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7월 16일(일요일) 서울 [안산&봉원사] 탐방일정
산 : 서울 [안산&봉원사]
[안산(鞍山)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있으며 높이는 295.9 m로 나지막한 도심의 산이다. 산의 생김새가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이라고 불렀고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해서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렀으며 호랑이가 출몰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모아서 산을 넘어가야 했기에 모악산라고도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하륜(河崙)이 안산 남쪽을 도읍지로 추천하였다.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다.
서울 시내 중심에서 홍제동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해발 340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대문독립공원, 이진아 도서관이 위치한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가 안산에 연결되어 최종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정상 부근에는 큰 바위들이 많고 서울시 중구 일대를 관망하는 전망이 뛰어나다. 태고종의 총본산인 봉원사(奉元寺)가 남쪽에 있으며 관음보살을 닮았다는 관음바위가 유명하다. 그리고 근래 새로운 모습으로 보수한 봉수대(서울특별시 개념물 제13호) 등을 볼 수 있다.
수맥이 풍부한 27개의 약수터가 있어 등산로가 발달하였다. 옥천약수, 백암약수, 맥천약수, 봉화약수 등이 유명하다. 서대문구청, 연희b지구 시민아파트, 연세대학교 기숙사, 봉원사 등에서도 등반할 수 있고, 주변에 백련산과 인왕산이 있어 함께 등반할 수 있다. 지하철 무악재역, 독립문역 쪽에서도 등반이 가능하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최장코스는 경기대학교 뒤편에서 금화터널 위로 정상에 오른 뒤 홍제 1동 고은초등학교 쪽으로 내려오는 4㎞ 길이다.]
산행코스 : [ 이대부고 버스 정류장~봉원사~안산 주능선~안산 봉수대~독립문역 5번 출구 ]
산행일 : 2023년 07월 16일(일요일)
날씨 : 구름이 낀 날씨 [서대문구 봉원동 최저기온 24도C, 26도C]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 3시간 5분)
09:00~09:11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여 독립문역으로 이동
09:11~09:30 독립문역 5번 출구로 나와서 독립문역 버스 정류장에서 이대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7737번 버스 승차 대기
09:30~09:35 7737번 버스를 타고 독립문역 버스 정류장에서 이대부고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09:35~09:47 이대부고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 출발하여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 120 번지에 있는 봉원사로 이동 (751m)
09:47~10:05 봉원사(奉元寺) 탐방
[봉원사(奉元寺)는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이다. 889년(진성여왕 3)에 국사 도선(道詵)이 부유한 신도의 집을 희사받아 절을 창건하고 반야사(般若寺)라 하였다. 그 뒤 고려 공민왕 때에 보우(普愚)의 중건으로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으며, 1396년(태조 5)에는 이 절에 왕의 초상화를 모신 원당(願堂) 반야암을 지어 불교탄압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지인(智仁)이 크게 중창하였고, 1651년(효종 2)에 다시 법당과 동서에 있던 요사가 소실되었지만 극령(克齡)·휴암(休巖)·도암(道庵) 등이 중건하였다. 또, 선조·인조·영조 때에는 반야암을 수호하라는 왕명이 있어 조정의 극진한 보호를 받았다. 특히, 1748년(영조 24)에는 왕이 절을 지을 부지를 하사하여 찬즙(贊汁)·증암(增巖) 등이 현재의 자리로 이건하였고, 이듬해 영조는 봉원사라는 현판을 내렸으므로 이때부터 절 이름을 봉원사라 하였다.
1788년(정조 12)에는 팔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를 설치하여 승려의 승풍(僧風)을 지도, 단속하게 하였다. 구한말에는 개화파의 대표적 인물인 이동인은 이곳 봉원사에 주석하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과 함께 교류함과 동시에 일본과 서양문물에 관한 지식을 쌓아갔으며 승려의 신분으로 수차례 일본을 내왕하며 당시의 선진문물을 소개하여 김옥균 등을 개화사상에 눈 뜨게 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였고, 1884년(고종 21)에는 갑신정변의 주동인물이었던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박영효(朴泳孝) 등이 이동인(李東仁)의 지도 아래 개화파의 젊은이들을 깨우쳐 정변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서재필(徐載弼)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곳 봉원사를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1894년에는 주지 성곡(性谷)이 약사전을 신축하였으며, 1911년에는 다시 이보담(李寶潭)이 크게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가람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66년 최영월(崔映月)이 복원한 것이 많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극락전을 위시하여 범종각·명부전·납골당·산신각·칠성각·종무소·비각 등이 있다. 중요한 유물로는 도선의 반야암 편액, 이광사(李匡師)의 대웅전 편액, 정도전(鄭道傳)의 명부전 편액, 김정희(金正喜)의 청련시경(靑蓮詩境)·산호벽루(珊瑚碧樓), 옹방강(翁方綱)의 무량수각 편액, 친일 어용총리 이완용(李完用)의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信力) 등과 장승업(張承業)의 신선도 십폭병풍 등이 소장되어 있다.
