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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믿음을 유지하라 말씀하십니다.
151108(주일오전)
역대하 16:7-14
첫 인상이 꽤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첫 인상이 별로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첫 인상이 꽤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해지는 사람이 있고, 첫 인상도 별로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이상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늘 변함없는 좋은 모습으로 우리와 관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첫 믿음을 유지하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제 2대왕이었던 다윗 왕과 그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제 3대왕이었던 솔로몬과 분열왕국 유다의 제 3대왕이었던 아사 왕의 첫 믿음과 나중의 믿음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 축복받은 첫 믿음을 끝가지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 첫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사랑이 충만하신 분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좋은 것들로 채워주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 다윗이라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7명의 형님들을 둔 막내였기에 그의 부모조차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고, 사막에서 외로이 양 무리를 몰고 다니던 무명의 목동이었지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3:1,27:10)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받아주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중간에 그의 충복 우리아의 아내와 간통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복 우리아를 죽게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것이 죄악임을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말에 즉각 순종하여 철저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다시 돌이켰고, 그 후로는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신실한 믿음을 지킴으로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대상29:28).
부왕이었던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도 처음에는 부왕인 다윗 왕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큰 부흥을 누리게 되었지만 그의 마지막 생애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그의 아내들로 취하면서, 우상과 사신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첫 믿음을 유지하지 못함으로 여호와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고 이방의 신상을 따르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셨으나 그는 끝내 돌이키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대에 이스라엘이 두 동강이가 나고, 나라의 12분의 10을 그의 신하 여로보암에게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그의 후대가 매우 비참해지는 결과들을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첫 믿음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결국 첫 믿음을 유지하지 못한 솔로몬 까닭에 하나님의 진노로 그의 자손 대에 그의 나라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왕상 11:9-13) 『[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10]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12]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이 말씀과 같이 솔로몬의 사후에 하나의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왕국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그의 아들 아비야를 거쳐 아비야의 아들 아사가 제 3대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사 왕은 그가 왕위에 즉위하지마자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부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남색하는 자(동성애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왕상15:12), 온 나라의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앴습니다. 그 나라 전체에 우상과 사신을 섬기는 큰집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온 전국에 임금인 자신이 직접 동행해서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며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도록 강조를 했습니다. 성경은 그 결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대하 14:5-8)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7]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8]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
그런데... 그렇게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던 아사 왕 제 15년에, 국가적인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에티오피아(구스)의 대왕 세라가 군사 백만 대군과 함께 병거 삼백 대를 앞세우며 유다나라를 침공해 들어왔었습니다. 아사 왕은 58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이 에티오피아 세라의 백만 대군을 맞이하여 싸우러 나갈 때 도저히 인간적인 계산으로서는 싸워서 이길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 앞에서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역대하 14장 11절에 보면 그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하 14: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여호와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아사 왕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친히 에티오피아의 군대를 치시매 이 유다왕 아사가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을 추격하여 한사람도 고향으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도록 다 진멸하고 병거 삼백 대를 빼앗았습니다. 대 승리를 얻어서 그 전리품이 매우 많아 산을 쌓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많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여 전쟁에서 돌아오는 아사를 맞아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선포하였습니다.
(대하 15:2-7) 『[2]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3]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 [4]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5] 그 때에 온 땅의 모든 주민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하지 못하며 [6]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여러 가지 고난으로 요란하게 하셨음이라 [7]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
아사 왕이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온 백성을 그 앞에 모았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격하고 감사하여 무려 “소 700마리와 양 7,000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 자는 대소 남녀를 무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맹세”(대하15:11-4)를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아사 왕이 강하게 결심을 하고 여호와를 섬기기로 적정했던지, 그의 어머니로 태후인 마아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자 태후의 위를 폐하고 아세라 목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버렸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가 구별한 물건과 자기가 구별한 물건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렸습니다.”(대하15:18) 그와 같이 하매 그 때부터 20년간 다시는 전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셔서 그 나라가 태평성대하고 국민들이 잘 살고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20년 동안 어떠한 이웃나라도 감히 유다를 넘나보지 못하고 20년의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15년의 태평성대, 잠깐의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하여 더 큰 부흥, 그 후로 20년의 태평성대를 누리던 그 즈음에 아사왕의 신앙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큰 위기를 잘 극복하고 20년 동안(총 그의 치세 35년 동안) 아무 일이 없이 나라가 부강하고 태평성대하니 그만 아사가 신앙이 시들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태평성대 2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북방의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군대와 함께 유다를 침략하니까 이제는 옛날에 구스(에티오피아)의 군대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두려움이 들어와서 여호와께 부르짖거나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는 곧장 뛰어가서 성전에 있는 금과 은, 왕궁에 있는 금, 은을 취하여 가지고서 이것을 아람 왕에게 보내서 아람 왕 벤하닷의 군대를 고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치기 위해서 기도는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은금과 왕의 곳간에 있는 은금을 가져다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아람 왕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잠간 동안에는 유다 나라에 어느 정도 이득이 생기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선견자 하나니가 나와서 왕을 꾸짖었습니다.
