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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조선의 지배층들이 한반도로 이주한 이유
정무광 2016.11.03
(대륙조선사카페 리원재 선생 글 정리) 조선황제 순종이 승하한 1926년 이후 장안은 치안이 고립된 섬이었다. 조선통감부가 1915년부터 ‘조선이주 수인초’를 발간, 각 일본지서에 배포했던 이주 갑지 중국에서 을지 한반도로의 이주를 어떻게 마차와 배를 이용하라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 안내문은 청구반도로의 이주를 장려하는 일본당국자들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국민당의 부정부패에 특히 화적단, 마적단들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조선양반들을 특히 테러대상으로 삼았고 실제 이 시기에 수많은 조선양반들이 피해를 당했다. 이들에게 살길을 만들어 주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 후 이들을 한반도로 이주, 대륙을 자신들의 국가로 만들려는 음모를 꿈꾸고 있었다. 당시 한반도는 이런 피해를 안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제국 헌병대들의 보호가 그들에게 더 필요한 상황이 되어갔다. 대륙조선이 분열된 것에는 이런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조장된 내부갈등과 방치된 조선양반들에 대한 린치 등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조선을 보호할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의식이 심어지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빨갱이(당시 대륙은 홍군, 홍귀紅鬼들을 빨갱이로 불렸다.)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 졌던 것이고, 이미 한반도에 들어왔던 대륙조선양반들의 이 홍귀들에 대한 반감은 해방직후 좌·우 이념대립 당시 백색테러가 일어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다. 이 홍귀들에 의한 대륙조선양반들의 갈취와 테러는 이들로 하여금 한반도로 이주를 하게 한 원인으로 제공되었고, 일본은 김일성 같은 대륙조선인들을 한반도 조선으로 파견하여 한반도 영구분단으로 대륙조선의 부흥을 막고자 한 것이다. 당시 참전한 중공군들 대부분은 대륙조선인들의 후손들이었으며 이들을 전쟁에서 제거하고자 전쟁에 참전시킨 것이었다. 신중국파들은 한반도로 이주한 조선양반들이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영토로 들어오겠다고 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나라를 세운지 1년도 안 되서 군대를 한반도로 파견해야 했던 것이다. 중국은 이 전쟁비용을 메우는데 30년이 걸렸다. 왜 그런 출혈을 감수했을까? 조선의 부흥은 신중국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도 한반도로 조선을 고착화하기 위한 의도가 그 내면에 숨어 있는 것이다.
손문은 대륙조선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가) 중국공산화의 과정을 보면 역사의 진실 된 단편을 볼 수 있다 . 일제 때부터 우리는 백제, 고구려, 신라는 한반도와 현재 만주라고 불리는 대륙남방족들이 차지한 동북삼성이라고 배워왔는데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지금 중국대륙에 수많은 ‘고려성’과 ‘백제향’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지명이라는 것은 그 지역을 차지하지 않고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 중국대륙 최남단의 베트남 북쪽 광시자치족 지역에 백제향과 수많은 백제연관지명이 존재하고 하북지방과 몽골에 아직도 많은 고려성의 흔적과 이름이 존재하는 것은 이 지역이 분명이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대륙남방족이 황하강 이북에 살게 된 것은 근세 100여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1948년 현 중공이 개국되기 전까지 현재 만주라고 일컫는 동북삼성에는 대륙남방족이 거의 살지 않았다. 모택동이 공산화한 후에 남방의 대륙남방족을 수천만 명을 동북삼성으로 이주시킨 것이다. 현 동북삼성지역은 본래 우리 조선인, 고려인들이 대대로 살아왔고 일제 때 일제의 핍박을 피해서 소수가 이주해갔다는 것 역시 날조에 가깝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현재 동북삼성(만주)지역은 우리민족의 무대였던 것이다. 이것을 일제가 원래 현 동북삼성은 여진족이 살던 지역이라고 함으로서 조선인과 무관한 지역으로 역사를 날조했고 식민사관의 후예들이 이것을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으로 세뇌시킨 것이다. (나) 현재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영어명칭은 ‘KOREA’이다. 그러나 수천 년 이상 서양이 우리민족을 부르는 명칭은 ‘The Corea’이였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바꾼 것을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원래 태전이었던 것을 대전으로 바꾼 그대로 쓰고 있는 등의 아직도 우리는 일제로부터 제대로 해방이 된 것이 아니다. 단지 매국노들은 일본이라는 말에서 미국이라는 말로 말馬만 갈아탔을 뿐이다. The Corea는 제국이었다. 서양과 아랍인들은 아직도 우리를 Corea라고 부른다. 동북아 끝 쪽에 귀퉁이에 있는 나라가 The Corea이였다면 과연 대륙 끝의 서양인과 아랍인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고서 Corea라고 불렀을까? 고려는 제국이었으며 현 한반도와 만주, 중국대륙 대부분과 현재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 카자흐스탄에 걸치는 대제국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거란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현재 거란과 돌궐의 후손이 바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스베키스탄 등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이 거란, 돌궐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와 같은 동이족의 정통후손들이라서 우리와 생김새도 거의 구분이 안가고 (물론 세월이 오래 흘러 러시아와 아랍의 피가 섞였지만) 이곳지역을 자세히 보면 우리 상고사와 연관이 있는 지역명이 수도 없이 많다. 다시 말하면 거란과 돌궐의 위치는 원래부터 현재 중앙아시아 천산유역이었던 것이다.