대웅전 탱화와 단청은 인간문화재 이만봉 스님의 작품이다. 대웅전에 걸린 ‘大雄殿(대웅전)’ 현판 필자는 조선의 명필 원교 이광사(李匡師)다.
법당 안 우측에 보관 중인 범종(梵鐘)은 충남 가야사에 있던 종인데 조선의 억불정책(抑佛政策)으로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가야사를 불태웠을 때 타지 않았던 종을 옮겨온 것이다.
대웅전 마당 우측에 있는 3천불전은 1986년 주지 조일봉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건물허가 및 준비 과정을 거쳐 1988년 삼천불전의 복원불사가 시작되어 단일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의 건물로 9년 여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아랫마당에는 대방(大房)이 있는데 공덕리(지금의 마포구 염리동이고, 현재 서울디자인고교가 들어서 있음)에 있던 대원군의 별장 아소정(我笑亭) 건물을 옮겨 세운 건물이다. 대방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 "산호벽루(珊湖碧樓)"와 추사의 스승으로서 중국 청대 중기의 학자이자 서예가인 옹방강(翁方綱)의 행서체 현판 "무량수각(無量壽閣)"이 걸려 있다.
명부전(冥府殿)편액은 600년 전 조선개국의 일등공신 삼봉 정도전의 예서체 친필이다, 이성계가 부인 강씨 신덕왕후가 승하하자 명복을 빌기위해 정동에 현당인 흥천사를 세워 명부전을 짖고 삼봉에게 편액을 쓰도록 했다. 명부전의 주련(柱聯)은 매국노로 지탄받는 친일 어용총리 이완용의 친필이다.
극락전 건물은 봉원사의 꽃이다. 4군자 문향의 목각(木刻) 문살조각과 색 바랜 단청의 고즈넉한 우아함이 시공을 초월하는 극치미이다. 전면 문살대 위에는 대나무, 국화, 연꽃 및 각종 화초를 덧붙여 화려함을 장식했다.
명부전과 칠성각을 지나 미륵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한글학회 창립한 곳>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처음에는 국어연구학회로 출범한 한글학회는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우리 민족의 문맹을 깨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이곳에서 창립총회를 연 곳이다. 창립 초기부터 우리 말과 글의 수호와 연구, 보급을 통한 민족의식의 고취에 목표를 두었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와 국어학 발전 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과 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봉원사 미륵전(彌勒殿)은 특이하게도 흰색의 현대식 건물이다. 미륵전은 사찰에서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이곳은 미륵불이나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는 미륵보살을 모시는데, 이는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내세 신앙의 발로 때문이다. 미륵전 내부에는 미륵불입상이 봉안돼 있으며 미륵불 옆으로는 윤장대(輪藏臺)가 마련되어 있다.
경내에는 서울특별시 보호수 제67·69·70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령 약 500년의 괴목이 있고, 절 뒤에는 관세음보살의 영험담이 얽힌 관음바위가 있다. 매년 7, 8월에 봉원사는 아름다운 연꽃으로 장식된다. 100여 개의 대형 고무 물통에 흙과 물을 채워 연꽃을 피운다.
또한 봉원사는 불화와 단청의 최고 기능을 보유하고 있고, 불교음악 범패(梵唄)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영산재(靈山齋)가 열린다. 영산재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던 영산회상을 상징화한 의식절차다. 1973년 11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가곡780) 제50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9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괘불을 걸어놓고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인데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큰 행사다.]
10:05~10:50 안산 주능선으로 이동
10:50~11:30 안산(295.9m) 정상에 있는 안산 봉수대로 이동
11:30~11:50 사진촬영
11:50~12:40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서울 [안산&봉원사]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