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며
이순원(소설가. 사단법인 바우길 이사장)
글을 쓰다 보면 사람에겐 사람으로서의 운명이 있고, 작품은 또 작품으로서의 운명이 따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근에 고향에 제주올레길과 같은 국민적 트레킹코스를 만들기 위해 ‘바우길’ 탐사에 나서면서 어쩌면 길에도 그 길만의 운명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관령 옛길을 걸으며 지금은 구도로라고 불리는 대관령 국도구간을 보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아주 예전에는 사람 발걸음으로만 넘던 오솔길이었던 것을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 고형산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비로소 우마차가 다닐 수 있게 대관령 산허리를 감고도는 아흔아홉 굽이의 수레길을 닦았다. 그는 길을 잘 닦는 것이 백성들의 편의를 위한 일이라 여겨 자신의 사재를 털어 이 길을 완공했다.
그러나 그는 대관령 길을 닦은 지 140년 후 무덤에서 관이 꺼내져 이미 백골만 남은 몸이 다시 잘리는 형을 받았다. 병조호란 때 오랑캐가 지금의 주문진으로 상륙하여 이 길을 따라 쉽게 서울로 들어온 것에 대한 치죄였다. 그런 후에도 대관령 수레길의 활용도는 점점 높아지고, 그의 업적 또한 재평가되어 나중엔 오히려 ‘위열(威烈)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길에는 이렇게 굽이마다 오래된 시간의 역사와 거기에 관계된 사람의 이름이 함께 양각되거나 음각된다.
‘바우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지는 이제 일년이 조금 더 지났지만, 이미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이 길의 생명력은 앞으로 ‘걷는 것이 건강에 이롭지 않고 해롭다’는 새로운 학설이 나오지 않는 한 인간의 걷기여행과 함께 영원할 것 같다. 전국적으로 100여 군데가 넘는 곳에서 개발되고 있는 수많은 트레킹코스 가운데 유일하게 민간주도로 개척되고 있으며, 총연장 160km의 길로 이 길로 오고 있는 하루 관광객의 수 또한 지리산 둘레길 전체구간에 비하여 오히려 적지 않다.
지난 토요일엔 전국에서 찾아온 수백 명의 학생들과 도서관 사사선생들과 함께 ‘바우길 걷기’ 행사를 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이렇게 세상의 우뚝한 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바우길의 스토리텔링 작업을 한창 하고 있다. 작가로서 또 길 개척자로 전국 걷기여행자들에게 바우길 백서와 같은 안내서를 내놓는 일이다.
얼마 전 또 ‘길과 문화’라는 주제로 전국의 공무원 100여명과 걷는 길 만들기에 대해 강연할 때에도 전국에서 모인 공무원들 모두 우리지역에도 이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밖으로 나가서는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길이지만, 지역 내부적으로는 아주 험하고 더러운 꼴을 수시로 겪으며 탐사한 길이다. 아마도 바우길의 운명이 그런 듯하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길인데도 지역 지자체의 의도적 훼방과 무시와 반대 협공 속에서도 순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또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탐사한 길이다. 그 누가 아무리 앞을 막고 방해해도 길을 찾아오는 사람의 걸음까지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우리가 걷는 길의 생명력은 인류의 걸음과 함께 영원해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길을 막으려 훼방했던 몇몇 개인의 사욕과 이를 비호하는 지역권력은 절대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고형산이 닦은 대관령 길에서도 보듯 길에도 저마다의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듯, 나중에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이름들과 이야기들이다. 바우길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바우길 안내서에도, 실제로 사람들이 찾아와 걷는 바우길 위에도 음각으로 혹은 양각으로 이 길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들이 새겨질 것이다. 그것 또한 태동부터 힘들었던 바우길의 운명인지 모르겠다.
첫댓글 2010년 11월 4일 강원도민일보 칼럼내용입니다.
앞으로도 바우길은 의연하고도 바른 모습으로 국민의 길로 나아갑니다.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셨을까 감히 짐작을 해봅니다.
언제나처럼 우리 바우님들 모두의 마음이 처음 시작했던 마음그대로 한결같기를 바랄뿐입니다.
