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성 (외 2편)
유수연
이런다고 풀릴 게 아니다
우리 영혼은 껍질에 둘러싸여 있고
너는 내가 잠들었을 때
내 비늘이 비비빅 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에 얼굴을 얹는 건 진부하지만 따뜻한 온도다
비비빅은 어떤 소리일까
혹시 공감각적 심상이니?
물어보려 하니 너는 언제나 잠들어 있다
이런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아슬아슬하다, 정말 그렇지 않니?
언제 엄마가 들이닥칠지 몰라 내가 오면 말이야
걸쇠를 꼭 걸어둬 숨을 시간은 벌어야 할 거 아냐
새로 우리가 집을 구했지만 우리의 집이지만
도망치면 들킬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면 들킨다
도망치면 들킨다
이런 생각이 풀리지 않게 되었을 때
망치가 닳기 시작했다
생각 밝히기
누를수록 자랐다
책에 그은 밑줄이 두꺼워지고
힘이 자란 줄마다 강조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펼쳐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
교실을 옮길 수 없다
집 앞으로 옮기면 지각하지 않고
그곳으로 집을 옮기면
모두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혼이 깨진 이가 담뱃불을 빙빙 돌리고 있다
그 사라지는 원에 채울 게 없다
어둠을 그을 흉터가 하나둘 켜진다
가릴 수 없는 소리였다
공양
같은 돌인데 개를 닮은 돌에는 아픔이 느껴졌다 같은 돌인데 사슴을 닮은 돌에는 들판이 느껴졌다 같은 돌인데 천년 왕릉을 지킨 석상에는 영원이 느껴졌다
그래도 영원한 건 없다
금색의 부처가 앉아 있다
계신다 생각하면 부처는 계신다
그러나 없음까지도 생각에서 지워야 한다
수많은 여념이 쌓였고
돌도 털어보면 먼지가 났다
이곳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 틈에 떨어뜨리자 맑은 종소리가 났다
—시집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202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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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연 /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 안양예술고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3학년 휴학 중 2017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 「애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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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0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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