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야호
한 여우가 500년을 살았단다.
그래서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신통을 가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그 여우의 전생에는 큰 절의 방장 스님 쯤 되는 사람이었단다.
그가 여우의 몸을 받게 된 것은 제자의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단다.
제자의 질문이 무엇이었냐 하면,
"깨달은 도인도 인과에 떨어집니까?"라는 것이었단다.
거기에 대해 스승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대답했다가 여우가 된 것이었단다.
어느 날 이 여우는 인간의 몸을 하고 백장 스님 회상에 나타나 자신의 대답이 뭐가 잘못되었기에 여우의 몸을 받게 되었는지 물었단다.
그래서 백장 스님이 당시의 제자의 질문을 다시 자기에게 해보라고 했단다.
여우는 백장스님에게 물었단다.
"깨달은 도인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백장 스님이 대답했단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
여우는 크게 깨닫고 여우의 몸을 벗을 수 있었단다.
이게 백장어록에 나오는 백장야호 화두이다.
여기에 대해
"붓다도 전생의 업으로 생긴 등통으로 고생하셨다. 그러므로 깨달은 도인도 업을 받는다. 다만 업에 어둡지 않을 뿐이다,"
라고 하면서 불락인과가 틀리고 불매인과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화두를 모르는 사람이다
화두가 그렇게 간단히 해답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제라면 화두가 아니다.
"앙굴리말라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아라한이 됨으로써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윤회에서 벗어났다."라고 하면서 불락인과가 맞다고 하는 사람도 또한 화두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화두는 불매인과이니 불락인과니 하는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왜 한 회상을 지도하는 큰 스님께서 여우의 몸을 받았냐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대답에 확신이 없었고, 혹시 내가 잘못 대답해주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 또는 제자에게 잘못 대답했다는 후회스러움과 죄책감이 가슴에 맺힌 채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족쇄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옥죄었기 때문에 여우가 된 것이다.
백장 스님의 그의 가슴에 맺힌 족쇄를 풀어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저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몸이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인간이나 짐승의 몸에 스스로를 가두는지 모른다.
사랑, 원망과 증오, 죄책감, 후회, 두려움, 해결되지 않는 컴플렉스가 스스로를 윤회계에 가두는지 모른다.
갈애와 집착이 존재를 형성하고 끝없는 생사의 쳇바퀴를 돌게 하는지 모른다.
한 생각이 족쇄가 되어 스스로를 어떤 고통의 감옥에 갖히게 하는지 모른다.
이게 백장야호의 화두가 주는 의미이다.
그건 그렇고...
예전에 남국선원에서 하안거를 보낼 때 입승 스님하고 이 문제로 토론을 벌린 적이 있었다.
그 입승 스님은 백장야호가 실재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믿는 믿음이 강한 분이었다.
거기에 대해 내가,
여우가 어떻게 500년을 살 수 있냐고,
전설 따라 삼천리에 구미호가 나오는데, 그럼 구미호가 실재로 존재하는 거냐고,
구미호라는 아종이 발견되었다고 생물학계에 보고된 적이 있냐고,
그건 백장 스님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비유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뭐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그때 한라산 기슭에서 한 여름 습하고 끈적거리는 구름속에서 한 철을 보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입니다,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