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적지(遺跡地)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
유적은 형태가 크고 위치를 변경시킬 수 없는 것.
토기, 석기 등과 같이 운반 가능한 것은 유물(遺物)
유적(遺跡)의 종류로는.,동굴, 조개무지,
고분, 주거지, 암벽 예술, 궁터, 절터, 성터,
도로, 다리 등이며 주로 엣 조상들이 남긴 것.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
송파구.,백제 몽촌토성,
강동구 암사동 선사주거지.
충남 공주.,송산리 고분군,
강화 고려 궁터와 고인돌 등
대표적인 유적지라 할 수 있다.
덕적군도에 속한 선갑도(仙甲島)
어떠한 유적을 품고 있는 섬일까?
......................
......................
서해 바다의 주인은 갈매기와 섬이다.
갈매기는 안방 드나들듯이 바다를 날고
섬은 언제나 바다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갈매기는 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영역이고
바다 물고기를 밥상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갈매기 영역' 서해 덕적군도에 속한 선갑도.
덕적군도.,파도막이섬.
'굴업도 울도 선갑도'.,3섬.
덕적군도를 지켜온.,3 보물섬.
'망구할매' 전설의 고향.,선갑도.
'덕적군도'의 창조여신.,'망구할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무인도.
옛날에 '서해 창조여신' 망구할매가 살았는데
서해 바다물이 무릎에 올 정도로 덩치가 큰 거인.
그 망구할매가 서해에 처음 창조했다는 섬이.,선갑도.
선녀가 반해 구름타고 늘 찾아왔다는.,선녀도.
대동여지도에는 '선녀가 사랑에 빠진 섬' 선접도.
마치, '선녀가 갑옷을 두른 섬' 같아.,선갑도(仙甲島).
인천항에서 60km, 덕적도에서 11km 떨어진 섬.
일제때 인근 승봉도 주민들이 땔감을 채취하던 섬.
1968년 7월 5일 안양교도소에서 사라진.,12인 무기수.
1969년 여름.,902정보부대 803대 '선갑도부대'에 소속.
1968년 1.21 김신조 부대에 대응한 40인 북파 자살특공대.
1974년 해체될 때까지.,선갑도 주둔,
6.25 전후 '켈로부대 유적지' 선갑도.
1968~1972년 특수부대 훈련장.,무인도.
1992년 핵폐기물 후보지로 검토된.,선갑도.
1996년 한국해양연구소에 매각,
2006년 모 기업에서 매입한 이후,
현재, 개인 소유인 무인도.,선갑도.
선갑도 채석단지 지정사업은 선갑도 소유주인
(주)선도공영이 17년간 섬 안쪽 경사면 37만6천㎡
1276만9천㎥ 골재생산 사업계획 인허가 승인 논란 중.
2006년에 선갑도를 매입했던.,(주)선도공영
2015년 2월 '37만 6756㎡ 채석단지' 지정 신청.
산림청, 환경부, 언론, 인근 섬 주민들과 논란 중.
2015년 10월 22일, 환경파괴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 옹진군 선갑도 채석단지 지정사업과 관련해
옹진군이 ‘찬성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과
정반대 의견을 내놓아 사업추진 과정에서 마찰이 예상.
그 귀추(歸趨)가 주목되고 있는.,선갑도.
경인 아라뱃길 따라서
'덕적군도 전설의 고향'
선갑도 가는 길.,73.7km.
'켈로부대 유적지'로 가는 길.
인천앞바다에는 섬들이 많지만
유인도보다는 무인도가 더 많다.
마니아들은 모터보트나 카악으로
무인도를 직접 개척하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혼자 들어가긴 쉽지 않다.
독사(毒蛇), 독초(毒草)
그외 위험한 경우도 많다.
일반인이 무인도 여행을 떠날 때는
어느 정도 상품화된 무인도를 선택해
자세히 알아보고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
도우미가 있더라도 무인도 숙박은
자신이 먼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물과 음식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전화로 확인.
·여름에는 모기 대책은 꼭 세워야 한다.
선갑도는 인천 옹진군 자월면에 위치.
6·25 당시 미군, 70년대 초 해군 특수부대
훈련캠프, 현재, 숙박시설이 없는 무인도.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덕적도 낚싯배 또는 요트로 간다.
안내 ; 자월면사무소 (032)899-3752
김포아라마린센터 요트계류장
09 :00경 승선정원 12명이 출발.
한강의 섬.,강천섬 당남리섬 당정섬
대하섬 백마도 자라섬 족자도.,계 7섬
한강의 섬 중에서 육속화된 섬은.,당정섬.
....................경인아라뱃길........................
아라뱃길은 한강 하류에서 서해바다까지 18.2km.
2012년 개통된 물길로 국내 최초의 내륙운하이다.
최초 개척시도는 800년 전, 고려 고종 재위때 시작.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바닷길을 거쳐
한강 마포 경창으로 들어가는 항로였으나, 강화도 바닷길은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뱃길이 매우 험했다고 전해온다.
이에 안정적인 조운항로 개척을 위해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연결하는 운하 시도.
현재, 인천 원통이 고개 400m 구간 암석층을
뚫지 못해 결국 운하건설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987년 굴포천 대홍수로 큰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
홍수량 일부를 서해로 방류하는 굴포천 치수대책 수립.