(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고려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몽골과 현 중국 양자강이북 동북삼성, 한반도에 이르는 지역이다.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컴퓨터를 이용해서 측정한 삼국시대의 천문기록은 고구려의 위치가 바이칼호, 현 외몽골, 내몽골지역, 현재의 신만주(동북삼성) 등으로 나오고, 백제는 산동반도, 화북지방, 한반도, 요서지역으로 나온다.
박창범 교수의 과학에 근거한 사료증명이 이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몽골인들과 키르기스스탄인들이 전 세계에서 우리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혈통이 같기 때문이다. 식민사관의 일제후예들이 강단사학을 장악하고 말로는 우리를 속일 수 있다. 그들이 1905년 이후로 장악해온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역사를 속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속일 수가 없기에 박창범 교수가 컴퓨터로 측정한 삼국의 위치는 대륙과 한반도를 다 포함하는 것이며, 피는 속일 수 없기에 삼국시대에 우리와 같은 한민족구성원이었던 몽골과 부리야트, 키르기스스탄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유전자(헬리코박터균-원시 균)를 비슷한 수치로 가지고 있고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라) 한반도가 대륙조선과 전혀 다른 국가였다고 완전히 분리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근세말까지 조선조정이 중국 장안(Xian:시안,서안)에 있었다면 한반도 역시 조선제국의 영향권이었거나 조선연방의 일원, 혹은 몽골(여진)인이었던 이성계의 이씨조선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던 고려의 후손들이 연방의 형태로 대륙에서 대피해 와서 대대로 살아왔던 지역일 것이다. 근세까지도 양자강이북, 최소한 현 북경지역과 장안지역 등의 화북지역과 한반도만큼은 조선의 영역이었다고 본다. 현재 시안부근에 있는 이집트보다도 수천 년 더 오래되고 이집트피라미드보다 큰 피라미드를 중국정부가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고 숨기는 이유는 바로 이 피라미드를 조사하면 대륙전체가 한민족의 땅이었다는 엄청난 진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대륙남방족이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대륙남방족들은 공산화 이후 역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륙의 역사가 바로 한민족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대륙을 광동과 복건성에서 세력을 북으로 넓힌 대륙남방족과 현재 일본정권을 장악한 그 대륙남방족의 갈래인 일본집권층이 구한말 공산주의와 제국주의를 통해서 대륙을 차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 우리는 만주가 현재의 북한 위쪽의 동북삼성이라고 배웠다.
