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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톨릭노동사목동지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아녜스
구럼비, 하느님 눈물의 흔적 | ||||||||||||||||||||||||||||||||||||
[힘내라, 강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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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제주, 강정 앞바다 구럼비에 앉아 민족의 역사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시간을 하느님과 내밀한 사랑을 키워오던 구럼비가 깡패권력, 군사복합자본주의 폭력 앞에서 온 몸을 떨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여기 구럼비는 우리 민족이 아픔을 겪을 때마다 하느님께서 통곡의 눈물을 흘리신 흔적입니다. 큰 웅덩이의 구럼비는 아주 오랜 옛날에, 작은 웅덩이의 구럼비는 바로 어제까지 우리 백성들이 억울함에 슬피 울 때 하느님의 눈물이 떨어진 자욱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친일내각을 앞세워 우리 민족을 약탈할 때 강정 앞바다에 흘린 하느님 눈물의 흔적이 구럼비 입니다. 무궁화 삼천리금수강산의 주권이 친일 매국노들과 일본군의 손에 접수 되었을 때 하느님 통곡의 눈물 자욱은 강정 앞바다에 선명하게 구럼비가 된 것입니다. 일제에게 삶을 빼앗기고 수탈당한 우리 민족이 저 멀리 간도로 쫓겨 갈 때 하느님의 굵은 눈물방울은 그 무게가 하도 무거워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무사하고 시골 아낙이나 기생, 봇짐장수들이 일제의 폭력에 속수무책 당할 때 하느님은 숨이 막혀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고 핏방울이 흘러내려 이 많은 웅덩이로 탄생한 것입니다.
1923년 관동 대 지진이 도쿄와 요코하마를 생지옥으로 만들 때 모든 원인은 조선인 때문이라는 핑계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조선인을 사냥할 때 하느님 뜨거운 눈물의 흔적은 일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웅덩이들입니다. 만주 하얼빈 역, 왜소한 체구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저격할 총탄에 십자가를 새겨 넣는 날 하느님 안도의 눈물은 바로 오늘 제가 얼굴을 씻은 물을 품은 웅덩이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창씨개명을 부추기고 신사참배를 독려할 때 하느님은 차마 황당하여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속절없는 번민의 땀방울을 흘린 웅덩이들이 바로 제 오른쪽에 도란도란 모여 있습니다. 1930년 봄 약관 23세의 윤봉길 의거가 성공했을 때 하늘에서 내려진 봄비가 여기 작은 웅덩이에 남아있고 1932년 가을 아쉽게도 의거에 실패한 이봉창이 이치야가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 내렸던 가을비는 바로 제 코 앞에 웅덩이에 남아 있습니다. 이육사, 윤동주가 옥사 할 때 더 이상 저항의 문학이 맥이 끊길까봐 안절부절못하며 흘린 하느님의 눈물은 작은 웅덩이에 고여 있어 여러 풀포기들을 자라게 해 주고 있습니다.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닿을만한 위치에 있는 비슷한 크기의 웅덩이들은 그토록 기대하던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가 싶을 때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우리민족을 나눠 지배하려고 점령자로 들어설 때 무서움에 온몸을 떨던 하느님 눈물 자욱 들입니다.
