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버지 이야기
미국의 어느 가정에 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태어날 때 탯줄이 목을 감는 바람에
뇌에 산소 공급이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뇌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평생 뇌성 마비 장애인으로 고생할 것입니다."
의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부모에게 아이를 포기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연약한 아들을 더욱 측은하게 여기며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 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이 컴퓨터로 간단한 단어들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에
어느 날 아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은 "나도 남들처럼 달리고 싶어요." 였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아들과 달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뒤에서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9km 자선 달리기에
나갑니다. 그들은 완주했고 끝에서 두 번째로 골인 하였습니다.
아들은 경기 후에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오늘 난생 처음으로 제 몸의 장애가 사라진 것 같았어요."
1981년 보스턴 마라톤 첫 출전에서는 코스 1/4 지점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는 완주에 성공합니다.
4년 뒤 아들은 더 큰 꿈을 가지게 됩니다. 철인 3종 경기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것은 미친 짓이다. 아이만 더 힘들게 할 뿐이다." 라고요.
게다가 당시 아버지는 수영도 할 줄 몰랐고 6 살 이후엔 자전거를 타 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주저 없이 철인 3종 경기에 참가 신청서를 냅니다.
내 노라 하는 철인들 틈에서 아버지는 허리에 고무 배를 묶고 4km 바다를 수영하고,
아들을 태운 자전거로 180km의 용암 지대를 달리고, 그리고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며
42.195km에 완주했습니다. 이 때 아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버지가 끌어 주는 보트나
자전거에 누워 있는 것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마라톤 결승 점에 아버지와 아들이 들어 옵니다.
비록 모두가 들어 오고 한참이 지난 후이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 부자(父子)를 위해
끝까지 자리에 남아 주었고 그들을 기립 박수로 맞아줍니다.
아들은 말합니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해낼 수 없었을 거에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말합니다.
"네가 없었다면 이 아버지는 시작하지도 안 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비록 다 표현 못해도 이 땅의 아버지들 마음 깊은 곳에
소리 없이 흐르고 있는 내리 사랑의 강물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라스트"를 보면 2차 대전 당시 쉰들러 사장을 통해
죽음의 수용소에서 목숨을 구한 1100 명의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이, 훗날 예루살램의
시온 산에 안치된 쉰들러의 묘소 위에 저마다 작은 돌을 올려 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이 무덤이나 추모 대 위에 꽃이 아닌 돌을 올려 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꽃은 '소멸'의 상징입니다. 아름답지만 결국 떨어져 시들고 말기 때문
입니다.
반면에 돌은 '영원' 내지 '연속'의 상징입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돌을 가르키는 히브리어 '에밴(eben)은 '아버지'를 뜻하는 '아브'(av)와 '아들'을 뜻하는
'벤'(ben)이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즉 아버지의 생명은 자식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연속성)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죽음 마저
끊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의 회로가 흐르고 있습니다.(영원성)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추모의
뜻으로 꽃 대신 돌을 올려 놓는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결코 잊지 않는 것처럼, 하느님이 고인을 영원히 기억해 주시기를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자신들도 고인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생기는 가장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영원한 자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 님을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다정하게 부를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프라미스 교회 5대 DNA 중 첫 번째인 아버지 신학(Fatherogy)의 요체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간도 아버지의 거룩한 사랑 안에 거 하시는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받은 메일 옮김>
영국의 성공회 성직자인 '조지 에드워드 허버트,가 그랬습니다.
"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스승 보다 낫다." 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