이후 방수로 시작점(굴포천유역)에서 한강까지 4km 구간을
더 연장하면 평상시에도 운하로 활용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1995년부터 홍수방지 방수로 및 물길로 경인운하 사업을 추진.
이후 오랜 동안 경인운하 사업계획 타당성 재검토.
'2009~2012년' 공사로 '경인아라뱃길'이 탄생하였다.
......................................................................
"오륙도가 왜 五六島인줄 아는 이 누구 없소?"
"밀물이 들어오면 六島이고, 썰물 때에는 五島."
"저 앞에 무인도 갯바위를 보면, 아마 이해가 될껄."
"저 앞에 있는 돌섬은 '주전자섬'을 닮았지?"
"부산 영도 태종대 앞바다 멀리 동떨어진 섬."
"낚시 한번 드리우면 50마리씩 한번에 잡히지."
"손에 장갑끼고 한번 훌트면 물고기.,한 양동이."
"태종대 자살바위 아래 40~50m동떨어진 갯바위.
거기에서는 낚시줄 던지기 전에 고기가 먼저 물지."
"작은 고기가 물려고 하면, 미끼가 아까워 번쩍 들지."
"난 낚시에 미쳐 낚시 끊으려고, 정신병원 들어갔었지"
"그런데도 거기에서 세수대야에 젓가락 담구고 낚시질."
"의사가 '입질 합니까?' 묻더군. 내가 대답했지.'미친놈.'"
바다낚시 애호가들의
입담 경쟁을 듣다 보면,
뱃길이 무료할 틈이 없다.
김포여객터미날 아라뱃길.,18.2km.
인천항 갑문을 통과 후, 영종대교 지나
~ 월미도앞 ~ 인천대교를 거쳐 자월도 ~
덕적도앞 ~ 선갑도'.,73,7km(총 91.9km 2시간 반)
수평선 해무 위로 솟아오른듯한.,선갑도.
그리고, 대이작도 앞바다에 떠 있는.,어선 한척.
대이작도는 인천연안부두 고속여객선 1시간 20분 거리.
서해의 크고 작은 섬들을 호령하듯
위압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선갑도.
덕적군도에서 가장 높은 선갑산을 품고 있다.
대이작도
송이산에서
바라본.,선갑도.
굴업도에서 바라본 수평선 위에.,선갑도
마치, 산 하나가 바다 위에 떠있는듯 하다.
덕적군도 최고봉 선갑산(352m)을 품은 선갑도.
선갑도 해역은 아득한 옛날에 황해평야.
서해 바다물 속에 잠기기 전까지만 해도
덕적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을.,선갑산.
서해 바다물이 사방 팔방으로
애워싸면서 선갑도가 되었을듯.
선갑도는 남한 최대 규모.,무인도.
여의도 면적.,2,9㎢
선갑도 면적.,3,65㎢
선갑도 둘레.,16.16km
섬일까?
산일까?
'선갑도.'
신석기시대에
섬의 주변은 모두
바다물 속에 잠기고
산만 남은 형상.,선갑도.
선갑도.,주상절리.
화산폭팔 흔적일까?
지표면으로 분출한 용암이 식을 때
수축작용에 의해 수직의 돌기둥 모양.
주상절리(柱狀 節理)는 현무암에서 발달.
그러나, 조면암과 안산암에서도 발달한다.
'주상절리'는 풍화와 침식을 받으면
수직 절벽이 잘 발달하며 하천이나 해안에서
주상절리가 형성될 경우 폭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용암이 식을 때는 수축하면서 갈라지는데
이 때 용암 표면에는 수축 중심점들이 생기고
이러한 점들이 고르게 분포하는 경우에 용암은
6각형, 4각형, 5각형 등 돌기둥으로 갈라지게 된다.
여름철에 가뭄이 들면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현상과 같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대표적인 곳으로는
제주 중문·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제443호),
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대(제465호),
경상북도 포항의 달전리 주상절리(제415호).
주상절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관광자원
기념물 지정 가치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남한 최대 무등산 주상절리는 7,000만년 전 형성.
주상절리 기둥 하나 둘레가 6~7m, 높이 10m 내외.
제주 대포해안 주상절리대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
2010년 세계지질공원 지정.
제주도.,정방폭포, 천제연폭포,
그외 주상절리대 명소는
강원도 철원의 직탕폭포,
경기도 연천의 재인폭포,
포천의 비둘기낭폭포,
울릉도 남양동 국수바위 등.
선갑도는 섬 전체가.,화강암 돌산.
용암층이 지표면으로 융기한 흔적들.
서울 근교 북한산 암봉들과 비슷한 형태.
선갑도 주상절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도 손색 없는 위용.
선갑도는 해안가는 물론
암릉 정상부까지.,주상절리.
관광자원 가치가 높지 않을까?
선갑도는 섬이면서도
신비한 바다호수를 품고 있다.
선갑도 정상은 덕적군도 전망대 같다.
'신석기시대 황해평야'
'그 사이로 흐르던.,대한강.'
대한강이 육지를 삼킨 흔적 같다.
선갑도가
품고있는
바다호수.
황해평야 신석기시대 유적지.,덕적군도.
'덕적도 소야도에서 발견된.,7곳 패총 유적.
