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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길 | 고갯길 |
마을길 | 뚝방길 |
지리산 둘레길은 제주올레와 함께 우리 사회의 걷기 열풍을 이끌었다.
2004년 도법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지리산 순례길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시민단체들과 산림청이 힘을 모아 지리산을 지나는 옛길을 찾아내어 길을 이어갔다.
지리산을 에두르는 개울길, 고갯길, 마을길, 뚝방길을 이어 나간 끝에 274km 전체 구간이 완성되었다
제1구간은 해발 170m인 남원 주천면(朱川面)에서 시작된다
주천면은 전남 구례군과의 경계로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만복대에서 발원한 구룡폭포, 육모정을 거친 맑은 하천이 흐르는 4계절이 항상 쾌적한 고장이다.
마을 사람들 보기가 미안했지만 조용한 미소로 지리산둘레길 완주를 다짐하였다
구룡치로 가는 들머리로 향하는 길가에는 자태가 범상치 않는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즈음에는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법문이 생각난다.
스님은 매화가 아름다운 때는 반쯤 피었을 때이고, 벚꽃이 아름다운 때는 여한 없이 활짝 핀 때이고, 복사꽃은
멀리서 볼 때 환상적이며, 배꽃은 가까이서 볼 때 맑음과 뚜렷한 윤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스님의 못 다한 말은 새로 돋고 핀 꽃잎과 꽃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들으라고도 했다
멋진 소나무길은 내송마을 입구에서 끝나고 호젓한 숲길로 들어선다
‘안솔치’로 불리던 내송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뒷산 고개가 풀밭에 누워있는 소의 형국이라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이곳 출신 조경남(趙慶南)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4월이지만 땀을 흠뻑 흘린 끝에 개미정지에 도착하였다(정지=쉼터)
여기서 잠든 의병장 조경남의 발을 개미가 물어 뜯어 위급함을 알렸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큰 바위 위에 나무로 만든 커다란 개미 모형이 놓여 있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시원한 그늘과 의자가 있어 쉬어가거나 도시락을 먹기에 좋다.
옛날 남원장을 보러가던 이들도 무거운 보따리를 풀고, 마을 사람들도 나뭇짐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갔을 것이다
해발 580m의 구룡치를 향하여 오르는 길은 2km상당 오르막 구간이 지속된다
지리산 둘레길은 볼거리가 많은 화려한 길이 아니다.
거창한 것을 기대하고 가면 실망한다.
하지만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길이고, 넉넉한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온 소박한 이들의 삶이 묻어있는 길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에워싸고 있는 솔정지에 도착하여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었다
솔정지는 20여년 전만 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던 곳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 한다.
길가에서 두 나무가 용틀임하듯 꼬여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발견하였다
연리지(連理枝)란 나무가 맞닿아 연이어진 가지를 말한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다
원래는 효성이 지극함을 나타냈으나 현재는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짙은 부부애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숲길 중간에서 돌들로 담을 쌓아놓은 사무락다무락을 만난다.
작은 돌탑 밭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이다.
다무락은 이곳 사투리로 담벼락이라는 뜻이고, 사무락은 바램을 뜻하는 ‘소망(所望)’이 변한 말이다.
한마디로 ‘소망을 비는 돌담’이다.
길손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돌탑에 돌을 하나씩 놓으며 소원을 빈다.
늙은 소나무는 한 발로 서있는 학처럼 외로 꼬고 먼 산을 보고 있다.
산길을 벗어나서 '모데미'라는 옛 이름을 가진 회덕마을을 지났다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미'라 불렀다.
양반부터 장돌뱅이까지 주막이 있었던 회덕마을에서 쉬었다 갔다는 것이다.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 안에 한 그루 푸른 나무를 숨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을을 걷는 길이란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네.........................박남준 <지리산 둘레길> 부분
정령치와 여원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500m의 노치마을을 지났다
마을의 분위기가 아늑하고 집들이 고급스러워서 고랭지이지만 꽤 부촌으로 보였다
노치(蘆峙)는 ‘갈대가 많은 고개’ 즉 ‘갈재’라는 뜻이다.
마을에서는 '갈재'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는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을은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 비가 내리면 빗물이 섬진강과 낙동강으로 갈려진다.
산벚꽃이 하얀 길을 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신경림 <길은 아름답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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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던 시절은 짧고
살아가야할 날들만 길고 멉니다
꽃 한 송이 사랑하려거든 그대여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아름다움만 사랑하지 말고 아름다움 지고 난 뒤의
정적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올해도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도종환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부분
참, 좋구나!
봄날 지리산 자락은 어딜 가도 좋다!
숲도 땅도 하늘도 바람도 모든 게 살갑다.
가는 곳마다 꽃동네 꽃대궐. 어찔어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햇살이 다북다북 온갖 여린 꽃망울들을 어루만져, 배시시 꽃잎을 열게 한다.
