들만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만 너무 재미있고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분들이 너무 지루하실까봐 막판에 서둘러 가니 역시 그분들도 그 시간을 잘 보내고 계셨다. 진관사 옆으로 봉은사 가는 길에 있는 널직한 공터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 자리를 사무국장님이랑 김선생님은 미리 답사를 다 오셔서 골라놓으셨단다.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그곳은 사진으로 찍어도 참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오면서 따온 잎과 꽃을 크래커 위에 올려서 카나페를 만들어서 먹었는데 애들이 맛있다며 그 간식으로 배고픔을 달랬다. 다시 일어나서 그 주변에 있는 식물들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는 뿔뿔이 흩어져 준비해온 주머니칼들을 들고 그 식물들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비닐 봉지마다 제법 담기자 그걸 모아서 씻고 뜨거운 물로 데쳤다. 튼튼이님이 약고추장을 준비해 오시고 사무국장님이 밥을 몽땅 해오셔서 거기에 참기름까지 더해서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비빔밥 안먹겠다고 했던 아이들이 일단 한번만 먹어보랬더니 한번 먹고는 맛있다고 숟가락으로, 비닐장갑으로 떠 먹기 시작했다. 혹시 애들이 비빔밥 안먹을까봐 준비해온 김밥은 찾는 아이들도 없이 맵긴 하지만 맛있다며 비빔밥을 다들 그득 먹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점심 먹은걸 정리하고 나서는 천연재료로 무늬를 내는 손수건을 만들었다. 면손수건에 각자 단풍잎이나 클로버잎이나 여러 가지 잎들을 놓고 덮은 다음 ohp필름을 대고 동전으로 빡빡 문지르면 그 식물에서 그 색깔의 즙이 나와서 무늬를 만들었다. 윤이 진이는 여자애들이라 좀더 세심하고 계획된 디자인을 만들었고, 남자애들은 그냥 열심히 만들었다. 애들은 느림보꿈터에서 그렇게 하나씩 만드는 것도 참 좋아한다. 지난 가을에도 만들어 왔던 이름표를 한참을 보관해서 내가 두 개를 몰래 버렸는데도 하나는 아직 애들 책상 옆에 걸려 있다.
마지막으로는 꼬인 마음풀기 활동을 했다. 먼저 원을 만들고 그 다음 원을 풀어서 돌아다니다가 다시 원을 만들 때 잡아던 손을 찾아 잡는 건데 그러면 아까와 다른 배열이라 서로서로 복잡하게 얽힌다. 그런데 그걸 차근차근 풀다보면 다시 원래의 원으로 돌아온다. 꼬인건 풀 수 있다는 교훈을 몸으로 체험하는 활동인거 같았다. 아이들과도 함께 했더니 재미있어 한다.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왈츠님이 가는 길에 우리를 구파발역에 내려줘서 편하게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애들이 자리에 앉자 마자 바로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어제도 친구들이랑 일박한다고 12시 넘어자고 아침에도 6시 경에 일어나더니 하루 내내 움직인 거까지 더해서 완전 피곤했나 보다.
느림보꿈터 모임은 소규모여서 좋다. 아이들과 오면 다음에는 절대 안온다는 말을 절대 안한다. 오늘도 돌아오는데 우리 6월에 토론토 가기 전에 또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단다. 나는 이 모임이 늘 자연과 함께 하려고 만드는 모임이여서 좋다. 모르고 지나치는 식물들에 대해 늘 설명해 주시는 전문가선생님이 함께 해 주시는 것도 참 좋다. 아이들도 배우고 어른들도 배운다.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 하고, 함께 먹는게 왜 그리 편하고 좋은지 모르겠다. 함께 있는 사람이 왜 그리 반가운지 모르겠다.
사실 작년 말 느림보꿈터의 송년모임에 대한 안내를 받고 나서 내가 왜 이 송년모임에 가고 싶은 거지? 하고 자문한 적이 있다. 결국에는 애들 핑계로 안움직였지만, 다른 모임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 모임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의아했다. 이번은 아이들과 함께 가는 모임이여서 기다렸다는 듯이 신청을 했고 역시나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다. 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자세하고 생동감 있는 후기 고맙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참석을 못했는데 마치 저도 그자리에 있었던듯 하네요. 느림보꿈터를 사랑하게 되신것 같아 반갑구요 ,앞으로 자주 뵐 수 있기를기대하겠습니다~^^
이렇게 멋진 후기를 읽으니 그날의 추억이 사진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그림이 그려지듯 쓰셔서 자주자주 추억하고플때 읽어볼게요. 감사합니다.
참가하지 않은 분도 함께하는 듯 세심한 글 잘 읽었어요.
저는 은혜 님이 계셔서 참 반가웠다죠. ^^
다음에도 좋은 시간 함께 해요. (아 캐나다에는 얼마나 계시는건지?)
느림보꿈터를 가고싶은 모임으로 생각해주시니 참 좋네요. 아이들과 함께한 즐거움을 이렇게 또 글로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론토에는 오래 다녀오시는지요..~ 6월 이전에 곧 소개드릴 느림보꿈터의 다른 모임에서도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멋진후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