신석기인들이 살았음을 대변해주는.,토기 등.
구석기시대 유적은
서해 바다물 속으로
모두 다 잠긴 것일까?
...................석기시대.......................
청동기나 철기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는
일반적으로 뗀석기를 사용한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를 사용한 신석기 시대로 구분을 한다.
우리나라 구석기시대는 70만년 전에 시작.
구석기인들은 동굴에서 주로 주거하였으며,
식물 자원에 치중된 수렵 채집으로 이동 생활.
도구는 돌과 돌끼리 서로 부딪치거나
두드려 떼어 제작한 ‘뗀석기’(타제석기)
최초 구석기 유적지는
1930년대 발굴된 두만강변
동관진유적(현재 강안리)이다.
1962년 함경남도 웅진군 굴포리 서포항유적 &
1964년 충남 공주시 석장리유적은 공인된 유적.
1978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유적에서
우리나라 구석기 존재가 밝혀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약 1만 년 전에 시작.
BC 2,000년~1,500년 무렵까지 지속된 것으로 파악.
신석기인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불을 사용.
진흙을 빚은 토기에 무늬를 새겨 구워 만든 빗살무늬토기.
무늬는 융기문과 압날문 계열에서 침선문 계열로 변화한다.
도구는 구석기인들이 사용하였던 도구보다 정교한 기술,
돌을 여러 형태로 갈아서 제작한 도구.,‘간석기’(마제석기)
주거는 원형이나 방형의 평면형태 움집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대가 앞서는
제주도 고산리.,신석기시대 유적지.
................................................
제4빙하기 말, 빙하로 뒤덮혔을.,덕적군도.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흘러내려 패인 흔적들.
그후, 대홍수 때 서해 바다에 잠겼을 덕적군도.
저지대민족들의 민족 대이동 흔적.,고인돌.
덕적군도 신석기인들은 어디로 이동했을까?
수도권 강화도 고인돌군은 그당시 흔적일까?
전세계에 있는 고인돌 중.
2/3가 한반도에 집중 분포.
'선사 문명 발상지.'황해평야.
황해평야의 '대한강(大韓江)'이
한반도 가까이 흘렀다는 증거이다.
대한강 옛 물길이
오늘날.,서해 항로.
덕적군도 해역에서
저지대는 바다물에 잠기고
고지대는.,섬으로 남은 흔적들.
신석기시대 황해평야였던.,덕적군도.
그 산과 바다를 품에 안고있는.,선갑도.
'덕적군도의 전망대'라 해도 손색 없는 곳.
덕적군도가 황해평야에서
도서지역으로 변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선갑도.
.
선갑도는 서해 덕적군도를 만들었다는
'우주 창조여신' "망구할매" 전설의 고향.
............망구할매 '전설의 고향'.,선갑도..........
“옛날에 망구할매가 살았다는 전설의 고향.,선갑도.
섬안에 선접산을 쌓아올리다가, '백번째 골짜기'에서
한 골짜기 부족한 아흔아홉 골에서 산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만 화난 망구할매가 주먹으로 섬을 내리쳐 산을 부셨단다.
그때, 사방으로 퍼져나간 '선갑도'의 조각들이
장구도, 못도, 가도, 각흘도, 굴업도, 선단여 등.
망구할매가 주먹으로 내리친 자국이.,선갑도 호수.
서해바다 창조주 망구할매는 큰 거인이었단다.
바다 위를 걸어다녀도 서해가 무릎에 잠길 정도.
망구할매는 바다를 걸어 이섬 저섬 걸어 다녔단다.
'선단여'는 '망구할매'가 오줌 눌때 봇돌이었단다.
그 오줌이 바다물이 되어 섬들이 되었다는.,덕적군도.
'덕적군도 해역은 바다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망구할매는 어느날 수심이 깊은 '풍도'골로 가서
헤엄을 치며 놀았는데, 중우 단속곳에 새우가 가득.
꼬장중우는 '경남, 충남'의 방언이며 '고쟁이'를 의미.
고쟁이는 통이 넓고 밑을 터놓은 여성 한복의 속옷.
그 길로 고쟁이 가득 새우를 담아 덕적군도로 돌아왔고
그때부터 덕적군도에서는 새우가 무진장으로 들어왔단다.”
...............................................................................
'서해바다 창조여신
'망구할매' 전설의 고향은
덕적군도에 속한.,선갑도이다.
망구(望九)는 ‘구십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81세를 말하며 ‘할망구’에서 한 글자를 뺀 것.
망녕이 든 할머니를 '망구할매'라고도 부른다.
또한, 창조여신 망구할매는 '그믐달의 상징.'
봉산탈춤에서 꽹가리에 오줌 누는 망구할매는
소피 처럼 빗줄기가 쏟아지길 기원하는 의미이며
요강은 다산을 기원하는 보름달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 한편, 선갑도 망구할매 전설은
덕적군도 바다물 속 깊이를 알려주며
덕적군도 해역 어장과 뱃길을 알려준다.
선단여.
‘망구할매’ 전설
선단여 오누이 전설.
백아도 마귀할멈 전설,
이무기이야기, 처녀바위, 칠선녀,
말발자국 이야기 등 온갖 이야기.
덕적군도 섬에서 태어나서
덕적군도에서 자란 섬토박이.