(대하 16:7-9) 『[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
이 말을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왕이여, 어떻게 그렇게 망령한 일을 하십니까? 20년 전에 구스(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이 왔을 때 왕이신 당신이 군대가 많아서 이겼습니까? 무기가 많아서 이겼습니까?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돌봐주셔서 이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망령되게 성전의 금과 은, 왕궁의 금과 은을 취하여서 믿지 아니하는 저 아람 왕에게 주고 그의 군대를 돈으로 사서 이스라엘을 치게 함으로 이 난국을 모면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 일로 인하여 왕에게 전쟁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아사왕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이 선견자를 잡아 옥에 가두고 이에 동조하는 백성들 중에 몇 사람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 3년 후에 아사의 발에 병이 들었는데 매우 위독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3년을 기다리다가 3년이 지나도 열매를 맺지 못하자 찍어버린다”(눅13:7)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아사 왕에게 회개하고 돌이켜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3년의 기회를 주셨으나, 그가 끝내 돌이키지 아니함으로 결국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추측하건데 발에 생긴 병이 암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백방으로 의사를 불러서 치료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발병 2년 후에 아사는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성경은 그 상황을 역대하 16장 12절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대하 16: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그만 이 정도에까지 아사왕의 신앙이 타락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하나님을 찾는 그 순수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 부분을 강조하여,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위대하였던 아사 왕이 그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비참한 타락과 함께 참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 경계를 가짐으로 우리의 첫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아사 왕의 첫 믿음이 타락했던 이유는 20년 태평세월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늘 축복을 간구합니다. 주님이여 평안을 주시옵소서. 마음의 평안, 가정의 평안, 생활의 평안, 그리고 부귀영화를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간구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부어주셔서 가내가 평안하고 생활이 부요하게 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태평성대하게 잘 살 때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따라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여러분 세계 정황을 잘 살펴보십시오.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치고 어려울 때는 있는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다가 어려움이 지나가고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그치고 그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줄달음질을 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복음이 성황 하던 구라파를 보십시오. 그 나라가 잘 살게 되고 평안하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하나님의 성전들은 텅텅 비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가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함정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평안하고 좋은 환경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우리는 고난당할 때 혼자 힘들어하거나 자포하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고, 응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되고 형통하여 즐거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산으로 들로 여행하고, 해외여행을 다니고, 이곳 저곳 맛집을 따라 다니며 유람하는 삶의 여유를 즐겨야하는 것입니까? 사실 수많은 교인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는 현실을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결국 첫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고 타락하여 저주스러운 인생의 말년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 되고 형통하여 즐거울 때에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찬양과 경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잘 될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인생은 계속하여 첫 믿음을 유지하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끝까지 누릴 수 있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러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되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아사 왕은 전심으로 여호와를 향하여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어 태평성대를 누리는동안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사 왕이 첫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고 타락한 이유는 20년 동안 태평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만 아침에 늦게 일어나며 저녁에 늦게까지 연락을 취하고 이 세상에 취해서 너무 세상만 즐기다가 첫 믿음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아사 왕이 타락한 이유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첫 믿음을 유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도하는 법을 잃어버렸고, 이제 문제가 오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욕심의 방법을 취하였습니다. 갑자기 북왕국 이스라엘 왕이 쳐들어오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허둥지둥하여서 자기의 명철을 이용했습니다. 역대하 16:1-3에 보시면, 인간의 수단과 방법, 내 힘만으로 유다나라를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웃인 아람 왕 벤하닷에게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재정인 은금도 가리지 아니하고 왕궁에 준비되어 있었던 헌금인 은금도 가리지 아니하고 그것들을 취하다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주어서 “당신의 아버지와 우리의 아버지가 서로 동맹을 맺어 화친한 것처럼 당신과 나도 동맹을 맺고 화친합시다. 그러므로 이 은, 금을 드릴 테니 이걸 받아서 이스라엘의 군대를 쳐 주시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군대가 철수하게 해 주시오.” 이렇게 인간적인 간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선견자 하나니가 나와서 엄격하게 꾸짖었던 것입니다.