이것은 사실인가? 그리고 우리는 여진족이 대대로 동북삼성에서 살아왔고 누르하치는 압록강 백두산 주변에서 발원했다고 배웠는데 사실일까? 그렇다면 현재 동북삼성에 만주족의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 하고 그들은 만주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만주어를 구사할 수 있는 만주족들이 사는 곳은 동북삼성이 아니라 내몽골이다. 옛날부터 오르도스라고 불리는 곳이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집안이 발원한 곳이다. 왜 만주족은 동북삼성에 남아 있지 않은가? 동북삼성에 남아 있는 소수의 원주민은 우리와 같은 퉁구스계이긴 하나 그들은 만주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고 퉁구스어를 구사한다. 결국 현재 동북삼성이 만주라는 것은 한민족의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기 위해서 날조한 것이다. 원래 우리 주 무대가 대륙과 그중에서도 장안(시안)이었던 것을 날조하기 위해서, 우리역사를 반도로 축소하기 위해서, 대륙의 장안을 반도의 서울로 옮겨 놓고 우리역사를 반도로 축소하기 위해서 대륙서부 오르도스에 있었던 여진족의 근거지를 현재의 동북삼성지역으로 위치만 바꿔 옮겨 놓은 것이다 여진 글자는 몽골문자와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진이 몽골이고 몽골이 바로 여진인 것이다. 바로 이성계가 여진이고 몽골인 것이다. 우리민족과 몽골족, 여진족은 전부다 한민족, 전부다 몽골족이고 단지 세밀한 갈래일 뿐 그 뿌리는 전부다 한 뿌리로 한족, 몽골족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이것을 대륙남방족과 그 뿌리가 같은 현재 일본의 권력을 장악한 왜족이 한민족을 갈기갈기 찢어놓기 위해서 한국인과 몽골인을 갈라놓고, 몽골인과 여진인을 갈라놓고, 거란족과 돌궐족과 흉노족을 또 갈라놓고, 몽골인과 말갈인을 또 다른 민족인 것처럼 갈라놓은 것이다. 이렇게 갈라놓으면, 동이족은 전부 다른 지역에 사는 다른 민족이 되어서 대륙이 원래 동이족이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인이 바로 말갈인이고, 고구려의 후손이 바로 현재의 우리와 같은 핏줄인 몽골인이고, 돌궐이 바로 거란이고, 거란이 바로 몽골인 것이다. 그때그때 이합집산에 의해서 세력을 재편했을 뿐, 그 뿌리는 바로 천산산맥(현 키르기스스탄)지역의 아사달에 도읍을 정한 단군(Tengri) 후예들인 것이다.
(바) 이성계의 초상화는 청색의 곤룡포다. 청색은 바로 여진과 몽골의 상징이다.
몽골의 상징이 징기스칸의 마크인 푸른 늑대다. 결국 여진과 몽골은 한 뿌리고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오르도스지방은 현 내몽골지역인데 여진과 몽골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바로 일제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 반도중심사관인 것이다. 만약 현 동북삼성이 진짜 만주고 진짜 여진족의 발원지라면 현 몽골지역에 사는 몽골인들과 여진을 다른 민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진다. 그러나 원래 만주가 신강위구르 근방의 내몽골지역이고 바로 대륙조선이 있었던 장안(시안)의 서북쪽지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몽골과 여진은 분리되는 민족으로 볼 수 없다. 내몽골지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한반도처럼 산악지역도 아닌 내몽골 초원지역에서 여진과 몽골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을 일제와 대륙남방족은 한민족을 갈기갈기 찢어놓기 위해서 청(몽골)이 대륙을 제패했을 때는 청이 몽골을 격파했다고 날조한 것이다. 이렇게 일제와 대륙남방족은 만주를 현재의 동북삼성지역으로 옮겨놓고 여진족이 거기 살았다면서 여진과 몽골이 다른 민족인 것처럼 역사를 날조하고 다시 우리민족이 대륙과 무관한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여진과 우리민족을 다시 갈라놓은 것이다. 여진(몽골)은 우리와 한 뿌리로 단군의 후예지만 단지 유목생활을 고집한 또 다른 형제들일 뿐이고 우리는 같은 환인의 후손이지만 농경과 유목을 병행하면서 대륙남방족에게 한반도로 쫓겨 왔고 구한말 서양세력을 주도하던 영국과 미국, 러시아의 유태인세력과 이 유태인서양세력의 도움을 받은 지나족인 공산주의세력과 왜족에 의해서 대륙의 근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사) 내가 유럽에 체류하고 있을 때 중국 칭화대 출신을 만난 적이 있다. 역사얘기가 나왔는데 징기스칸이 누군지를 몰랐다. 나에게 징기스칸이 누군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칭화대는 중국 최고의 명문인데 징기스칸을 모른다니. 그의 말은 역사를 별로 배우지 않았단다.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의 현실이다. 그들은 대륙에 자기 역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역사를 가르치지 않은 것이며 이제 차지한 대륙의 정통임을 날조하기 위해서 동북공정으로 대륙이 주근거지였던 고구려역사를 훔침으로서 우리역사 자체를 훔쳐서 대륙의 주인행세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성계가 몽골인(여진인)이라 해서 우리가 이성계를 다른 민족으로 보는 것도 식민사관의 장난질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성계가 몽골인(여진인)인 것은 확실하지만 몽골인(여진인) 자체가 바로 우리와 한 핏줄인 한민족인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경기도인(고려인)이 차지하고 있던 대륙정권을 경상도인(이성계)가 찬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홍건적이 침입해 와도, 왜적이 침입해 와도, 왕은 몽진 피난길에 오른다. 몽진이란 무엇인가? 몽골쪽으로 피신하는 것이 바로 몽진이다.