어장과 뱃길을 알려주는.,전설.
어머니가 어머니인 외할머니를 통하여,
또, 어머니의 부모이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구전으로 조상대대로 걸쳐 내려온 전설들이다.
'덕적군도 창조주' 망구할매의 전설은
한양 도읍지가 정해질 때까지 이어진다.
남산(南山)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의 태산이 황해를 건너오고 있을 무렵에
이미 황해도 구월산에서 출발한 산이 먼저 당도.
구월산이 목멱산(木覓山)이 되었다는 소식에 분노.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이 덕적군도가 되었단다.
그러한 전설이 변화되어 끊임없이 전해오는.,덕적군도.
목면산은 현재, 서울의 남산.
'전설 속 남산은 한양의 중심축'
안산(案山)이라는 설도 전해온다.
'새우 신'
'풍요의 신'이자
'창조여신'.,망구할매.
그에 관한 '전설의 고향'은 덕적군도에서 여러 곳.
'망구할매가 오줌 눌때 봇돌로 사용했다는 선단여.'
선단여 가까이 새우어장으로 유명한.,문갑도 뒷면어장.
망구할매가 헤엄쳤다는.,풍도.
망구할매가 99골을 쌓아올리고 나서
100골을 채우려다가 무너졌다는.,선갑도.
이에 화가 나서
주먹으로 내리친 곳이
선갑도가 품은.,바다호수.
망구할매 궁궐 기둥으로
사용하기 위한., 99 개 '기둥보'가
선갑도에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신선 仙, 갑옷 甲.,'선갑도.'
선녀가 갑옷을 입은.,산세.
갑옷은 '주상절리'를.,의미.
주상절리 및
험준한 산세와
바다호수를 품은
선갑도는 자연박물관.
선갑도의 선갑산은
높은 산을 숭배하였던
신석기시대 조상들에게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신석기시대..............................
신석기시대 부족은 혈연 바탕으로 씨족 단위로 구성.
씨족은 점차 다른 씨족과 혼인을 통해 부족을 이뤘고
연장자, 경험많은 자가 부족을 이끌어 나가는 평등사회.
농경에 눈뜨며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 태양과 물에 대한 숭배가 으뜸이었다.
또,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
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가 나타났고, 영혼이나 하늘을
인간과 연결시켜 주는 무당과 그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
부족의 기원을 특정한 동식물과 연결
그것을 숭배하는 토테미즘도 있었다.
기원전 8000년경 후빙기가 시작되면서
지구온난화로 기후는 차차 따뜻해졌지만
기원전 5000년대 중반까지는 기후가 추운 편.
후빙기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자연 환경은
해수면이 높아지고 동식물이 바뀌어 갔다.
'BC 5500년~BC3000년'경까지는 기후가 따뜻.
나무 숲에 상록 활엽수, 낙엽 활엽수가 첨가되어
한반도는 현재와 비슷한 산림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서해안 해수면은 현재보다 7m쯤 낮아 주민들은
지금 해안선보다 바다 쪽으로 나가 살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 씨족은 20 ~ 30명씩 무리를 이루어
사냥, 고기잡이, 채집 등 공동체 삶을 영위하였다.
도구와 기술이 뒤떨어졌기 때문에 공동 노동을 한 것.
농경 발달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고 청동기 사용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발생하면서 족장이 출현.
약 반만년 전, 우리나라 최초 국가인 고조선이 출범.
이후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수용하면서
중국과 대결할 정도로 크게 발전하였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철기가 보급되었고,
그 후 만주와 한반도 각지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등의 여러 나라가 성립되었다.
이 나라들은 철기를 사용하여 농업.
독특한 사회 풍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나라에 통합.
일부는 연맹 왕국, 중앙 집권 국가를 형성.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만주에서는 '기원전 15 ~13' 세기 경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전문 장인이 출현.
사유 재산 제도와 계급이 나타나게 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중국 요령성, 길림성.
만주 지역, 한반도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등.
스스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선민 사상을 가지고,
주변의 약한 부족을 통합하거나 정복하고 공납을 요구.
청동이나 철제 금속무기 사용으로 정복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를 계기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화가 촉진.
그리하여 평등 사회는 계급 사회로 바뀌어 갔고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지배자 족장(군장)이 등장.
족장은 청동기 문화가 먼저 발달한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먼저 등장한다.
..................................................
마치, 신석기시대 유적지 풍경.
선갑도 섬안에 바다호수 해안가.
'바다호수'와
'험준한 산세'의
'절묘한 조화'.,비경.
망구할매 전설 속에서
주먹으로 내려친 곳일까?
선갑도는 선단여와 함께 망구할매 전설이 깃든,
덕적군도 섬 주민들의 혼이자, 정신적인 지주인듯.
'신선의 세계' 선접(仙接)이라 부를 만큼 성지(聖地).
선갑도는 선단여와 함께 망구할매 전설이 깃든,
덕적군도 섬 주민들의 혼이자, 정신적인 지주인듯.
'신선의 세계' 선접(仙接)이라 부를 만큼 성지(聖地).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가침박달, 쇠뿔석이, 멱쇠채,
두루미천남성 등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의 보고이며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공존 서식하는 신비로운 섬.
광주., 무등산 정상부 주상절리대 축소판 산세.
