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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저주에 걸린 백호여왕님 ※※
♥ 「작 가」 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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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방」 장르소설방
♥ 「출 처」 ╋소설나라╋ (http://cafe.daum.net/sosuln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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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드디어 이 나라를 벗어나 다음 목적지로 가게 되는 주령일행.
모두다 평화로워 보이는데 신경쓰이는 건 혼이 없는 몸처럼 멍해있는 주령.
" 괜찮아 ? 내가 없어줄까, 주령아 ? 헤헤 "
강유의 말에 살짝 고개를 젓는 주령. 인형처럼 무미건조한 무표정은 평소의 무표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휘경도 걱정되는지 걸으면서 자꾸만 주령이를 힐끔거렸다.
물론 강유도 가면서 계속 주령이에게 말을 걸며 걱정했다.
" …후, 강유, 너 또 무슨 일 저질렀냐 ? 어제부터 주령이 왜저래 "
계속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묻는다는 조금 건방진 듯한 태도로 묻는 휘경.
강유와 비류가 서로를 마주보며 다 끝났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의에 찬 눈으로 휘경을 바라보는 강유.
" 사실은 … "
말 하려다가 주령이를 쓱 한번 보고는 멈춰서서 휘경의 귀에 대고 속닥거리는 강유.
비류는 행여나 주령이가 들을까 노심초사하며 계속 주령이를 주시했다.
" …해서 기억을 되찾고 있는 중이야. 기억을 찾는데도 일주일이 걸리니까 … "
" 그럼 일주일 동안은 계속 저상태란 말야 ? 남자모습일 떄도 ? "
" 으, 으응. 하지만 일주일 후면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질꺼야!!! 히히, 나만믿어 ! "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해맑게 말하는 강유.
휘경은 주령을 한번 쓱 보고는 괜찮겠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강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애 취급당했다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커다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는 강유.
" …시끄러워 "
무미건조한 주령의 한마디에 단번에 조용해진 강유.
그들은 다시 걷기시작했다. 일단 그들은 체력하난 끝내주니까 (작가는 괴롭히는걸 좋아해요♥)
" 주령아, 주령아!!! 우리 이제 어디가 ? "
한번 조용해지자 이건 조용한 분위기를 넘어서서 완전 침울한 분위기라고 생각하는 강유.
강유는 또다시 목소리를 높히며 주령에게 말을 걸었다.
별로 상관없는지 무표정 상태로 강유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주령.
" 제르코피아 산맥 "
딱 한마디 하고는 계속 걸어가는 주령. 강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산맥을 ?
이떄까지 산맥이나 숲, 등을 거쳐 다음 마을로만 향했었는데 이번엔 그냥 산맥이라니.
강유는 물론이고 비류도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휘경아, 제르코피아 산맥이 어디냐 ? "
" …글쎄. 여긴 백호의 땅이니까. "
휘경은 관심도 없는지 언제나처럼 또 다시 책을 읽으며 꿋꿋히 걸어갔다.
아무래도 휘경은 관심이 없는것은 정말 철저히 무시하는 잔인한(?) 성격을 가진 것 같다.
궁금한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걷는 강유.
신경쓰이는지 주령이 강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 제르코피아 산맥에 헤즐링이 살고있어 "
※헤즐링 : 500살이 되기전까지의 어린 드래곤
주령의 말에 점점더 모르겠다는 듯 머리에 물음표를 한가득 달고서 또 다시 갸웃거리는 강유.
이번엔 답 해주기 귀찮은 지 주령은 강유를 바라보지도 않고 앞을 향해 계속 걸었다.
비류는 주령의 말을 듣고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 헤즐링이라 … "
원래 헤즐링은 흔치 않다. 그리고 드래곤들은 헤즐링을 무척이나 아끼기 떄문에 헤즐링이 무슨 사고를
쳐도 보통은 혼내지 않고 그냥 보내준다. 하지만 헤즐링이 사람으로 변하거나 하면 헤즐링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엘프나, 몬스터, 다른 드래곤들은 사전에 헤즐링이 몇마리나 있는지,
또 어디사는지, 종류(레드,실버,골드..)가 무엇인지 알아놓는다.
그것도 사방신이 다스리는 동서남북으로 갈라 자신이 사는 방위쪽만 알아놓는게 아니라,
동서남북 전부에 사는 헤즐링을 다 알아놓는것이다.
" 아, 근데 왜 헤즐링한테 가는건데 ? "
" …비류야 !! 그거야그거 !! 헤헤, 강유도 그게 궁금했어 ! "
듣기 싫다는 듯 눈치 못 챌정도로 살짝, 진짜 아주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파는(...) 주령.
아무래도 대답하기 귀찮은가 보다.
냉철이니, 무섭다느니 어쩌지 해도 주령은 귀차니즘의 선두주자니까 말이다.
" …가면알아 "
그래도 역시 결국은 대답해주는 주령.
그리고 아직까지는 주령의 노예(..;)이니 만큼 주령의 네글자에 입 딱 다무는 비류와 강유.
…작가는 말 잘듣는 남자들이 좋다.(어이;;)
" …어느정도 더 가야돼 ? "
" 귀찮으니까 공간이동할까 "
" 지, 진짜 ? 우와 !!! 그렇게 하자!! 응응 !! "
예전에는 무조건 걸어야 하던 주령이었는데, 역시 성격이 변하기는 변했나 보다.
물론 귀차니즘은 그떄도 있었던 거였지만.
어쩄든 공간이동을 한 주령일행. 그들의 눈 앞에는 온통 산이었다.
" 아, 말하는 걸 깜박했는데 "
" 으아아아아악 !!!!!!!!!! "
" …헤즐링 부모가 유명한 골드드래곤 아로토스거든 "
곳곳에 숨겨져있던 장애물들에 의해 상처가 생긴 강유.
그러게 주령이 말 끝까지 좀 듣지.
주령이가 말한 골드드래곤 아로토스는 웜 급 드래곤으로 올해 2975살이었다.
아로토스는 드래곤들 사이에선 악명높은 드래곤이었다.
또래 드래곤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실력과 머리로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상한 짓거리를 하두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순간도 자신의 안전을 잊지 않는 드래곤이여서,
보통 드래곤들은 자신의 레어 반경 100M까지만 함정을 파놓는데 이녀석은 반경 250M까지 함정을
파 놓는 것이다.
" …정말 사람 귀찮게 하는 현무라니깐 "
손짓한번 하자 공중에 떠오르는 여러 장애물들(폭발하는 부적, 덫 등;)
강유를 치료해주고는 레어쪽으로 걸어가는 주령.
모두들 주령의 뒤를 따랐다.
" …여어, 아로미엔 "
" 어 ? 누나 !!!!! "
사람모습을 한 꼬맹이가 레어안에서 막 튀어나오더니 주령의 품에 폭 안겼다.
주령이랑 비슷한 키의 남자아이. 곱슬거리는 긴 금발에 황금색눈이 이 남자아이가 주령이 찾던
헤즐링이라는것을 알려주었다.
" 누나, 무슨일이야 ? 나 보고 싶어서 온거야 ? "
" 그게 아니라 나, 지금 기억이 엉망이야. 한마디로 치료받으러 온거지 "
주령의 말에 아로미엔은 주령의 머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아로미엔의 손이 황금빛으로 밝게 빛을 내었다.
" …누나 "
" 응 ? "
" 저주네, 이거 "
" 응. "
엉망이 된 기억의 원인까지 알아낸 아로미엔.
아로미엔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했다.
" …좋아하는 사람이랑 키스하면 되잖아 "
아마 독자여러분들께서는 2편에서 강유가 말한 저주푸는 법을 보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좋아하는 사람과의 키스였고, 주령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지금처럼 여행을 하게 된것.
아로미엔이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령은 그떄처럼 패닉상태에 빠졌다.
" 저기 난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아로미엔 "
" 거짓말. "
아직도 약간 붉어진 얼굴로 주령을 쳐다보는 아로미엔.
갑자기 그 광경을 잠자코 보던 강유가 얼굴이 붉어져서는 아로미엔과 주령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로미엔과 주령의 사이를 띄어놓는 주령. 주령과 아로미엔 둘 다 강유를 쳐다보았다.
" …주령아, 물러서! 이자식이 널 좋아한단 말야!!! 무슨 음흉한 짓을 할 지 몰라!!!! "
아로미엔에게 삿대질을 하며 주령에게 말하는 강유.
뒤에서 비류가 막 응원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골드드래곤인 만큼 자존심이 상했는지,
엄청 화나있는 아로미엔
" 누나!!! 이자식도 누날 좋아해요 !! 이자식은 변태뿐만이 아니라 로리콤영감이라니까요 ?! "
아로미엔의 말에 싸해진 공기. 강유는 온몸이 굳어져서 끼긱끼긱소리를 내며 아로미엔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겼다는듯 승리의 미소를 짓고있는 아로미엔.
뒤에서 비류와 휘경이 억지로 참는 듯 끅끅 대며 웃고있었다.
주령은 별 상관없는듯(;;)
" …내, 내가 …변태 로리콘영감 … ? "
" 그래!! 너 현무수령이지 ? 현무수령이면 3000살이 넘은 영감이잖아 !!! 누나보다 나이 많잖아 ! "
그랬다. 따지고 보면 겉모습은 5,6살정도 차이나 보이지만 실제로는 2000살이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보통 신수들이 결혼을 할 떄의 나이차는 100~200살 정도 차이난다.
그 이유는 나이에 따라 레벨(실력)이 많이 차이나기 때문에 적어도 500살 이상 나이차이가 나면
사는데 지장이 많이 오기 떄문이다. 그런데 주령과 강유의 경우는 2000살이나 되니.
" 그, 그러는 너는 !!!! 넌 주령이 보다 어리잖아!!! "
" 쿡, 뭘 모르는군. 난 이제 3년만 있음 헤즐링에서 벗어나는 497살이란 말야!!! "
아로미엔의 나이를 듣고 막 손가락을 움직이며 나이계산을 시작하는 강유.
그도 약한것이 있었던가. 몇분이고 손가락만 움직여대는 강유를 보며 뒤에서 비류의
크디큰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 …바보. 나랑 누나는 505살 밖에 차이안나 !!! 너보단 낫다구 !!!!!!!!! "
그리고는 돌이 되어버린 강유를 지나쳐 멀찍이 떨어져 있는 주령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로미엔.
다시금 그의 얼굴은 귀엽게도 약간 붉어져 있었다.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로 아로미엔을 바라보는 주령.
" 누나! 나 누나 좋아해요 ! "
그리고 순식간에 주령의 얼굴을 잡는 아로미엔.
주령의 얼굴과 아로미엔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 졌다.
22
갑자기 아로미엔이 뒷걸음질 쳤다. 주령의 등 뒤에 있던 그들은 무슨일인가 싶어,
아로미엔과 주령의 옆모습이 보이는 곳으로 살짝 이동했다.
아무 감정 없는 눈빛을 하고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있는 주령.
아로미엔은 약간 섭섭한 듯 주령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상황파악은 끝낸 듯.
" …누나, 역시 저 안되는건가요 "
" 미안하지만 난 널 좋아하지않아. 뻔뻔하게 보일 진 모르겠지만, 기억을 짜 맞춰주겠니 ? "
" 알았어요 ! 난 포기하지 않을테니까요 !! 절 따라오세요 "
의외로 아로미엔은 기분이 빨리 전환되었다.
