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인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지만,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게는 반대로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루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형편만 따지고 있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결단하고 나간다면, 하루하루가 감사와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선지자 요엘은 전례가 없던 독특한 메뚜기 재앙에 대해 세 가지 부류의 대상들(늙은 자들, 술 취한 자들, 농부들)에게 애곡하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선지자 요엘은 메뚜기의 습격으로 상징되는 재앙에 직면한 모든 사람들을 향해 금식하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을 촉구합니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1)
세상에는 많은 소리와 소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들리는 소리와 소식을 다 들을 수 없습니다. 그들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많은 소리 중에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소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자리가 어디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1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
원문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 표제는 앞으로 요엘이 전할 말이 선지자 개인의 말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과 요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선지자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요엘의 활동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시온’(2:1), ‘유다’와 ‘예루살렘’(3:1, 16-17, 20)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역 대상은 유다일 것입니다.
요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도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세상을 향해 메신저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곡하라는 부름(2-12)
장차 고난의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마음을 겸손히 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 죄가 발견되거든 눈물로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을 넘어 교회와 다음 세대의 미래를 내다보며,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걱정스럽거든 기도하고, 염려스럽거든 내일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2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4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8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9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10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11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곡할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 때문이라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2-12)
요엘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들으라”라는 명령으로 시작되며, 이는 유다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포됩니다. 요엘은 유다 땅에 메뚜기 떼로 인해 피해가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길 원하셨습니다.
(1) 늙은 자들에게(2-4)
여기서 ‘늙은 자들’은 단순히 나이가 연로한 자들이 아니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땅의 모든 주민들의 대표 격이므로, 그들을 먼저 부름으로써 이스라엘 모든 사람의 주목을 끌려는 목적입니다.
이스라엘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소식은 궁극적으로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소식(1:15)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사건처럼 설명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그날에는 요엘의 세대나 그 전 세대가 목격하지 못했던 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엘은 큰 재해를 가져다줄 메뚜기로 인한 재앙을 시작으로 여호와의 날을 예고하며, 그날은 우선적으로 심판의 날임을 알립니다. 1:4의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이’는 모두 메뚜기를 뜻합니다.
메뚜기의 침범에 대한 해석은 첫째, 메뚜기의 공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작물의 피해와 사람들의 식량이 끊어졌음을 언급하는 여러 구절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1:7,10-12,16,17). 메뚜기로 인한 피해는 출애급 때의 재앙(출 10:13-15)이나 아모스 시대(암 7:1)에도 나오며, 둘 다 요엘서에서처럼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둘째, 메뚜기의 공격은 이방 군대의 침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방 민족이나 군대와 관련하여 언급한 구절들이 있고(1.6; 2:2-10, 25), 적군을 메뚜기 떼로 표현한 기록이 고대 근동 문헌에 적지 않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학자에 따라서는 네 가지의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메뚜기를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네 왕국으로 보기도 합니다.
(2) 술 취한 자들에게(5-7)
유다, 모든 이들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알리는 요엘은 5-14절에서는 ‘술 취한 자’, ‘제사장’, ‘농부’ 등, 유다 사회의 다양한 그룹에게 “애통하라”고 명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의 혹독함과 피폐함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다양한 그룹은 이스라엘의 개인, 가정, 사회, 경제, 종교 등 모든 사람과 그들의 생활을 대변합니다. 구체적으로 각 그룹을 향하여 경고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모두에게 임하며 거기서 벗어날 자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요엘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는 이 경고를 듣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심판을 지체하거나 면하기를 바람에 있습니다(2:12-14).
요엘은 먼저 ‘술 취한 자들’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포도주를 마시며 술에 취한 자들은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민감하게 대응하기를 꺼리고 술에 자신을 맡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술에서 깨어 통곡하라’는 명령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메뚜기 떼가 사단을 공격하여 포도나무까지 다 벗겨낼 것이므로 그들은 더 이상 포도주를 마실 수 없게 될 것입니다.
