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해가 뜨기 전의 늦은 가을아침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합니다. 먼 길 달려와 숨을 몰아쉬다
잠든 나그네의 모습과 닮았구요. 모든 가식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인간 본연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러기에 가을은 찬란한 색의 향연을 넘어서는 무엇입니다. 눈부심에 취해
있다면 가을의 반쯤은 놓친 것인지도 모르구요. 산을 오르며 들녁을 걸으며 만난 가을이
눈으로 말한 진실이 이것이 아닐까 싶구요.
이렇듯 휴일 아침 통도사의 숨은 가을을 만나며 삶의 상념에 젖어든 중년 사내의
작은 깨달음이라 여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잎새같이 매달려있는 10월의 끝에서 맞는 새로운 한 주, 넉넉한 마음으로 열어가시구요.
지난 한 주 잘 지내셨는지요?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半夜嚴霜遍八紘 肅然天地一番淸 望中漸覺山容瘦 雲外初驚雁陳橫)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권문해는 상강(霜降)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더군요.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가 만발하는 늦가을의 서정이 그대로 품에 안기는
듯한 즈음입니다. 쌀쌀한 날씨에 부디 편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두 손 모읍니다.
1년전 그날이 왔습니다. 이태원에 축제를 즐기러 왔다가 속절없이 황망하게 떠나버린 젊은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몰려오는 슬픔과 안타까움에 무책임과 비인간성이 뒤엉켜 이 가을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진정한 성찰과 위로가 사라지면 우리네 삶이 어찌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삼가 온 마음으로 넋들을 위로하며 사람의 세상을 향한 발걸음에 힘을 주는 이유입니다.
지난 수요일엔 네이버 TV '조연심의 브랜드쇼'에 함께 하여 삶과 행복에 대해 즐거운 수다를
떨었습니다. 오랜 지인인 조대표와 브랜드를 중심으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살펴본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나의 브랜드라 할 '행복디자이너'와
'해피허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위 브랜드 쇼에서도 이야기 나눈 바 있듯이 행복디자이너의 삶은 '하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훗날 결과로서의 삶이 아니라 지난 시간과 오지 않은 미래에서 눈을 떼고 하루하루 과정속의 삶에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요. 가을도 그러한 듯 합니다.완성형 가을이 아닌 지금 내 앞의 가을을
느끼고 누려야 함을 새삼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이지요. 삶은 의외로 단순한 것이니까요.
주말엔 양산아버님 첫 기일을 맞아 통도사 마을에 왔다가 잠시 짬을 내어 통도사를 품어안은 영축산에
올랐습니다. 오간지 30여년이 되었지만 언젠가 올라가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묵은 숙제를 하니
개운하고 상큼했습니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니 숨이 가빠오고 땀이 비오듯 했지만 탁트인 시야에
숨겨진 가을단풍까지 만났으니 이번에도 탁월한 선택과 행동을 한게 틀림없습니다.
살다보면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고달픈 일상의 연속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분명 삶은 희노애락의 비빔밥이라 했는데,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잘 안보이는 거지요. 하지만 조금만
견디고 눈여겨보면 삶은 곳곳에 희열과 행복을 숨겨두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최근 설악산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신안의 섬들,영축산을 오르며 만난 가을의 눈부심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는 싱싱함과 눈부심, 그 자체이고 누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누가 뭐라해도 즐겁고 고마운 삶입니다. 설령 잊혀진 계절이 될지라도
아름다운 가을 만끽하시고 다시 그 마음으로 힘을 내어 살아가자구요.
새로운 청년의 마음으로 기꺼이 즐겁게 시도하고 도전하는 삶,
내가 먼저 돕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삶!!!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
- 정지용 시인의 '호수' 전문
2023. 10.30
아름다운 옥수동에서
대한민국 행복디자이너 咸悅/德藏 김 재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