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친구
성경 말씀: 사무엘상 18:1-5; 누가복음 10:25-37
요약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친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예수님과 친구들인 이들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명하신 것을 행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친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서로 사랑하게 명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친구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이들은 예수님의 친구들입니다.
예수님의 친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계명을 주시면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3-14)”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사랑의 친구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계명으로 주십니다. 즉 예수님은 사랑을 감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계명을 따라 이루어짐으로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루어짐의 사랑을 따라 이루어짐의 친구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친구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로 말해집니다. 그들은 서로 친구의 관계로 삽니다. 그들은 그들 개인의 독자성의 근거로 친구로 상호 관계를 맺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관계는 적대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즉 개인들로 친구들은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과 관계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친구로 관계되면, 사랑을 계명으로 말해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살도록 부르면, 그들과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으로 이루어지는 친구를 보이려고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상호 사랑의 친구의 이루어짐을 새 언약의 친구로 보이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새 언약으로 드러나시거나, 혹은 사랑의 새 언약으로 말해집니다.
새 언약은 예수님의 친구들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친구들은 새 언약의 구성요인입니다. 그들이 관계된 개인들이면, 그들은 새 언약의 구성요인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친구들은 새 언약의 삶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새 언약의 삶을 삽니다.
새 언약의 친구들은 명시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서로 마음으로 사랑하는 세상에 친구들은 모이는 삶을 살 뿐입니다. 감정적으로 가깝게 연결된 이들은 같이 모여 삽니다. 공동체는 모임의 삶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으로 사는 친구들은 예수님의 계명으로 사는 이들입니다. 언약은 원래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계명의 사랑은 언약의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계명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예수님으로 이루어지는 새 언약의 친구들로 삽니다. 새 언약의 친구들은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구약에 십계명에 비추어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새 언약의 백성은 사랑의 계명으로 이루어지는 친구들인 걸 보입니다. 이 점에서 엣 언약의 백성은 십계명으로 이루어지는 이스라엘 백성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언약의 백성으로 규정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과 십계명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백성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전자가 십계명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후손의 태어남은 십계명의 이루어짐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의 계명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옛 언약과 십계명의 문제를 극복합니다. 사랑의 계명으로 이루어지는 친구들의 삶은 새 언약의 삶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친구들로 함께의 삶임으로, 진정한 언약의 삶입니다. 사랑의 계명과 새 언약은 같이 갑니다.
예수님은 친구들을 위해 생명을 버림을 말씀하십니다. 가족을 위해 생명을 버림은 가족의 조건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친구들을 위해 생명을 버림은 순수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인 친구들을 위해 생명을 버림은 순수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친구들은 세상 조건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속의 뜻을 갖지 않습니다. 사랑으로만 보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한, 친구들로 보입니다. 요한복음엔 친구들은 언급되지만, 공관복음엔 이웃들이 언급됩니다. 복음서에서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함께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친구들과 이웃들은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약의 뜻으로 친구나 이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새 언약으로 친구와 이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친구는 개인의 관계를 뜻하지 않고, 이웃은 지역적인 가까움을 뜻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새 언약의 백성의 친구와 이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언급된 이들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세상에서 언급된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합니다. 그들의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언약의 설정으로 떠나 세상 사람들 가운데 고려되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지 종교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것이 개인들이 친구들이나 이웃들을 향한 덕을 고양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즉 언약을 떠나 세상 삶에서 개인들을 고양하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사랑으로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조건적 설정을 극복합니다. 그들은 타고난 개인성이나 지리적 거리로 설정되는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아닌 조건성을 극복하는 사랑으로 친구들이나 이웃들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새 언약의 삶으로 친구들과 이웃들을 가르치십니다.
이 경우 친구나 이웃을 향한 사랑은 물론 개인의 마음에서 솟아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타고난 성향을 고양함으로 보이게 되지 않습니다. 친구나 이웃은 개인의 덕으로 맺어지지 않습니다. 친구나 이웃으로 사는 삶은 종교적이나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친구, 이웃, 박해자, 혹은 원수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십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상황에 처해 다른 이들을 향한 개인들의 감정으로 나눠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함께의 새 언약의 삶을 위해 이들을 언급하십니다. 새 언약의 삶에서 박해자나 원수도 친구와 이웃으로 함께 삽니다.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개인들로 접해지는 이들이 아닙니다. 새 언약으로 이루어지는 이들입니다. 새 언약으로 함께하는 이들은 친구들이고 이웃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함께하는 친구들이고 이웃들입니다. 사랑의 친구들이고 이웃들입니다.
영적 친구
예수님의 계명으로 사랑은 성령님에 의해 인도됩니다. 그러므로 계명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은 영적으로 인도됩니다. 그것은 영성의 사랑입니다. 즉 성령님의 열매로 맺어집니다. 친구로 언약의 삶은 사랑을 성령님의 열매로 맺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문자적이지 않습니다. 계명은 사람을 사랑하게 주어질 수 없습니다. 사랑은 계명에 의해 지켜지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킴은 개인의 의지로 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친구로 사랑은 계명의 지킴으로 보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은 개인적으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함께의 좋은 소식의 알림으로 파급되는 결과입니다. 새 언약의 삶을 사는 내용입니다. 새 언약의 삶의 내용은 아직 서사로 표현되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에 사랑은 새 언약의 내용, 곧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핵심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하나님의 영으로 함께입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궁극적으로 영성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기 전 옛 언약은 모두 문자적으로 표현됩니다. 문자적으로 표현된 언약의 삶에 사람이 지켜야할 것은 분명합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함께는 외부 조건의 만족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이 지켜지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말해집니다. 그러나 이 조건적 표현이 필요조건을 보이더라도, 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는 경우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조건적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함께는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언약은 궁극적으로 영성으로 표현됩니다. 언약의 삶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인도됩니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는 사랑으로 친구로 사는 것이 영성으로 이루어지는 언약의 삶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선포하시고 이루시는 새 언약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의 삶입니다. 거기에 육신으로 태어난 종족은 생각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죽음에 종속되더라도 친구로 사는 것을 뜻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이것은 죽음이 친구로 삶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친구로 삶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이 친구들로 사는 삶으로 선포하시는 새 언약의 삶은 아브라함 후손의 옛 언약의 삶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세상 조건에 묶이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친구들로 새 언약의 삶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친구들이 아닌 언약으로 친구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초대 교회에 보이는 것은 언약의 친구들로 사는 삶입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으로 복음이 파급되면서 이루어지는 구체적 삶입니다. 친구들이 되는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또 부자와 가난한 이의 삶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 개인으로 살지 않고, 친구로 살게 하옵소서.
개인으로 닫힌 삶을 살지 않고, 친구로 열린 삶을 살게 하옵소서.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며 살지 않고,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세상에 차지함으로 살지 않고, 드러남으로 살게 하옵소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으로 드러나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게 하옵소서.
사랑의 친구로 세상에 보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