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21세기 지구촌이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핵심의제로 식량과
에너지 그리고 기후변화를 꼽는다. 사람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이 세 가지 의제가 인류의 지속가능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주요 의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는 그 자체로도 주요한 사안인 동시에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식량과
먹거리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먹거리의 생산, 유통, 가공,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이 화석연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최근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푸드
마일리지(food milage)를 줄이자는 캠페인은 결국 식량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이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최근 식량(곡물) 소비를 가파르게 증가시키고 있는
자동차 연료용
바이오디젤 소비가 증가하는 것은 화석연료의 공급부족으로 인한 석유가격의 급격한 상승이 자동차 연료로써 바이오디젤이 경제성을 갖도록 만든 사실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지난 201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굶주림을 피해 남부에서 이주해온 한 아이가 영양실조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뉴시스
식량과 기후변화는 보다 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기후변화는 21세기 지구촌의 절대적 식량위기를 만든 두 가지 경로 가운데 하나이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생산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경지면적의 감소 및 경지이용률의 저하가 지금과 같은 절대적 식량부족을 초래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경지면적이 줄어들도록 만들었던 두 가지 주요 경로 가운데 하나였다. 기후변화로 인해 빠르게 진행되는 사막화와 농업용수의 부족이 식량을 생산하는 경지면적을 감소시킨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 그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지식 정도만 갖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일반적인 상식에서 볼 때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의 가장 큰 부분이 자본의 탐욕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기후변화의 원인과 해법을 거론하는 것은 내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또한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고, 그 책임(부채)에 따라 기후변화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무(부담)를 져야 하는 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나의 한계 밖에 존재하는 질문이다.
다만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후변화가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기후변화마저 돈벌이에 활용하는 자본기후변화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세계는 절대적 식량위기 시대로 접어들었고, 만성적인 식량의 공급 부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다. 식량의 소비 증가를 따라 가지 못하는 생산·공급의 부족은 식량 가격의 전반적인 폭등을 초래했다. 그리고 국제 시장에서 식량과 먹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곡물메이저와 농
식품복합체 같은 초국적 자본들은 막대한 돈을 벌었다. 전반적인 가격의 폭등과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밀,
옥수수, 콩, 쌀 등과 같은 주요 곡물가격은 국제 시장에서 2∼3배나 폭등했다. 가공식품의 주원료가 되는 곡물가격의 상승은 식품가격을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생필품에 해당하는 식품가격의 지속적이고 전반적이며 대폭적인 상승은 서민층의
장바구니를 무겁게 짓눌러 왔다. 빈곤층은 먹거리를 쉽게 구하지 못해 기아의 고통에 허덕여야 했다. 이런 상황은 최근 10여년 동안 서서히 그러나 끊임없이 지구촌 인류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와 이제는 마치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뱀처럼 교활하지만 큰 소리 내지 않고 조용하게 우리의 일상으로 침투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용하게 스며들던 초국적 자본의 침투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요란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때때로 발생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초국적 자본의 탐욕과 식량위기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식량(곡물)에 대한 투기가 발생하는 경우에 그러했다.
기후변화가 경지면적을 감소시켜 식량을 부족하게 만든 것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구조적으로 고착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때때로 기상이변으로 인한 대규모 자연재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2007년, 2011년 등과 같이
러시아, 중국, 미국,
우크라이나, 인도 등 주요 곡창지대에 대규모 가뭄이나 홍수 혹은 화재 등이 발생할 경우 당해 연도에 주요 곡물의 생산?공급이 갑자기 뚝 떨어지게 되었다. 가뜩이나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공급 부족 상황에서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생산 감소는 국제 시장에서 곡물(식량) 가격을 더욱 폭등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지난 2011년 중국 귀저우성 스첸의 난차오 마을에 52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 발생해 주민 14만6000명과 가축 5만1000여 마리가 심각한 식수난을 겪었으며 160㎢의 농경지에 영향을 미쳐 한화 179억 원 가량의 경제 손실을 입었다.ⓒ뉴시스
이때 초국적 자본의 탐욕이 노골적으로 ‘생얼’을 드러낸다. 막대한 단기 이윤을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곡물메이저는 지구촌 어느 국가나 정부 보다 전 세계 주요 곡물들의 작황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 보다 빨리 생산 작황을 파악하고 가격 폭등을 예측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5대 곡물메이저는 국제 곡물시장 거래의 약 60∼70%를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곡물메이저를 중심으로 국제 투기자본들이 모여 곡물
펀드를 구성하고 투기에 나서게 되고, 가뜩이나 폭등 국면에 있는 식량 가격은 이들의 투기 때문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광란의 춤을 추게 된다. 그 결과로 초국적 자본은 황금으로 배를 채우게 된다. 인류가 목격한 2007년과 2011년의 식량위기와 가격 광란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타난 현상들이었다.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초국적 자본이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를 악용하여 황금으로 배를 채울 때 세계 곳곳에서는 식량을 요구하는 민중들과 공권력이 충돌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를 빚었다. 서민들은 가격폭등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빈곤층은 기아의 고통에 죽음을 맞기도 한다. 곡물투기로 초국적 자본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벌어들이는 돈 잔치의 밑바닥에는 수많은 지구촌 인류의 피와 죽음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