서울.,북한산에 있는 만경대 노적봉 축소판 산세.
전세계 관광객 및 산악인들이 즐겨 찾을만한.,비경.
현재, 무인도 선갑도에는
유인도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옛주민이 남긴 흔적일까?
선갑도 개발의 흔적일까?
켈로부대 흔적일까?
특수부대 흔적일까?
어떤 용도로 쓰인.,시설물일까?
'켈로부대' 주둔 유적지.,선갑도.
켈로부대.,마크.
군번 없는 군인들.
'부대 마크'가 있지만,
비정규전 특수 첩보부대.
'어떤 임무를 수행했던걸까?'
육군 첩보부대 H I 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
켈로부대원들의 활약으로 지켜진., NLL 서해 5도 및.
서해안 대화도와 인근.,'소화도, 탄도, 가도, 가차도' 등.
지금까지 알려진 활약상은 아직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고,
화천 발전소 탈환을 위한 기습공격 등
........................켈로부대...........................
KLO(Korea Liaison Office) "주한 첩보연락처"
혹은 "주한국연락반", "주한연락처", "켈로 부대"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1949년 6월 1일
북한지역의 출신자를 중심으로 조직한
북파 공작 첩보부대로 한국 전쟁 동안에
수많은 비밀작전을 수행을 했던 특수부대.
켈로부대는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특수부대 특성 상 지금까지도 베일 속.
그당시 미군에게 받은 독일 군복을 입었다.
이 부대는 1951년 9월 제8240부대
주한 국제 연합 유격군(UNPIK)의
첩보부대로 편입되고, 1952년 6월에
육군 제8250부대로 확대 개편되었다.
1953년 7월에 휴전이 되자
육군 직할대로 예속되었다가
그 이후 해체되었는데 이때까지
제8250부대에 남은 소속 부대원들은
정식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았고 그후로
육군의 여러 부대들로 분산 배치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계속 남은 KLO 출신자들을
창설요원으로 해서 1958년에 제1공수특전단이 창설되고,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에 편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켈로부대 연정 대위 & 클라크대위
한국전 동안 150여명 부하를 이끌고
북한 정보수집 및 팔미도등대 점령 등.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들.
1950년 9월 15일 0시 30분,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 대기.
하지만, 조수간만 차가 큰 인천 앞바다에서 261척의 함정과
7만5천명의 병력이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작전의 성패를 쥐고 있던 것은 팔미도 등대.,'불빛'.
상륙작전을 앞두고 영흥도를 중심으로 첩보활동을 하던
캘로(KLO)부대에 등대의 불을 밝히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9월 14일 저녁 7시, 고성능 무전기에
"15일 0시에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
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암호명령이 들어왔다.
저녁 8시경 특공대 6인조는 팔미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15일 0시 12분 등대에 불이 켜지고 성조기가 게양.
인천항 외항에서 대기 중 연합군 함대에 발진명령이 떨어졌다.
1950년 9월 14일 자정
켈로 부대 특공대 요원들.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 끝에
팔미도로 들어가 등대불을 밝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한다.
평북 정주군 청년들로 조직 파견된
'유격작전부대'와 '첩보부대' 등 KLO.
북한군 또는 중공군으로 위장해 첩보작전.
'1950년 6월 25일~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동안, 숨은 공로를 세운 KLO.
'밥퍼~' 목사로도 잘 알려진 최일도 목사가
2014년 1월 9일, 아버지 최희화 대대장 대신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는데, 생전에 아내에게도
소속과 계급, 임무 등을 말하지 않아 중령으로서
켈로부대를 이끈 사실을 지난해에야 알게 되었단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제공권(制空權)은 물론 제해권(制海權)도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고, 서해상 섬들도 대부분
한국군 해병대와 유격부대 등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6·25 이전 우리나라가 관할하고 있던
백령도·연평도 등 38선 이남 섬들은 물론,
6.25 이전 북한 관할이던 석도, 용도, 초도 등
38선 이북의 섬들도 유엔군이 관할하고 있었다.
1953년 7월 정전협정 발효 시 육지는
유엔군과 공산군 점령지역을 기준으로
DMZ(비무장지대) 경계선이 설정됐던 원칙을
바다에도 적용하면, 오작도 등도 우리 영토인 것.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특수 유격부대인 8240부대원들이
오작도 사수를 위해 중무장 경계 서는 사진(단기 4286.5.27) 등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두 달 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뜻한다.
오작도는 북한 본토에서 1.5㎞ 떨어진 섬이다.
사진 뒤쪽에 북한 황해도 해안. /최일도 목사 제공.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은 53년 8월 30일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NLL을 서해5도와 북한지역 중간선으로 결정.
당시, 폭 3 해리 국제통용 영해원칙에 준한 것.
"당시 클라크 사령관은 유엔군이 점령했던 섬들을
모두 고수할 경우 북한 항구들이 봉쇄될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유엔군이 관할했던 일부 섬들을 북측에 양보.
오작도도 그중의 하나였다." - '국방부 관계자'의 증언 -.
당시 해군력이 거의 궤멸된 상태에 있었던 북한.
NLL 해상봉쇄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
당시 8240부대는 정전협정 유엔군 지시에 따라
현재 서해 5도를 제외한 나머지 섬에서 모두 철수.
