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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 선유도에서
군산에서 부안 변산까지 바다를 막은 새만금방조제 33km가 시원스레 뻗어나갔다. 그 중간쯤 고군산열도 63개 섬이 군락을 이루며 천혜의 자연해상공원으로 형성됐었는데 그 중에 야미도와 신시도가 육로로 연결되었다. 다소 꾸물거리는 날씨로 해무가 많다. 야미도 선착장에서 고군산열도(고군산군도)의 중심인 선유도까지는 불과 8.8km로 유람선으로 곧장 가면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한 바퀴 휘뚜루마뚜루 돌아보기로 한다. 왼쪽으로 신시도가 따라붙고 대각산 월영봉도 보인다. 조금 지나니 오른쪽으로 군산에서 선유도까지 50km 거리인데 그 중간쯤에 군산의 바닷바람인 외풍을 막고 있는 방축도를 비롯한 횡경도 말도가 병풍처럼 늘어섰다.
선유도가 드러나며 두 손을 겹친 기도등대다. 간만의 조수가 심한 곳이라 바다로 나가는 주민의 안녕과 풍어로 만선을 기원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듯싶은 인어등대며 절벽에 구멍이 빵 뚫린 천공굴도 있다. 우뚝 솟은 봉우리 앞에 장구모양의 장구섬과 그 옆에 술잔모양의 섬이 마치 굿을 할 때 너울너울 춤을 추는 무당과도 같아서 무녀도(巫女島)다. 부지런한 섬으로 해태양식과 큰 염전이 있으며 개발로 한껏 부풀어 있다. 하절기에 비가 많이 내리면 망주봉 암벽에서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다는 망주폭포다. 망주봉(望主峰)은 금슬 좋은 부부 바위와도 같다. 유배된 충신이 매일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 한양에 계신 임금을 그리워하였던 곳이다.
유람선선착장에서 하선하여 망주봉을 지난다. 자전거와 전동차로 어수선하며 쓰레기로 지저분하다. 곱고도 고운 모래밭 명사십리 선유도해수욕장이다. 마침 썰물로 조그만 섬까지 물길이 트이고 사구가 멀리까지 드러났다. 제철인데도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호미를 들고 갯바닥을 파며 맛조개, 바지락을 잡는 갯벌체험을 하고 있다. 살진 갈매기 수십 마리가 갯바닥에 모여앉아 그게 아닌데, 수다를 떨고 있다. 선유도는 행정구역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다. 해수욕장의 이름도 하나 같이 아름다운 명사십리해수욕장, 몽돌해수욕장, 옥돌해수욕장으로 그 이름만큼이나 물이 맑고도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깨끗한 모래밭에 몽돌이다.
초분공원이다. 초분은 섬이나 해안지방에 내려오는 전통 장례풍속이다. 초분을 한 후 2~3년이 흘러서 시신이 육탈을 하고 뼈만 남으면 그때 뼈만 골라 이장을 하는 2중 장례를 치르게 되는 셈으로 육지에 없는 풍습이다. 선유도에서 268m 장자대교를 건너 장자도(壯子島)다. 장자도는 원래 가재미와 장재미를 합하여 장자도라 하였다. 한 때는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부유한 섬이었다. 다시 대장교를 건너 대장도다. 산 위쪽에 장재할미 바위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간 남편이 금의환향하기만을 15년 동안 기다렸다. 끝내 급제는 하였으나 소실부인까지 데리고 오는 모습에 차려놓은 술상을 놔두고 돌아앉아서 그대로 굳어 돌이 되었다는 애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정상에 올라야 한다고 서두르는데 빗방울이 땀방울처럼 떨어진다. 망설이다가 대장봉에 올라섰다. 탁 트인 조망에 시원한 바람이 몰려든다. 높은 습도에 염분으로 끈적거리던 것이 한꺼번에 씻어 내리며 시계도 좋아졌다. 거대한 바위에 밥상이 차려졌다. 신선이라도 된 듯싶은 마음이다. 앞에 펼쳐진 명사십리를 비롯하여 망주봉으로 이어지고 선유봉 너머 무녀도로 이어진다. 섬은 그냥 뭉툭하지 않고 굽이굽이 들락날락 포구를 만들고 있다. 굳이 요산요수를 들먹이지 않아도 여름휴가 때가 되면 산을 즐겨 찾는 사람과 바다를 즐겨 찾는 사람으로 나뉜다. 굳이 산에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계곡이 있으니 시원할 터이고 굳이 바다까지는 아니래도 물가를 즐긴다.
산에서는 동녘하늘이 벌겋게 물이 들고 혓바닥 날름날름 솟아오르는 해돋이를 보고 싶듯 바다에서는 하루를 마감하고 서녘하늘 곱게 물들이는 노을에 해넘이를 보고 싶다. 서서히 어둠으로 휘감기는 바다가 보고 싶다. 산에서는 깊은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에 거침없이 뛰어내리는 폭포를 보고 싶다. 계곡을 메운 구름바다 운해를 보고 싶고 굽이굽이 산줄기를 따라 우뚝우뚝 솟아오른 산봉우리를 보고 우거진 숲과 야생화를 보고 싶다. 바다에서는 출렁거리는 물결을 타고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은 그대로 하얀 물꽃으로 피어 마음을 잡아끈다. 파란 하늘이 바다에 잠기듯 바다가 하늘에 떠올랐다.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며 출렁거리고 조각구름으로 떠간다.
