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전투와 같다.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급박한 상황과 한
치 앞도 예측 못 하는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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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이내믹한 전투에서 현명하게 싸운다는 것은 현명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눈앞에 닥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 지혜로운 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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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낸 사람을 건드리면 감정을 폭발시킨다. 헤어질 때는 갈등을 풀어야 한다. 조직의 파멸
은 내부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에 의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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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상황은 수시로 변한다. 장군과 병사들의 심리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지형, 기상 등
의 외부적인 상황 변화 등이 변수가 되어 전세는 역전의 역전을 거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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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떻게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리느냐가 조직의 생존을 책임진 리
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장군의 한 순간 잘못된 상황 판단이 조직의 생존을 좌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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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라 전술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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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한자어는 세(勢)다. 세에 대해 정확하게 감(感)을 잡는 능력이야말로 일반인과 리더
의 차이점이다. ‘한비자(韓非子)’에서는 세(勢)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있어야 술(術)이 결
정된다고 말한다. ‘술’은 전술이다. 결국 전술은 상황에 따라 무한히 변화해야 한다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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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에 상황(勢)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가 있다. 위(魏)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
는 미소년(美少年)이 있었다. 이 당시에는 어리고 잘 생긴 소년을 선발해 궁중에 두고 왕의
옆에서 보좌하는 동성애적 풍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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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년은 위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았는데 하루는 궁궐 밖의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
고 임금의 명령이라 속이고 왕의 수레를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가서 어머니를 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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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률에는 왕의 수레를 함부로 타면 발꿈치를 잘라버리는 월형이 있었는데 왕은 이 미소
년을 사랑하였기에 어머니에 대한 효심으로 생각해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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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이 소년과 왕이 과수원을 걷고 있었는데 소년이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고는 달다고
하며 왕에게 주었다. 왕은 자신을 위한 생각이라 하여 칭찬하며 그 소년이 먹던 복숭아를 먹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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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월이 흘러 소년의 용모가 시들어지자 사소한 잘못을 저지름과 동시에 위왕은 그 미
소년에게 지난 일들을 들추며 비난하였고 그 미소년은 위왕에게 끝내 버림을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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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韓非子)는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위왕에
게 다르게 대우받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애증의 세(勢)가 변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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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받을 때는 군주의 마음에 들어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의 미움을 받을 때는 죄가 마땅
한 것이라 여겨져 더욱 더 소원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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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하는 애증을 잘 살펴 군주를 모셔야한다”고 군주에게 유세하는 원칙을 말하고
있다. 미자하는 위왕의 심리적 상황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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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의 대표자인 한비자뿐만 아니라 병가(兵家)의 대표자인 손자도 상황의 중요성을 강조하
고 있다. ‘세상에 고정된 원칙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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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때 생존의 능력은 높아지는 것이다’라는 것이 이들의 주
장이다. 특히 불확실한 전장에서 더욱 더 상황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현장 상황에 따른 전술의 변화를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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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높은 언덕에 위에 있다면 적을 향해 공격하지 마라(高陵勿向). 이미 상대방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대들다가는 피해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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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상사에게 아무런 준비와 명분 없이 감정으로 대든다면 어떤 조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 지위와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지혜로운
승리를 할 수 없다. 이때는 주변에 나를 도와줄 사람을 만들어 함께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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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등진 군대를 정면 공격하지 마라(背邱勿逆). 배구(背邱)는 언덕을 등지고 있는 것이
다. 언덕을 등지고 있다는 것은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언덕 밑에 있는 부대보
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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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봐주는 후원자가 있는 사람과 싸울 때는 철저한 계산과 전술이 있어야 한다. 사장의 친
척이나 뒤가 든든한 사람과의 경쟁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현명한 사람은 이런 불리한 상황
을 나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환시킬 줄 알아야 한다.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싸우면 반드시
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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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적, 압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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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한 척 도망가는 군대를 쫓지 마라(佯北勿從). 양(佯)은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다. 배(北)
는 패배다. 양배(佯北)는 패배한 척 꾸미고 도망가는 군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게 머
리를 숙이고 복종하면 나의 허점을 유발하는 전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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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적을 유인하여 싸워라. 주도권은 결국 싸움의 룰을 정하는 사람
에게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패배하는 적을 따라 상대방이 원하는 장소로 가면 주도권은 상
대방에게 있다. 이때도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여 상대방 의도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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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하는 부대는 공격하지 마라(餌兵勿食). 이(餌)는 미끼다. 이병(餌兵)은 전술적으로 나
의 진격을 유도하기 위하여 미끼로 던진 부대다. 도망가는 것이 질서가 있고 일사불란하면
유인하는 미끼일 수 있다. 섣불리 쫓아가다가 낭패를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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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 없이 받은 돈과 뇌물이 결국 조직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원
하는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다양한 미끼를 던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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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부대는 공격하지 마라(銳卒勿攻). 예졸(銳卒)은 사기가 충천한 정예부대다. 깃발이 정정
(正正)하게 휘날리고 전열이 당당(堂堂)한 부대와는 무리하게 붙어 공격해서는 안된다. 무리
하게 상대하면 다시는 재기하기 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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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시간을 벌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나의 부족한 힘이 다시 충전되고 상황
이 유리하게 되었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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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기세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 기세는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친밀
하더라도 그 사이는 벌어질 때가 있다. 그 때를 기다려 놓치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 현명한
리더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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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귀환하는 부대는 막지 마라(歸師勿). 귀사(歸師)는 집으로 귀환하는 군대다. 집으
로 돌아가는 군대를 막으면 적은 죽기 살기로 싸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부대는 평소와 다
른 힘을 만들어낸다. 오랜 전쟁에 지치고 힘들다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부대는 오직 목
표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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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사표 쓰고 나가는 직원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직
을 나가는 사람을 자극하면 쉽게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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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파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에 의해 오는 것이다. 헤
어질 때는 모든 갈등과 원망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만날 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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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군대는 반드시 길을 터줘라(圍師必闕). 위사(圍師)는 포위된 군대다. 궐(闕)은 길을
터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퇴로가 완전히 막히면 죽기살기로 대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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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패배한 군대라도 길 하나는 터줘야 효과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 후퇴하는 길을 하
나 열어 줌으로써 상대방의 반격 의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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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가진 열 개 모두를 가지려 해서는 안된다. 몇 개는 상대방에게 남겨주는 것이 현명
한 승리다. 세상에 완벽한 승리란 없다. 내가 열 개 모두 가지려 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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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적군을 압박하지 마라(窮寇勿迫). 궁구(窮寇)는 궁지에 몰린 적이다. 쥐도 궁지
에 몰리면 물 수 있다. 동료가 궁지에 몰렸을 때 손을 내밀면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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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등지거나(背水陣) 언덕을 등지고 있는 군대는 이미 퇴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
로 사력을 다해 싸운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조직이나 사람도 죽기살기로 싸우
기 때문이다. 나의 명백한 승리라고 생각하면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얼굴을 닦아줘야 한다.
이것이 윈윈(win-win)의 승리다.
글 박재희 철학박사 EBS-TV '손자병법과 21세기'진행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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