금방 기분이 풀렸는지 귀엽게 웃으며 주령의 팔에 매달리는 아로미엔.
주령도 아로미엔을 남자로 보고 있지않을뿐이지 꽤나 아끼는 듯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느새 돌에서 원상복귀에서 울상을 지으며 두사람의 뒷모습을 보고있는 강유.
비류가 강유의 어꺠를 토닥거려 주었다.
" 아버지! 누나왔어요 ~ "
" …아 , 주령님 ! 예끼, 이녀석! 누나가 아니라 ㅂ… "
" 봉인 "
아로미엔에게 아버지라고 불린 20대 중반의 꽃미남이 주령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려 하자,
주령은 약간 싸늘한 표정을 짓고서 살짝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입술이 딱 붙어가지고는 아무말도 못하게된 아로미엔의 아버지.
-엔슬루, 미안하지만 지금 사방신들에게 내가 백호란 거 들키면 안되
-아, 그, 그러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조심하도록 하지요
역시 드래곤중에 가장 성깔 드럽고, 가장 드래곤들이 싫어한다는 드래곤, 엔슬루도
백호수령 주령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제 아무리 지가 난다긴다 하더라도 신에게까지 영향이 미치겠는가 ?
" …기억이나 제대로 짜 맞춰줘 "
" 알겠습니다. "
주령의 머리위에 크고 하얀손을 살짝 올려놓는 엔슬루. 그의 손에서 하얀빛이 세어나와,
주령의 머리속에 스며들었다. 약간 헬쓱하게 질리는 주령의 얼굴.
비류, 강유, 휘경. 특히 강유는 약간 떨기까지 하며 주령의 얼굴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곧이서 핏기하나없는 얼굴로 꺠어나는 주령.
" 이틀정도는 푹 쉬어야해요, 누, 아니 주령님. 아, 그리고 드릴께 하나있는데요 "
비틀거리는 주령을 침대로 앉히고는 어딘가로 가는 아로미엔.
아로미엔은 곧 두 팔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어린백호를 한마리 안아들고 주령에게로 왔다.
주령은 물론이고 모두 아로미엔에게 안겨있는 어린백호를 보며 놀라워했다.
그렇다. 작가의 실수(?)떄문에 없어져버린 무현이었던 것이다 ! (10편참조)
원래는 주령이와 같이 있었지만, 주령이의 상태가 강유와 비류덕분에 안 좋아졌을떄,
아무도 신경쓰지않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 아직 어린주제에 신력이 제법이더라구요 ~ "
" …무현… "
" 큐우 ? "
약간 화나있는듯한 주령의 표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무현.
주령은 그런 무현이를 보자 화가 약간은 풀리는 지 한숨을 내쉬며
아로미엔에게서 무현을 넘겨받는(?) 주령.
무현은 자신도 주령을 그리워하기라도 한듯 주령의 품 안을 자꾸 파고들었다.
" 그럼 하루만 신세지고 바로 떠날께 "
" 응, 누나! …아, 하하 아니 주령님 "
[ * * * ]
하루 푹 쉬고 원래 일행이였던 무현까지 합해서 총 5명이 된 그들.
주령은 무현이 있어서 그런지 하루만 쉬고도 멀쩡, 아니 오히려 더욱더 건강해진 듯 했다.
기억이 돌아와서 혼동하는 일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주령의 기억이 돌아와서 더욱더 불행해진 자들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현강유, 주비류.
" …흐음, 두분은 제 노예시지요 ? 후후 "
게다가 한층 뒤틀린 성격까지. 예전처럼 존댓말을 쓰고 차갑고 냉철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돌아간
주령이. 그러나 개싸가지(..;)버전의 성격도 약간 남아있어서,
예전에는 별로 강유와 비류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그런 얄미운 짓은 안했었는데,
지금은 은근히 강유와 비류에게 얄미운짓과 온갖 얄궂은 일들을 시켰다.
" 앞으로는 적당히 공간이동도 할 테니 여기서 쉬도록하죠. 두분은 얼른 불을 피우세요 "
" 에 ? 휘경이는 ~~ "
떼를 쓰는 강유. 의외로 비류는 성질을 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비류는 예전에 자신의 다혈질을 참지못하고 주령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떄 주령은
비류를 따로 불러 잘 타일렀다고한다.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쩄든 그 무렵부터 비류는 주령의 말에 복종을 했다는 ..
" 휘경님은 요리를 하시지 않습니까. 강유님, 자꾸 그러시면 … "
예쁘게 씨익 웃는 주령. 아무리 강유가 주령을 좋아하고 주령이 웃는것을 좋아한다지만,
왠지 주령이 이렇게 웃는걸 볼떄마다 무서워 지는건 어찌할 수 없었다.
" 불피우는 대신 무현이를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
옆에서 귀엽게 재롱을 부리던 무현을 자신의 얼굴에 갖다대고 강유와 시선을 맞추는 주령.
첫 만남에서부터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무현과 강유, 비류.
특히나 강유는 더더욱 사이가 좋지 않았기 떄문에 무현이를 돌본다는것이 탐탁지 않은게 당연했다.
역시나 고개를 마구마구 휘저으며 나뭇가지들을 잽싸게 모아 불을 지피는 강유.
주령이 강유가 안 보는 틈을 타 사악하게 미소지었다.
" …다음마을은 어디지 ? "
" 다음마을부터는 코린왕국이에요. 이 나라에는 곳곳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지요 "
" 마도왕국인건가 ? "
" 네. 나라가 크긴하지만, 마법진이 있으니 2일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겁니다. "
동서남북으로 갈려져있는 대륙. 그리고 한 방위에 큰 나라가 3개정도이며, 작은 나라가 2개정도있다.
큰 나라들은 제국이며, 작은나라는 공국이였다.
주령이 다스리는 이곳에서는 큰 나라가 2개이고 작은나라가 6개나 되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큰 나라가 3개, 작은 나라가 3개, 그리고 왕국이 한개 있다.
" …아, 이곳에 결계가 보이시지요 ? "
숲이라고 하긴 약간 작은, 뒷산을 하나 가로질러 온 그들의 눈앞에 결계가 보였다.
보통사람들이라면 보이지 않는 결계가 말이다.
결계가 공중에 뚫려져있는걸로 보아서 그쪽이 입구인 것 같았다.
" 마도사(마법사)는 결계가 보이고, 저 입구가 보일테니 이쪽으로 가고, 일반인들은 결계가 보이지
않으니, 그냥 튕겨나갈 겁니다. 그러니 삥 돌아서 보통문으로 돌아오라는 뜻이지요 "
주령은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공중으로 휙 날아올라 뚫려져있는 구멍 아래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코린왕국으로 확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그들을 향해 오라고 손짓하는 주령.
휘경과 강유, 비류도 곧 뒤따라 들어갔다.
" …무현, 배고픈가요 ? "
" 큐우 ~ "
" 일단 식당으로 가기로 하죠 "
무현이의 의견은 당당히 주령의 허락을 맡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코린왕국에 도착하자마자,
식당부터 가게되었다. 별로 배고프지도 않은지 그리 기뻐보이지 않는 그들의 표정.
" 어서오 … "
주인장이 식당으로 들어온 주령일행에게 인사를 하다말고 그들을, 아니 주령을 쳐다보았다.
주령의 머리는 은발. 즉 백호라는 것이다. 신수가 왔는데 당연히 놀랄만도 했다.
물론 나머지 사방신들의 머리칼도 신수를 상징하는것이지만,
여기는 백호가 다스리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은 다른 신수에 대해선 관심이 전혀 없었다.
" 백호님, 이리로 드시지요 "
주령은 깍듯한 그들의 태도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였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눈에띄는 은발을 약간 탓하고 있었다.
" …후우, 후우 …(후루룩)일단 전 염색부터 해야겠네요 "
따뜻한 감로차를 한잔 들이키며 약간 짜증난다는 듯이 말하는 주령.
휘경과 강유, 비류도 모두 주령과 같은 일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지 모두 동감하는 눈치였다.
" 무현, 많이 먹으렴 "
무현은 아예 식탁위로 올라가 고기들을 맛있게 먹고있었다.
아무래도 뒷산에서 먹은 야채수프가 입에 맞지 않았나 보다.
" 그럼 전 염색하고 올테니, 음식 드시고 계세요 "
아무래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염색할 생각인 주령. 주령은 주인에게 물어,
세면실로 왔다. 대야도, 세면대도, 욕조도 있는 이곳.
주령은 약간의 마법을 쓰고는 물로 머리를 헹구었다.
그러나 바로 노랗게 물들어버리는 주령의 은발.
금발도 주령에게 잘 어울렸다. 아마도 남자모습으로 변할때도 잘 어울릴 것이다.
" …염색하고 왔습니다. "
대충 머리를 말리고 테이블로 돌아온 주령. 모두들 배 안고프다고 했으면서,
어느새 식탁에는 커다란 접시가 10개가량 쌓여있었다.
모두들 무현이가 먹은것이라며 고개를 약간 돌렸지만,
그들의 입에는 야채조각이나, 소스등이 묻어져 있었다.
픽 웃으며 차를 홀짝이는 주령.
벌컥 -
" 여기에도 금발이 있다 !! 잡아라 !!! "
갑자기 들이닥친 병사들. 그중 건장한 청년 네다섯명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주령의 양팔을 붙잡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의 네사람과 한마리.
" 미안하지만 저희들과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
23
뭔가 악의는 없는것 같고, 또한 지금의 주령은 예전과는 달라서 그런지 순순히 끌려왔다.
주령을 붙잡은 자들은 휘경, 비류, 강유는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무현은 자신들이 신성시 여기는 신수, 백호였기때문에 오히려 두려워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작은 백호라도 신수임에는 틀림없으니까.
" 죄송하지만 이곳에 있어주십시오 "
커다란 저택에 도착한 주령. 저택에 도착하자 꽤나 잘 차려입은 병사가 다가와 주령을 안내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접대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왠만한 서민집크기보다도 큰 호화로운 방이었다.
그리고 그 방에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금발만을 가진 14~17세가량의 여자들이 모여있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사히 있는걸로 봐서는 나쁜짓을 할려고 이들을, 그리고 자신을 잡은것은
아니라고 주령은 판단했다.
" 이 마을에 있는 금발여자들은 다 잡아들였겠지 ? "
" …네, 까르망 님 "
밖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리더니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자가 들어왔다.
살짝 그을린 살갗에 다부진 눈매, 타오르는듯한 주황빛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꽤나 여자울렸을법한
외모였지만, 여자를 그렇게 밝힐것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 여자분들에게 실례가 많았습니다. 전 제 2근위대 총관 까르망 폰 아르님입니다. "
그자는 간단히 소개를 한 다음 살짝 열린 문 틈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후드로 얼굴을 가린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아하니 5싸이클 쯤 되는 꽤나 실력있는 마법사인 듯 했다.
얼굴도 마법으로 젊게 만든거겠지.
" 제가 찾고 있는 여자분은 금발에 14세에서 17세 가량의 상당한 미모를 가진분입니다.
그 분을 찾기위해 여러분들을 이렇게 잡아들인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듀크, 이분들이 함부로
나가시지 못하게 마법진을 "
남자는 뭔가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빛깔의 잉크에 굵은 붓처럼 생긴 펜을 푹 담구더니
이 방 만한 마법진을 그리고 그 안에 여자들이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고 꽤나 긴 주문을 외우자 마법진에서 빛이나며 검은색의 잉크에서 반짝이던 것들이 사라지며
잉크는 빨간색으로 변색했다.