아! 잠들 수 없는 남도 제주도, 미군정과 그 비호를 받은 세력들이 1948, 4, 3일 제주도의 새벽을 깨우는 총성에 하늘이 놀라 흘린 통곡의 눈물은 주체할 수 없는 굵은 빗줄기가 되어 아직도 잠들지 못한 수만의 영혼들의 수자만큼 깊게 패인 웅덩이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남북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미국과 소련의 꼭두각시들이 전쟁놀음에 미쳐 있을 때 하느님께서 좌불안석 흘리신 눈물 자욱들은 수백 미터의 구럼비 웅덩이로 전쟁 희생자들 숫자만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승만이 자신을 추종하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친일 관료들을 요직에 기용하고 자신의 부정을 감추려고 청년 김주열을 죽였을 때, 박정희가 탱크 앞세우고 한강을 건너던 날, 그 야욕이 천하에 드러난 날, 하느님의 당혹스러워 흘리신 눈물 자욱은 저 서울 쪽에 향해 있는 웅덩이들입니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넣고 수많은 백성들을 고문으로 처형하고 미국의 심부름꾼으로 베트남 전쟁에 젊은이들을 밀어 넣고, 죽기까지 권력에 취해 미치광이처럼 유신헌법으로 세상을 피로 물들일 때 하느님이 타버린 가슴의 색깔은 여기 구럼비의 검푸른 색깔입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지극히 상식적인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야만의 시절에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 앞에서 자신을 불사를 때 하느님의 눈물은 여기 구럼비 가운데 ‘할망물’이 되어 구럼비와 함께 ‘하느님의 뜨락’ ‘민족의 뜨락’이 되어있습니다. 미쳐 날뛰는 박정희의 아들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의 총칼이 광주의 형제자매들을 향할 때 아! 하느님의 눈물 자욱은 속절없이 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냈고 아직도 그 눈물은 웅덩이에 고여 있어 못내 마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7, 6월 이한열, 박종철 등 수많은 청년과 노동자들이 희생이 있어도 군부독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을 때 흘리셨던 하느님의 눈물은 이 시간 까지도 강정 앞바다 파도의 물보라가 되어 구럼비 바위들을 반짝 반짝 빛나게 히고 있습니다. IMF 초국적 자본이 우리나라를 휩쓸고 노동자들이 허리가 잘려나가고 FTA 라는 흉기가 농민들 숨통을 조여 올 때마다 하느님 분노의 몸짓은 강정 앞바다의 무서운 파도가 되었습니다. 저기 평택쪽 구럼비 웅덩이는 우리나라가 숙명처럼 미국에 종속되어 있음을 슬퍼하는 하느님 눈물이 무거운 무게로 떨어진 흔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마디를 들은 날 하느님께서 당황하셔서 흘리신 눈물이 떨어져 탄생한 웅덩이는 서울 용산 참사현장 남일당의 처참했던 현장의 모습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여기저기 지천에 흩어진 크고 작은 웅덩이들, 이제 웅덩이의 꼴을 갖추려고 바위에 흔적이 새겨지지 시작한 모습은 4대강을 파괴하는 거짓 구호와 굴삭기들의 굉음을 들을 때마다 잠못이루는 불면의 밤을 새우며 흘리시는 하느님의 땀방울, 바로 그것입니다. 평화시장의 청년 전태일이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 했을 때 놀라셨던 하느님 눈물의 흔적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죽음과 85호 크레인에서 200일 이상 버티며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김진숙의 외침에 흘리신 하느님 눈물의 흔적과는 오누이처럼 그 웅덩이가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 ‘해고는 살인이다’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지막 울부짖음을 들으셨을 때 하느님이 흘리신 눈물은 전태일, 김진숙 오누이의 웅덩이 곁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있습니다. 여기저기 구럼비에 지금 막 새겨지는 작은 상처들은 시커먼 시멘트에 뒤덮일 앞날의 운명을 예감하는 하느님께서 매일매일 흘리시는 두려움의 눈물의 흔적들입니다. 오늘 아침부터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은 범죄 집단 해군기지를 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 구속된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재판을 받는 제주 지방법원 302호 법정을 향하고 있는 하느님 분노의 몸부림 입니다.
강정 앞바다! 구럼비! 수많은 세월 우리 민족의 아픔에 함께한 하느님의 눈물은 백성들의 상처를 씻기고 마음의 아픔을 녹여온 것입니다. 이 웅덩이들에 시커먼 시멘트가 입혀지는 날, 중무장한 전쟁 무기들이 강정 앞바다에 주둔하는 날, 그날 은 더 이상 하느님 눈물의 기억은 사라질 것이며 우리의 아픔도, 상처도 씻겨 지지도, 녹아내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양운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수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첫댓글 인구가 줄어 경쟁력도 줄어 든다는데 살수없는 환경을 만들려고 하겠다면 어쩌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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