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적 관점에서 본 인생이야기 10 ■
【 삶의 고통과 그 대안 】
☸(설법연구원) 2016년 10월호
사람은 살면서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이 더 많이 생긴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일이 성취되지 않을 때의 불만족, 육신의 고통,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찰, 뜻하지 않은 구설수 등 인간을 괴롭게 하는 일들이 매우 많다. 불교 법문이 8만 4천이라고 하는 것도 인간의 번뇌가 그만큼 많기 때문에 8만 4천 법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누군가에게 베풀고 헌신하는 것보다 이기심과 욕망이 더 많기 때문에 그만큼의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꼭 갈망하지 않더라도 고통은 이유 없이,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고뇌’와 ‘고통’라고 하는 복병은 언제 불쑥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만큼 인생사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그 불완전성에 인간은 힘들어한다.
특히 연예인들을 보면 그들의 학력이나 외모, 가족까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보다는 일종의 마녀 사냥처럼 그들을 왜곡하고, 없는 것조차 진실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일로 어떤 연예인은 자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심각한 후유증으로 병을 얻기도 한다. 어린애들이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연못에 사는 개구리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일은 비단 특정인만이 아닌 모든 사람이 겪는다. 왜 우리는 남의 고통을 방조하고, 즐기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늘 고통에 빠져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대안을 찾아보자.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닌 고통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두 가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는 고통과 힘겨움이 일어날 때, 그에 대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이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널리 선을 보급시킨 달마 스님께서 ‘보원행報怨行’이라는 법문을 하셨다.
보원행이란 지금 현재 남으로부터 받고 있는 증오, 육체적 고통, 정신적인 번뇌,
상실감 등 고통스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비관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보로 인해
현재 고통 받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참고 인내하라는 뜻이다.
혹 어떤 사람은 보원행을 팔자소관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내게 왜 그 고통스런 일이 생기는지를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요, 혹 타인과 부딪힌다고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고통스러움을 감내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이 또한 인생을 헤쳐 나가는데 좋은 보약이요, 지혜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금강경>에서도‘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한다면 이는 전세의 죄업을 한꺼번에 소멸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정진할 것을 권하고 있지 않은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는 10명의 훌륭한 제자가 있었는데, 목련 존자는 신통력이 매우 뛰어났다. 부처님 재세시, 인도에는 여러 교단이 있었는데 불교 교단이 점점 비대해지고 출가자들이 많아지자 이교도들이 불교 교단을 해코지 하려고 했다. 신통술이 뛰어난 목련은 교단을 보호하기 위해 신통력으로 이교도들의 침입을 막았다[수행을 통해 신통력을 얻는 것이 불교수행의 목적이 아니라 수행과정상 얻을 수 있는 힘]. 이러다 보니 외도들은 목련에게 앙심을 품고 목련을 죽이려고 하였다. 결국 이교도들이 목련을 죽이려고 산위 정상에서 돌을 던졌지만 목련은 신통력으로 위험을 피했다. 이런 일이 세 번째 발생했을 때, 목련은 이교도들이 산위에 던진 돌에 맞아 입적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도 이렇게 불명예스런 죽음이 있다. 그런데 하물며 범부 중생들의 삶에 고통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목련은 신통력으로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지만, 과거에 나쁜 행을 한 업보라는 생각으로 죽음을 수용했다고 보면 된다. 너무 지나친 예를 드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고통에 대해 수용하는 자세를 갖자는 의미이다.
둘째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아예 무시하거나 무관심으로 대하는 방법이다. 『사십이장경』에 부처님의 이런 말씀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내가 수행을 잘하고 큰 자비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나를 욕하고 꾸짖었다. (이때) 나는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그는 꾸짖기를 멈추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보석을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접대했는데 그 사람이 보석을 받지 않는다면 그 보석은 누구의 것인가?’ 당연히 보석은 상대방의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자신에게 욕을 하지만, 자신이 받지 않는다면 그 욕은 바로 상대방에게 돌아간다. 마치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처럼 결국에는 그 재앙을 면할 수 없으니 반드시 악한 일을 삼갈 지니라.”
바로 이 점이다. 객관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화를 낼 필요가 없다. 그가 와서 꾸짖을지라도 무시해버리면, 그 화는 자신에게 돌아간다. 결국 그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인격문제라고 생각하라. 맞설 필요가 없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기 마련이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발생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때마다 이 세상에 자신 혼자만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힘겨워하고 좌절한다면 영원히 인생에서 패배자가 된다. 억만금을 가진 부자나 높은 명예를 가진 사람도 그 나름대로 고통이 있다.
인생의 아픔도 수용할 줄 알고, 어느 단계에서는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며, 사람과 힘들 때는 적당히 무시하는 것도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 말씀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대들은 남을 비방하고 불평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구나.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지 남의 비방을 듣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설령 한 나라의 황제나 부처일지라도 비방을 듣는 법이다.
반대로 그대들이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듣는다면 어떻겠느냐?
설령 그대들이 비판받거나 비방을 듣더라도 그 말을 무시하거라.
다만 그대보다 훌륭한 사람이 하는 비판이라면 참고삼아 자신을 고칠지니라.”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네,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