북한은 NLL 설정에 따라 NLL 이북의 해역을 얻었다.
당시, NLL 해역에서 북측 해군 함정,
북한의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해 및
어민들의 어로활동을 보장받게 된 시기.
1959년 북한 조선통신사 ‘조선중앙연감’은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하여 이를 인정.
1973년부터 북한은 NLL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북한 월내도는 8240부대가
정전협정 전까지 전초기지.
........................
.........................
2013년 국가기록원은 6월 24일 8240부대 기록물 공개,
당시 비정규군으로 북한에 침투해 특수임무를 수행한
1950년 6·25 당시 미공개 자료를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
8240부대는 1951년 미군이 창설한 미 극동사령부
특수부대로 부대원 대부분은 38선 이북 출신이었다.
8240부대원 약 3만명 중 6천명 전사, 2천명 행방불명.
켈로부대 전신은 '구월산유격대.
이름도 없고 군번도 없는.,용사들.
1920년에 황해도 신천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단체로서
만주 대한독립단 소속의 한 부대였다.
이들은 8.15해방 후 해체되었다가
일제 때보다 악독한 김일성 체제에
치를 떨며 구월산유격대를 조직하여
미군정의 지원을 받는 '켈로부대'로 활동.
'구월산유격대' 여장군.,이정숙(향년37세)
일제때 원산 갑부 무남독녀 금지옥엽 외동딸.
김일성 정권 공산당에게 전재산을 몰수 당한다.
그녀는 공산당에게 남편과 어린 아들을 잃고
황해도 친척집 도피생활 중 공산당에게 붙잡혀
형무소에 들어가 강제노역소에서 3년간 강제노역.
강제노역소에서 나온 후
반공주의자 여전사로 변해
'황해도 청년치안대'를 조직.
황해도 김종벽 대장이 조직했던 구월산유격대와
그녀가 이끌었던 황해도 청년치안대는 통합한다.
그녀는 김종벽 대장의 보좌권이 되고
그녀가 이끌던 조직은 8 연대 안악부대.
그후, 김종벽 대장과 그녀는 부부가 된다.
그후, 그녀와 그녀의 조직은.,독자적으로 활동.
재령부대가 적진에 포위되어 고립된 정보를 입수.
혼자 달려가 적진에 침투해 구출한 일화가 유명하다.
북한 적진 속 교전에서
단 한번도 진 적이 없다는
백전백승의 신화적인 여전사.
북파부대를 이끈 북파공작원들의 대모.,이정숙.
북측정보 입수로 6.25를 승리로 이끈.,숨은 주역.
남편 김종벽과 사이에 1남 1녀를 낳고.,37세 운명.
.
휴전 후, 남편 김종벽 소령과 함께
정릉제1교육대 4863부대 HID 교육 참가.
북파공작 활동 및 북파공작원 대모로 활동.
'백골이 될 때까지 고향을 지킨다.'는
이름도 없고 군번도 없는.,무명 용사들.
'켈로부대'와 구월산유격대는 구분이 모호.
정부는 8240부대원들을 국가유공 대상자로 인정.
계급, 군번 없이 활동한 특성 상 어려움을 겪었다.
1953년 휴전 후 부대는 전격 해체
남은 부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시라소니' 이성순씨가 8240부대 출신.
1930년 일제는 자국의 상품을 소비시킬 목적으로
한국과 중국 간 인조견의 무역 거래를 금지시켰다.
그당시, 한국의 상인들은 압록강을 넘나들며 밀무역.
일제는 이 운반 책임자들을 ‘노비노리’라고 불렀다.
일제 소탕령 후 신의주 압록강패에 몸담은 시라소니.
신의주 최대 목재소를 삼키려는 경찰서장 충복을 제거.
경찰서장 하라다는 시라소니 노비노리 죄목으로 체포령.
시라소니는 삼총사 '깃대 땅꼬마'를 데리고 만주 탈출 시도.
탈출 중도에 땅꼬마를 잃고 하얼빈에 도착한 시라소니와 깃대.
상해 진출의 기회를 마련하고
'조선인 건달' 상하이 박을 만나
조선인 거주지역인 금가방에 기거.
이들은 가난한 조선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며
세력을 키워 나가지만, '하라다' 추적은 계속된다.
하라다는 '산자에몬'을 시켜 시라소니를 제거하려 해
위기의 순간, 중국상인 집단 '청방' 도움으로 위기 모면.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하라다와 마주치게 되는데 하라다의
충복이 된 깃대를 보고 투지를 잃는다.
차라리 시라소니는 깃대의 손에 죽기를 원하는데,
마지막 순간 깃대는 하라다를 찌르고 자신도 자살.
시라소니 일화는 '영화, 드라마'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성순(李聖淳, 1916년 2월 29일 ~ 1983년 1월 25일)
"시라소니" 별칭으로 불리웠던 대한민국의 협객이다.
8.15 해방 때 서북청년단 감찰부장을 맡고
독립운동가 '신익희'의 경호실장을 맡았다.
1916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전주이씨 목사의 아들로 출생.
가계가 기울자 17세부터
'신의주~ 만주' 기차에서
밀수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해방 후, 남한에서 남북청년단감찰부장직,
한국 전쟁 당시 북파공작원으로 활동하였다.
