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강원도 짧은 여정을 마치며
내게 있어 여행은 늘 설렘으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앞두고 행여 비라도 오면 어떨까 싶어
조바심 치며 자다 말고 빼꼼 밖을 내다보기 수십 번,
정작 아침에 엄마가
“소풍 가야지? 소풍 안 갈 거야?”
깨우는 소리에 허둥대던 기억,
불치의 병처럼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오늘도 잠을 설치고 서둘러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언제나 봐도 답답했던 가슴 탁 트이게 하는 바다.
쪽빛 가을빛을 닮아 그런지 오늘 따라 더욱 푸르름이 더하고
아까부터 갈매기 한 마리가 햇살에 물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 속으로
마치 번지 점프하듯 곤두박질쳤다 솟구치며
바람을 가르듯 우아한 몸매를 뽐내듯 내 머리 위를 빙그르 선회한다.
어릴 적 뜬금없이 누이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누야?”
“응”
“왜 바다는 파랬치?”
“바보, 그것도 몰라? 하늘빛을 닮아 그렇지”
그랬다. 바다는 누이 말처럼 가을 하늘빛을 똑 닮은 형상을 하고 있다.
가만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깨운다.
사진 좀 한방 눌러달란다.
포즈를 취하는 커플,
부러움에 하나… 둘… 셋하며 셔터를 눌러준다.
여자가 눈을 감았다며 다시 한번 더 눌러달란다.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울적함이 밀려온다.
그런 내 울적함을 눈치 챈 녀석(파도)이 찡끗 추파를 던진다.
훗훗, 누가 젬병 아니랄까 봐
녀석은 발만 슬쩍 간지른다.
암튼 녀석을 좋아 않을래야 어찌 좋아 않을 수 있으랴.
사랑의 표현 서툰 것까지 꼭 나를 닮아 가지곤....
친구놈(?)에게 전화를 때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반갑게 거기 어디냐고?
요즘 어떻게 지나나 궁금해 텔레퐁을 때렸드만
어떤 이상한 여자가 받아 좀 당혹스럽다나?
그동안 영화사사무실을 내고 휴대폰을 바꿨다고 하자
대뜸 전화번호가 바뀌었으면 신고를 해야지라며
지금 당장 달려오겠다고 마음에 준비하고 기다리란다.
마음의 준비?
그럼 목욕단장하고 조신하게?
헉!! 이럼 안돼는데.
맹세코 고백컨데
'처..처음이라서리?'
모라?
이 썩을 인간아,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야글 하라고라?
"아,나의 조크~~~~!!"
암튼 기자 생활하다 생뚱맞게 어느 날 갑자기 생판 연고도 없는
속초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작은 카페를 냈다.
비가 오거나 비가 내리는 뻑 가는 스타일로
가끔 전화해 파전 부쳐놨으니 어서 올라오라고 유혹한다.
이 인간이나 나나 언제나 철이 들는지?
속초에서 얼마나 달렸던지 카페문을 닫고 단걸음에 강릉으로 달려왔다.
선교장 근처에서 초당부두와 순두부를 시켜 저녁을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없던지?
전에 여자 친구 같았으면 당장 주인을 불러 한마디 했다.
이렇게 맛없게 음식장사를 하려면
남들에게 폐 끼치지 말고 당장 그만 두라고…
그땐 그녀의 어찌 보면 당돌하고 직설적인 성격을 이해 못했는데
지나고 나니 좀 알 것 같다.
저녁을 같이 먹고 발바닥에 땀띠 나도록 속초로 달려가
밤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창가에 앉아 차를 한잔 하며
서울에서 아둥바둥 살지 말고 여기 내려와 글을 쓰며 살라 한다.
공기도 좋고 설악산도 있고
특별히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 한구석에
내 자리를 만들어주겠다나 뭐래나?
가만.
이 인간이 시방(충청도 사투리) 내게 추파를???
암튼 상상에는 커트라인이 없다고
당신들도 나처럼 나일 먹어 봐.
긴긴 밤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도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스산한 바람하며
관절 마디마디 스민 고독이 얼매나 시려오는지를....
암튼 요즘 장사도 잘 안돼는데
"너 딱 걸렸어!"
찜하듯 콧잔등에 더러운 참을 발라버린다.
몸도 피곤하고 먼저 설악비치로 향했다.
해수온탕에 피로를 풀고 2시쯤 꿈나라로 골인.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 번쩍 눈을 떠보니
웬 낯선 여자가 내 팔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 누구냐고 물으니 날 모르겠냐고 도리어 날 보고 반문한다.