어떤 한 여자가 마법진 밖으로 나가려 하니 여자는 뒤에있는 여자들에게로 튕겨나갔다.
" 이 마법진 밖으로는 못 나갑니다. "
주령은 다른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직 저 마법사와 자신만이 보일법한 투명한 무지개빛결계를
쳐다보았다. 천장까지 뻗어있는 원기둥 모양의 결계는 꽤나 튼튼했다.
주령이 살짝 오른쪽 어꺠를 돌리고는 마법진 쪽으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고는 까르망이라고 밝힌 그 남자가 나가려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주령에게로 몸을 돌렸다.
" 소용없는 짓입 … "
" …뭐가 소용없다는 것인지요 ? (싱긋) "
까르망이 채 말을 잇기도 전에 이미 주령은 결계밖으로 나와있었다.
이런 결계쯤 자신에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것을 똑똑히 알려주려는 듯 싱긋 웃으며 말이다.
까르망도 까르망이지만 마법사는 더더욱 놀랐다.
이제까지 꽤나 자신의 마법에 자신감이 있었나보다.
" 분명 벨로트 전하께 로제전하가 굉장히 뛰어난 무사라는 얘기를 듣긴했지만, 힘을 봉인해놓았다고
들었는데, 그새 그 봉인을 풀었단 말인가 ? …크큭, 듣던대로 미모도 훌륭하군. "
까르망이라는 자는 작은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주령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 까르망 폰 아르님 백작, 샤르망제국의 로제 폰 크레니아전하를 뵈옵니다. "
" …죄송하지만 전 그쪽을 모릅니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 전 이만 가보지요 "
주령은 표정을 굳히고 차갑다 못해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는 망설임없이 까르망을 지나쳐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때까지 무릎을 꿁고 있던 까르망은 빠른 몸놀림으로 주령의 손목을 잡아채었다.
손목 잡힌 것 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과 예의 그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아래에 있는
까르망을 차갑게 노려보는 주령.
" 죄송하지만 제 주군께로 "
그리고 그는 자신의 품안에서 주철로 된 검은 고리형의 수갑을 꺼내어들고 주령의 양쪽손목에
그 수갑을 채웠다. 주령은 그 고리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픽 웃었다.
" 마법실력이 출중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주철수갑에는 작은 마법주문들이 새겨져있지요 "
아무래도 그 수갑은 마법을 못 쓰도록, 즉 마법을 쓸 떄에 필요한 마나를 봉인해두는 특수수갑인듯했다.
물론 주령의 마나는 인간들이 쓰는 마나와, 자신만이 쓰는 특별한 마나, 즉 신력이 따로 되어있었기에
이런 수갑따위 아무 필요도 없지만, 그녀의 성격상 귀찮은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어꺠를 한번 으쓱하고는 그자리에 서 있었다.
"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
" …그나저나 당신의 주군이란 분은 ? "
" 이 코린왕국의 공작전하이시지요. 또한 재 아버지의 친구분이시기도 합니다. "
까르망의 주군이란 사람의 방은 자신이 있었던 그 큰방에서 1각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문을 여니 자신이 있었던 방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그 방보다 훨씬 화려했다.
그리고 백금으로 장식된 책상에서 40대 중반 가량의 남자가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 벨로트 전하, 로제전하라고 생각되는 분을 모셔왔습니다. "
" …벨로트 폰 류크테스입니다. 하지만 로제전하는 아닌듯 하군요 "
아마도 까르망은 자꾸만 언급되는 로제라는 여자의 얼굴을 모르고 있고, 이 벨로트공작이라는 자는
로제라는 여자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주령을 보고는 아니라는것을 알고는 웃음을 지었다.
주령은 벨로트공작의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짜증난다는 눈빛을 하고서 까르망을 쳐다보았다.
까르망은 전혀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주령과 벨로트공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 아아 됐네. 자네가 착각할 만 하군. 로제전하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분이시니 말일세 "
" 그뿐만이 아닙니다. 실력도 출중했습니다. 일부러 절 따라오시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
역시 까르망도 그냥 애송이는 아닌 듯 했다. 주령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있었다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다. 주령은 까르망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마음에 드는지 꽤나 호의적인 눈으로
까르망을 바라보았다.
" 네, 맞습니다. 저한텐 이런 마나를 봉인하는 수갑따위 별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
말이 끝나자 마자 주철에다가 주문으로 강화되어있는 그 단단한 수갑은 금이가더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시원하다는 표정을 하고서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만족의 웃음을 띄는 주령.
까르망은 물론이고 벨로트까지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드워프가 만든 세심한 세공, 드래곤이 직접 새겨넣은 주문. 꽤나 좋은 물건이군요 "
" 세상에, 마나를 봉인하고도 어떻게 … "
" 뭐, 누구를 찾으시는 모양인데 … "
주령은 벨로트공작의 물음을 무시하며 약간 건방진 듯한 태도로 말을 흘렸다.
" 아, 네. 이웃나라인 샤르망제국의 공작 로제전하를 사로잡았는데, 그분이 탈주하셨습니다. "
" 그래요 ? 혹시 그분의 머리카락이나 살점, 물건같은 것들은 없나요 ? "
주령의 말을 듣고 벨로트 공작은 자신의 책상서랍을 열어 황금으로 만든 잘 세공된 3척도 안될 정도로
꽤나 짧고 굉장히 얇은 검을 꺼내어 주령에게 주었다.
주령은 검을 이리저리 보았다. 이런 검은 전쟁같은데에서 쓰기에는 꽤나 불편한데,
이런것을 쓰는걸로 보아서 이것은 주인이 직접 주문한것으로 보이며,
이 검에 새겨진 마법주문들로 보아서 이 검은 드워프의 작품이며 주문은 드래곤이 새겨넣은것까지
그녀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 …주인의 기가 느껴지는군요. 혹시 이 검의 주인은 드래곤과 깊은 인연이라도 있는것인가요 ? "
" 그, 그렇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드래곤의 자식이라고 … "
주령은 살짝 감고있던 눈을 예리한 눈빛을 내며 살며시 떴다.
그녀가 느끼는 기운은 결코 드래곤의 기운은 아니었다. 분명 인간이라고 치기엔 강한 기이긴 했지만.
이정도 기라면 아마 헤즐링 정도는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기.
그리고 뭔가 이질적인 …
" 제가 그 분을 찾아드리지요. "
" 정말입니까 ? 들었느냐, 까르망 "
" 네. 정말 다행입니다, 벨로트전하 "
두명다 모두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주령이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대신 그분에게 용무가 끝나고 난 다음, 그분을 저에게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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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고자 하는자의 물건과 그를 찾는 사람과의 계약이 이행될지어니 - "
결국 벨로트공작은 로제라는 여자에게 볼일이 다 끝나면 주령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주령은 지금 그 로제라는 여자를 찾는 중이었다.
주문을 끝내고는 순식간에 벨로트공작의 손가락을 자신의 검지로 살짝 찌르는 주령.
손가락으로 살짝 찔렀을 뿐인데 따끔거리는 고통과 함께 피가 맺혔다.
" 이 감히 무슨 …! "
" 공작의 피가 필요했을뿐입니다. 자, 피 한방울을 저 검에다가 "
자신의 주군에게 아주 충실한 사람인가보다. 까르망은 주령이 벨로트공작에게 살짝 상처를 입혔다고
엄청나게 흥분해서 금방이라도 주령을 칠 기세였지만, 벨로트공작이 까르망을 제지했다.
주령은 약간 깔 보는듯 퉁명스럽게 설명하고는 벨로트 공작에게 피를 로제의 검에 떨어뜨리라고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주령의 말대로 피 한방울을 검에다가 떨어뜨리는 벨로트공작.
" 자, 저 위를 봐주세요 "
벨로트공작의 피인지 모를 대량의 빨간액체가 공중에 방울방울 맺히더니 곧이어 하나로 맺혀
둥근 테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빨간액체의 중간에 구름인지 연기인지 분간안되는 무엇인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주령은 그 뭉게뭉게 피어오르는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벨로트공작과 까르망은 주의깊게 그 연기를 쳐다보았다.
흐릿한 연기같던 그것은 맑은 호수의 아름다운 물처럼 깨끗해지더니 꽤나 번화한 곳을 비춰주었다.
" …좀있음 찾는분께서 나타나실겁니다. "
주령의 말이 끝나자 곱슬거리며 허리까지 찰랑이는 금발에 앳되고 청순해보이는 인상을 가진 여자애의
얼굴이 확대되어 비춰졌다. 그 여자가 로제가 맞는지 벨로트공작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소리를
내뱉었다. 분명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까르망은 이미 주령을 보고 난 뒤라서 그런지
별로 그 여자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 저 여자가 맞는 … "
벨로트공작의 표정을 흘끔거리며 쳐다보던 주령은 거울속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했다.
그러나 주령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 거울에는 이제 그 여자의 얼굴이 작아지며 그 여자 주위의 모든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의 옆에는 비류와 강유, 휘경이 같이 서서 걷고있었다.
무현도 보였다. 휘경에게 안겨 잘은 안보이지만 으르릉거리고 있는 듯한 모습.
" …드워프의 작품중에서도 최상급인 귀걸이, 잘은 안보이지만 옷 속에 팔이 한곳으로 모아져 있는걸로
봐서는 벨로트공작께서 채웠다는 주문이 새겨진 주철수갑은 아직 채워져 있는 듯 하군요 "
벨로트공작이 만족의 웃음을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령은 다시 거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웃으면서 걷고있는 그들.
아직 아무도 로제라는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 했다.
그리고 그 여자도 그 수갑을 풀어달라고 하지 않는걸로 봐서는
아직 그들의 정체를 모르거나, 또는 겉으로는 웃고있지만 아직까지는 저들을
완전히 믿고있지 않는 듯 했다.
" 인(絪)! …좌표 78,19. 공간이동을 하기로 하죠 "
그럴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던 벨로트공작은 왠지 모르게 차가운 아니 섬뜩하기까지한 주령의 표정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쏙 집어넣고 까르망에게 고갯짓을 하며 주령의 옆에 바짝 섰다.
주령이 지금 굉장히 화가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쩄든 그곳에 가기도 해야되고, 또 가고싶기도 했다.
" 이동하겠습니다. "
주령의 말이 끝나자 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로제와 휘경일행의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하는 로제와 휘경,비류,강유.
특히 로제는 놀랐을 뿐만 아니라 창백해져서는 입술을 꺠물었다.
" …주령아! "
강유가 반갑게 주령을 불렀다. 그러나 강유에게 돌아오는 것은 주령의 차디찬 시선뿐이었다.
주령은 강유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틀어 휘경을 바라보았다.
한쪽팔은 무현을 안고있고 한쪽팔은 로제의 어깨에 올려져있었다.
괜스레 화가나는 주령은, 너무나 화가나서 화는 내지 못하고 그저 웃음만 나올뿐이었다.
피식거리며 새어나오는 허탈한 웃음.
" 이봐, 여자. 미안하지만 우릴 좀 따라가줬으면 하는데 ? "
싸가지모드로 변한 주령. 아니, 이건 싸가지모드가 아니라 굉장히 화가나 있는 듯 했다.
차가운 목소리에는 왠만한 인간은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공력이 실려있어서 모두들 머리가 울렸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자들은 모두 실력이 최상급들이었다.
