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는 원래 두 팔보다 가볍다
구식 문학 작품이나 인생의 명언 가운데서 사람들이 남에게 권고하는 말로서 “몸 바깥의 사물은 말할 가치도 없다.”(身外之物, 何足掛齒)라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뜻을 이루어 받는 영화와 총애, 뜻을 이루지 못하여 당하게 되는 수치와 모욕, 이해 ․ 득실은 결국 우리 생명체 몸 밖의 사물에 지나지 않기에 이해의 고비에 처하였을 때 주저하지 않고 사물을 버리고 목숨을 구하는 일은 흔히 보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몸 바깥의 사물을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상식적인 도리로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십여 년 전 어떤 학생이 수업 중에 “저에게 애정 철학의 함의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제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이른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므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거나 혹은 당신을 사랑할 필요가 없으면 곧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아의 이기심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입니다. 사실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물론 타인은 더욱 아닙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역시 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나란 무엇일까요? 신체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이 중병을 앓고 있을 때 의사가 선고하기를, 당신의 중요한 지체나 기관을 잘라내야만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 사람들은 대부분 의사의 의견에 동의하여, 차라리 생명을 지닌 이후 동고동락하며 지내왔던 지체나 기관을 고통을 참으며 잘라내 버리고 자아 생명이 다시 살아가기만을 꾀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설사 우리의 신체라 할지라도 중요한 이해의 고비에서는 역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당신이나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명나라의 어떤 시승(詩僧)은 ‘천하는 원래 두 팔보다 가벼운데, 세상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귀한 보물을 중시할까?’(天下由來輕兩臂, 世間何苦重連城)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두 팔보다 가볍다는 고사는 장자(莊子) 잡편의 양왕편(讓王篇)에 나옵니다.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침략한 땅을 서로 다투고 있었다. 자화자(子華子)가 소희후(昭僖侯)를 뵈었을 때 소희후는 이 다툼 때문에 근심스런 낯빛을 하고 있었다. 자화자가 말했다. “이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님 앞에서 서약서를 쓰게 했다고 합시다. 그 서약서에는 ‘왼손으로 이 서약서를 움켜잡는 자는 오른손을 없앤다. 오른손으로 움켜잡는 자는 왼손을 없앤다. 그러나 이 서약서를 움켜잡은 자는 반드시 천하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자, 임금님께선 이 서약서를 움켜잡을 수 있겠습니까?” 소희후는 말했다. “나는 잡지 않겠다.” 자화자가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이런 일로 미루어보건대, 두 팔은 천하보다도 소중합니다. 몸은 두 팔보다도 소중합니다. 한나라는 천하보다는 훨씬 가벼우며 지금 위나라와 다투고 있는 땅은 한나라보다도 훨씬 가볍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자기의 몸을 괴롭히고 목숨을 해치면서까지 그 땅을 잃는 걸 괴로워하겠다는 말입니까?” 소희후는 대답했다. “정말 좋구나! 내게 가르쳐 주는 자는 많으나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韓魏相與爭侵地,子華子見昭僖侯。昭僖侯有憂色。子華子曰:今使天下書銘於君之前,書之言曰:左手攫之則右手廢,右手攫之則左手廢。然而擺之者必有天下。君攫之乎?昭僖侯曰:寡人不攫也。子華子曰:甚善。自是觀之,兩臂重於天下也。身亦重於兩臂。韓之輕於天下亦遠矣。今之所爭者,其輕於韓又遠。君固愁身傷生以優戚不得也。僖侯曰:善哉!教寡人者眾矣,未嘗得聞此言也。
그러므로 말하기를 “비록 부귀하더라도 지나친 보양(保養)과 향락 때문에 몸을 상하게 하지는 않고, 비록 빈천하더라도 지나치게 이익을 탐하고 추구하느라 몸을 해치지는 않는다.”(故曰: 雖富貴不以養傷身, 雖貧賤不以利累形)고 하였습니다. 노자도 이 때문에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다면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吾所以有大患者,為吾有身,及吾無身,吾有何患)라는 기본 철학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시 더 나아가 말하면, 천하에서 왕 노릇 하는 왕후장상들은 이른바 ‘한 몸에 천하의 안위(安危)가 묶여있다’(一身系天下安危)는 가장 큰 인식을 가지고 반드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천하의 온 백성들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며 전 인류에 대한 큰 사랑을 발휘해야만 비로소 그에게 ‘천하의 안위를 한 몸에 묶는’ 중임을 맡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온 백성이 희망을 걸고 천하를 믿고 맡기는 기본 요점이기도 합니다. 같은 도리를 다른 말로 한 것은 바로 증자(曾子)의 말입니다. “어린 고아를 맡길 수 있고, 사방 백 리인 지방의 운명을 맡길 수 있고, 중대사에 임해서는 그의 뜻을 빼앗을 수 없다면, 이런 사람은 군자겠지? 군자야!”(可以托六尺之孤,可以寄百裡之命,臨大節而不可奪也。君子人歟?君子人也!)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이 20세기에서 경험하고 있는 일로서, 미국식 민주선거를 본뜬 민의(民意) 대표자들은 두 팔을 번쩍 들고서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하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며 상대방의 허물이나 비밀을 들춰내어 공격하면서 자신에게 한 표를 던져달라고 소리 지르는 선거운동을 보노라면, 곁에서 바라보는 자로서 자신도 모르게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의 깊고 조용한 심정이 연상됩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천하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라, 자신을 사랑하듯이 천하 사람들을 사랑하라.”(貴以身為天下,愛以身為天下) “천하는 원래 두 팔보다 가벼운데, 세상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귀한 보물을 중시할까?”
역사와 인생을 말한다에서
첫댓글 고맙습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