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군사명저] 콜린 그레이의
‘공권력과 전략적 효과’
 
공군 제일주의?
공군력의 ‘전략적 효과’가 중요
 
공군력의 가능성과 한계 기반한 27개의 이론적 명제 제시
발전과정·장단점 등 탐색…특수성 고려한 전략적 역할 강조
 
파울로 피카소. 1937. ‘게르니카’. 캔버스 유화. 349×776㎝. 전략폭격의 참상을 그린 게르니카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 공군의 게르니카 폭격의 참상을 전 세계에 전한 그림. 1차 대전 이후 공군력 강화를 주장한 많은 전략가들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국민의 전쟁 의지를 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간 지역에 대한 전략폭격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략폭격은 독일의 런던 폭격의 경우처럼 오히려 항전의지를 강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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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S. Gray. 2012. Airpower for Strategic Effect. Air University Press | 미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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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력은 게릴라전에 얼마나 효과적일까?”
아프가니스탄 반군의 게릴라전에 맞서 곤혹을 겪었던 미 군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전투기들이 암벽에 숨어있는 반군을 소탕하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미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최첨단 미 항공기들이 뉴스에 등장한다. 전략폭격기 B-1B 랜서는 북한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는 엄청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뉴스에 익숙한 우리에게 전략공군의 존재를 의문시하는 주장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초기 항공기의 운용 목적은 정찰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적의 참호와 부대 이동 상황을 알려주고 야포의 착탄 지점을 파악하는 관측 기능이 주 임무였다. 항공기에 전략적 임무가 부여된 것은 폭격이 가능해지면서부터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선보였던 ‘전략폭격’이 2차 대전부터 일상화되면서 공군력의 전략적 성격이 더욱 부각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는 전략공군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대륙간탄도탄 등 미사일이 발전하면서 공군의 전략적 결정력은 많이 약화됐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지상공격을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큼의 전략적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이라크 전쟁 이후 산악지대를 근거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아프가니스탄 반군을 제압하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공군력의 전략적 역할을 의심하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략공군의 현실
그레이 교수는 공군력에 대한 우려는 사실 과도한 기대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줄리오 두헤(G. Douhet,1869~1930)를 비롯한 초기 공군력 주창자들은 항공전력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것이다. 수천 년간 지속된 육군이나 해군과 달리 공군력의 가능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군력이 단순히 허풍에 그친 것은 아니다. 걸프전(1990)과 이라크전(2003)에서 보여줬던 타격 솜씨는 공군과 미사일만으로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1999년 세르비아 폭격을 통해 항복을 이끌어내자 폭격의 전략적 효과는 현실화됐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독특한 역사적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쟁과 전략의 본질은 동일한 것이지만, 각 전쟁에 내재된 문법은 제각기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 군의 전략과 전술의 효과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효과, 즉 ‘전략적 효과’를 거두느냐 하는 데 있다.
그는 클라우제비츠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도구적 성격을 인정한다. 대전략 역시 국가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군사전력은 대전략의 일부로서 군사적 수단을 통해 정책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공군력을 비롯한 각 군의 전력은 군사전략을 수행하는 데 복무해야 하며, 그 중요성과 가치 또한 전략적 결과를 얻어내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전략은 정책과 전술을 연결하는 ‘다리(strategy bridge)’다. 좋은 전략은 전쟁의 승부를 포함한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전술과 작전을 잘 마련하는 데 있다. 문제는 좋은 전략만 있다고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찰과 안개로 가득한 전장에서 전략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이 제공권을 상실한 것은 전투기 부족이라기보다 유능한 조종사가 고갈됐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전략 설정 단계에서도 사람의 문제가 개입한다. 각 국가의 전략문화, 전장의 환경, 각 군의 전력과 특성 등을 고려해 우세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전략적 판단과 신념의 충돌, 각 군의 이해관계, 그리고 정치적 고려가 개입하기 마련이다. 편견과 선호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다. 새로운 기술과 무기가 개발돼도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고위 지휘관 같은 전략가들의 몫이다. 양적인 전력 자체가 능력으로 전이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항공기 숫자가 전략적 효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전차를 어떻게 사용할지가 2차 대전 초기의 승부를 갈랐다. 전략 차원이든 작전 차원이든 어떤 전략적 사유를 갖고 있느냐가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말이다.
공군력의 이론적 토대
그렇기 때문에 공군력이 최대한 전략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특성을 반영하는 이론적 토대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각 군은 각기 상이한 환경과 기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전술적 운용이 불가피하다. 자신에 맞는 이론을 갖춰야 올바른 전략과 전술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공군의 탄생에서부터 최근까지 공군력의 발전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면서 공군력의 이론적 뿌리를 탐색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면서 공군력 이론의 토대가 되는 27개의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공군이 생득적으로 전략적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원래 전술적 운용을 통해 전략적 의미를 확보했다는 것이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전술적 운용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상호작용하면서 전략공군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전술(그리고 작전)이 전략이 만나게 되는 지점도 여기다.
특히 그는 공군력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공군력이 잘할 수 있는 일과 잘 못하는 일을 구분하는 것에서 제대로 전략적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적국 깊숙이 날아가 주요 시설을 공격하거나 지상군을 근접지원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지만, 섬세한 피아 구분이 필요한 일이나 외교적 카드로 사용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 전략폭격을 통해 전쟁 의지를 분쇄하겠다는 초기 발상도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의 런던 폭격은 영국민들로 하여금 항전 의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합동성, 제각기 더불어
타 군과의 합동성은 인정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공군력의 독자성이다. 그가 생각하는 합동성은 ‘제각기 더불어’에 가깝다. 역사적으로도 합동성은 규칙이기보다 예외에 가깝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지형적 차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합동성은 진부한 개념이다. 주어진 전력을 최대한 활용해 전략적 목표 달성에 통합하는 것은 오랜 역사가 증명하는 승리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합동성을 강조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상이한 전장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각 군의 전력상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공군력의 경우 광범위한 작전반경과 속도, 파괴력을 감안할 때 그에 상응하는 전략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전략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도 부합한다.
저자는 공군력의 경우 과학기술과 깊은 상관성이 있기 때문에 전술, 작전, 그리고 전략에 있어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과 전략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강조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전술적 변화를 부인하지 않지만 하늘을 전장으로 하는 공군력의 본질적 성격은 크게 변할 수 없으며, 그가 제시한 이론적 토대 역시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책은 항공기와 첨단무기의 위력과 가능성을 찬양하면서 공군 제일주의를 주장하는 여느 책과는 다르다. 공군력의 가능성을 과도하게 평가했던 초기 주창자들과 달리 공군력을 제대로 이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공군력의 전개 과정을 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킴으로써 공군력의 장단점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이유다. 이를 통해 전술적 상황에서 변하지 않는 이론적 지침을 제시함으로써 맥락과 상황에 부합하는 공군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공군 지휘관은 물론이고 공군과의 합동성을 고민하는 각군 지휘부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한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 교수>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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