"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다른곳으로 얘기했음한다. 어디든 좋다. 인적이 드문곳이면 되지 "
주령이 이번엔 의도적으로 공력을 많이 실으며 나직히 말했다.
로제는 이제 머리가 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의 근육들이 경직되어 뻣뻣해짐을 느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로제는 자신이 최적의 상태로 싸우면 적어도 지지는 않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마나를 봉인당한 지금, 자신이 주령을 이길 가능성은 제로라는것을 알고있었기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안내해라, 여자 "
[ * * * ]
근처 산속에 있는 깊은 동굴. 간간히 짠내가 풍기는 걸로 봐서 근처에 바다가 있고,
반대편에는 뚫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말해봐 "
로제는 생긴것과는 다르게 약간 남자같은 말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벨로트공작이 주령의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 로제전하, 함부러 나가시면안되죠. "
" …흥, 내가 당신 손에 노다니니까 좋든 ? 퉷 "
" 여자, 당신 아버지가 드래곤이라고 들었는데 "
벨로트와 주령의 대화가 채 끝나기 전에 주령이 끼어들며 그들의 대화와는 상관없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갑자기 대화가 단절되자 벨로트공작은 약간 화가 났지만,
상대가 상대이다보니 화를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주령의 은은한 에메랄빛이 감도는 바다빛은 이제 노을이 질때와 같은 붉은빛이 감도는 바다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령의 차가운 눈동자는 로제를 한아름 담고있었다.
" …대답하라. "
명령이었다. 확실한 명령. 중압감에 로제는 자신의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이제까지 한번도 진 적이 없고, 제 잘난맛에 살던 로제는 자존심이 강했다.
이를 악 꺠물고 자신보다 작은 키의 주령을 내려다보는 로제.
천천히 붉은 입술을 열고 떨려오는 목소리를 숨긴 채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 그래. 내 아버지는 레드드래곤이시다 "
" …레드드래곤이라, 아직도 호.비.트를 거둬들이는 정신이 썩어빠진 드래곤이 있었단 말인가 "
주령은 원래 인간을 얕잡아부르는 호비트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지만 왠일인지 그 단어에
악센트까지 주며 말했다. 게다가 보통의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부모욕까지.
로제는 평소 친 아버지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를 맨날 놀리고 틱틱거렸지만
싫어한 적은 결코 한번도 없었다.
" 우리아버지를 욕하지마 !!!!!! "
로제의 악에바친 소리는 예전에 폐허가 된 마을에서 만났던 한소녀를 연상케했다.
사실 주령이 로제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던 것도 어쩌면 로제에게서 그 소녀의 모습을 느껴서일지도.
" 벨로트공작, 로제를 어디에다 쓰실려고하셨습니까 ? "
" 예 ? …아, 그게 별거 아닙니다. "
" 그렇습니까 ? 그럼 로제를 풀어주십시오. 그럼 적어도 200년동안 이 나라를 평탄하게 해드리지요 "
사락
주령이가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리자, 금발로 물들였던 주령의 머리는 원래의 보랏빛이 감도는
은발로 돌아왔다. 멍하게 주령을 쳐다보는 까르망과 벨로트공작, 로제.
주령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천진한 무표정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 앞으로 200년동안 이 나라는 마왕에게도 꺠지지 않을 결계에 의해 지켜질 것입니다. "
주령은 싱긋 웃으며 말하고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로제를 흘끔거리다가 슬슬 나오는 강유와 비류. 휘경도 뒤따라 나왔다.
" …이봐! 구해줬으면 이 수갑도 풀어줘야 될 것 아냐 ! "
구해줬으면 고맙다고 하지도 못할망정 오히려 화를 내는 로제.
정말 물에서 구해줬더니 되려 보따리를 내노라고 하는 짓이였다.
주령은 거칠게 로제의 허름한 망토를 찢어버렸다.
그러나 검은색의 주철수갑이 보였다.
" 알겠다. "
주령은 짧게 말한 뒤, 주철 수갑에 검지를 살짝 올려놓았다가 금방 떼었다.
그러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금새 갈라지다 못해 부스러기가 되어 땅에 흩어지는 주철들.
로제는 빨게진 손목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주령에게 말했다.
" 야! 구해주면 다냐 ? 젠장, 난 이제 어떡해. "
" …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면 되지 않은가 ? 그것도 싫다면 우리를 따라와도 좋다 "
주령은 그말만 하고는 휘경에게서 다소 신경질적으로 무현을 뻇어 꼭 안았다.
로제는 주령의 말을 듣고는 침을 퉷 한번 뱉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휘경의 팔에 꼭 붙어서 걸어왔다.
휘경은 한손으로 책을 들고 읽으면서 로제는 아예 신경쓰지도 않는 눈치였다.
" …짜증나는 계집으로 만들었군 그래 "
아무도 듣지못하게 중얼거리는 주령. 그녀가 눈을 치껴뜨며 자신의 옆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곳에서 마치 뜨거운 수증기가 울렁이는 듯 공기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주령의 말이 끝나자 바람이 되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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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2,3일후면 샤르망제국에 도착할겁니다. "
코린왕국을 둘러싼 결계를 빠져나오자, 주령이 걷던 발을 멈춰서고 말했다.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주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그 떄 동안 우리 모두 원래있던 곳으로 가죠. 그리고 일주일 후, 샤르망제국에서 보도록해요 "
지금은 예상치 못한 인간일행 로제가 있었기에 함부러 천궁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못하는 그들.
주령이 천궁이란 말 대신 원래있던 곳이라고 말했지만, 모두 알아들었다.
강유와 비류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더니 기운이 왕창 빠졌다.
생각해보니 자신들도 돌아가서 해야될 일이 많았었나 보다.
휘경도 읽던 책을 탁 덮는것이 아무래도 돌아가려는 것 같다.
" 여자, 너도 생활능력은 있겠지 ? 어떻게 생활해도 좋다. 일주일 후에 샤르망제국안에만 있어라 "
" 아, 알았다구 "
" 가자 "
로제의 짜증난다는 투의 말을 듣고나서 주령이 가자라고 말하자,
주령의 주변에는 상쾌한 바람이 일어났다. 그리고 주령이가 공중에 뜨기 시작하더니,
곧 사라졌다. 강유와 비류, 휘경도 로제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사라졌다.
" …엘퀴네스, 나타나도 돼 "
* * *
" 실피드, 엘퀴네스는 정령계에 잘 붙어있나 ? "
- 아니요, 지금은 없습니다.
백호궁 한켠에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와 주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서 주변에 기분좋은 미풍을 두르고 있는 실피드.
주령도 아름답긴 하지만 아직 어린 모습인지라,
왠지 모르게 실피드가 더욱 어른스러워 보였다.
" 잘 감시해줘. 엘퀴네스, 그자는 예전에 인간으로 환생했을떄의 영향으로 욕심이 과하니까 "
- 네, 염려 마시옵소서.
" 지금없다고 했지 ? …아마, 인간계에 있을꺼다. 찾아봐 주겠나 ? "
- 알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오래걸리긴 하겠지만 …
" 그리고 하나더, 로제라는 인간여자에게 눈치못채도록 이것을 … "
자신의 귀걸이를 한짝 빼내어 손톱으로 뭔가를 끄적이는 주령.
살짝 끄적였을 뿐인데 귀걸이에는 이상한 문자가 깊게 파여져 있었다.
" …그럼, 부탁한다 "
실피드는 고두(叩頭)를 올리며, 기분좋은 미풍과 함께 사라졌다.
귀걸이가 없는 왼쪽귀가 허전한지 만지작 거리는 주령.
주령의 몸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여느떄와 다름없이 남자모습이 되었다.
" …벌써 시간이 이리되었나 "
천궁, 그러니까 인간들이 천계라고 부르며 신들이 산다고 하는 곳에서는
낮과밤을 시계를 보지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인간계에서는 하늘을 보고 낮과밤을 구분할 수 있지만,
인간들이 보는 바로 그 하늘이 자신이 있는 곳인데, 어떻게 낮과밤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
' 똑똑똑 '
주령이 옷을 바꿔입고 옷 매무새를 정돈하려 하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아마도 주령이 온 것을 알고서 인사를 올리려 온 것 같았다.
" 들어오라 "
주령이 들어오라고 말하자 문이 열리며 시녀 5명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천궁에선 흔하디 흔한 옷들. 그러나 시녀들이 입기엔 꽤나 화려한 옷들인 것으로 보아,
주령의 직속 시녀, 즉 시녀장과 시녀장을 보좌하는 시녀들이 틀림없었다.
" 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놓았구나. 그래, 일은 어찌되었느냐 ? "
뻔히 알면서 묻는 주령. 분명 자신이 없었으니 일은 밀려있음이 분명했다.
물론 간단한 일들은 잡무를 맡고있는 자가 했을 테지만 말이다.
시녀장은 고운 미간에 주름하나를 만들어 내며 고개를 들었다.
" 오늘은 그만 쉬시옵소서. 그러나 내일부터는 고되게 하셔야 된다는 내총관님의 말씀입니다. "
" …내 오늘 내총관을 만나봐야겠네, 내총관에게 기별을 넣어주게나 "
시녀장은 고두를 올리고 자신의 뒤에있는 시녀에게 전언을 하자, 그 시녀는 곧장 선술을 써서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분명 내총관의 거처인 경청궁으로 갔을 것이다.
주령이 물러가라는 듯 손짓을 한번 하자, 시녀들의 거처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시녀장보좌관들.
그들이 물러가자, 남은사람은 주령과 시녀장뿐이었다.
" 지금 가장 급한 서류 50장만 가져오게, 속앓이 한 너를 위하여 뭔가 해야되지 않겠느냐 ? "
" 그러다 몸 상하시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
" 후후, 신이 그런걸로 몸 상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
남자의 모습을 하고서 거만하게 침대에 누워 명령하는 자신의 어린 주인을 보며 한숨을 쉬는 시녀장.
주령의 고집을 누가 감당하리오. 시녀장은 다시한번 옅은 한숨을 쉬고 머리를 조아리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분명 선술을 사용하여 백호궁 가장 중심에 있는 백호전으로 갔을 것이다.
어린 주인의 명령대로 서류 50장을 들고오기 위해 말이다.
' 똑똑 '
씩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는 주령. 손님이 누군지 잘 알기 떄문이다.
노크 세번은 시녀들. 노크 두번은 궁에서 서열 20위안에 드는 신하들.
그러므로 손님은 신하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에 올 신하는 ?
…당연하지 않은가. 주령이 부른 내총관이 틀림없었다.
' 끼익 '
언제나 건방진듯 하지만 가는 미성으로 들어오라는 명령어조가 아니라, 직접 문을 여는 주령.
문을 열고 보이는 사람은 주령과는 달리 갈색빛이 도는 은백색머리릴 깔끔하게 틀어올리고서,
외알안경을 쓴, 그러나 인자한 듯한 푸근한 인상을 가진 20대 중반 쯤의 남자였다.
그 남자는 주령의 모습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의 표정을 보고는 머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주령.
" …저주에 걸려 남자가 되셨다더니, 사실이었군요 "
" 응, 그런데 그 후에 똑같은 저주에 또 당하는 바람에 아침엔 여자, 저녁엔 남자모습이야 "
" 하하,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신선하고 즐거운 얘기만을 선물해주시는군요 "
" 친구사이에 존대라니, 그만해, 설아 , 후후 "
백설. 백호궁 서열 2위 내총관이라는 직위를 맡고있으며, 주령의 오랜 친구이다.
