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힘
(베드로전서 5:6~11)
새해가 되었는데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3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확진자와 중증 환자 그리고 사망자가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1년 동안 지속되어온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오래 동안 지속되어 온 이 전쟁의 여파로 세계경제가 침체되면서 세계 각 나라에 물가 폭등을 일으키며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세상이 참 만만치 않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베드로전서 5:8에 우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정글과 밀림에서 배가 고파 으르렁거리며 울부짖는 사자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울부짖으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겠습니까? 그리고 찾으면 얼마나 빨리 먹어치우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인생과 사회를 사람들은 정글과 밀림에 비유하곤 합니다. 정글과 밀림처럼 이 세상은 연약한 우리를 삼키려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사회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밀어내는 사회입니다. 다윗은 시편 말씀에서 원수가 나를 삼키려 한다고 하나님께 자주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죽음과 나 사이가 한 걸음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면 이렇게 고백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상항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가 주신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이기고 악한 세상을 극복하며 이 험난한 삶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수 있는가를 세 가지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벧전5:7에 우리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염려라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밤잠을 설친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염려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분이 안 계십니까? 제가 이민 목회를 오래했습니다. 특별히 이민 사회에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우리 한국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국도 어려운 문제 때문에 밤잠 설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어려움에 승리하고 마귀를 대적하려면 우리가 가진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병원에 일주일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 병원에 있을 때 얼마나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는 생각을 통해 역사합니다. 생각이 쌓이면 염려와 근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생각을 돌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생각의 전환입니다. 이때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여기에 염려를 주께 맡긴다는 말에는 단순히 맡긴다는 이상의 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주님께 염려를 맡긴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겨서 주님의 처분만을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즉 주님이 계획하신 뜻대로 하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문제를 맡기긴 하는데 주님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시면 그 뜻에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염려를 더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비행기에 항법 장치가 있습니다. 비행기가 궤도를 이탈할 때 조종사가 바로 잡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정확히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 잡아주십니다. 요한복음 10:10에 도적이 오는 것은 멸망과 파멸을 시키기 위해 온 것이지만 예수님이 온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히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진짜 행복을 바라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둘째, 벧전 5:8에 이 악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이 무슨 뜻이 있을까요?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잠만 잤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6:40에 한시 동안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여기서 근신하고 깨어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대적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깨어 기도해야 마귀를 이길 수 있고 악한 세상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셋째, 벧전 5:9에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믿음에 굳게 서라라고 말씀합니다. 영어로는 ‘firm in faith’인데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게 서라는 말씀입니다. 마귀가 또 제일 싫어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마귀는 누군가 우리를 흔들 때 흔들리길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다가 어떤 일이나 사건을 만나면 흔들거립니다. 믿음이 약한 분이나 귀가 얇은 분들은 더 흔들립니다. 심하게 흔들리는 믿음입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까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의 덕목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중국은 한 ‘一’자입니다. 일본은 ‘和’ 즉 평화할 때 화자입니다. 한국은 ‘忠’자입니다. 싸움과 전쟁이 많고 외세의 침입이 많았기 때문에 나라에 충성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충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에 대해 일관성을 갖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오래 전에 체육 대회를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교협 회장으로서 천 여 명이 참가하는 그 행사를 맡고 매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치를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니까 계속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여기저기서 연기하자 혹은 그만 두라라고 난리를 칩니다. 그때 마음이 많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느라고 애를 먹었습니다. 그 흔들리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잡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날 밤에 목사님 두 분과 함께 체육 대회장소에 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체육대회를 시작하니까 비가 그쳤습니다. 비가 그친 다음에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렸습니다. 전화위복이 되어 운동하기에 매우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모든 경기가 다 끝나고 결승전이 되었는데 다시 비가 옵니다. 사람들이 안 갑니다. 이제 마음 중심을 잡으니까 끝까지 은혜롭게 끝났습니다. 폴 틸리히가 쓴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라는 책에서 믿음이란 흔들리지 않는 터전 위에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흔들리는 터전 위에 세워졌습니까?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 터전 위에 세워졌습니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