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2일(화)■
(요한계시록 3장)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묵상/계 3:14-22)
◆ 라오디게아 교회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일곱교회 중에 칭찬이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가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둘이다. 그런데 사데 교회는 그래도 흰옷을 입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몇 있었지만,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런 사람조차 없는 듯하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미지근한 것을 책망하셨다.
주님께서는 뜨겁든지 차든지 택하라고 하셨다. 물론 바람직한 교회는 뜨거운 교회다. 뜨거운 교회란 주님을 향해 열정을 가지고 있는 교회다. 그런데 차가운 교회는 무엇일까? 그것은 완전히 교회 기능을 상실한 종교집단이다. 더는 고민할 필요도,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이 버릴 수 있는 집단이다. 이단과 사이비로 변모한 집단이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했다. 버리자니 아깝고, 취하자니 못마땅했다. 도대체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상태였을까?
당시에 라오디게아는 상업이 발달하고, 돈이 많은 도시로서 교인들이 부유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던 것 같다. 교회가 돈이 많다 보니 웬만한 것은 돈으로 해결되었고, 돈이 많으니 겉으로는 제법 풍성해 보였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치 오늘날 돈 많은 부자 교회를 보는 듯하다.
오케스트라와 거대한 성가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음향시스템과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리고 세련된 설교, 조직화된 구역 활동, 모든 것이 제법 활발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없다. 친교 활동만이 활발할 뿐이다. 자기들이 즐기는 예배에 불과하건만, 그들은 멋진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멋대로 만든 종교활동을 신앙생활과 혼동한다.
이들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부족하다니, 오히려 자랑스럽고, 풍족하다. 그러니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것이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실 때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자들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다닌다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이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교회의 이것저것 직분을 맡을뿐더러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역자로서 용감하게 강단에 서기도 하고 교회 지도자 노릇까지 하겠다고 나선다.
주님께서 우리의 몰골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신다. 내 상태를 정확히 보게 하시는 것이 은혜다. 그토록 형편없고 오만한 자임에도 버리지 않으시고 여전히 회개하기를 기다려주신 것이 큰 은혜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다(사 42:3).
주님께서는 우리가 불로 연단한 금을 사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금은 세상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금이 아니다. 오직 믿음의 시련을 거치면서 얻은 금이다. 우리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주님 보혈의 능력으로 하얗게 된 옷을 사서 입기를 원하신다. 무엇을 지불해서 살 수 있는가? 눈물과 회개다. 주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실 때, 섭섭해하지 말자. 오히려 감사하자.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신다고 하신다(19). 징계받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회개하고, 열심을 내는 것이다(19).
◆ 문을 여는 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절)
유대인들의 문화적 습관에 의하면, 아주 친한 사람끼리만 한 상에서 먹고 마신다고 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문을 연 자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신다. 주님께서 내게로 오셔서 나와 더불어 먹고, 나는 주님과 더불어 먹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즉 아주 친한 사이가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신앙생활이란 주님과 먹고 마시는 삶이다. 심지어 주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먹고 마시는 삶이다(요 6:53).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믿음 안에서 기도하며 교제하는 삶이다.
어떻게 이런 삶이 내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내게 '문을 열라'고 주문하신다.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오, 내가 주님께 가서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고 계신다.
정작 도움이 필요한 자는 나이건만, 주님께서는 나를 돕고 싶어서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놀라운 은혜다. 주님을 밖에 오래 세워놓는 실례를 범하면 안 된다. 즉시 문을 열자.
문을 열라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만 적용하는 말씀이 아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이미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 말씀은 내 안에 주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모셔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께서 주님되지 못하셨기 때문에 회개해야 함을 촉구하시는 말씀이다.
신앙의 열정이 사라진, 그리고 세속화된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회개가 필요한 모든 성도에게 주님은 문을 두드리신다. 그리고 회개하기만 하면 주님과 더불어 풍성한 삶을 다시 함께 시작해주시겠다는 은혜의 약속이다.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주님 보좌에 함께 앉게 하는 큰 은혜를 약속하신다. 겨우 회개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말도 못 한 큰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하신다. 겸손하게 주님께 문을 열자. 문을 여는 것은 다름이 아니다. 조용히 주님께 나 자신이 회개할 자임을 인정하고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 일곱교회가 주는 교훈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일곱교회를 시대별로 특징지어지는 교회라고 해석하는 주석가도 있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씀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신다. 즉 세상의 모든 교회(계 2:23)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며, 모든 성도가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이다.
세상의 모든 교회는 아마도 이 일곱교회 형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내가 속한 교회는 어떤 교회와 같을까? 우리 교회는 무엇을 회개하고 무엇을 고쳐야 할까? 교회별로 적용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일곱 교회 중의 어떤 교회의 모습일까?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주 예수님,
세속과 자랑에 찌든 마음을 고치시며, 헛된 자만에서 건져주십시오.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그런 삶이 매일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첫댓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면서 영접 촉구할 때 인용하는 말씀으로 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귀한 깨달음....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헌금을 건물 내외부 장식하는 데 투자하는 많은 교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