설이는 백호족의 5대귀족 중 하나인 아버지 친구분의 셋째, 즉 막내아들이다.
5대귀족은 각각 백풍(白風)가, 백설(白雪)가, 백한(白寒)가, 백동(白冬)가, 백유(白癒)가로 나뉜다.
각 가(家)에서는 집안의 자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 즉 가문을 이을자가 가문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는데 그것이 설이였다.
" 호오, 알았어. 그래, 네가 날 부르다니 이번엔 뭐 부려먹을려구 ? "
" …그게 …, 음. 별다른 건 아니구 나한테 걸린 저주 좀 풀어줘 … "
사실 현무수령이 강유가 직접 했다는 것만 뺀다면 이정도 저주야 금새 풀 수 있다.
문제는 현무수령인 강유가 직접 개발해서 자신의 힘을 저주에 흡입했다는 거다.
주령의 몸은 신. 게다가 다른것도 아닌 치유에 있어서 최고의 지식을 자랑하는 종족이 아니었던가.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저주는 주령의 몸에 의해 서서히 효력이 약해져갔다.
저주가 걸린자가 자신이었기에 자신이 직접하는 건 무리지만, 백호족의 의원에게 부탁하면
이것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적토계에서 왠지 모르게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치료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이상 적토계와 연관되고 싶지 않은 주령.
" …손목 좀 줄래 ? 맥을 짚어봐야겠어 "
뼈밖에 없는 듯한 가는 손목을 보여주는 주령.
설이는 조심스럽게 주령의 손목을 받치고 맥을 짚었다.
" 그래, 까다롭긴 하지만 못 풀건 아니지. 일단 당장은 무리겠어 "
주령의 손목을 내려놓으며 말하는 설이. 살짝 미소까지 지으며 설이를 보자,
주령도 덩달아 입술을 살짝 올렸다.
" …응. 가능하면 사흘안으로 치료해줬음 좋겠어. "
" 왜 ? 무슨 이유라도 있어 ? "
자신의 말에 반문하는 설이를 보며 더더욱 예쁘게 웃는 주령.
그러나 눈빛만은 한없이 차가웠다.
오싹함을 느끼는 설이.
설이는 잘 알고있었다. 주령은 화나면 화날수록, 예쁘게 웃는 다는것을.
그리고 그런 웃음은 항상 자신을 빠져들게 하는 헤어날 수 없는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을.
" …적토계는 지긋지긋하거든. "
26
- 로제,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
" 물론이야. "
모두 사라지자 갑자기 나타난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
그 둘의 대화는 둘 사이가 꽤나 오래되었고, 둘 사이에 뭔가 오갔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하는 분위기였다.
저멀리 보이는 자신의 나라, 샤르망제국을 향해 비웃음을 던지는 로제.
엘퀴네스는 로제를 보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거렸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로제는 숲속으로 뛰어들어갔다.
" 엘퀴네스, 난 정말 그여자를 찢어발기고 싶어!!! "
- 아아, 알았다구. 좋아, 내 힘을 나눠줄께. 하지만 적토계에서 내 힘은 원래힘의 3분의 1밖에 안돼
" 뭐 ? 네 말에 따르면 그 여잔 백호수령인지 뭐지 하는 신은 아니지만 백호인건 맞다구! "
- 그러니까 그 여자를 정령계로 유인해. 그럼 내 힘 전부를 빌려 줄 수 있으니 말야, 크크크
로제가 말한 '그여자' 라는 것은 아마도 주령을 가르키는 듯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로제가 주령을 알고 있었고, 또한 원망을 했던 것일까.
로제가 주령일행과 함류하게 된 것은 이틀이 채 안되었는데 말이다.
" …꿈에도 모르겠지, 그여잔. 내가 … "
갑자기 연하늘빛에 둘러싸이는 로제의 몸.
순식간에 로제의 형체는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형상을 띄게 되었다.
예전에 주령이 상처를 입은 폐허가 된 마을에서 보았던 그 여자애였다.
" …자신이 말한대로 그여자만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있는 그 때 그 애란걸, 후후 "
그때와는 달리 깔끔한 얼굴에, 머리도 많이 길러져 있는 여자애.
키도 제법 큰 것이 이젠 숙녀티가 났다. 붉으스름한 빛을 띄는 허리까지오는 생머리,
쌍커풀 없이 동그란 귀여운 눈, 분홍빛 입술, 이젠 주령과 비슷해보이는 작지않은 키.
예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귀엽게 생긴 인상.
- 크크크, 역시 로제, 아니 도화군.
" 좌표 99,208에 정령계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줘 "
- 알겠어, 도화.
차가운 공기만을 남겨둔 채 사라지는 엘퀴네스.
도화만이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 잘들어. 치료를 시작하면 끝날떄까지 선혈을 토할꺼야. 그리고 3,4일동안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돼 "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주령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말하는 설이.
그러면서 소맷자락에서 손가락만한 병을 주령에게 건네었다.
주령은 뚜껑을 꺼내고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 병에 들어있는 약을
단숨에 들어마셨다.
" …흡! "
주령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는 설이. 주령의 등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령의 입에서는 핏덩이가 한웅큼 나왔다.
그러나 미간을 찌푸릴 뿐 미동도 하지않는 주령.
설이는 다시 주령의 등의 혈을 차례대로 가격했다.
그리고 그 떄 마다 주령의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아닌 핏덩이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 참아, 이것만 하면 끝이야 "
주령의 몸을 앞으로 돌리고서 자신과 마주보게 하는 설이.
설이는 주령의 윗옷을 살짝 걷었다. 주령의 매끈한 배가 보였다.
주령의 배에 손을 대는 설이.
주령은 눈을 감은채로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흡사 시체처럼.
" 저(詛)는 기(氣)로 다스릴 지어니…. 治詛璣器 !! "
" …큭, 커헉 …콜록, 콜록 …하아 "
주령이 신음을 흘리며 이때까지 흘린 핏덩이와 비슷한 많은 양의 선혈을 토하며 기침을 해대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주령을 안는 설이.
설이가 피에 적셔진 주령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주령을 조심이 안아들었다.
정신을 잃었는지 축 늘어지는 주령의 가는 팔.
" …하루…하루면 …충 …분해 …(씨익) "
" 뭐? 3,4일은 쉬어 …. 쿡, 하여튼 대단하다니까. "
침대에 내려놓자 하루면 충분하다는 말을 힘겹게 내뱉고서 마무리로 여유로운 웃음까지 보이는 주령.
설이는 뭐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눈을 스르르 감은 채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 잠이드는 주령을 보자,
혼자 웃음을 지으며 주령에게 대단하다고 하며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 대단한데, 역시 넌 예나 지금이나 너무 둔해. 그래서 …, 가끔 난 슬프다, 주령아. "
출렁이는 공기. 곧이어 기분좋은 미풍(微風)이 일렁이더니 실피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피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누워있는 주령을 보더니 놀란표정을 짓고서 주령에게로 다가갔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 곤히 잠들어있는 주령.
실피드는 기분좋은 차가운 손으로 주령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으음 "
주령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파란색 눈동자가 살짝 보였다.
약간 말라버린 입술을 벌리며 신음소리를 흘리는 주령.
실피드가 주령을 향해 싱긋 웃었다.
" …몇시 ? "
- 저녁 8시옵니다, 주령님
실피드의 말에 희미한 웃음을 띄우는 주령. 지금은 저녁인데 자신의 목소리는 어제 저녁과는 달랐다.
저주가 풀렸는 것을 확하자 기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 주령.
주령은 어제 자정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장난기 있는 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키려했다.
실피드가 주령을 부축해주었다.
" 쿠쿡, 실피드 덕분이야, 고마워 "
- 네?
" 하루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 못일어날뻔 했어. 실피드가 도와줬기 떄문에 일어날 수 있었어, 후후 "
막 웃는 주령을 보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실피드.
그러다가 주령이 콜록거리는 것을 보며 실피드가 주령을 부축했다.
- 아, 엘퀴네스가 움직였습니다.
주령을 부축하면서 말하는 실피드.
순수한 소녀처럼 웃고있는 주령이 웃음을 멈추며 실피드를 쳐다보았다.
약간은 차가운듯 입꼬리를 올리는 주령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실피드.
- 정령계에서 적토계로 향하는 문을 열었습니다.
" 그래 ? 여전히 그놈은 식상한 수법을 쓰는구나 "
주령은 피식웃으면서 엘퀴네스를 얕보는 듯한 말을 하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축하려는 듯 일어서는 실피드를 가볍게 제지하고는 옷을 갈아입는 주령.
머리를 다듬기 위해 화장대 앞에 앉는 주령.
거울을 보니 웃고있다고 생각하던 자신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양쪽 입꼬리에 검지손가락을 찔러넣고서 위로 쭉 잡아째는 주령.
" …내 마음을 알 수가 없구나 "
27
약속한 날 일주일 이 지나고.
천계의 가장 중심지이자 사방신들이 자주 모이는 천중공에 와있는 비류와 강유, 휘경.
그들은 항상 어딜가든 거의 함께였기에 여기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 우리, 주령이도 데리고 가자! "
해맑게 웃으며 휘경와 비류에게 주령과 함께 가자고 말하는 강유.
비류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지 휘경을 바라보았다.
휘경만 괜찮다면 그렇게 하자는 듯한 제스처.
휘경은 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 자자, 가자!!! 백호궁으로!!! "
의외로 성질 급한 강유가 공간이동을 했다.
그들의 눈 앞에 보이는 백호궁.
원래 백호궁, 주작궁, 현무궁, 청룡궁 모두 다 공간이동으로는 안에 함부러 들어갈 수 없도록,
공간이동을 하게 되면 궁의 입구로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 무슨 용무로 오셨나이까 "
앳되보이는 소녀.
강유가 현무수령의 증거인 현옥패를 내 보이자 소녀는 별로 놀라는 표정도 없이 고개를 수그렸다.
문이 열리고 문 안쪽을 향해 손을 내미는 소녀.
그들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 손님이 오셨구나. "
" 예, 내총관님. 현무수령이시옵니다. "
귀빈실로 가던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내총관이라는 작위를 맡고 있는 설이였다.
몸이 덜 회복됬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있는 주령을 돌봐주고 나오는 길에 그들과 마추친 설이.
속으로는 조금 놀란 설이였지만 예의 그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들도 백호궁에서 수령다음으로 지위가 높은 내총관에게 예의를 갖추고
간단하게 인사를 해 주었다.
" 주령이 좀 불러줘 !!! "
강유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설이는 아무리 같은 수령이라지만 주령의 이름을 함부러 부르는
강유를 보며 울컥해서 화를 낼 뻔 했지만, 저런 외모에 저런 성격이라도 수령임은 틀림없었고,
적토계에서 주령이 강유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떄문에 설이는 가까스로 참았다.
" …아, 내가 얘기하지. 잠깐 나좀 봅시다. "
휘경은 강유의 말에 아차싶었다. 겉으로는 무표정을 지으며 설이를 불렀다.
그나마 셋 중에 가장 수령다운 휘경의 태도에 설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휘경의 뒤를 따랐다.
귀빈실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탁자에 의자를 뺴내어 앉는 휘경.
설이도 휘경의 맞은편에 의자를 뺴내어 앉았다.
" 내가 대신 사과하지. 저들은 백주령이 백호수령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
" 역시. 괜찮습니다. 그것도 다 수령님의 뜻이니 … "
휘경의 말에 설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나 보다.