논둑길과 숲길을 벗어나서 덕산저수지를 에둘러가는 길을 따라서 걸었다
덕산저수지는 만수 면적 1헥타르에 달하는 농업용 저수지로 1945년 1월 준공됐다.
주천면부터 이곳까지는 20년 전까지 운봉, 산내 사람들이 남원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이다.
덕산저수지가 잘 보이는 심수정에서 땀을 식히고,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덕산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엄청난 규모로 조성된 동복오씨(同福吳氏) 가족묘가 있었다
산 하나를 거의 점령한채 만들어진 수십기의 가족묘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돈이 있으면 살아있는 후손들에게 장학금이라도 한번 주는게 더 낫지 않을까?
오씨가족묘 아래에 있는 잔디밭에 둘러앉아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4월의 화사한 햇빛과 감미로운 꽃바람을 맞으며 우아한 식사를 하였다
이시돌 교수와 오베드로가 가져온 막걸리가 곁들여지니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다가 발밑에 피어있는 쇠별꽃 무리를 발견하였다
꽃잎은 5장이지만 밑부분까지 두 갈래로 깊게 갈라지므로 10장의 꽃잎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너무 작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작고 하얀 쇠별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꽃의 형태가 작은 별과 같이 생겨서 쇠별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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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이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진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쇠별꽃이 세 번 등장한다
69살 이적요 시인이 17살 은교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다움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는 곤히 잠든 소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열대 엿 살이나 됐을까. 명털이 뽀시시 한 소녀였다.
턱 언저리부터 허리께까지, 하오의 햇빛을 받고 있는 상반신은 하앴다. 쇠별꽃처럼. 고향집 뒤란의 개울가에 무리 져 피던
쇠별꽃이 내 머릿속에 두서없이 흘러갔다. 브이라인 반팔 티셔츠가 흰 빛깔이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나는 고요히 그 애의 머리칼을 만져보았다. 그 애의 젊은 머리칼에선 적멸((寂滅) 없는 빛이 흘러나왔고, 쇠별꽃 같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셔츠를 가만히 당겨 그 애의 어깨를 가려주었다. 투명하고 싱그러운 어깨였다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는 심수정(心修亭)이란 정자에서 오래오래 쉬었다
심수정 아래에는 무인 상점이 있었는데 필요한 건 모두 비치되어 있었다
생수, 소주, 막걸리, 음료수, 컵라면, 양촌리커피...
미카엘 형님이 양심돈통에 천원을 넣으셨다기에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벚꽃이 흐드러진 뚝방길을 따라 행정(杏亭)마을 뒤에 있는 서어나무숲으로 들어갔다
운봉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마을의 허한 기운을 막기 위해 200여 년 전 조성한 인공조림이다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은 2000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 ‘춘향뎐’을 찍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숲은 지난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서어나무는 예전에는 숲의 바람막이이자 땔감으로 최고였다.
머슬 트리(Muscle Tree)라는 별명을 지닌 서어나무는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근육을 자랑한다
서어나무숲에서 진한 사랑을 나누는 마르도니오 부부의 모습이 춘향과 이몽룡 같다 ㅋㅋ
피었던 꽃이 어느새 지고 있습니다
화사하게 하늘을 수놓았던 꽃들이
지난 밤 비에 소리 없이 떨어져
하얗게 땅을 덮었습니다.
꽃그늘에 붐비던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화사한 꽃잎 옆에 몰려오던 사람들은
제각기 화사한 기억 속에 묻혀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잎 비에 진 뒤 강가엔
마음 없이 부는 바람만 차갑습니다........................도종환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부분
드디어 첫번째 구간의 끝인 운봉에 도착하여 신발끈을 풀었다
운봉(雲峰)은 해발 450~500m의 고원마을이다.
백두대간 지리산 줄기를 등에 지고 거대한 평원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땅은 기름져서 부농들도 많은데 조선시대에 운봉땅은 이씨 왕조의 성지였다.
'운봉성당'이란 푯말을 보고 우리들은 망설임 없이 성당으로 들어갔다
우리 성당에 보좌신부님으로 계시던 오주환 요셉 신부님이 계시는 곳이다
화분에 꽃을 심고 계시던 신부님께서 반갑게 나와서 맞이해 주셨다
운봉성당은 주일미사에 40여분의 신자가 참례한다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의 성당이다
남원 사매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들렸다가 전주로 돌아와 '고향마루'에서 하산주를 마시며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첫댓글 지리산둘레길 1구간 ( 주천~ 운봉 ) 넘 멋있고, 막 시작한 봄내음을 만끽하기 아주 좋은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서,
감사함과 행복함에 더욱 취해서 하산주 막걸리가 술술 넘어갑니다.
다시한번 산행기를 읽어내려가는 우리 신산회 동우회 공동체는 복많이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출발했지만 나서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리산둘레길 완주를 다짐했으니 모두들 끝까지 함께 가시게요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길은 아늑하고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