홍건적은 바로 광동지역에서 발호한 대륙남방족이고, 왜적 역시 근세에 일본열도로 대량 이주하기 전까지 대만, 복건성, 광동성, 필리핀 등지에 근거하며 해적질하던 대륙남방족의 일원이었으므로 이들이 난을 일으키면 우리조상들의 본래 근거지인 오르도스지역, 몽골지역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현재의 반도서울에서 평양이 몽진이 아니고 중국 장안(시안,Xian)에서 몽골지역으로 피신하는 것이 몽진이다. 그곳은 바로 우리 민족조상 단군의 근거지였다. 유목지역에는 언제나 우리핏줄인 유목부족들이 웅거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시 원군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장안(시안)에서 현재의 동북삼성으로 도망가지 왜 서쪽인 내몽골로 피신할까? (아) 중국공산화의 과정을 보면 역사의 진실 된 단편을 볼 수 있다. 모택동은 후난성(호남성)출신이다. 호남성은 바로 대륙남방족이 웅거하고 있던 광동지역이다. 손문은 광동출신의 객가이다. 객가는 바로 광동지역에서 근거하는 중국 유태인 혈통들의 근거지이다. 구한말에 유태인 서양세력과 짜고 조선세력을 대륙에서 몰아낸 자들이다. 손문이 공부한 곳이 바로 유태인들의 근거지인 영국과 미국이다. 손문은 모택동이 나오기 전까지 러시아의 스탈린과 밀접하게 교류한 인물이다. 스탈인이 누군가? 바로 유태인이다. 스탈린은 Georgia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유태인이기에 2000만이 넘는 러시아인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손문이 바로 대륙조선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뒤를 장개석이 이었고 유태인세력의 도움으로 대륙조선을 축출할 수 있게 된 후에 누가 대륙을 차지하느냐를 놓고 싸운 것이 바로 손문의 후계인 장개석과 모택동의 싸움인 것이다. 모택동이 장안을 차지하기 위한 대장정의 루트는 중국에서 옛날부터 끈질기게 살아온 유태인혈통들이라는 말들이 많은 광동 객가 대륙남방족의 근거지인 광동에서 쓰촨지역 등의 엄청난 산악 지역만을 골라 대륙조선의 근거지였던 중국장안(시안,서안)에서 장개석 군과 일전을 치르고 대륙을 차지한다. 결국 장안이 대륙의 핵심이었다. 조선이 대륙의 중심이었을 때 대륙의 남방은 대륙남방족이, 오르도스지역은 청나라가, 요서와 화북, 서안지역은 여전히 대륙조선의 영향권이었을 것이다. 한반도는 대대로 고려인, 조선인의 피난지였을 것이다. 중국 대륙전체를 청나라가 차지하고 통치했다는 것은 새빨간 역사의 날조다. 근세까지 대륙은 조선황제장안(시안)을 중심으로 하는 연방체제였을 것이고 청나라와 대륙남방족은 그 연방의 구성원이었다고 본다. 모택동이 장안을 장악하고 중국의 수도를 북경(베이징)에 정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왜 날씨도 춥고 대륙의 동북쪽에 치우쳐있으며 자신의 근거지인 남부 광동성의 호남지역과도 엄청나게 거리가 먼 북경에 수도를 정했을까? 그것은 북경이 대대로 한민족(몽골족, 거란족포함)의 핵심 연결 고리지역이었고 중국대륙을 지배한 유목민족의 전략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략거점을 끊어버리고 대륙남방족의 대륙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모택동은 대륙의 중심인 우한이나 충칭, 또는 대륙남방족의 본거지인 광동이나 스촨의 청두지역이 아닌 몽골리안 루트의 핵심요충지인 북경에 수도를 정한 것이다. 만약 모택동이 수도를 동해안의 가운데인 상해나 자신의 지지기반이 강한 대륙남방족지역인 광동지역에 수도를 정했다 북방에서 한민족과 몽골인들이다시 뭉치면 대륙은 다시 유목족이 장악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모택동은 몽골리안루트의 요충지인 북경을 장악하고 동북삼성에 수천만 명의 대륙남방족을 이주시켜서 한반도 한민족과 대륙한민족(몽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부라야트)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버린 것이다. 