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 연구에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다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가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였던 요제프 브로이어(Josef Breuer, 1842~1925)와 같이 집필한 《히스테리 연구》(Studien über den Hystrie, 1895)의 출간과 함께 공식적으로 출현하였다. 이 책은 브로이어와 프로이트가 치료를 맡았던 ‘안나 오(Anna O)’라는 가칭의 환자를 치료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브로이어는 1882년 12월부터 안나 오의 치료를 맡았는데, 그녀는 그해 7월부터 종양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심한 히스테리(hysteria) 증세를 보였다. 안나 오는 오른쪽 옆구리에 심한 마비 증상을 느꼈고, 자주 신경성 기침을 하였으며, 종종 음식물을 거부했고 시각장애에 시달렸다. 때로는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를 망각하고 영어만으로 말을 했으며, 환각 때문에 매우 공격적인 행동을 하곤 하였다.
그녀의 이런 증세는 아버지에 대한 열성적인 간병 때문에 생긴 히스테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브로이어와 프로이트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이 보기에는 그녀는 히스테리 환자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간병에 열성적이었다. 실제로 안나 오의 증세는 아버지가 1881년 4월에 사망한 이후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브로이어는 안나 오의 증세를 완전히 치료하지 못하고 프로이트에게 치료를 맡겨야 했는데, 그녀가 브로이어를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시하여 연정을 느꼈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였다. 여기서도 우리는 얼핏 짐작할 수 있지만, 그녀가 아버지에게 느낀 감정은 단순히 아버지에 대한 감정 이상의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안나 오의 오른쪽 옆구리 마비 증세와 산발적인 모국어 상실이 의사를 기다리며 아버지의 병상에서 겪었던 그녀의 환각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병원의 침상 옆에 엎드려 졸던 그녀는 위급한 순간 잠이 깨면서 뱀이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환각을 보았는데, 오른쪽 팔엔 쥐가 나서 팔을 쓸 수 없었다. 게다가 기도를 올리려 했지만 어릴 때 배운 동요만 떠올랐다.
여기서 뱀은 성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성적인 욕망의 주체가 바로 안나 오라는 사실이다. 안나 오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낀 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말하자면 자신이 그러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는다.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과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좌절된 무의식적 욕망이 히스테리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프로이트가 보기에 그녀의 히스테리는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었으며, 의식 깊숙이 숨겨진 무의식이라는 보다 심층적인 영역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는 과거에 히스테리를 육체적인 병으로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법을 의미한다.
히스테리라는 말 자체가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460~?B.C.377)는 히스테리를 여성의 신체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히스테리 하면 무엇보다도 ‘노처녀 히스테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노처녀 히스테리는 히포크라테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여성의 자궁이 일정한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건조해질 경우 히스테리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남성과 성관계를 맺지 못하므로 자궁이 건조해져서 히스테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한때 파리에 체류하면서 배웠던 스승 장 샤르코(Jean Martin Charcot, 1825~1893)는 최초로 히스테리를 육체적인 질병이 아닌 신경증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샤르코 역시 히스테리를 좌절된 무의식적 성적 욕망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하는 데 이르지는 못하였다. 더군다나 샤르코는 히스테리를 여전히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보기에 히스테리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남성 역시 무의식적 욕망이 좌절되거나 그 욕망에 대한 금기로 인해 얼마든지 히스테리 환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사회구조적인 환경 탓에 여성이 성적인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더 금기시되므로 여성에게 히스테리가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는 있다.
또한 안나 오의 사례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발견이 있다. 히스테리를 발생시키는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은 매우 부조리한 방식으로 표출되는데 거꾸로 이를 대상화할 경우 그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브로이어는 안나 오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갔는데, 안나 오를 만나기 전에 그녀의 한 친척이 안나 오가 이상한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고 말해주었다. 브로이어는 안나 오에게 그녀가 중얼거리던 단어를 들려주었고 그러자 그녀는 그 단어에 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녀의 상태는 획기적으로 호전되었다.
안나 오가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 단어들은 정상인이 보기에는 매우 낯설고 이상하며 미친 사람의 무의미한 말로 들린다. 그런데 이 이상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는 소음이나 잡음이 아니라 그녀의 트라우마를 형성하고 있는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었다. 그녀가 이 이상한 헛소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는 것은 자신의 숨겨진 무의식적 욕망에 대한 경험을 밖으로 드러내고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녀의 히스테리 증세는 완화된다.
마치 축음기에 녹음된 소음처럼, 인간의 무의식에는 그러한 소음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소음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저장된 우리 내면에 있는 실상의 소리이다. 히스테리의 발견은 곧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발견과 동일하며, 그러한 점에서 정신분석학의 출현과 관련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히스테리 연구에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다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2015. 08. 25., 박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