하긴 이떄까지 베일속의 수령이었던 주령이 쉽사리 정체를 들어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자 이 자는 어떻게 주령의 정체를 아는지 설이는 또 고민하게 되었다.
휘경은 설이가 그런 고민을 할 줄 알았다는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 내가 눈치고 좀 빨라서 주령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 거니 그 문제 가지고 고민은 하지말게 "
설이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휘경을 보니 왠지 별로 좋지만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자신이 평소 존경할 만한 이상형에 딱 맞는 휘경이었고, 또한 그리 기분나쁜 웃음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위험한 느낌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수령님께 아뢰겠습니다. "
설이는 짧게 인사를 하고 귀빈실이 속해있는 백천궁을 나왔다.
그리고 백천궁에서 1시진(30분)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백령궁까지 공간이동을 했다.
백령궁은 백호궁 가장 중심에 있는 궁으로 백호수령이 정치를 보는 백호전이 속해있는 궁이었다.
백령궁에서는 공간이동이 금지였다. 수고스럽지만 설이는 1각정도 걸어들어가
백호전에 당도했다.
' 똑똑똑 '
" 안으로 들라 "
안에 시녀장이 없는지 주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이는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띄우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스듬하게 팔을 괴며 귀찮은 듯 서류를 체결하고 있는 주령의 모습.
아직도 내상이 덜 치유되 창백해 보이는 주령의 모습은
오늘 따라 주령을 더욱더 차갑지만 수령으로서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 주령아, 현무수령과 주작수령, 청룡수령님께서 오셨는데 ? "
" …만나지 않겠다고 전해. 내가 지금 몹시 아프다고 말야. 아, 가능하면 청룡수령은 이쪽으로 보내 "
주령은 평소같으면 설이를 쳐다보고 미소를 띄우며 대화를 나누겠지만,
설이의 입에서 잠시나마 함께 여행했던 그들의 지위들이 속속들이 나오자 설이에게 눈길한번
주지않고 별 상관없다는 듯이 무관심하게 말했다.
설이는 주령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직이 한숨을 쉬고 고두를 올린 뒤 백호전에서 나왔다.
다시 1각정도 걷고 공간이동을 해서 귀빈실로 돌아온 설이.
설이는 맨 처음 인상과는 달리 인상을 굳힌 채 그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 주령님께서는 몸이 편찮으신 관계로 만나지는 건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
설이의 말에 강유가 울상을 지었다.
비류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이에게 물었다.
" 내총관인 네가 어쨰서 잡무를 보는 주령에게 존댓말을 하는거지 ? "
옆에서 울상을 짓고 있던 강유가 비류를 한번 쳐다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비류와 마찬가지로 설이을 직시했다.
주령이 적토계에서 어떤 신분이였는가를 듣지못했던 설이는 아차싶었지만,
곧 냉정을 찾고서 침착하게 말했다.
" 물론 그것이 올바른 것입니다만, 주령님은 수령님의 사촌동생이시며 청렴결백하고 실력또한
잡무따위를 맡을 정도가 아닐 정도로 뛰어나시기 때문에 제가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옵니다. "
휘경은 더이상 있다가는 위험하겠다 싶었는지 강유와 비류의 등을 밀며 귀빈실 문 밖으로 밀어냈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있던 설이는 주령이 휘경을 데리고 오라던 말이 떠올랐다.
설이는 황급히 휘경을 불렀다.
휘경은 물론이고 강유와 비류가 일제히 설이를 향해 뒤를 돌아보았다.
" 수령님꼐서 청룡수령님을 뫼시고 오라하셨습니다. "
휘경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휘경은 강유와 비류의 눈치를 살짝 보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대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역시나. 강유와 비류는 갑자기 휘경과 설이를 불러세웠다.
" 우리도 갈래! "
" 그래 ~.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이참에 보는것도 괜찮겠지. "
휘경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 아니, 너희 먼저가. 로제가 걱정되지 않아 ? "
" 그건 그렇지만 "
" 내총관, 얼른 가도록 하지 "
휘경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설이에게 말했다.
설이는 고개를 까닥하고는 손님들을 위한 정원 50명의 공간이동용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바닥을 쳐다보니 희미하게 보이는 마법진을 보고는 자신도 그 위로 올라가는 휘경.
설이가 몇마디 하자 그 둘은 공간이동이 되어 백천궁 바깥으로 나왔다.
" …수령님의 사적인 일입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수령님꼐서는 방에서 뵈옵기를 바라십니다. "
주령의 방은 백호전이 속해있는 백령궁의 바로 옆에있는 백안궁 안에 있었다.
백안궁은 백호궁 안에서 가장 작은 궁이지만, 동시에 백령궁과 함께 가장 화려한 곳이기도 했다.
천계도 동서남북이 나뉘어 있는데,
백호의 관할지인 서쪽 천계에서만 나온다는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로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백안궁을 보며 휘경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나지막히 터져나왔다.
" 이 안입니다. "
휘령에게 말해주고는 귀한 손님을 알리기 위해 4번 노크를 하는 설이.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 안은 백안궁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넓었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깍아내어 만든 백호상이 한곳에 자리잡아 있었고,
밑바닥이 다 미치는 투명한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 투명한 바닥 아래에는
푸른빛을 내는 사파이어가 아름답게 빛을내며 깔아져 있었다.
" 미안하지만 이쪽으로 청룡수령을 모셔와주게 "
" 네, 수령님 "
좀 더 깊숙히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가 보였다. 그리고 침대에 누군가가 누워있는것이 보였다.
침대에 누워있는 누군가는 천천히 약간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보랏빛이 감도는 긴 은발. 주령이 분명했다.
주령은 기침을 막 하더니 피를 한웅큼 토했다.
휘경이 막 놀라서 뛰어가려고 하자 설이가 제지하면서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 여유롭게 빠른걸음으로 주령의 앞으로 걸어갔다.
" 무리하지 말랬잖아 "
" …응. 괜찮아 "
왠지 친근해보이는 두사람.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경어를 쓰던 두사람인데 지금 이렇게 대하는 걸
보니 어렸을 적 부터 친구사이일 것이다.
아님
정혼자, 즉 약혼한 사이거나.
왠지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나는 휘경.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설이에게 기대는 주령을 보면 다시금 화가나는 휘경.
살아오면서 지금이 가장 화가나는 것을 휘경은 느꼈다.
28
화를 참고서 주령이에게로 다가가는 휘경.
주령은 설이의 부축을 받으며 휘경을 바라보았다.
" …많이 아픈건가 ? "
휘경의 조금 차가운 듯한 태도가 신경에 거슬리는지 눈살을 찌푸리는 주령.
그러나 이내 다시 무표정을 지으며 어꺠를 살짝 으쓱했다.
" 괜찮습니다. 잘난 현무수령께서 친히 걸어주신 저주의 불순물정도라고만 말씀드리지요 "
무미건조한 목소리였지만 비꼬는 듯한 주령의 말에 애꿎은 안경만 치켜올리는 휘경.
주령은 그런 휘경을 보며 휘경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웃었다.
그리고 그런 주령을 보다가 살짝 눈을 내리까는 설이.
" 어찌됐든 저주는 풀렸습니다. 적토계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
" 저주가 …. 풀렸다고 ? "
주령이의 말에 굉장히 놀라워 하며 되묻는 휘경. 주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는 저주를 푸는것이 그들의 목적. 저주가 풀렸다면 더이상 같이 여행할 필요가 없는것이다.
기쁜 사실인데, 좋아해야 할 판인데 왠지 허탈하고, 기쁘지가 않은 휘경.
주령은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휘경이 먼저 말하기를 기다려주었다.
" …그…렇군. 축하한다. 네가 수령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말하지 않도록 하지 "
" 그것 참 기쁜소식이군요. 감사드립니다. "
휘경이 다시 얼굴표정을 굳히며 말하자 주령이 차갑게 톡 쏘아붙였다.
그리고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 덮었다.
게다가 휘경의 반대쪽으로 돌아눕는 주령.
설이는 그런 주령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씁쓱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 수령님은 더이상 청룡수령께 할 말이 없으신 것 같군요. 나가시죠 "
설이가 문 밖을 향해 나가자는 제스처를 취하자, 휘경은 자신에게서 등을 보이고 있는 주령을
한참 쳐다보다가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휘젓으며 설이의 손이 향해있는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령의 이불을 똑바르게 덮어주고는 휘경의 뒤를 따라나가는 설이.
설이와 휘경이 나갔는지 문 소리가 들리자,
주령이 침대에서 일어나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 …저하고 잠시 얘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
문 밖을 나가자 조금 차가운 듯한 어투로 정중히 휘경에게 묻는 설이.
휘경은 뒤 돌아 서서 설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결의에 찬, 뭔가 매듭을 짓겠다는 표정.
" 짧게 끝내도록 하게나 "
피식 웃으며 답하는 휘경.
설이는 백안궁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대왕공실(待王公室)로 들어갔다.
원래 대왕공실은 왕공 즉, 왕이나 공처럼 높은사람을 기다리는 곳이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수령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꽤나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직시하는 설이를 보며 휘경이 설이가 결코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꺠달았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엄연히 청룡의 신인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평소같으면 실소를 내뱉었겠지만, 설이의 질문은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가 없는것이었다.
주령과 여행을 하는 동안 얼마나 생각해왔는가.
주령이 자신에게서 얼마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또 자신에게 어떤 인물인지를.
" …그녀는 …, 나에게 있어서 스승이다. "
" 스승 …. 어떤 스승이십니까.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제가 알아도 될런지요 "
말은 허락을 받는 문장이었지만 목소리나 눈빛은 결코 허락을 받는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는 약간의 살의가 담겨있는 눈빛.
휘경은 생각했다. 결코 자신의 답은 틀린것이 아니었다.
주령을 보는 순간, 제대로 된 군주이며 나이따위는 망각할 정도로 훌륭한 신이지 않았나.
여행을 하는 동안 주령에게서 제대로 된 강함은 무엇이며, 세상에 때묻지 않은 숨수함은 무엇이며,
훌륭한 군주와 신에게는 결코 나이는 허상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았는가.
하지만 왠지 자신의 답에는 휘경, 자신조차도 만족하지 못할 답처럼 느껴졌다.
" 모든 것, 모든것이다. 잊고 왔던 것, 몰랐던 것, 새로운 것 … "
" …수령님을, 아니. "
눈빛이 다시 싹 바뀌는 설이.
" …주령이를 연모하십니까 "
설이의 말에 휘경은 탁자를 두 손으로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왠지 뭔가 들킨듯한 불안한 느낌이 드는 휘경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 휘경을 보며 여유로운 듯 하면서도 불안한 듯 살의가 담긴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이의 눈동자를 보자 휘경은 자신에게서도 살기가 풍기는 것을 느꼈다.
왠지 설이의 적대적인 행동, 눈빛 모두가 거슬렸다.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
' …질투인가 '
자신이 만족할 만한 답을 말하지 못했다.
스승이라는 답. 주령은 휘경에게 사랑의 스승이었다.
.
.
.
.
.
.
" 실피드, 로제가 있는곳에 다들 도착했는가 "
- 청룡수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착했습니다.
주령이 문쪽을 바라보더니 살짝 눈을 감았다. 꽤나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두개의 강한 기.
두 기 모두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하나는 물의 기였고, 또 하나는 바람의 기였다.
눈을 천천히 뜨는 주령.