여기에다가 대륙조선을 망하게 만드는데 대륙남방족을 도와 준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다시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반도에 대륙조선을 이식하고 왜는 역사를 날조하고 20 만권에 이르는 역사책을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가져가고, 일본열도로 가져가 위조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달랑 두 권만 남겨두고 (삼국사기도 조선왕조와 일제 때 조작되었다는 것은 재야사학자들이 밝히고 있다) 여기에 일제가 역사를 날조해왔고 아직도 그 일제 후예들이 강단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자) 대륙조선을 붕괴시키고 대륙을 차지한 대륙남방족, 그리고 대륙남방족을 도와서 조선제국을 무너뜨린 유태인이 지배하는 미국과, 유태인들이 공산혁명을 통해서 장악한 유태러시아 공산정권은 연해주에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서 한민족의 연해주와 만주지역 영토를 뺏기 위해서 수작질을 벌이고, 유태인 혈통인 트루먼은 유태인 스탈린과 손을 잡고 김일성을 유인하는 전술을 써서 한국전쟁을 발발시킨다 러시아 유태인들의 꾐에 넘어간 김일성은 남침을 하고, 미국의 개였던 미국시민권자 이승만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울을 지킨다고 서울시민들이 한강다리를 건너지 못하도록 한강을 폭파하고 저 먼저 도망가 버린다. 한강다리 폭파하고 도망간 이승만이 제일먼저 한일이 일제의 주구였던 김창룡을 시켜서 자신에게 저항하던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그 전쟁와중에 제일 먼저 대전교도소에 수감되어있던 이승만의 반대세력 민족주의자들을 만 명 가까이 학살해버린다. 이승만은 김일성을 유인해서 북진통일하자는 유태인들의 꾐에 빠졌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6.25발발 전에 이승만이 하수인들과 북진운운하며 평양에 며칠이면 도달할 수 있다는 둥의 전쟁암시 발언을 할 이유가 없고, 당시 전방에 국지전이 벌어지는 살벌한 상황에서 대다수의 전방군인을 후방으로 휴가 보내서 김일성을 유인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모택동이 6.25때 보낸 중공군의 상당수가 대륙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 대륙조선인들은 총도 안주고 괭가리 하나 달랑 쥐어주고 뒤에서 총을 갈기며 전장 터로 내몰았던 것이다. 당시 모택동의 뒤를 이은 등소평이 6.25때 감군참모로 참전했는데 대륙에 남아 있던 조선인들을 청소하는데 감독관으로 등소평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고 본다. 등소평이 누군가? 손문과 같은 객가 출신이다. 등소평이 중국에 오랫동안 거주한 유태인혈통이라는 사실은 대만의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밝혀져 있다. 중국공산당은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는 대륙의 역사를 모른다. 대륙의 역사는 대만인들이 오히려 더 잘 안다. 대륙조선왕조의 역사책과 유물들을 장개석이 전부 가지고 떠났기 때문이다.
(차) 결국 한민족과 대륙조선의 진짜 역사책은 일본황실과 대만국립도서관, 그리고 영국, 미국, Israel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의 서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서점에 가보면 서양인들이 쓴 중국여행 참고 서적이 많다. 그런데 그 중국여행가이드북에 반드시 등장하는 도시는 어디일까? 베이징? 상하이? 홍콩? 대륙에 관한 가이드북은 상해보다 중국장안(시안)이 더 많이 나오고 지도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나온다. 장안에 중국의 유물이 가장 많이 나온다는 것은 대륙역사의 핵심은 바로 중국 장안에 있다는 말이다.
