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이미지](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helloandong.go.kr%2Fsub01%2Fimgs%2F2_01.jpg)
- 한글명 : 탁청정 김유
- 한자명 : 金綏
- 호 : 탁청정(濯淸亭)
- 본관 : 광산(光山)
- 나이 : 64
- 생년 : 1491
- 몰년 : 1555
김유의 삶
김유(1491~1555)는 조선시대 식생활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요리서인『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저자이다. 자는 유지(綏之), 호는 탁청정(濯淸亭)이며, 1491년(성종 22) 광산김씨 예안파의 파조(派祖)인 김효로(金孝廬)와 그의 부인 양성이씨(陽城李氏)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인 순천김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1525년(중종 2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더 이상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주로 안동군 예안면 오천동에 거주하며 집안을 돌보았다. 형인 김연(金緣)이 15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강원도 감찰사 등의 관직생활로 집을 자주 떠나 있어 어머니를 모셔야 했기 때문이다. 김유는 고모가 남긴 유산 덕택으로 비교적 넉넉한 살림을 꾸리며 풍류를 즐기고, 원근의 사람을 모아 인심을 베풀었다. 김유는 사대부의 신분으로서 부녀자들의 관심사였던 요리서를 저술할 만큼 실용과 탐미를 적절히 조화해 낸 인물이었다고 할 수
조선시대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저자
김유(1491~1555)는 조선시대 식생활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요리서인『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저자이다. 자는 유지(綏之), 호는 탁청정(濯淸亭)이며, 1491년(성종 22) 광산김씨 예안파의 파조(派祖)인 김효로(金孝廬)와 그의 부인 양성이씨(陽城李氏)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인 순천김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1525년(중종 2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더 이상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주로 안동군 예안면 오천동에 거주하며 집안을 돌보았다. 형인 김연(金緣)이 15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강원도 감찰사 등의 관직생활로 집을 자주 떠나 있어어머니를 모셔야 했기 때문이다.
김유는 고모가 남긴 유산 덕택으로 비교적 넉넉한 살림을 꾸리며 풍류를 즐기고, 원근의 사람을 모아 인심을 베풀었다.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군자리(http://www.gunjari.net)}에 있는 탁청정 종택과 정자는 1541년 김유가 건립한 건물로 당시 그의 살림살이를 잘 엿볼 수 있다. 퇴계 이황은 탁청정의 [묘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성품이 호협하여 빈객을 좋아했는데 옛날 현감공이 우암(愚巖) 위에 정자를 세워 낙동강을 굽어보기 때문에 침류정(枕流亭)이라 이름하였다. 또 집 옆에 정자가 있었는데, 공이 모두 수리하여 확장하고 손님을 맞아 즐기며 혹은 밤을 새우되 피로한 빛이 없으니 선비들이 이 고을을 지나면 반드시 찾아와서 즐기었다. 비록 폐의파립한 사람이라도 친절히 대접하고 만일 옳지 못한 사람을 보면 준엄하게 꾸짖어 조금도 용서가 없었다"
요약하자면 김유는 넉넉한 살림에 성품이 호협하였고 빈객을 좋아해서 많은 나그네를 맞이하였으나 사람이 선하지 않으면 물리쳐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요리서를 저술하면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 이름한 것에서도 우리는 그의 풍류관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수운(需雲)’이라는 용어는 중국의 고전 『역경(易經)』에 등장하는 용어로 “구름 위 하늘에서 음식과 주연으로서 군자를 대접한다. [雲上于天需君子以飮食宴樂]”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잡방(雜方)'이란 갖가지 방법을 뜻한다. 즉 “수운잡방”은 풍류를 아는 군자에게 걸맞은 요리법인 셈이다.
