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교동 (1)
강화도, 교동 (2)
강화도, 교동 (3)
강화도는 참 팔곳도 많고 소개할 곳도 많고, 사진도 수십기가나 존재하고, 글도 상당 분량을 비축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코로나 19때문에 뻘줌했습니다. 여기서 코로나 19가 위험한 수준으로 퍼질뻔했거든요. 지금은... 다 잘풀려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전등사의 핫 플레이스인...
그림법당인 무설전(無設殿) 되겠습니다.
뜻인 즉, 설법이 없어도 부처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법당이죠.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닌데, 사실 법당이라기 보다는 아트 전시회 같은 곳입니다. 것도 수준 높은.
이 불전은 프레스코 기법으로 만들었다네요.
이게 지어진 이유가, 지금까지 절이 통일신라 시대의 포교 방법을 그대로 자가복제만 했을 뿐, 당대 사람들에게 다가갈 생각은 안했다고 합니다. 불법은 사실 노력해야 배울 수 있는 것이지, 보고 자연스럽게 깨치기엔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보고 자연스럽게 깨칠 수 있는 '가람법사'를 만든 겁니다. 젊은 세대의 감성에 맞는 곳이니 가시게 되면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전등사는 유료입장입니다.
전등사의 명물, 수령 300년으로 추정되는 전설의 소나무.
전 3편에서도 봤지만 이근처 소나무들은 유난히 상처가 많고 패인 곳이 많습니다. 이유는 패색에 몰린 일본이 무기를 만드는 재료로 송진까지 긁어가는 바람에...
강화성당, 외규장각
뜬금없이 나오는 두 개의 비석.
정기세는 1837년(헌종 3)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충청우도 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으로 초배된 사람입니다. 철종 때 이조참의, 우승지,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강화유수, 전라도관찰사가 되어서 이곳에 비가 있는 듯 한데... 설명이 없네요?
정원용은 조선 후기 사람으로 스무 살에 급제한 이래로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역임하고 그 외에도 주요한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아흔두 살까지 장수한 문신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고위 관직에 두루 역임될정도로 탄탄한 집안인데요...
그것치고는 묘도 소박하고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유인 즉 그가 항상 검소를 외쳤기 때문이라 그렇다네요.
광명이 고향인 그의 비가 여기 있는 이유는... 아마 그가 강화도령 철종을 찾아내어 모셔왔기 때문일겁니다.
숨어 살던 강화도령 이원범을 추리해서 찾아낸 과정이 참...
(개인적으로 이는 철종에게 불행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잠저인 용흥궁.
뭐 모셔간 실세가 검소, 소박을 외쳤으니 당연히 왕이 머무는 공간도 소박할 수 밖에 없죠.
자 대망의 '강화성당' 되겠습니다.
강화성당은 성공회 성당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천주교 강화성당과 구별하기 위해 강화읍성당이라고도 합니다.
1900년에 지어졌는데 양식이 굉장히 독특해요. 한옥과 바실리카가 합쳐진 건물이거든요. 한국식 성공회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고 할까요?
목재는 수령 백년 이상의 백두산 정송을 조마가 사제가 직접 신의주에서 구하여 뗏목으로 운반해왔고, 석재와 기와는 강화도 내에서 조달했습니다. 도목수는 경복궁 중수에 참여했던 도편수였으며, 중국인 석공과 강화 지역의 교우들이 참여하여 1년 여 만에 완공되었죠. 쉽게 말하면 다잇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오른쪽부터... 1대 고요한 주교, 2대 단아덕 주교, 3대 조마가 주교의 기념비입니다.
성당축성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
이번 여행기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내부 사진 되겠습니다.
여기가 내부가 잘 공개안되거든요. 아니 정정합니다. 공개 안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개방한데다 사진 촬영도 허가가 되었네요. 이거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로또급 사건입니다.
그 유명한 외규장각
외규장각은 규장각의 분관입니다. 이곳에 중요한 문서가 보관된 이유는 전쟁의 위협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후방이기 때문이죠. 병자호란때도 인조가 피난하려던 곳이 원래 여기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외적의 경계가 바뀐 것입니다. 북쪽 대륙을 타고 오는 중국도 아니고, 남해로 건너오는 일본이 아닌 서해로 쳐들어오는 외적이죠.
결국 병인양요가 터졌습니다. 건물은 불타고 책들은 빼앗기거나 불태워졌죠. 외규장각에는 본래 조선왕실의궤 297권을 포함한 5천여 점의 문서들이 있었는데, 의궤 297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전부 불태워졌죠. 이유는 글씨만 있어서 이게 어느 정도 가치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훔쳐간 외규장각 도서는 재불 역사학자이신 박병선 박사님이 발굴, 박사님의 평생과 맞바꾼 노력끝에 145년만에 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반환됩니다.
왜 임대냐... 만약 이걸 영구반환이라도 했다가는 전 세계에서 프랑스에게 약탈당한 국가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이메일: inswrite@gmail.com
브런치: https://brunch.co.kr/@hdyoon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lqc6b5yPfSM
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