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129편
공손승이 송강과 오용에게 진법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은 한나라 말 제갈공명이 돌을 배열하여 보여준 진법입니다. 사면팔방에 8개 부대씩 64부대를 배치하고 중간에 대장이 자리 잡습니다. 그 형상이 머리 네 개에 꼬리 8개 모양인데, 좌우로 돌면서 천지풍운(天地風雲)의 작용과 용호조사(龍虎鳥蛇)의 형상을 나타냅니다.
적이 산을 내려와 진 안으로 쳐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양군이 일제히 진문을 열어 줍니다. 칠성기가 올라가 신호를 하면 진은 장사(長蛇)의 형세로 변합니다. 빈도가 도술을 부리면, 그 세 사람은 진중에서 전후로 길이 없어지고 좌우로도 나갈 문이 없게 됩니다. 함정을 파 놓고 곧장 그들을 몰아넣은 다음, 양변에 매복한 갈고리 든 병사들이 사로잡으면 됩니다.”
송강은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곧 명을 전하여 대소 장교들은 군령에 따라 행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8명의 맹장 호연작·주동·화영·서녕·목홍·손립·사진·황신은 진을 지키게 하고, 시진·여방·곽성은 중군을 임시로 맡게 하고, 송강·오용·공손승은 진달을 데리고 깃발로 지휘를 하기로 했다. 주무는 군사 5명을 데리고 근처 높은 언덕에 올라가 진의 움직임을 보고하게 하였다.
그날 아침 양산박 군사들이 산 근처에서 진세를 벌리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며 싸움을 걸었다. 망탕산 위에서 2~30개의 징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세 두령이 일제히 산을 내려와 3천여 인마가 진을 벌렸다. 좌우에는 항충과 이곤이 있고, 가운데에는 혼세마왕 번서가 검은 말을 타고 진 앞에 서 있었다.
번서는 복주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전진교(全真敎) 도사가 되었고, 강호에서 무예를 배웠다. 말 위에서 유성추(流星鎚)를 잘 썼으며 장수를 베고 깃발을 빼앗는 것이 신출귀몰하여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요술도 잘 부렸지만, 진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송강의 군마가 사면팔방으로 진세를 벌리고 있는 것을 본 번서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했다.
“네놈들이 진세를 벌리면, 내 계략에 빠지는 것이다!”
번서가 항충과 이곤에게 분부했다.
“바람이 일어나면 자네 둘은 칼을 든 5백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하게.”
항충과 이곤은 명을 받고, 각각 방패를 쥐고 표창과 비도를 들고서, 번서의 요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번서가 말 위에서 왼손으로 유성추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혼세마왕 보검을 짚고서 입속으로 주문을 중얼거리다가 소리쳤다.
“가라!”
그러자 광풍이 사방에서 일어나면서 모래와 돌이 날리고 천지가 깜깜해지면서 해가 빛을 잃었다. 항충과 이곤은 함성을 지르며 칼을 든 5백 군사를 이끌고 돌진했다. 송강의 군마는 적이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 양쪽으로 벌리며 길을 열어 주었다. 항충과 이곤이 진 안으로 들어오자 양쪽에서 강궁과 쇠뇌가 발사되어, 4~50명만 안으로 들어오고 나머지는 모두 본진으로 돌아갔다.
송강이 높은 언덕 위에서 항충과 이곤이 진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진달로 하여금 칠성기를 흔들어 신호하게 하자, 진세가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장사진(長蛇陣)으로 변하였다. 항충과 이곤이 진 안에서 동분서주하고 좌우로 돌아 봤지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높은 언덕 위에서 주무가 작은 깃발을 들고, 항충과 이곤이 동쪽으로 가면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으로 가면 서쪽을 가리켰다. 공손승이 송문고정검(松紋古錠劍)을 뽑아 들고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다가 소리쳤다.
“가라!”
그러자 항충과 이곤의 발아래에서 바람이 휘말려 일어났다. 둘이 진 안에서 보니, 천지가 깜깜해지고 해도 빛을 잃었는데 사방에 군마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검은 기운만 감싸고 있었다. 뒤를 따라오던 군사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항충과 이곤은 당황하여 길을 찾아 본진으로 돌아가려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우레 소리가 크게 들렸다. 둘은 ‘아이고!’ 비명을 질렀는데, 두 다리가 들리더니 공중에서 뒤집어져 거꾸로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양쪽에서 갈고리가 나오더니 끌어당겨 밧줄로 꽁꽁 묶어 언덕 위로 끌고 갔다.