" 알겠다. 이제부턴 보고하러 오지 않아도 괜찮다. 내 계속 보고 있을터이니 "
실피드가 다시 갔는지 바람이 되어 사라지자 아까 품속에서 꺼낸 자신의 손바닥 만한 손거울을
공중에 띄우는 주령. 그 손거울을 향해서 옆에 있는 물잔을 기울였다.
물잔 안에 들어있던 물들이 손거울을 향해 동그란 원을 만들었다.
그 손거울은 문처럼 큰 원의 테두리가 되어있는 물줄기의 위쪽에 둥둥 떠 있었다.
그 손거울이 빛나자 물의 테두리 안에 텅 비어 있던 곳은 거울이 되어 어떤 성의 내부를 비춰주었다.
그리고 그 성에서 로제의 모습이 나타나더니 강유, 비류의 모습도 비춰졌다.
" …좌표 "
주령이 명령어투로 말하자 거울의 맨 윗부분에 99,207이란 좌표가 나타났다.
그 좌표는 20초 가량 지나자 저절로 없어졌다.
로제는 강유,비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자, 주령이 다시 명령을 내리자,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 …아쉽네, 그 여잔 안왔단 말이지 ? "
" 응, 그나저나 여기 로제 성이야 ? 우와~ 좋아!!! "
강유의 해맑은 소리도, 여전히 건방지고 짜증나는 듯한 로제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 내가 말 안했던가 ? 난 로제 폰 크레니아 공작이라는 걸. 크레니아라는 것은 샤르망제국에 속국되어
있는 크레니아 공국을 뜻하는 말이고, 즉 난 크레니아를 다스리는 공작이라는 거지 "
주령이 손으로 공중에 '샤르망제국' 이라고 쓰자 거울에는 계속 로제쪽의 영상이 비춰지고,
그 위에 떠있던 손거울의 빛이 넓게 퍼지면서 컴퓨터 모니터만한 네모난 영상을 만들어내었다.
그 영상에는 샤르망 제국에 주요급 자료들이 모두 있었다.
황제- 켈스니티 폰 에르디아루.
공작이 이 나라에 총 6명이 있으며 그 중 이 나라의 중심을 잡는 세명의 공작.
지보룬 폰 마루가이 공작. 황제 즉위 전 부터 있었던 신하로서,
전쟁에 대한 지략이 뛰어나다.
시리엘 폰 디그셀루 공작. 궁 내부의 모든 관할을 담당하며 역시 황제 즉위 전 부터 있었다.
샤르망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로 예전에는 궁중마법사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흑마법을 쓰는 바람에 언제 어느때에 미쳐버릴지는 모른다.
현재까지는 정상임.
로제 폰 크레니아 공작. 이 공작은 전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다.
그러나 이 공작은 어느 귀족가문도 아니고 몇 달전 갑자기 드래곤과 함께 나타났다.
무기계열을 많이 이용하지만 조사에 의한 바 마법도 수준급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령마법중에서 물계열의 마법을 잘 사용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보룬이 가장 지위가 막강해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시리엘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로제공작과 지보룬공작 둘을 뒤에서 지위하는 자가 시리엘 공작이기 떄문이다.
뒤에 내용이 더 있었으나, 주령은 나머지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 영상은 곧 사라졌다. 다시 로제일행의 영상으로 눈을 돌린 주령에게 강유와 비류와 떨어져
혼자 어디론가 걸어가는 로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령이 다시 좌표를 외치자 좌표가 보여졌다.
'99,208' (26편참고)
- 으아, 이제야 부르는거야 ? 그나저나 네가 싫어하는 '그여자' 는 오지 않았는걸 ?
" 아, 미안, 엘퀴네스. 계산 착오야. 그 여잔 오지않았어 "
주령의 입에 살벌한 미소가 그어졌다. 로제의 이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건방진 남자애의 모습으로
개구지게 말하고 있는 엘퀴네스. 그리고 로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그여자' 란 필시 자신을 가르키는 말일 것이다.
로제가 왜 그리 자신을 싫어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령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에에~ ? 왜 안왔는데 ?
" 아파서. 쳇, 나의 미스(Miss-실수)야. "
- 어떻게 해서든 오게 해. 정령계로 데려가면 네 소원대로 그 여자를 죽여놀테니까
'역시' 라는 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는 주령.
자신의 생각대로 유치하게도 정령계로 자신을 데려가 죽이려는 것이었다.
엘퀴네스의 뒤에 정령계가 어렴풋이 비치는 차원의 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 주위에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실피드가 분명했다.
- 이런, 손님이 오셨군
" 뭐 ? 무슨 … "
- 실피드. 왜 네가 여기 와 있는거지 ?
엘퀴네스가 실피드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러나 주령은 계속 웃고있었다.
실피드가 저기 와 있다고 자신이 의심당할 확률은 없었다.
원래 정령왕이란 드래곤이나 신은 되어야 다스릴 수 있으니까.
「 실피드, 엘퀴네스에게 청룡수령이 백호궁 안에 있다고 전해라 」
주령이 전언을 보내자 실피드는 맴돌던 바람의 모습에서 서서히 여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비웃음을 짓고있는 엘퀴네스와 표독스럽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로제.
실피드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웃으며 엘퀴네스에게 말했다.
- 엘퀴네스, 청룡수령이 백호궁에 있어.
- 뭐? 휘경님께서 ?
원래 정령왕들은 자신의 속성을 가진 드래곤과 신들만을 섬긴다.
즉 실피드는 주령만을, 엘퀴네스는 휘경만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수령들도 신은 신.
그들이 명령하면 따르기는 하겠지만 자신의 속성을 가진 신을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속성을 가진 신에게만 존댓말을 하고 나머지 수령들은 아무렇게나 대한다.
「 백호수령이 문을 닫으라 했다고 말하거라 」
주령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는지 장난기 어린 미소를 계속 지은채,
실피드에게 전언을 보내었다.
- 주령님께서 지금 당장 정령계의 문을 닫으라고 하셨어
- 뭐 ? 백호수령이 ? …쳇. 로제, 어차피 너도 약속을 못지키겠지 ? 우리들의 약속은 뒤로 미루기로 하지
" 뭐 ? …아, 그래.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그나저나 바람의 정령왕에게 들켰잖아. 어떡할 거야 ? "
- 괜찮아. 정령왕은 신들과 드래곤만 따르니까. 어설픈 신수따위는 잘해봐야 상급정령정도야.
엘퀴네스의 말에 로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차원의 문과 함꼐 실피드와 엘퀴네스가 사라졌다.
" 아아, 재밌는 놀이 끝! 후후 "
주령이 아이처럼 웃으며 말하자 물거울은 그대로 증발해서 없어졌고,
손거울은 주령의 손바닥으로 내려왔다.
"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물의 정령왕들은 짜증나는 족속들이란 말야, 후후후 "
장난기 어린 미소와 함께 살벌한 주령의 목소리가 방안 전체에 울려퍼졌다.
29
" 너도 주령을 사모하는 건가 "
" 네. 오랫동안. 청룡수령, 당신보다 훨씬 오랫동안. "
" 용기가 없는 자로군. "
" 그럴지도. 바쁘신 청룡수령을 붙잡아둔 것 같아 죄송하군요. "
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백안궁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휘경도 설이를 뒤따라 갔다.
백안궁 입구 쪽에는 또 공간이동 마법진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귀빈실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정원이 5명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작은 마법진.
설이는 그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서 휘경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휘경도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설이가 주문을 외웠다.
" 안녕히가십시오 "
이미 백호궁의 커다란 입구앞에 서있는 그들. 설이는 고두를 올리며 인사했다.
휘경은 고개를 까딱하고는 공간이동을 했다. 강유와 비류에게로 간 것일거다.
설이는 휘경이 사라진 자리는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연적(戀敵)이라. 그것도 좋겠지요. 이정도 되는 연적이라면 필시 저도 용기가 생길테니까요 "
*
" 나 왔어 "
" 아, 휘경이 왔어, 로제 !! "
휘경이 온 것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강유였다. 강유는 소리쳐 로제를 불렀다.
로제는 혹여나 주령이 왔을까 해서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어디에도 주령의 모습은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로제의 행동을 의아해 하며 바라보는 휘경.
휘경의 시선을 느낀 로제는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휘경을 반겼다.
" …강유, 비류. 돌아가자 "
휘경은 로제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긴말 할 것 없다는 듯이 다소 차가운 듯 말을 내뱉었다.
강유와 비류는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서 휘경을 바라보았다. 로제도.
" 왜 ? "
강유가 물었다.
" 주령의 저주가 풀렸어. 더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지 "
로제는 아직 그들의 정체도 모르고 주령의 저주니 뭐니 하는것은 일체 몰랐다.
그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로 주령에게서 기회를 따기가 어렵다는것만 알고서 입술을 질끈
깨무는 로제.
" 진짜 ? "
" 그래. 더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어 "
강유와 비류가 처음엔 좋아하다가 갑자기 푹 늘어져서는 풀이 죽었다.
휘경은 왜 그러냐는 듯 둘을 바라보았지만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 심정들을 휘경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둘 보다 더하면 더했지. 휘경도 주령과의 여행이 끝난다는것을 아쉬워했으니까.
" …그래도 만날 수 있겠지 ? "
" 그래. 그럼 우리 돌아가자. 로제, 안녕 "
강유와 비류가 인사를 했다. 로제는 당황해서 얼떨떨하게 있었다.
" 어 …. 그러니까 그 여자한테 고맙다고 하고싶어! 나, 나중에 와달라고 전해줘! "
기회를 날리게 생긴 로제는 마지막 기회라도 잡기위해 급하게 소리쳤다.
강유와 비류가 그런 로제를 멍하게 쳐다보다 서로를 바라보며 풋 하고 웃었다.
아마 로제가 그렇게 주령을 싫어하다가도 막상 헤어지니 이렇게 떼쓴다고 생각했나 보다.
강유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로제는 안심한 듯 훨씬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휘경은 로제의 행동이 왠지 수상적은지 한참 로제를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
" 자, 어떻게 할꺼지, 로제 ? …아니, 도화(26편참조) "
아침 조례. 신하들을 마주하게 된다.
주령이 백호전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다 마치고 백호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말했다.
이미 주령은 로제가 자신에게 예전에 살인자라고 욕했던 여자아이(=도화)라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 시녀들이 로제의 긴 치마가락을 조심스럽게 잡고 따라오고 있었고,
한발자국 뒤, 그러니까 거의 주령의 옆과 가까운 곳에는 시녀장이 걷고 있었다.
" 조례가 끝나면 아버지를 모셔와주게 "
" …알겠습니다, 주령님 "
시녀장이 대답하고, 백호전의 문지기가 주령을 알아보며 우렁차게 인사를 하며 문을 열었다.
신하들이 양 옆에 일렬로 서있었고, 그 중앙에 트인 길을 주령이 당당히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화려한 순금과 갖가지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는 옥좌(玉座)에 약간 거만하게 앉았다.
" 내 오늘 그대들에게 말할 건의가 하나있네. 이제까지 숨겨왔지만, 여기서 이만 내 정체를 밝힐까 하네.
나머지 사방신들에게 말이야. 아직 내 나이가 어리긴 하나, 이미 내 실력은 입증 된 것 아니겠나 ? "
신하들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거렸다. 그러나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닌 것 처럼 보였다.
서열 9위의 꽤나 높은 관직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 고두를 올렸다.
그리고 공손하게 주령을 향해 말했다.