서양인들이 중국 장안을 베이징과 함께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추천하는 이유가 중국역사를 알기위해서일까? 아니면 서양인들은 중국 장안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미국과 영국 등의 언론 및 출판계는 유태인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장안(서안,xian)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곳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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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올린글 하멜표류기 원본 번역한 최두환 박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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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울대 박창범 교수가 컴퓨터를 이용해서 측정한 삼국시대의 천문기록은
고구려의 위치가 바이칼호, 현 외몽골, 내몽골지역,
현재의 신만주(동북삼성) 등으로 나오고,
백제는 산동반도, 화북지방, 한반도, 요서지역으로 나온다.
박창범 교수의 과학에 근거한 사료증명이 이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박창범, 라대일 교수의 오류
박창범 교수는 세계 100인에 선정된 사람..
이문영은 역사학자도 아니고 작가이네요..이 사람은 자한당 지지자나 친일파인 모양이구먼요..
역사작가가 오류를 지적할 정도의 논문이면 정말 논문에 오류가 존재할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은 안 생기시나요?
방송국 PD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세계적 권위가 있는 과학자의 논문에 오류를 확인하였고,
그 과학자는 자신의 논문에 오류를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전님은 윗글의 저자인 정무광님께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는 사실에다 상상을 가미해서 글을 써지요
박창범 교수는 세계 100인에 선정된 분이고 전공이 천문학자..
정무광님한테 할게 아니라 박창범 교수한테 직접 하면 되겠지요..
@우전 위의 기사중 어느 부분이 작가의 상상 인가요?
작가는 팩트를 기술하여 기사를 작성하였는데 우전님만 상상으로 받아들이시는 것은 아닌가요?
이래서 제가 우전님께 위글의 저자인 정무광님께 의견을 여쭙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대발이 작가라는 분들은 어떤일을 하지요..
남들이 조사해놓은 것이나 남들이 써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가미해서 작품을 써지요.
아님 그냥 100%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는직업이지요..
작가는 과학적인 현상을 검정할 능력이 없겟지요.
@우전 작가 직업을 비하하시는 발언을 하시네여.
유시민 작가는 과거에 장관을 역임했었지요.
이래서 제가 우전님께 위글의 저자인 정무광님께 의견을 여쭙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대발이 작가를 비하한게 아니고 작가의 직업에 대해 설명한겁니다.
유시민도 정친인이지 과학자가 아니지요.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몰라도 과학적 지식은 보통 수준이겟지요.
정무광님도 역사학자인데 과학적인 현상을 검정 못하겠지요.
님이 직접 박창범 교수한테 이문영 작가의 쓴글을 보내서 질문하면 되겠지요..
@우전 又傳 님께서 작성하신 글이 아니라서 저자에게 의견을 여쭙고자함 인데,
박창범교수나 이문영 작가에게 질의를 하라고 하시니 토론의 방향이 사라지는군요.
'뉴튼의 물리 법칙에 오류가 있다고 질문하니, 뉴튼에게 직접 물어봐라'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차라리 박인수작가, 노관범교수에게 질의 하는게 좋겠네요.
늘 건필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현대사의 역사왜곡을 고발한 글을 올렸는데 - 1 이라고요
조선통감부가 1915년부터 ‘조선이주수인초’를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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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전님에게 질문합니다.
위 게시글에 나오는....[조선이주수인초]라는 책을
일제가 왜 발행했는지, 그 목적과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밑에줄에 대충 설명이 나오네요.
별도로 확인은 안해 밨습니다.
나중에 조사해 보지요.
@우전
http://cafe.daum.net/greatchosunsa/BQFh/298?q=%A1%AE%C1%B6%BC%B1%C0%CC%C1%D6%BC%F6%C0%CE%C3%CA
1915년 개정조선이주수인초 05-06
http://cafe.daum.net/greatchosunsa/BQFh/297?q=%A1%AE%C1%B6%BC%B1%C0%CC%C1%D6%BC%F6%C0%CE%C3%CA
1915년 개정조선이주수인초 01-04
http://cafe.daum.net/greatchosunsa/J96r/1?q=%C1%B6%BC%B1%C0%CC%C1%D6%BC%F6%C0%CE%C3%CA&re=1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박인수 저) & 출판사의 평론
조선이주 수인초와 기타자료를 보고 쓴 책입니다.