6절의 이방인의 침략은 실제로 이방인의 군대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현재 1장의 문맥이나 2:21, 25을 참고해 볼 때 4절의 메뚜기 때 공격을 군대로 비유하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뚜기 떼의 수는 셀 수 없이 많고 사자의 이빨과 암사자의 어금니 같은 힘을 가져서 유다 전역의 모든 식물뿐 아니라 나무껍질까지 하얗게 벗기 먹을 것입니다.
포도나무과 무화과나무의 껍질까지 벗겨졌다는 것은 메뚜기가 좋아하는 나무들을 이미 다 먹어치워 좋아하지 않는 나무들까지도 다 먹어서 없앴으므로 더 이상 음식이 없음을 뜻합니다. 또한, 상징적으로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 자체를 가리키거나(호 9:10) 평안과 형통함을 의미하므로 심판이 이스라엘 모두에게 이르러 백성에게서 평안함이 다 사라졌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내 땅’,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내 포도나무’, ‘내 무화과나무’라고 언급하시는데,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유다와 그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이며 사랑과 관심의 대상으로 여기신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자신의 사랑하는 대상에게 극심한 피해가 닥친 것을 보시며 애통해하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시온과 제사장들의 애통(8-10)
유다에 임한 심판으로 인해 사람들의 애통의 소리가 가정과 사회에서, 성전에서, 자연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요엘은 외치기를 어렸을 때 약혼한 처녀들이 이제 그들의 약혼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애곡하듯 애통하라고 말합니다. 결혼을 기다리며 결혼 예복을 입고 기뻐해야 할 처녀가 약혼자의 죽음 소식을 듣고 장례에 참여하며 베옷을 입고 통곡해야 한다니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이 명령을 받는 대상인 ‘너’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여성 단수로 나와 있는데, 이는 유다의 수도인 ‘시온’이나 ‘예루살렘’을 의인화한 것으로 보입니다(2:1; 애 2:8,13,18). 유다에게 임할 재앙은 평생 의지할 남편을 잃은 것처럼 장래의 소망을 끊어버리며 고통과 두려움과 눈물을 가져올 것입니다.
애통은 가정과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성전에서도 일어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일어나는 애통은 영적 애통을 의미합니다. 심판이 이르며 백성은 땅의 소출의 소강상태로 육체적 양식을 공급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예배의 부재로 영적 양식도 공급받기 못하게 됩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께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린 양을 화제로 드릴 때 소제나 건제를 함께 드려야 하지만, 소제와 거제에 필요한 고운 가루와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민 28:3-8)이 없으므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예배하는 기쁨의 소리가 성전에서 끊어지고 망연자실한 제사장들의 한숨과 탄식과 애통의 소리가 시작되면서 성전의 기능은 마비됩니다.
여기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소출이 끊어진 점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멈췄다는 뜻 외에 두 가지를 더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 이 세 가지는 하나님께서 토지에 내리는 복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으므로(호 12:3-9, 22), 이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졌음을 암시합니다. 둘째, 이 축복은 신명기 7:13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받을 수 있는 결과로 약속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이 더 이상 이 소출을 먹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음을 암시합니다.
(4) 농부들의 애통(11-12)
이제 요엘은 논밭을 일구는 농부들에게 애통하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밀과 보리 등의 소산과 이스라엘 지역에서 자라나는 과실나무들이 다 시들고 없어질 터이므로 땅과 자연이 주는 풍성함과 소산을 통한 기쁨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심판의 날이 이르면 시온에서, 성전에서, 그리고 논밭에서 들려야 할 즐거움과 기쁨의 소리는 마르고 통곡과 애통의 소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살다보면 생각지 않았던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개인의 삶의 범주에서 겪는 어려움일 수도 있고, 한 지역이나 국가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만나는 곤경일 수도 있습니다. 질병과 사고도 있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치 않는 전쟁의 참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혹독한 시련을 주신 하나님의 참 뜻이 무엇인지 묻고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