" 그것은 대신들이 원하던 바입니다. 허나, 현무쪽에서 수령님의 태생을 … "
" 그것이 문제인가 ? 괜찮네. 그것은 내일 태군께서 오셔서 해결 해 주실걸세 "
※ 태군 : 수령의 아버지를 수령 자신이 일컫는 말. 대신들은 태수장이라 부른다.
대신들은 여전히 거만하고 당당한 자신들의 주군을 바라보며 여기저기서 감탄을 내뱉었다.
여전히 아름답고 어리기만한 그녀를 그들이 이렇게 믿고 의지하는 것은,
주령에게 그만큼의 능력과 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나와 뭐라고 말하는 대신들도 없었고 쑥덕거리는 자 또한 없었다.
주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럼 이제 다 된건가. 장시간 궁을 비워두어 그대들을 긴장하게 했구나. 그러나 이제 걱정말라 "
주령이 인자하게 웃으며 옥좌에서 내려왔다. 문앞에 기다리고 있던 시녀장과 시녀 두명이
주령의 뒤를 따랐다. 대신들이 합장을 해 인사말과 함께 고두를 했다.
문지기의 주령의 퇴장을 알리는 말이 퍼지자, 대신들이 저마다 둘 셋씩 모여 얘기를 주고 받으며
바쁘게 백호전을 빠져나갔다
" 이것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머리가 무겁구나 "
" 호호호, 그러십니까. 그러나 주령님께옵서 자청하신 일이 아니시옵니까 "
주령이 한쪽 눈을 치껴올리며 걸음을 멈추어서 시녀장을 쳐다보았다.
아직 어린 모습을 한 채 약간 삐진 듯이 매섭게 자신을 쳐다보는 자신의 주군을 보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같은 얼굴로 웃고만 있는 시녀장.
거의 유모나 다름없는 시녀장을 바라보며 얼굴을 살짝 붉히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는 주령.
" …씨, 자꾸 웃으면 가출할꺼야 "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하는 주령을 번쩍 들어올리는 시녀장.
" 후후, 요 작은 몸으로 말이지요 ? 오호호호 "
" 일주일 전에도 천궁에 왔었지만 그떄와 지금은 왠지 느낌이 틀리다 ~ "
강유가 조금 우울하게 말했다. 휘경과 비류가 강유의 얼굴을 한번 흘겨보았다.
비류도 그런 강유와 마음이 똑같은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
강유가 누구에게 묻는건지 모를 질문을 허공을 향해 내뱉었다.
비류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강유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는 강유.
그런 강유를 향해 비류가 말했다.
" 만날 수 있어. 백호수령에게 물어보면 되지. 안되면 백호수령을 협박하면돼! "
장난기 섞인, 그러나 결코 농담은 아닌듯한 비류의 말에 강유가 그게 뭐냐며 막 웃었다.
이제야 활기를 찾은 듯한 두사람의 모습에 휘경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 꼭 만나야 되는건가 ? 나는 편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
강유와 비류가 손바닥을 탁 치며 뭔가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보같다고 생각했다며 말했다.
" 그런방법이 있었구나, 와하하!! 비류야!! 우리가 나중에 직접 편지전해주러가자 !!! "
30
" 주령님, 태수장님께서 오셨습니다. "
" 이리로 모시게 "
여느때와 같이 설이가 처방해준 쓴 약을 들이삼키는 주령.
강한 척 하지만 쓴 약을 싫어하거나 떼를 쓸 때를 보면 영락없는 주령이었다.
지금도 쓴 약을 먹고 인상을 잔뜩 쓴 채로 알사탕 하나를 우물거리는 주령.
자신의 아버지가 들어오기를 건방진 자세로 기다렸다.
" 딸 ~ "
팔을 벌리고 이쪽으로 뛰어오는 20대 초반의 남자.
주령은 일어서서 이쪽으로 오는 남자를 바라보다 남자가 가까이 오자 옆으로 쓱 비켰다.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그대로 넘어지는 남자를 무표정으로 응시하는 주령.
남자는 얼른 몸을 일으키고 재빨리 주령을 안았다.
" 딸 ~, 왜그래잉 ~ "
" 붙지마. 짜증나. (우물우물) "
" 으응 ~, 사탕먹는것도 어쩜 이리 귀여울까! "
주령을 딸이라 지칭한 그 남자는 주령의 볼에 자신의 볼을 갖다대며 부벼댔다.
주령은 무표정으로 사탕만 우물거렸다. …약간 얼굴에 인상이 찡그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그만해, 아빠. "
주령이 사탕을 뱉어서 버리며 말하자 남자는 얼른 주령에게서 떨어졌다.
주령이 테이블에 앉자, 남자가 촐싹거리면서 주령의 맞은편에 앉았다.
건성건성으로 차를 따라주는 주령.
" …이제 천궁 곳곳에 백호수령이 누군지 밝혀야 된다고 생각해 "
주령은 담담히 말했다. 남자는 차를 들이 마시면서 주령을 흘겨보았다.
촐싹대던 얼굴에 꽤나 진지한 표정이 잔잔히 깔리자 그 멋진 얼굴이 보이는 듯 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 그래 ? …그런거라면 너 혼자라도 충분할텐데, 왜 아빠를 불렀을까, 똑똑한 따님 ? "
주령과 머리색과 입술만 다를 뿐 똑 닮은 얼굴. 특히 파란색의 눈동자와 눈이 닮았기에,
더욱 더 닮은 듯 했다. 약간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파란 눈동자는 빛을 내며 주령을 응시했다.
주령은 그런 남자의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 그 천박한 여자가 자신의 딸이 백호수령이 된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 "
" …씁, 엄마한테 그럼 안되! 천박한 여자라니 ! "
엄마를 망설임 없이 천박한 여자라고 부른 주령을 장난스럽게 웃으며 혼내는 남자.
그러나 주령은 어꺠를 으쓱해보이면서 '뭐가 어떄서' 라며 말을 흘겼다.
남자는 통쾌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턱을 괴고 주령을 바라보았다.
" 그래. 어차피 넌 그여자의 딸이 아니긴 하지만 … "
" …쿡, 그러게. 하지만 이미 사람들 사이에선 내가 그여자의 딸이라고 소문이 나있는걸 ? "
이 둘의 이상한 대화. 그랬다. 그녀의 어머니라고 알려져 있는 현무족의 현 교 가문의 현교아와
전대 백호수령 백호향사이에는 딸 하나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현교아가 수많은 남편과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백호향은 정직하고 남자다운 희대의 명군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백호향 그도 꽤나 바람을 피워댔던 것이다.
백호향 그는 현교아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었다.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주령의 어머니, 딱 한사람.
그리고 현교아가 이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하자 주령의 어머니가 사게 될 원한때문에
바람핀 사실을 묵과하는 대신 주령을 현교아의 딸로 알려버린 것이다.
" …어떡할꺼야 ? "
" 뭐 그 사실을 밝히는 수 밖에. 어차피 네 엄마는 죽어버렸으니. 아아, 아름다웠었는데 ~ "
호향이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주령을 안으려 하자 주령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을 한 채로 주령을 쳐다보는 호향.
주령이 씩 웃었다.
" 용건없어. 이제 가. 안가면 … "
" 아, 가, 갈께!! 간다, 주령아!! 이 애비는 간다 ~ "
…백호향, 그가 제일 무서워 했던 사람은 주령의 어머니였고 지금 제일 무서워 하는 사람은 주령이었다.
*
" 들었어 ? "
" 엉 "
천중공에 앉아 오붓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강유와 비류.
강유와 비류 둘다 손에 편지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백주령(白姝伶)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 편지는 주령에게 보낼 것인가 보다.
" 백호수령…. 어떻게 생겼을까 ? 으음, 나이는 우리 또래일까 ? "
" 그렇겠지. 백호수령임을 밝히기 위해 오늘 오후에 모두 모이니까, 잘하면 백주령도 볼 수 있겠군 "
차를 마시던 강유가 비류의 말에 차를 풉 내뱉으며 방실방실 웃으며 정말이냐고 물었다.
비류는 강유의 입 안에 있떤 차가 얼굴에 튀었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채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강유의 머리에 메가톤 급 펀치를 날린 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는 아픈 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뭐가 좋은지 실실웃었다.
" 몇시에 모이는데 ? "
" 응 ? 그러니까 …, 3시였던가 ? "
비류의 말에 강유는 품 안에서 시계를 꺼내었다.
그리고 방긋방긋 웃고있던 강유의 얼굴을 시계를 보더니 핏기가 싹 가셨다.
비류가 왜 그러냐면서 강유를 쳐다보자,
강유가 답했다.
" …3시 넘었는데 "
강유의 말을 듣고 이번엔 비류가 입 안의 차를 내뱉으며 되물었다.
강유가 여전히 핏기가신 얼굴로 반 정도 정신 나간 듯 실실 웃었다.
비류는 강유의 팔을 잡고 공간이동을 했다.
그들이 천중공에 도착했을 떄에는 이미 모두 와 있었다.
각 수령들이 앉아있는 곳은 단상 위였다. 비류와 강유가 단상위를 쳐다보자,
휘경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비류가 빨리 가자며 강유의 팔을 잡고 단상위로 마구 뛰었다.
다행히 아직 백호수령은 나타나지 않은 듯 했다.
강유는 단상위에 올라가면서 아래쪽을 두리번 거리며 주령을 찾아 해맸다.
" …늦었잖아 "
" 아, 미안미안. "
휘경의 무덤덤한 말에 비류가 건성으로 사과를 했다.
휘경 옆에 풀썩 하고 앉는 비류.
강유도 연신 두리번 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 …그럼 백호수령님과 태수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
드디어 베일속의 백호수령이 나타난다고 하자, 휘경과 비류가 자신들이 앉아있는 단상보다,
훨씬 높은 단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신 아래쪽을 기웃거리던 강유도 백호수령의 모습이 궁금한지
주령이를 찾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단상위를 쳐다보았다.
아래쪽에서 머리에 온갖 화려한 장식을 달고, 분홍빛이 도는 천에 온갖 장식과 문양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는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채 단상위로 올라오는 여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안면이 있는 전대백호수령, 백호향이 자리잡고 있었다.
" 전대백호수령 ? 그에게는 딸 하나, 주령이 밖에 없던 거 아니었어 ? "
" 그러게. …그리고 백호수령도 …여자네 "
강유와 비류가 의아한 듯 말을 주고 받았다.
단상에 올라온 여자와 백호향. 사람들 모두가 그 둘을 주목했다.
백호향은 아래쪽을 둘러보았다. 아래쪽 맨 앞에 귀빈석에 앉아있는 현교아가 그의 눈에 띄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자를 보며 요염한 미소를 짓는 현교아.
" …뒤늦게 모습을 보이어 대단히 죄송한 말씀을 먼저 올립니다. "
침착하고 청아한 목소리가 당당하게 울려퍼지자 주변은 오싹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고 여자의 붉은 입술이 움직이며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렸다.
" …36대 백호수령, 백주령입니다. "
말이 끝나고 그 여자는, 아니 주령은 얼굴을 가리고 있떤 천을 거두었다.
뽀얗고 하얀 피부에 차갑고 당당하게 빛나고 있는 푸른 눈, 오똑한 코, 붉은 입술.
옅게 띈 홍조. 머리 장식들 틈으로 보이는 보라빛이 감도는 은백색 머리칼.
주령의 모습에 비류와 강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카페 게시글
[Holic。] [※※ 저주에 걸린 백호여왕님 ※※] (21~30)
*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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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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