1953년 이정재에게 동대문 점포 양도를 요구.
동대문 사단에게 린치 당하여 중상해를 입었고,
이정재 부하인 이석재에게 한 번 더 폭행 당했다.
이후 개신교로 귀의하여 5.16 군사 정변 때
중부경찰서 연행후, 교인들의 탄원으로 석방.
시라소니는 옛 부하(서북청년단) 교화생활
딸과 친척의 도움으로 단칸 셋방에서 지냈다.
1983년 1월 25일 성동구 군자동 자택에서 사망.
그는 켈로부대 요원으로 참전하였다고 하며
'조봉암, 신익희, 장면' 경호를 맡았다 전한다.
6.25 당시, 켈로부대 주둔지.,선갑도.
'1968~1974년' 육군첩보부대(HID) 주둔.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사건과 동시에 철수.
.........HID.........
서울 정능 청수장
HID 제1교육대에서
훈련된 38명의 대원들.
북파공작원들은 북한산에서 산악훈련
30kg 배낭을 메고 1시간에 13km up 주파.
북한산 훈련을 끝낸 후, 5인 1조.,북파 훈련.
1952년 영흥만 원산 응도섬에 주둔.
북파공작원으로 작전 수행을 한.,대원들.
당시, 제1교육대 초대 부대장.,이철희 대령.
..............................................................
그러나,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던
'켈로부대'의 활약상.
.............켈로부대.............
KLO(Korea Liaison Office)는
"주한 첩보연락처" "주한국연락반",
"주한연락처", "켈로 부대"로 알려졌다.
1949년 6월 1일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조직한
'북한지역 출신자가 중심인 북파 공작 첩보부대.
한국 전쟁동안 수많은 비밀작전을 수행
무수히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부대 특성상
지금까지도 베일 속에 싸여있는 비운의 부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게 받은 독일 군복을 입었다.
1951년 9월 제8240부대 주한 국제 연합 유격군(UNPIK)
첩보부대로 편입되고, 1952년 6월 제8250부대로 확대 개편.
1953년 7월 휴전이 되자 육군 직할대 예속 후 해체.
이때까지 제8250부대에 남아 있던 소속 부대원들은
군번과 계급을 부여받고 육군 여러 부대로 분산 배치.
이후, 대한민국 국군에 계속 남은
KLO 출신자들을 창설요원으로 해서
1958년에 제1공수특전단이 창설되었고,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에 편입되었다.
..............................................................
항공사진으로 보는.,선갑도.
북한산 산세를 빼닮은.,선갑도 선갑산.
북한 원산앞바다 웅도를 닮은 산세일까?
북한 웅진군 구월산 산세를 닮은 산세일까?
마치, 하늘나라 선녀가
구름을 타고 섬에 내려와서
해신을 품은 자태.,선갑도(仙甲島).
옛부터 덕적군도 고갯배들이
풍랑과 악천후를 만나게 될 경우에는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섬.
마치, '선녀의 품' 처럼
따듯한 피난처였다는 곳이다.
과거, 어업을 위한 일시적인 체류지.
그러나, 지난 40여년간
무인도와 다름 없을 만큼
인적이 거의 끊겼던 외딴 섬.
선갑도 섬 둘레가 기암절벽으로
선접(仙接)이라 일컬을 만큼 비경지.
덕적면과 자월면에 풍부한 어장을 제공.
해안가 절벽 4~6각형 기둥 암석들은
제주도 주상절리 기암 절경을 보는듯.,
선갑산 폭포바위 아래는 선녀의 목욕처.
선갑도에 반한
하늘나라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섬과 하나가 된다고 하여
"선녀도" 또는 "선접도(仙接島)".
원래, '선계(仙界)'의 영역.,선접도(仙接島).
조선 한양의 남산과 경쟁후보라던.,전설의 고향.
'남산'에게 양보 후, 내려와 자리 잡은 곳이.,현 위치.
'선녀가 갑옷을 입은 자태 같다.'는.,선갑도.
옛날 대홍수가 나서 바닷물이 밀려 올라와
철마면 일대가 물속에 잠기자 동해의 용왕이
곽암 용굴에 사는 용마(龍馬)에게 명령을 내려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는 전설 속.,철마산(鐵馬山)
용마는 홍수를 물리치고 나자 물이 없어
결국, 용궁으로 환궁하지 못해 햇볕에 말라
점차 굳어져 쇠말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선갑도(仙接島)는 어떻게
개발되는 것이 바람직할까?
007 영화 시리즈는.,영국첩보국 활약 상, 스토리.
국가안보와 세계평화를 위하여 공인된 살인면허를
갖고있는 첩보원을 내세워, 흥행에 성공한 영화 산업.
한편, 첨단무기 자동차 등을 선전하며
영국은 자국의 국력을 은근히 과시한다.
또한, 세계적인 관광 명소 휴양지를
배경으로 촬영해 관광 명소를 부각시켜
해외 관광산업에도 투자해 수익을 올린다.
'김일성은 소련 비밀경찰(NKVD) 요원이었다.'
' KGB는 그를 '배신감과 경멸감으로 대하였다.'
'서방세계가 포섭한 KGB 고위직 소련 정보기관원'
올레그 고르디에프스키(Oleg Gordievsky. 77세) 증언.
