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계 부채 심각성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그냥 한국은 빚더미위에 세워진 바벨탑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정말로 만성화된 고질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계 부채는 무엇인가. 각 가정에서 빚을 내어 그냥 쓴다는 것 아닌가. 물론 정말 너무 힘들어 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빚을 얻는 가계도 있겠지만 상당부분은 자신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빚을 얻어 생활하는 부류가 정말 상상외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빚은 한번 타성이 붙으면 정말 대책이 없어진다. 먹고 살만한데도 주변에서 이리저리 돈을 꾸러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사정이 좋지 않으면 자신의 씀씀이를 줄어거나 내핍생활을 해서 그런 환경을 탈피하려 하지 않고 일단 타인으로부터 빚을 얻어 임시변통한 뒤 그뒤에는 내배째라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부류가 참으로 흔한 세상이다.
최근 감소세를 보이던 가계 빚이 다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빚을 내서 집을 사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은 역대 최대치를 또 다시 갈아치운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정부가 규제 완화와 함께 특례 보금자리론같은 대출 상품을 내놓은 것이 큰 이유가 되고 있다. 여기에 그 근거도 없는 이른바 집값 바닥론이 빚을 내서라도 한몫 잡아야겠다는 일화천금의 심리를 자극한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저기 유튜브나 건설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들을 통한 집값 상승 기류가 오락가락 투기심리를 본격적으로 건드린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2023년) 2분기 말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천31조 2천억 원을 나타내며 사상 최대치 기록을 깨버렸다. 전체 가계 부채는 전 분기 말보다 9조 5천억 원 급증했다. 3분기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가계부채가 심각한 것은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경우 특정 개인이 빚을 갑지 못해 몰락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금융권이 연쇄적으로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마구 빚을 내서 이런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을 타인이 뭐라 할 일도 없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옛날부터 도박판에는 중독성으로 이것 저것 끌여다 돈을 들이미는 부류가 존재했다. 자신의 집문서뿐 아니라 옆집 뒷집에서 돈을 빌려 도박판에 쓸어 넣었다. 자기집이 망하는 것을 넘어 옆집 뒷집도 덩달아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규모가 다르다. 자신의 형편을 고려치않고 무조건 빚을 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들때문에 하루 하루 힘들게 살아가면서 모든 돈을 은행권에 맡긴 사람들도 함께 패망하는 대 참사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계 부채 폭탄이 터질 경우 그렇다는 말이다. 가계부채의 폭탄은 오래전부터 이 나라에 존재했다. 과거 정권에서도 이 가계부채의 위험성 경고등이 이미 켜진 상태이다. 하지만 근근히 그 폭탄을 돌려가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부채의 폐단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요즘은 특히 청년층의 빚 갚음이 더욱 팍팍해지는 모습이다. 정부가 대부업 이용조차 어려운 저신용자 서민들을 위해 시행한 소액생계비 대출과 관련해 20대 이용자 25%는 이자도 못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자료를 보면 소액생계비 대출을 받은 20대 이하의 이자 미납률은 25%에 이른다. 모든 연령 중 이자 미납률이 가장 높은 것은 물론 전체 연령대 미납률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한 달 이자 몇 천원에서 몇 만원도 못내는 청년이 많다는 뜻이다. 지금 은행권에서 거액의 빚을 가장 많이 얻어가는 이른바 영끌족들과 너무도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부채는 늘어가는데 나라의 성장률은 더욱 하락하는 모습이다. 얼마전 국제통화기금, IMF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1.4%로 또 0.1%p 내렸다. 지난해 7월부터 5번 연속 우리나라 성장률은 하향 조정됐다.지난 1분기 반도체 실적이 부진했고, 중국 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저조했던 영향으로 보인다. 이런 전망치는 한국은행과 OECD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나라 안팎에서 비슷한 관점으로 한국 성장률의 하락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부동산관련 붕괴조짐과 그로 인한 금융권 위기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중국도 부동산에서 비롯된 거품이 붕괴되면서 그로인해 부동산 거대 기업이 파산 상황이고 그 거대 기업과 관련된 금융기관도 위태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세계 경제 2위권인 중국의 상황은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마구 솟아오르는 부동산의 신기루를 쫓다가 보니 허망함이 보이고 그 허망함이 결국 부동산 붕괴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기업에게 엄청난 돈을 빌려준 금융권이 도산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도 비슷한 수순을 밟지 않을까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단단히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 이시간에도 돈 빌려 아파트 사겠다고...주식에 몰빵하겠다고 달려가는 부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개인이 판단하고 개인이 저지르는 일을 타인이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다. 자신들이 건설해 놓고 팔리지 않자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하는 건설사들을 또 나무랠 수도 없다. 물건을 파는 행위가 다 그런 것 아닌가. 하지만 최종 판단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판단하고 계산기 두드린 뒤 판단해야 뒷탈이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면 그만이다. 그것까지 이웃에서 콩나라 팥나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모하게 일확천금을 노리는 불나방들때문에 정말 근검절약하고 순리대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착한 이웃들까지 덤터기를 뒤집어 쓰지 않을까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IMF때도 수많은 경고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애써 외면했다. 아니 그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았다. 설마 한국이 그럴리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행위는 곳곳에서 자행됐다. 그 결과 한국은 국가파산이라는 엄청난 고난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현 정부에서는 이런 저런 대비를 하고 있겠지만 중국 등 타국의 상황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면 건실하고 단단하게 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느날 갑자기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서 밀려나 한없이 떠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3년 8월 2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