『수운잡방(需雲雜方)』은 김유의 막내아들인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1531-1598)의 종가에서 약 450년을 보존해온 김유의 친필 요리서이다. 상하권 두권으로 엮어졌으며, 한문으로 총 121개 항목의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술 빚기와 관련한 항목이 61항목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 식초류 6항목, 장류 9항목, 김치류 17항목, 어식해법 1항목, 채소저장 2항목, 조과만들기 3항목, 파종 5항목, 기타조리법 17항목이 소개되어 있다. 내용면에서는 재료의 사용에서 조리, 가공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상세하여 당시 안동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의 양반가 식생활모습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허균의『도문대작』(1611)보다 100여년이 앞선다. 김유는 사대부의 신분으로서 부녀자들의 관심사였던 요리서를 저술할 만큼 실용과 탐미를 적절히 조화해 낸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참고자료 : 2000, 윤숙경,「需雲雜方과 한국음식문화」『안동문화권 전통문화 심포지엄논문집-군자리의 문화사적 성격』, 안동대학교안동문화연구소 안동전통문화선양사업회】
수운잡방(需雲雜方)
수운잡방은 탁청정 김유(1481-1552)공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상하 두권에 술 담는 법을 비롯하여 108가지 음식 만드는 법을 기록해 놓고 있어 500년전 안동 사림계층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다.?『도문대작』(1611)보다 100여년 전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수운잡방(需雲雜方)』은 우리나라의 전통 요리법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 책 제목에서 '수운(需雲)'은 격조를 지닌 음식문화를 뜻한다. 중국의 고전인 {역경}에 '구름 위 하늘나라에서는 먹고 마시게 하며 잔치와 풍류로 군자를 대접한다(雲上于天需君子以飮食宴樂)'라고 있다. 또한 '잡방(雜方)'이란 갖가지 방법을 뜻한다. 그러니까 {수운잡방}이란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 걸맞은 요리 만드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동안 이 책은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왔다. 전편이 한문으로 되어 있고 다른 사본, 곧 이본(異本)이 발견된 예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책의 소장처는 광산 김씨 예안파의 한 갈래 종가인 설월당(雪月堂)이다. {수운잡방}은 이 종가에서 오백 년 가까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왔다. 그러다가 80년대에 들어와서 안동대학교의 윤숙경 교수에 의해 비로소 조사보고서가 이루어졌다.
탁청정종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주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호. 1541년(중종 36) 김유가 건립한 제택(第宅)인데 몸채와 탁청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채는 총 22칸의 ㅁ자집으로 정침은 4칸이며 문간채는 6칸이어서 양쪽으로 각 1칸씩 돌출되어 전체의 칸수 구성이 정침 4칸, 양측면 각 5칸, 문간채 6칸으로, 4, 5, 6칸의 구성비를 나타내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기둥은 모두 모기둥이고, 도리는 납도리이며 대들보 위에 각주대공(角柱臺工)을 얹고 그 위에 모두 3량(三樑)을 얹은 간략한 구성을 하고 있다.
탁청정은 몸채에 딸린 정자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누정 양식으로, 측면의 칸 사이를 정면보다 각각 60㎝씩 길게 잡아서 평면 전체가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인상을 주고 있다.
정면과 측면 마루에는 계자각난간(鷄子脚欄干)을 돌리고, 가구는 주심포계(柱心包系)의 2익공(二翼工) 받침에 외목도리를 짜올려 처마를 이중으로 하였다. 이 집은 원래 예안면 오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1974년 현위치로 이건되었다.
탁청정(濯淸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있는 정자. 중요민속자료 제226호. 이 정자는 탁청정 김유(金綏)공의 종택에 부속된 정자로서 조선 중종 36년(1541)에 건립되었는데, 영남지방의 개인 정각으로서는 그 구도가 가장 웅장하고 우아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탁청정이라는 현판은 석봉 한호의 필적이며 대청 마루에는 농암, 퇴계, 금계, 청풍자 선생 등 당대 명현들의 시판이 걸려 있다. 원래는 낙동강에 인접한 오천리(외내)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4년에 오천 문화재단지내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정자는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팔작기와집인데, 측면의 간실[기둥과 기둥의 사이 = 柱間]을 정면보다 2척씩을 넓게 잡아 전체적으로는 정방형에 가까운 느낌을 주고 있다. 평면은 좌측간을 통간 온돌방으로 꾸미고 우측의 4간은 모두 우물마루로 꾸몄다.
온돌방의 하부는 고맥이를 돌렸으나 대청의 하부는 대청의 하부에는 기둥을 세워 누마루로 꾸미고 누마루의 주위에는 계자난간을 돌렸다.
주심포계의 이익공(二翼工)집인데 익공쇠서에는 주먹초와 부리초를 초새김하였다. 가구(架構)는 종량(宗樑)위에 연화각(蓮花刻)한 포대공(包臺工)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5량가(五樑架)의 견실한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