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설(명절)에 썰을 풀다
설명절 부모 찾아온 고마운 자식내외와 대화 중 며느리 말인즉, '아들(손주) 낳아 키우는 것이 힘이 들어도 개 키우는 것보다 보람을 느낀다'라고 하였다.
순간 그래도 며느리는 잘들어 왔구나! 하는 생각, 내가 말하길, '자기는 개키우며 젊은이들더러 애낳으라고 하면 좀 우습지 않겠나?'하고 보탠뒤, '요즘 세태라면 결혼 안하고, 애 안낳는 젊은이들 백번 이해한다'고 말했것다.
무거운 마음에 애 엄마(나는 아직도 그렇게 표현)에게 의논하여 지니고 있던 얼마되지 않는 패물 자식에게 넘겨주고, 별것도 없는 재산내력(來歷) 알려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걸 두고 누구는 바보스럽고 후회할 행위랬지만, 거기에 있는걸 뭘 넘겨주고 자시고 하는게 이 풍진(風塵)... 앞날 까마득한 세상에 자식 낳은 부모된 잘못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여 누군가 갈때가 되었다고 오해는 하지 않을런지...
그런데 아들내미 다른 또 뭐가 없는지 궁금해하는 느낌에 요즘 네자식 내자식 할 것없이 자식넘들이 정신문명보단 물질문명에 더 정통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명절이래야 거창한 가문의 역사도 없고, 그렇다고 맹숭맹숭 불편하게 얼굴만 서로 쳐다보는 것도 거시기 할 것 같았다.
전통적 부전자전(父傳子傳)을 마다하고 다행이 술 안먹는 돌연변이 아들 제껴두고, 그나마 한잔쯤 권하면 사양못하는 마음여린 며느리에게 막걸리를 한컵 넘겼다.
그나마 내미는 술잔 받아 주는 며느리가 대견스럽다. 이틀 동안 애 엄마, 아들 곁에 두고 강단 가지며 살아왔던 과거사 무용담(고뇌?)을 하고 또 애기 했었다.
생각하니 감회 + 후회도 남고, 그시절엔 나만 그랬던게 아니었다. 과중한 업무에 요즘 젊은이들 같으면 직장 그만두네 마네 별별 핑계 다 대었을 것이란 생각에 웃음이 떠올랐다.
마지막 구절은 용기내어 '그래서 내가 술을 마시지 않고 견딜 수 있었겠냐?'를 강조하고, 설대목에 밀린 외상갚듯 썰좀 풀고, 그래도 후배들 먼저가고 미안하게도 살아 남아 예까지 왔노라고...(그깐걸 가지고 이 설명절에 혼자 무슨 독립운동이나 치룬듯 썰 풀어 대기는 ㅎㅎ)
서울살며 많지않은 수입에 자식 사립 초등학교 보내는 아들이 인제서야 정신이 좀 드는갑다. 연금제도며, 노후 생활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내게 묻고 나섰기에 '개천에서 용나는 이야기 아니어도, 세상은 불확실의 시대이니, 고장날 브레이크를 미리 점검해야 한다'고 선각자(先覺者)인체를 했다.
하긴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애 엄마 애긴즉은, 나라는 인간은 세상 걱정근심은 다 안고 산단다. 그래도 나는 솔직히 '이나라 이 백성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 떨거지 하나도 없으니 하찮은 필부인 날망정이라도 걱정해야지 않느냐?'라는 지론이다. 나 개인의 이익에 목매지 않음이 다행이다.
그런데 자식과 며느리도 마누라와 같이 그런 생각 뭐하려 하느냐? 하니 할말이 없다. 뭔가는 죽기전에 꽥소리 한다고 나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그래 좋다. 모두가 꽃길 걷자. 그런데 그 꽃길은 누가 만들고, 고장나면 누가 보수한다니?"
말이 씨가 된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보란듯이 새해 아침부터 보일러가 고장이났다. 내가 재수 없는 소리 지껄여서 그런건가? 절대 아니라는데 한표를 던졌다.
평생 냉방에서 자다가 늙어 면역성 약해져 가족들 애먹일 질병걸릴세라 조절기 0~1단계 사이에 놓고 자던 전기장판 손자 넘겨주고, 맘편하게 천정을 보았다. 보온 침대 곁에 비워두고 할 배부른 소리도 아닌 것 같다만...
'실존(實存)은 본질(本質)에 앞선다.'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하늘에서 맛나, 메추라기 떨어지는 세상 아님을 안 후부터 나는 믿음이 약해지고 겁이 났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생활철학자가 되어간다.
목마른 넘이 물을 켜고, 우물을 판다. 배고픈 넘이 허덕거린다. 그런걸 우선 실감하고, 누군가의 힘든 삶에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어져 때론 내가 성인 아니면 바보가 되어감을 스스로 느낀다.
정초부터 '뭔 귀신 씬나락 까먹는 소리' 늘어 놓냐면 할말은 없다. 묵은 새해를 맞이하여 냉방의 온도와 잠못듬의 불편함에 정신 몽롱 스쳐가는 생각을 적어 본 것뿐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한차례 기지개를 켠후 밝아오는 여명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에 기도했다. (주어 생략) '부디 이 세상에 전쟁과 기아가 없어지고, 나누어 먹으며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는 영광(자비)을 허락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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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글 다운 글 접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