세상엔 별놈이 다 있습니다.개의치 마세요.
이 길에서 얼마나 많은 바우님들이 생활의 에너지를 받고 가는지요...어려운 여건속에서 바우길 일구어가시는
이사장님과 탐사대 한분한분께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바우길 화이팅^^
바우길을 생각하면 늘 여러님들의 노고를 생각 아니할수 없슴다 감사 하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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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람과 만난다는 것이고, 마을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길의 이야기가 되고 문화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의 중요성...정말 우리가 절실히 느끼지요. 마을에 스며들고 이익되는 길이 되어야 하고, 마을과 소통하는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며칠 전 구정면사무소를 방문하고, 또 학산리 마을회관을 방문해서도 이 부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게 바로 문화겠지요.
바우길을 개척하시고 만든일들도 모두가 운명 입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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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걷는이도 운명 이고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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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으로 받아 들이고 사랑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모두가 아끼고 사랑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포남동사무소에 가서 도민일보 보았습니다.
고형산과 대관령길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감동적이네요. 선생님은 이 시대의 고형산이 아니신지... 강릉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대관령 옛길을 남편과 걸으면서 저는 누군가 만든 길 같다고 했고, 남편은 산의 지형이 이렇게 생겨서 저절로 생긴 길이라 했는데 이 글을 읽고 남편에게도 보라고 했습니다. 찾아 봐야지 하고 있던 참에 이사장님께서 올리신 이 글로 모든 궁금증이 해결 되었습니다. 대관령 옛길은 보물처럼 꼭꼭 숨겨두고 싶은 길어었습니다.^^
위의 능금나무님. 사실 작가로서 길에 대한 저의 자랑과 긍지와 행운은 바우길보다 한계령 쪽의 '은비령'에 있습니다. 그곳에 필례약수가 있어 원래는 필례령이라고 불렀던 그 길을 저는 작품 속에서 '은비령'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이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찾아가는 사람들 모두 '은비령'이라고 부릅니다. 작품이 길의 이름을 바꾼 것이죠. 세계에도 작품으로 지명이 바뀐 예가 거의 없는데, 그것은 작가로서 저의 행운이자 독자들로부터 과분하게 받은 아주 큰 선물이며 긍지이기도 합니다. 조금 성급한 생각이긴 하지만, 언젠가 그 길 어딘가에 <은비령의 작가>하고 제 이름 하나 양각으로 새겨질지도 모르지요.
바우길은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고향에 대해 늘 작품을 써왔고, 또 작품으로 고향을 알리는 일을 해왔지만 직접 고향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아주 힘든 결정으로 바우길 탐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그러기 전 저는 15년 전에 남들이 흔히 신의직장이라 부르는 직장에서 오직 글만 쓰기 위해 집으로 들어온 전업작가였는데, 그런 전업작가가 다시 글을 잠시 유보하고 고향에 실제적 성과가 나타나게 하기 위해 길 위에 나선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바우길은 제게 은비령처럼 작가로서의 긍지와 축복같은 행운을 안겨주는 길은 아닙니다. 인간의 걷기운동과 걷기여행이 계속되는 한 바우길이라는 이름 아래 어느 한귀퉁이에 제 이름과 이기호 국장 이름도 새겨지겠지만, 개인적인 탐욕 아래 이 길을 자기들의 이권처럼 빼앗으려던 자들과 또 그런 지역 토호세력과 마피아적 커넥션처럼 야합하여 이 길에 바우길의 이름이 아닌 다른 길의 이름으로 표지판까지 박아가며 이 길을 방해했던 자(그가 자치단체의 장이든 누구이든 말이죠)의 이름 역시 앞으로 장구한 세월 동안 바우길 위에 깊이 음각되어 갈 것이란 것이죠. 그게 또 우리가 살아가고 걸어가는 길 위의 스토리텔링이구요.
은비령도 바우길도 길과 함께 선생님의 함자도 오래 기억되리라 믿습니다. 쉬운 길을 두고 늘 어려운 길을 택해 가시는 선생님의 발걸음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길을 거스르는 은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