(대하 16:7-9) 『[7]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8]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아사 왕이 신앙이 타락해서 문제를 당하였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쓴 것에 대해서 엄히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고, 성경 히브리서 10:38-39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지혜와 지식이나 경험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참작할 필요가 있는지 몰라도 우리가 최후의 문제의 결단을 내릴 때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속에 우리가 파묻혀 사니까 우리의 환경에는 역사적인 변천 그리고 국가 제도적인 변천 경제적인 흐름과 변천 이런 것이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우리의 사고에 영향력을 안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것에 빠져 들어가서 그만 이 세상과 이 세상이 가는 그런 길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매일같이 성경을 읽고, 매일같이 기도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결단에 이를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면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까지라도 여러분을 비난하고 조소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비난과 조소를 두려워하지 말고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결단을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잠 3:5-7)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하고 믿지 않는 사람과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차이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야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 명철과 지혜와 지식을 의지하고 자기 스스로 지혜롭게 결정해서 나갑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판단력과 명철을 가지고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지 말고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그 발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여호와께서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 말씀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인생을 동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동업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다가오더라도 아사와 같이 그만 황망히 미처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아니하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취하여 인간적인 일로써 문제를 해결하면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떠나고 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서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답게 믿음으로 살아서 여러분의 길을 항상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명철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아사 왕이 타락한 것은, 주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하 16: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의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을 학대하였더라』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의 종 선견자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혹은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께서 고요하고 잠잠하게 여러분의 영 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이 두 날 가진 검과 같이 여러분 속에 들어가서 심장과 골수를 쪼개면서 말씀하시고, 여러분께서 교회에 출석하실 때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의 입을 통해서 갑자기 여러분에게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여러분의 잘못을 드러내놓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때 괴롭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언제나 좋은 것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의사는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들었다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병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건강하다. 당신은 괜찮다. 당신은 산다.”고 거짓말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고 준비 없이 죽어가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시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예리하게 우리 심령에 말씀의 검을 넣어서 찢을 것은 찢고 수술할 것은 수술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프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말씀에 귀를 막고 등을 돌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사 왕이 그랬던 것입니다. 그에게 회개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그 기회를 저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선견자가 와서 아사 왕을 꾸짖을 때, 아사 왕이 만일 다윗 왕과 같이, 보좌에서 내려와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자복하고 “하나님이여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복구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꾸짖으실 때는 여러분을 버리려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을 돌이키게 하여 회복시키고 복을 주시려고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아예 버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꾸짖지도 않습니다. 꾸짖음이 있을 때는 아직 버림받지 않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꾸짖음이 있을 때 이를 듣기가 괴로워서 하나님을 저버리면 그는 하나님께 저버림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왜 우리가 늘 듣고 보고 읽어야 되느냐 하면 말씀이 들어오면 우리의 생활 속에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 안 읽고는 여러분의 마음에 회개가 안 됩니다. 세상에 먼지 묻고 티끌 묻고 세상에 취하였는데 자기 스스로가 아나요? 자기 얼굴에 때가 묻은 것 여러분 자기 스스로는 모릅니다. 거울을 들여다봐야 아는 것처럼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볼 때 자기의 잘못된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항상 회개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한번 믿었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의 행실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됩니다. 매일같이 회개하여 거룩함에 이르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말씀으로 내 자신을 살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을 듣거나 읽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믿음이 생겨나요? 