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부족
나는 있는 건 시간밖에 없다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대학교수를 했다. 그리고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화려한 백수 생활을 한 지도 어언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요즘 시간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다. 물리적 시간은 넘치는데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여건의 부족 때문인 것이다. 하여 좋은 생각과 선한 행동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할 일은 많은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촉박해지는 것 같다.
육체적 노화는 시간의 부족을 초래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고희를 넘긴 친구들의 타계와 입원 소식이 나에게도 물리적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문득 느끼게 한다. 귀촌하여 조금 벅차게 농사를 짓다 보니 하루종일 텃밭에서 종종걸음을 치게 되어, 피곤한 탓인가 22:00에 잠자리에 들면 바로 꿈나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심리적 공황증에서는 탈출했지만 독서 시간, 글 쓰는 시간, 그리고 심야 미드 보는 시간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중 생략할 수 없는 글 쓰는 시간을 지금처럼 낮 시간대로 변경했다. 종종 지리산 종주와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온 산악동호회 소식을 카톡으로 읽으면서 이제는 산악회에서 내 이름도 빼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신적 시간의 부족이란 의욕의 부족과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함을 의미한다. 배움을 포기하면 바로 폭삭 늙는다는 말에, 그리고 늙는다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의욕의 상실이라는 말에 가끔 오기를 부려보지만, 종종 신문명 앞에서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최신 휴대폰 갤럭시 폴드4를 사서 유튜브를 통해 열심히 학습했지만, 실전에 막혀 고민하다가 중1 손녀에게 물어볼 때마다 터치 한 번으로 끝내면서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에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때로는 모르고도 아는 척하고 넘어가게 된다.
물질적 여건의 부족이란 은퇴에 따른 경제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은퇴하고 나니 월수입이 1/3로 대폭 줄었다. 처음에는 난감했으나 우선 현업 시절보다 지출이 많이 줄어 다행이었고, 무엇보다 평생 주어진 봉급에 맞춰 사는 것에 익숙한 경제생활의 달인이어서 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또 한동안 부족한 생활비를 아들딸이 얼마간 보태주어 윤활유가 되었는데, 아들딸도 이제는 나름대로 경제적 플랜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자력갱생하기로 마음먹고 그동안 보내던 효도비를 저축하도록 조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돈은 노력으로 늘어날 수 있지만, 시간은 노력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노화에 따른 시간의 부족에 대응하는 방법은 선택과 집중인 것 같다. 내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것을 우선순위로 정하여 중요하고 가능한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니 촌각이라도 아끼고 싶다. 특히 석가헌에서 서녘으로 넘어가는 붉은 빛의 일몰의 광경을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이 더욱 고조된다. 그리하여 사랑하고 베풀고 용서하고 살기에도 아까운 여생인 것 같아 특히 가까이에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러한 점에서 얼마 전 벽지 마을에서 같이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하는 동민 10명의 교잿값을 대신 지불해 주었다. 아들이 자동차를 바꾸는데 지원해 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전체 비용의 반값을 천장에 매달아두었던 절인 생선 같은 쌈찌돈에서 꺼내어 지원해 주었다. 7월에는 둘째 손자를 출산하는 딸에게 또 쌈짓돈에서 헐어 내 한 달 생활비를 넘는 돈을 출산지원금으로 주려고 한다. 우리 나이에 회장이란 직책은 생산적 회무처리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식사비라도 내라는 자리인 것 같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게 된다. 이처럼 능력 범위 내에서 무엇보다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을 자주 열려고 한다.
우리 나이에 이르면 평생 살아온 길에 따라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지게 된다. 나는 국문학 교수로 30여 년을 재직했으니, 여기에서 내가 작은 이름이나마 남길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문과 교수란 자존심을 버리고 50대 중반에 수필가로 문단에 데뷔한 것은 지나고보니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3·4년 주기로 산문집을 발간하여 그동안 12권을 상재한 것도 큰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2년 전 글 쓰는 동기생들이 문우회를 결성하여 의무적으로 매주 1편의 수필을 써서 카페에 탑재하는 책무에 대하여 긍지와 더불어 즐겁게 생각한다. 더군다나 가끔은 낯선 네티즌의 진지한 댓글이 달리면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진정한 독자를 위하여 나는 글을 계속 쓰겠다는 전의를 다지게 된다.
가끔가다 침대에 누워 지나간 세월을 반추하는 시간이 갖게 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고마운 사람들, 젊은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큰 상처를 남겨주었던 사람들, 피차간의 오해로 아직도 서로의 마음에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함흥차사처럼 지내는 사람들-기회가 있을 때마다 늦기 전에 찾아가 감사드리고, 용서를 구하고, 내 마음의 철책선을 허물어뜨리고 싶다.
젊은 시절 질풍노도하며 보내고 고희 고개를 넘어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있는 이유는 인생을 즐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런 점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내와 떠나는 여행, 아들 손자 3대가 함께 하는 가족여행, 그리고 의기투합하는 동행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자주 가지고 싶다. 또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얼마나 더 살아야 할까 보다는 얼마나 더 의미 있는 일을 더 할까 하는 마음으로 심미적 가치 탐구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2023. 6. 16.)
첫댓글 좋은글 감사ㆍ베플고 사는 삶이
큰 보람이지ㆍ나도 오늘 큰아
들과 통화에서 웃으게 소리로
아빠주식이 3배로 오르면
두 아들에게 각각 1억원씩
주고 싶다고 했지.
하시는 일이 현재도 많고 앞으로 하실 일이 많으니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군요. 반 폭 정도 속도를 늦추시는 것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글에 동감합니다....
이 나이쯤이면 남들은 시골로 내려갔다가 다시 도시로 P턴을 한다는데, 나는 반대로 시골살이를 하기 위해 내 생전 처음으로 집을 고치고 있습니다.
하며 과연 얼마의 시간 동안 시골살이를 할 수 있을까, 갈헌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생각해 봅니다. 하치만 이제는 5도2촌의 번거로움을 면하게 되었으니 시간은 오히려 널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구나 시골에서의 시간은 도시에서와는 달리 느리게 흐를테니 더 많은 시간이 남겨진 것으로 느끼게 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