수인초는 명목상으로는 일제시대 일본의 조선이주자들을 위한 안내 책자지만,
내용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많이 잇는 모양입니다.
http://cafe.daum.net/greatchosunsa/75XT/7184?q=%C1%B6%BC%B1%C0%CC%C1%D6%BC%F6%C0%CE%C3%CA&re=1
조선시대 전후 한반도 인구는 1500만명이 더 늘어난다.
(우전 -10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097449&code=61171511&cp=du
거짓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다" 박인수의 '역사에 반역: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우전 -101
우전님은 대륙조선사 선생쯤 되는가 봅니다.
좀 쉬시며 기력을 돋운 다음에 건필하면 좋겠습니다.
진도가 너무 나가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선생은 아닙니다.
네..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심청전 심청가에서[인당수로 팔려가는 대목] 듕귁 경치[고향]를 노래하고 있다
판소리 심청가(沈淸歌) 중 범피중류(泛彼中流)
[ 범피중류(泛彼中流) 둥덩둥덩 떠나간다 ∼삼상(三湘)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든다 ∼
장사(長沙)를 자나갈 가태부(賈太傅)는 간 곳없고
굴삼려(屈三閭)의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武揚)도 하시던가.]
[황학루(黃鶴樓)에 당도(當到)하니 일모향관하처시오 ∼
이수중분백로주(二水中分白鷺州)는 이태백(李太白)이 놀던 데요 ∼
심양강( 陽江)을 당도(當到) 하니 백락천(白樂天)일거후(一居後)에 비파성(琵琶聲)이 끊어졌다.]
[적벽강(赤壁江)을 그저 가랴 소동파(蘇東坡)가 놀던 풍월(風月) ∼
진회수(秦淮水)를 건너가니 격강(隔江)의 상녀(商女)들은 ∼]
[소상강(瀟湘江)을 들어가니 악양루(岳陽樓) 높은 집은 호상(湖上)에 높이 솟아 ∼
오산(吳山)은 첩첩이요 초수(楚水)는 만중(万重)인데 ∼
무산(巫山)에 돋은 달은 동정호(洞庭湖)를 비쳤구나 ∼
삼협(三峽)에 원숭이가 자식찾는 슬픈 소리에]
[심청(沈淸)이 배안에서 소상팔경(瀟湘八景) 다 본 후에
∼ 우리 성군(有吳氏)이 남순수(南巡狩)를 하시다가 창오산(蒼梧山)에 붕(崩)하신 후 ∼ ]
@우전 동의보감의 허준이[선조-광해군] 조선의 약재로 야자나무를 처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빈랑(檳榔 Betelnut) 입니다.
빈랑은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로써 언뜻보면 야자수 처럼 생겼다고 함.
http://cafe.daum.net/greatchosunsa/JA3E/66
영화세트장 경복궁의 허와 실33- 불때지 않은 아궁이& 난쟁이문
@우전 동정호.악양루.소상팔경은 중국의 낙양 풍경..
이 지명이 현재 경남 하동군 악양면 토지무대인 최참판댁이 잇는 악양면에 가면.
동정호.악양루.소상팔경도 있지요..
악양의 유래를 중국 낙양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서 악양이라고 지었다고 나옴...
이것도 원래 낙양인데 현대에 구개음화로 바뀌며 악양이라고 했겠지요.
동정호 크기와 악양루 크기가 엄청 작지요.
악양루는 조그만 정자크기..
전체적으로 면지역 크기는 작지만 경치는 좀 비슷해서
낙양(악양)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요.
악양에서 섬진강 건너면 전남 광양군 매화마을
전남이 호남
호북은 전라북도겠지요
무산도 중국...원숭이도 나오고,
황학루도 중국땅..
http://cafe.daum.net/greatchosunsa/75XT/7184?q=%C1%B6%BC%B1%C0%CC%C1%D6%BC%F6%C0%CE%C3%CA&re=1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은 일본 도 신문 회사에 근무할 때 한 말이 있다.
" 1901.11.26일자 신문에서 ..2000만 동포로 하여금 앞으로 잠자지 못하게 하겠노라..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발간한 조선이주수인초에 보면
1910년 한반도 인구통계를 보면, 조선인수는 약 1200만명 정도이다
10년사이에 한반도 인구는 2000만에서 1200만명으로 800만 정도 줄어든다
그러나, 1926년 이후 한반도 인구는 2000만명을 다시 넘는다
평.. 백여년사이 2000만-500만=1500만명이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257쪽 - 박인수 저
1901~ 1910년에 800만명이 줄어서 1.200만명,.