어림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말씀 없이 인간적으로 아무리 “믿습니다!”를 고함쳐 외쳐도 그런 믿음은 헛된 믿음인 것입니다. 밥을 먹지 않고 기운이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생겨나는 기운이란 없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였는데, 기운을 차리려고 발버둥을 쳐본들 그에게서 기운이 나올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 영의 양식을 취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힘을 얻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꼭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신앙에 힘이 생기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우리의 영적인 양식으로 받아들여서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 없어야 됩니다. 또 우리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읽어야 우리의 생활이 헌신의 삶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자꾸 취하게 됩니다. 세상의 세속이 와서 우리를 자꾸 점령합니다. 이런 생활 가운데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주님 가까이 또 더 가까이, 또 더 가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말씀은 흡입력이 있어서 여러분과 저의 심령을 부여잡아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읽어서 그 말씀에 붙잡히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 속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이 들어와야 은혜의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삶의 동기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뻐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뻐야지 예수 믿고 기쁘지 않고 슬퍼하면 그 사람은 예수 잘못 믿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상표는 기쁨입니다. 너희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 슬픈 일이 종종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해서 다시 은혜의 파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면 은혜의 파도가 슬픈 것을 다 제껴버리고 마음속에 기쁨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은혜의 파도, 이것 없이 이 세상 슬픔을 물리치고 마음속에 들어오도록 기쁨을 복구해주는 이는 없는 것입니다. 은혜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은혜를 받아서 슬픔이 다 씻겨나가고 기쁨이 넘쳐 나서 언제나 기쁨을 재생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서 한번 기뻤다고 해서 계속 기쁘지는 않습니다. 계속 세상에서 우리의 기쁨을 죽이려고 하는 마귀의 그 역사가 끊임없이 독을 품고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속 은혜로써 씻어내야지 인간의 힘으로는 씻어내 지지가 않습니다. 은혜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도할 때 마음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고 믿음을 얻고 더욱 헌신하고 은혜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기쁨이 넘쳐나면, 우리가 타락하지 아니하고 믿음 속에 굳세게 설 수 있는데 그만 아사 왕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거역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을 선견자를 감옥에 가두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결국 패망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넷째로, 아사 왕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시간을 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늘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사 왕은 그의 발에 병이 들어서 병이 점점 심해져 감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사들을 불러서 열심히 치료했습니다. 왕이었기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들을 다 동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의사에게 치료받지 말란 말씀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막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의사가 쓸데없단 말을 안 했습니다. 우리 사람이 병들면 의원, 의사들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도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의원에게만 의지하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병든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있지마는 그러나 의원의 치료를 받으면서도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5-16)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발에 병이 들어 병이 점점 더 심해지는데 의원에게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대하 16: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것이 그가 죽은 이유인 것입니다. 그가 의원들에게 치료받은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의원들에게만 구하고 여호와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원들만의 힘으로 못 고쳤던 것입니다. 오늘날 의사들에게 다 물어보십시오. “병을 의사 선생님 당신이 고치십니까?”라고 물어보십시오. 한 사람의 의사도 병은 내가 고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병이 낫도록 도와만 주지 고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고치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사가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죽고 만 것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나는 이유는 평안에 빠져 하나님을 찾지 않고 문제 부딪쳐 믿음으로 해결치 않고 인간의 방법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하지 않으므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끝나는 아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 성령으로 시작했고, 성령으로 행하며, 성령으로 열매 맺게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 도 -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 위대한 믿음으로 시작한 아사 왕이, 그 믿음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부흥을 맛보고 난 다음에, 세속적인 올무에 빠져서 신앙을 잃어버리고 끝까지 교만하여 처참하게 죽은 사항을 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향한 첫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첫 믿음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렇지만 혹여 주님을 향한 첫 믿음을 잃어버렸을지라도, 아사 왕처럼 끝까지 완고하다가 멸망당하지 않게 하시고, 다윗과 같이 깨닫는 순간 즉시 주님께로 돌이켜 주님을 향한 첫 믿음을 회복하여,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는 복된 인생, 하나님이 주는 최고의 부흥을 끝까지 누리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존귀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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