송강이 채찍 끝으로 가리키자, 삼군이 일제히 돌격했다. 번서는 인마를 이끌고 산 위로 달아났는데, 군사의 태반을 잃고 말았다. 송강은 군사를 거두었다. 여러 두령들이 막사 앞에 앉자, 병사들이 항충과 이곤을 끌고 와서 휘하에 무릎을 꿇렸다. 송강은 그걸 보고 황망히 밧줄을 풀어 주고 친히 잔을 권하여 말했다.
“두 분 장사는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전쟁 중이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송강은 오래 전부터 세 분 장사의 이름을 들어 왔기에, 예로써 청하여 함께 대의를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회를 얻지 못하여 이렇게 일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만약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산채로 가 주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급시우라는 큰 이름을 들은 지 오래였습니다만, 인연이 없어 아직까지 뵙지 못했었습니다. 과연 형님께서는 대의를 지닌 분이십니다! 저희들이 호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늘의 뜻을 어기려 하였습니다. 오늘 이미 사로잡혔으니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도리어 이처럼 예로써 대해 주시고 목숨을 살려주시니 목숨 바쳐 큰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번서 그 사람이, 저희 둘이 없으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사께서 저희 하나만 풀어 주시면, 돌아가서 번서를 설득하여 투항하게 하겠습니다. 두령님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송강이 말했다.
“장사! 한 사람이 여기 남을 필요도 없습니다. 두 분은 함께 산채로 돌아가십시오. 송강은 내일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은 절하고 말했다.
“진정 대장부이십니다! 만약 번서가 투항하지 않으려 하면, 저희가 붙잡아 두령님 휘하에 바치겠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중군으로 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새 옷을 갈아입게 한 다음, 창과 방패를 돌려주고 말을 내 주어 산채로 돌아가게 하였다.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송강의 은혜에 감사해 마지않았다. 망탕산 아래에 당도하자, 졸개들이 깜짝 놀라며 맞이하여 산채로 올라갔다. 번서가 어떻게 돌아오게 된 것인지 묻자, 항충과 이곤이 말했다.
“우리는 하늘을 거역한 사람들이니 죽어 마땅합니다!”
번서가 말했다.
“형제들은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두 사람은 송강이 얼마나 의기가 있는 사람인지 자세히 설명했다. 번서가 말했다.
“송강이 그처럼 어질고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하늘을 거역하지 말고 일찌감치 내려가 투항하세.”
두 사람이 말했다.
“저희도 그래서 온 겁니다.”
그날 밤 산채를 수습하고, 다음 날 날이 밝자 세 사람은 산을 내려가 곧장 송강의 영채 앞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절했다. 송강은 세 사람은 일으키고 막사 안으로 청하여 좌정하게 했다. 세 사람은 송강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보고, 피차간에 진심을 토로하고 평생 품어 온 뜻을 얘기하였다.
세 사람은 양산박 두령들을 망탕산 산채로 초청하여, 소와 말을 잡아 융숭하게 대접하고 삼군에 상을 내려 위로하였다. 연회가 끝나고 나서, 번서는 공손승을 스승으로 모셨다. 송강이 공손승에게 오뢰천심정법(五雷天心正法)을 번서에게 전수하라고 권하자, 번서는 크게 기뻐하였다.
며칠 후 번서는 인마를 수습하고 산채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수레에 싣고 산채는 불태우고, 송강을 따라 양산박으로 갔다.
송강의 군마가 양산박에 당도하여 막 건너가려고 하는데, 갈대숲 옆 큰길에서 한 사내가 나타나 송강에게 절을 올렸다. 송강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그를 일으키고 물었다.
“족하는 누구시오? 어디서 왔소?”
사내가 말했다.
“소인은 단경주(段景住)인데, 머리털이 붉고 수염이 누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금모견(金毛犬)이라 부릅니다. 탁주 사람으로, 평생 북쪽 변경에서 말을 도둑질하며 살아왔습니다. 올해 봄에 창간령 북쪽에서 좋은 말 한 필을 훔쳤는데, 잡털이 한 올도 섞이지 않고 온몸이 백설 같은 말입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1장이고, 발굽에서 등까지 높이가 8척입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데, 북방에서는 조야옥사자(照夜玉獅子)로 불리는 유명한 말입니다. 금나라 왕자가 타던 말인데, 창간령 아래에 풀어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