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복음적 겸손은 부풀려지지 않았지만 가득 채워진 자아를 말합니다. 이런 자아와 비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높은 자존감을 말하고 있습니까? 천만에요. 그렇다면 낮은 자존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높든 낮든, 자존감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애초에 자존감을 둘러싼 온갖 말의 유희에 빠져들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제게는 여러분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저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 겸손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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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복음적 겸손을 누리는 사람은 자신을 혐오하는 사람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복음을 통해 겸손해진 사람입니다. 복음으로 겸손해진 사람의 자아는 그의 발가락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걸을 때 발가락이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것처럼, 이런 사람의 자아도 그렇습니다. 날 좀 알아달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대견해 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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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마음이 상하지 않습니다. 비판을 좀 받았다고 해서 망연자실해 하거나 그것에 연연해 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비판을 받고 망연자실해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그만큼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비판을 듣고는 못 견뎌 하는 성마르고 예민한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내 생각이 분명한데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중이떠중이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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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을 받으면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비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비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판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비판에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낮은 자존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해결책이라고 해봐야 교만해지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답이 아닙니다. 낮은 자존감이나 교만 모두 우리 자신의 장래를 불행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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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부풀려지지 않았으면서도 가득 채워진 자아는 사람들의 비판을 들어도 아연실색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비추어 자신이 바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립니까? 복음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변화를 더욱 갈망합니다. 체면이나 명성을 갈망하지 않고 그것들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인정 받기를 갈망하지도 않고,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방방 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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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힐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힘써 행한 대로 행한다면 저와 여러분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한 일이 아님에도 그것들을 기뻐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내 이력을 위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대학 원서나 이력서를 채워 넣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본성적인 인간 자아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일이 그렇게 다가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삶의 길은 우리 본성의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적 겸손이요 자기를 의식하지 않는 복된 자유입니다. 현대 문화와 같이 자기를 더 생각하거나 전통적인 문화에서와 같이 자기를 덜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신에 대한 생각 자체를 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복음을 통해 겸손해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