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란 뜻으로,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참으로 냉정한 말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현실적인 말이기도 하죠
회자정리의 유래를 보면
부처님께서 배사리성의 큰 숲에서 열반을 예고하자, 제자인 아난 존자가 매우 슬퍼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귀착되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례 그런 것이거늘, 아난 존자는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는가?”
사람은 한 평생을 살면서 수 없는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다.
물론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이라면 기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나, 손때 묻은 물건을 버릴 때 등, 이별을 할 때는 더 진한 아쉬움이 남기 마련입니다.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다시 모래가 되고 흙이 되어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하듯,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멸이든, 마멸이든 결국 빈(空) 것이 되고 만다.
부모님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비관할 일만은 아니다.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유한자로서,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거자필반(去者必返)’이란 말도 있다. 즉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재회를 전제로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잘게 부서졌던 흙은 다시 굳어져 돌이 되고, 또 바위가 된다. 인간인 나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결국 죽고 말겠지만, 나와 DNA가 똑같은 나의 분신인 2세가 남아 나를 대신할 것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영원히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끈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것이다. 자연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들은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감상에 젖는다. 그러나 그 낙엽은 거름이 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더 싱싱한 잎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회자정리’의 슬픔을 ‘거자필반’으로 보상해 주는 셈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살면서 절대로 원수를 만들지 않는다. 지금 있는 이 사람과 다시 안 볼 것 같아도 언제 다시 어떤 식으로든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만날 때 미리 헤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도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을 믿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기억해 주는, 그런 유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윤배(조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