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역
조동범
오늘 밤의 철길과 무쇠 열차는 어느 곳으로 떠나려 하나. 이곳은 세계의 모든 중앙역이고,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내내 승강장을 배회한다. 오래되고 남루한 서사는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고, 이곳은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애초가 되려 한다.
폭설은 어느 곳으로 수렴되나. 기억나지 않는 밤을 회억하며 열차는 철길의 끝으로부터 불우한 시차를 거두어들이려 한다. 기적처럼 사라지고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대한 밤과 낮을 따라 이야기는 시작되고, 폭설 속에 그것은 끝을 맺는 법이다.
승강장을 오래도록 서성이며 슬픔에 당도하려는 이가 있다. 다리를 절뚝이며 한 마리 짐승처럼 서성이는 한 사람도 있다. 이곳은 세계의 중심이고, 정시에 출발하는 열차는 어느 새 목적지마다 슬픔을 부려놓는다. 남쪽의 도시로부터 열차가 도착하면
구름은 끝도 없이 몰려온다. 승강장에는 오래 전 투신한 이들의 흐느낌이 서성이는 것만 같다. 혁명이 시작되는 밤마다 열차는 목적지도 없이 아주 먼 곳으로 떠나려 한다. 이곳은 중앙역이고 승강장에는 이름도 없이 늙어가는 한 사람이 끝도 없이 슬픔을 배회하고 있다.
ㅡ계간 [시와징후] 2024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