해무를 걷어내면서 저 멀리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함께 만들어 내는 수평선을 보고 싶다. 때로는 해무를 살짝 덮고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다. 고깃배 몇 척이 떠있고 갈매기도 몇 마리 순찰을 돌듯 날았으면 좋다. 성난 듯이 몰아치는 파돗소리를 보고 듣는다. 말발굽소리 혹은 그보다 더한 파돗소리를 듣고 싶고 속삭이듯 찰랑거리는 물결을 보고 싶다. 달빛이 쏟아지는 바다도 괜찮지 싶다. 해변의 모래밭을 거닐며 해조음을 듣는다. 그래서 섬이 좋고 섬을 찾게 되나 보다. 섬에는 산도 있고 바다도 함께 할 수 있어 해돋이도 해넘이도 볼 수 있다. 엊그제 백두대간 길 함백산을 오르내리며 야생화를 즐기다 왔는데 이제 서해바다 선유도를 찾아온 거다
선유도는 망망대해에 혼자만 있으면 외로울까봐 여러 개의 섬이 서로 이마를 맞대듯 한울타리에 올망졸망 모여 아늑하면서도 평화로워 보인다. 일찍이 신선이 노닐었다고 할 만큼 아름답고도 오묘함을 담고 있어 보인다. 저 명사십리 고운 모래도 처음에는 크고 작은 돌덩이였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부서지고 깨어지고 들락거리는 물결에 씻기고 닦이어서 저렇게 세공되었는지 모른다. 모래알만큼이나 많고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이쯤 하산을 하여야 한다. 거대한 바위바닥은 붉은 빛깔에 도막도막 부서지기도 한다. 섬의 뒤쪽은 앞쪽과 판이한 지형이다. 숲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구불길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무렵 갑자기 컴컴한 하늘에 비가 내린다.
다행히 동네민박집에서 지나가는 비려니 잠시 피한다. 섬의 날씨는 변덕이 심하다. 저 멀리 잔잔하니 수평선이 보이는가 하면 어느새 해무가 끼기도 하고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가 하면 비를 몰고 오기도 한다. 조심스럽다. 비가 머뭇거린다. 다시 대장교를 건너고 장자대교를 건너갔다. 명사십리 입구 망주봉 근처에서 바라보면 마치 선녀가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이라는 선유봉을 올라야 한다. 그런데 한창 터널 굴착공사로 몹시 시끄럽다. 2015년 말까지는 신시도에서 무녀도까지 교량으로 이어진다니 이제 더 이상은 선유도를 찾는데 뱃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냥 차로 씽씽 내달리면 된다. 이미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는 연결되었다.
선유도(仙遊島)는 섬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노닐었다고 한다. 당초는 군산도였는데 조선 초기에 왜구의 침략이 극에 달하여 수군부대를 진포였던 지금의 군산으로 옮기면서 고군산군도 고군산열도가 되었다. 선유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장계터다. 앞 바다에 거북선과 배들이 떠있지 싶은 작은 섬들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때 해전사에 그 유례가 없는 명량대첩을 거두고 12일간 머물며 승전장계를 작성하여 올린 곳이다. 바다는 많은 사연들을 어디에 묻어 놓았을까. 숨겼다가 달밤에만 살짝 꺼내보는 것은 아닐까?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면서 그 사연들을 확인하는 걸까. 뭍에서 찾아왔다가 돌아가면서 흘리고 가는 이야기도 함께 있을까.
산에 가면 바다에 가고 싶고, 바다에 가면 산에 가고 싶다. 이 섬에 가면 저 섬에 가고 싶고, 저 섬에 가면 이 섬에 가고 싶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자꾸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좋아 보인다. 끝 모를 욕심이다. 하지만 너무 휘둘리면 이도 저도 아닌 소위 죽도 밥도 아니 된다. 줏대를 세워야 한다. 내가 필요한 것이 남에게 필요 없듯 남이 필요한 것이 내게 필요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부족하지 싶어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명사십리 선유파출소다. 오른쪽으로 가면 선유대교를 건너 무녀도다. 그냥 왼쪽 해수욕장 길을 걷는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 짜증나고 번거롭게 한다. 출렁출렁 바닷물이 들어와 채우고 있다.
섬에서는 섬의 소리를 듣고 보고 싶다. 선유도에서는 선유도만이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듣고 싶다. 한 줌 바다의 물결도 중하고 한 점 스쳐가는 바람도 좋다. 거기에 아기자기하고 주저리주저리 서린 이야기도 좋다. 그 자연의 소리가 자꾸 훼손되어 가고 있다. 뭍에서 파도보다도 더 시덕거리며 밀물처럼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이것저것 잡스러운 것까지 흘리고 가면서 그 뒷모습이 더 씁쓸하고 외로워지지 않나 싶다. 끊임없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뭔가 전래의 모습 그대로 고이 간직하고 싶은 때도 있다. 이런 섬을 찾으면 더 간절해진다. 신선이 살았을 만큼 빼어난 경관을 지닌 곳인데 상업화에 급급해진 아쉬움이 남았다. - 2013. 07. 30. 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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