우리나라는 6.25전쟁 때
'켈로부대'의 숨은 활약으로
국가위기를 극복해 낸 바 있다.
6.25 당시, 켈로부대 주둔지.,선갑도.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숨은 주역.,켈로부대.
그들의 활약상을 소재로 개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려수도 해금강이 남해 관광해역이라면
덕적군도와 백령도 해역은.,서해의 해금강.
국제적인 관광 휴양지로서도 가치가 높은 해역.
선갑도가 남북 대치상황에서
장차, 남북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공간으로서
아울러, 국제적 관광해역으로 개발되어
수도권 도서지역이 빛을 발하길 바래본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숨은 주역이던.,선갑도.
6.25 전후 미군 켈로 부대 주둔지.
선갑도에 뱀이 많아 1952년에 철수.
그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외딴 섬
'선녀가 갑옷을 입은 자태 같다.'는.,선갑도.
한때 선갑도는 북파공작원 '비밀부대 양성소.'
지금은 민간 S기업 소유로 넘어가 있는.,무인도.
19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단 31명.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파된 124군부대.
"박정희 목을 따러 왓수다." - 생포자 김신조 -
1968년 육군 선갑도 803 북파부대
즉각, 이에 대응하여,
북파공작원을 양성했던
실미도부대 & 선갑도부대.
'실미도부대'는 민간인으로 구성된 반면에
'선갑도부대' 구성원 32명은 사형수와 무기수.
사면을 전제조건으로 엄선한 더 강력한 특수부대.
30kg 배낭을 메고
12km 선갑도 산길을
1 시간 내에 주파하는
인간병기.,선갑도부대원.
선갑도부대는
철마산 안가에서
해단식 후 사라졌다.
육군 특수 첩보부대'(AIU) 산하
902정보부대 803대.,선갑도 부대.
1972년 남북74공동성명 이후 해체.
'실미도'와 유사한.,
미래 관광자원 지역.
............선갑도(仙甲島)..............
선갑도(仙甲島)는 덕적도 남쪽 11km.
자월도(紫月島), 승봉도(昇鳳島)와 근접.
면적은 3.93㎢이며, 해안선 길이는 16.16km.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무인도
덕적군도에서.,'최고봉' 선갑산(352m).
.
섬 둘레가 기암절벽으로 덕적면과 자월면에
어장을 제공하고 있으며, 낚시꾼에게 인기 높다.
선갑산 정상에 올라가면 덕적군도가 한눈에 보인다.
.....................................................................
1970년까지 승봉도 주민 35명 공동 소유지.,선갑도.
그러한 까닭으로 덕적도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음에도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에 속해 있는.,선갑도.
그후 승봉도 주민 한사람이 이를 소유하다가
1992년 정부가 핵폐기물 후보지로 검토하면서
과기부 관련인사 매입 후, 그 추진이 어렵게 되자
1996년 한국해양연구원에 매각, 그후 주인이 바뀐다.
2007년 모기업에서 매입한 후,
현재, 개인 소유 무인도.,선갑도
덧 말
인천시가 작약도 주변 섬을 개발하여
'싱가포르 센토사섬' 국제적인 해양관광지를
'롤 모델'로 한, 개발 계획이 진척을 보이고 있다.
- 2015년 12월 16일 서울경제 기사 -
미국 제이와이프로젝트(JY Project)와
'작약도 개발'을 위한.,업무 협약을 체결.
이 회사는 작년 말, 작약도 개발사업 시행자.
이번 협약으로 두 기관은 작약도 휴양지
개발사업과 연계해 인천 동구 관광 활성화.
도시재생과 해양관광 발전 방안을 함께 모색.
작약도 개발사업은 2,700억원을 투입하여
매립지 50만㎡에 관광호텔, 콘도, 청소년수련원,
요트장, 스포츠센터, 워터파크 등을 짓는 내용이다.
'2016~ 2025' 10년 동안 매립·개발 사업이 진행되며,
호텔, 리조트, 해양레저 시설 등 복합 관광휴양지 플랜.
동구 관계자는 "내년 2월께 사업부지 매립을 위한
시행허가 신청을 시작으로 실시계획 승인 등을 거쳐
복합관광 휴양지 개발은 2025년 완료할 계획"이라 하며
"작약도와 연계한 만석동 주변 일대
해양친수공간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
작약도가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가면
주변 섬 개발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
굴업도는 7∼8년 전부터 CJ그룹이 골프장 등
종합관광지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지만,
환경단체 등이 반대하는 바람에 개발 추진이 중단.
옹진군과 굴업도 인근 덕적도 주민들은
작약도 개발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여서
인천시의 작약도 주변 섬 개발에 기대가 크다.
무의도와 강화군 석모도는
연륙교가 건설되고 있어 관광객이
자동차를 몰고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무의도는 인근 실미도와 실미도해수욕장.
소무의도 등 다양한 관광지를 갖추고 있고,
인천국제공항에서도 가까워 관광지로 최적지.
석모도 인근 경기도 길상면에는
2017년 스키장, 콘도가 들어설 예정.
인천 섬 개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
하지만, 인천 섬 전체를 연결하는
종합적인 개발계획은 미흡하다는 지적.
도로, 숙박시설, 자연생태, 섬 문화.,활용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