1910년 조선인수가 1.200만명
1926년 2.000만명..
16년동안 일본인이 한반도에 800만명이 와서 그럴까요...
@우전 은하철도99콘 02:07 new
1906년도 ~ 1908년도 인구자료 통계청자료 이자료는
일제시대 인구증가 자료로 인용이 가능하지만
아마 그당시 세금을걷기위해 자료조사한것으로 추정하지만
이 자료를 이승만정부시절 그대로 넘겨져 계속보관중인 통계청자료
1906년도에 570만명 에서 2년후인 1908년 1350만여명 불어난것을 알수있다.
이자료를 1992년도에 자료정리된 것임 ..
@우전
1905년 을사늑약 체결후 간도(동간도,서간도.북간도.연해주)에 잇던 동포들이
한반도로 강제나 자발적으로 이주해서 인구가 급증했겠지요..
문화재청장.문체부 장관.교과부 장관은
동북아 역사재단.국사편찬위원.고대사학회 구성원 중에 친일파 부터 정리하고,
밝혀진 내용은 교과서에 기재하여 가르치고
연간 1.000억원 (내글 참조) 지원하는거 강단사학과 민족 사학자에게 반반씩 지원해서
연구후 거짓이나 왜곡을 발표하면...지원중단..몰수해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지요.
그런데 역사 바로세우기 안할것 같음..
http://cafe.daum.net/sisa-1/f8lD/752
역사 팔아먹으라고 국가가 해 마다 1천억 원을 지원한다?
토지를 몰수하여 친일파나.공무원들에게 나눠주어 일제시대 소작인이 엄청 늘었지요..
친일파 1177명 부동산만 45억평 - 2년전 뉴스타파 보도..
자료에 1905년 이후부터 1926년까지 인구가 엄청 증가한 증거가,
본문처럼 간도지역 조선인을 강제로 한반도로 이전시켜 그렇다고 보는게 합리적이지요.
자녀를 갑자기 많이 출산해서 갑자기 인구의 절반 가까이 늘수가 잇는가...
변명 하는 사람들은 친일파 하수인..자한당 하수인. 아님 왜놈 자손?
http://cafe.daum.net/sisa-1/dqMu/25305
133만명 일본인들이 호적세탁해서 지배하는 한국..
http://cafe.daum.net/sisa-1/dqMu/24471
6.25의 진실.
http://cafe.daum.net/sisa-1/g1GU/2900
역사적으로 보는 친일파와 한미동맹의 뜻,,
http://cafe.daum.net/sisa-1/dqMu/24456
미국 군사 외교 전문가의 솔직한 고백?
우리 역사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하는 글 늘 감사합니다만 도저히 지금 사람들 머리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든다면 중국을 우리가 차지하고 구한말까지 차지했다면 우리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입니다.
1909년 까지는 영토가 간도지역까지 축소..
연해주 사할린도 간도지역 사할린 동포도 있지요..
몽골쪽에 살던 우리민족은 몽골어나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모양.
3세들은 우리말을 거의 사용안해 모르는 경우가 많겠지요.
우리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단 중국에 사는 조선족..
1910년 국경이 한반도로 축소되며 강제나 자발적으로 한반도로 이주..
근거가 조선이주 수인초..
그리고 20년대 장개석과 모택동이 싸워 모택동이 이겨 공산주의 정권 들어선후
한반도로 많이 이주.
그나마 연길.길림성.만주지역에 거주했던 조선족도 imf 이후 외노자 수입 정책으로 한국으로 많이와서,
현재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붕괴위기라고 하더만요..
@우전 통일하여 고토 회복해야겠네요.
@단후 맞아요
통일후 간도를 찾으면
한민족은 자연적으로 몰려 들겠지요
현재 중국에서 한족으로 위장해서
사는 사람도 많을거라고 봅니다
본문 게시글을 읽고서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충하자면 아~ 그렇게 된 것이구나 라고 믿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대한의 역사에 대한 의문이 많았었는데
게시글 덕분에 의문이 많이 해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