"누구...?"
정말 날 모르겠냐며,
정말 모르겠단 내 말에
자신의 아내도 모른다며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내 아내?
(가만 내가 언제 결혼한 적 있었던가???)
암튼 내 아내는 아주 오래 전에 죽었다고
설사 당신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고..
그러자 눈물을 글썽이며
자꾸 자신의 얼굴을 만져 확인해보라고 한다.
그러지 말고 당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니 어서 가라고?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한번 만져보라고 애원하길래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는 셈치고 손을 뻗는 순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여자의 얼굴을 통과하는 찰라 화들짝 잠에서 깼다.
5시 58분,
사위는 아직 어둠자락에 갇혀 어두컴컴하다.
꿈 치고는 너무 생생한 것이 잠은 오지 않고
엎치락뒤치락하다 아침을 맞았다,
이른 아침 호젓이 영랑호를 거닐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9시가 되도 이 인간이 오지 않는다.
뭐 9시까지 설악비치로 차를 갖다댄다고?
전화를 했더니 이제 나가려고 한다나 뭐래나?
암튼 순진하게 곧이 곧 대로 믿은 내가 바보지?
투덜거리며 영랑호를 거닐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뒤에서 빵빵댄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누군가 파란 물감을 뿌려도 그렇게 하긴 힘든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그런 가을 하늘이다.
음악을 쾅쾅 울리며 바닷길을 따라 내려가다
주문진을 지나 연곡으로 해서 오대산 소금강으로 접어 들어갔다,
서른,
다들 직장에서 승진이다 결혼이다 뭐다 해서 바쁠 그런 나이에
도피하듯 밤기차를 타고 흘러든 곳이 바로 여기다.
삼십대,
나의 삶을 온통 지배했던 꼬마를 만났던 곳으로
10년 동안 세번을 만났고 올봄 세번째 헤어지던 날
"세번의 만남과 세번의 헤어짐으로 족한 만큼
우리 이 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각설하고 들어서는 초입부터 단풍이 눈길을 사로잡고
하마터면 9시 뉴스를 탈 뻔 했다.
“묘령의 남녀, 동반 자살!”
일촉즉발의 순간 브레이크를 잡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하마터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아무래도 새벽녘 꿈이 상서롭지 않드만
이 인간이 날 그렇게 보내려고 그랬나 싶은게...
소금강이란 금강산의 축소해 놓은 듯
기기묘묘하게 둘러친 병풍바위하며 깊은 계곡,
온통 불을 살라 놓은 듯한 단풍,
친구 놈은 따라오기를 잘 했다며 연신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야, 인간아 침 좀 닦아라
니 나이 꺽어진 고희데이~
다음부터 이런 좋은 곳을 혼자만 줄기지 말고
나도 데려가 달라나 뭐라나?
차라리 나 보고 자살해라 하라
(속으로만-안 그러면 바로 "축,사망!" 임다)
구룡폭포에서 김밥을 먹고
서둘러 내려와 진고개로 해서 오대산 월정사로 향했다.
진고개로 향하는 5,6백고지까지 길 양편으로
마치 융단을 깔아놓은 듯
온통 울긋불긋 산을 물들인 단풍이 눈길을 사로잡고
디지털캠코더가 있다면 친구들에게 담아 보여주고 충동이 인다.
국사시간에 나를 그토록 괴롭혔던 월정사 10층 석탑으로 해서
상원사 동종,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으로...
원래 오대란 말은 중대(월정사), 동대, 서대, 남대(지장암),
북대(상원사) 이렇게 다섯 개 절을 이르는 말로 중국에서 유래됐으며,
석가탄신일 하루 동안 이 모든 절을 돌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어 불자들로 북적댄다.
바쁜 와중에 1박 2일의 짧은 강원도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를 떠올려본다.
*오늘의 한마디*
여행이란 시간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사랑유예-
첫댓글 님의 여행기를 잘 봤습니다. 정말 잘 다녀오셨네요.... 표현이 너무 맛있게, 재미있게......그리고 님의 글을 읽기만 해도 강원도의 영상의 그려집니다 신선한 감동이야요...
ㅋㅋㅋ 사랑유예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주말 되세요.
사랑유해 님 지금 강원도 많이 춥지요....... 저도 고향이 그쪽이라~ 눈도 많이 내렸을거고요. 거기 살적엔 눈이 지겨 원는디 지금은 아랬 지방에 사니까 눈이 내리는것을 보면 부럼데요.^^ 기냥 반가워서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좋은 날 되십시요.....
여행 잘다녀 오셨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