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을 뿌리고 후추를 뿌리는 사이
박형권
고등어 한 손 사서 한 마리는 굽고 한 마리는 찌개를 끓이는 게 좋을 것 같다 바다로 씻어낸 무늬가 푸를 때 침묵으로 말하는 통통한 몸을 갈라 복장을 꺼내고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생각해 보자 당장 읽을 수 없다면 비늘을 벗겨보자 지느러미를 쳐내 보자 부엌방의 전등 빛으로 읽어 내려가자 마지막 소절에서는 바다의 일몰을 불러내어 몸으로 건설한 저녁 한 끼를 불그스름하게 경배하자 생선 구워 밥상에 올리면 그곳이 세계의 중심 혀로 말씀을 삼키기도 한다 오늘도 피 흐르는 가을, 단풍을 뿌리며 단풍에 베인다 그리하여 단풍은 피보다 비리다 이 가을도 오래 가지 않을 터 몇 마리 더 사서 따로 남는 추억은 냉동실에 넣는다 생선 한 손은 왜 두 마리이어야 하는지 한 손은 들고 한 손으로는 무위자연 하자는 것인지 점심에는 고등어를 굽고 저녁에는 끓인다 소금을 뿌리고 후추를 뿌리는 사이 경전처럼 가을이 온통 유유자적하시다 가을 산이 동네까지 내려오신 날 아, 한 손이 된 너와 나, 누군가를 먹이러 가자 뼈 우려낸 국물로 붉게 그을린 피로 떠먹이고 오자 아직 우리가 물이 좋을 때 하자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봤을 때 우리는 파르르 전율하고 싶다
박형권 200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우두커니』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