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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의 음주 만태
술, 즐거워서 마시고 슬퍼서 마시고 따분해서 마시는 것.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 호주머니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우리, 어디 가서 한잔하세.” 하는 것이 우리의 음주문화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인가 술 마실 핑계를 만들고 있다. 월요일은 월급 탄 기념으로 마시는 날, 화요일은
화를 참지 못해 마시는 날, 수요일은 수틀리는 일이 생겨 마시는 날, 목요일은 목적달성 기념으로 마시는
날, 금요일은 금강산도 식후경, 일단 마시고 보는 날, 토요일은 토론을 하기 위해 마셔두어야 하는 날,
일요일 은 일 없으니 무료해서 마셔두는 날.
그것도 2차 3차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시고, 이튿날은 머리가 뻐개진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술이
몸에 좋으냐 나쁘냐는 질문이 수 백 년 동안 계속되어온 것이지만 아직도 정답은 없는 듯하다.
다만 적당히 마시면 약주요, 그렇지 않으면 독주라는 게 고작이다.
이 술의 마시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청탁(淸濁) 불문, 장소불문, 노소불문, 가사불문, 생사불문
등등. 그러나 생사불문은 좀 지나친 것 같지만, 실지로 과음해서 저승 행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생판 과장만도 아니다.
행정의 정의를 회의와 출장과 연회라고 했듯이, 공직사회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만큼 많이
마시다보니 공직자들의 음주괴벽(飮酒怪癖)도 가지가지이다.
춘천시부시장을 거쳐 철원, 영월, 인제군수를 역임한 한우삼 군수의 음주법은 재미있다. 한 군수는
좌고가 유난히 큰 폭인데, 주석에서도 상체를 꼿꼿하게 앉아서, 마치 육군사관생도가 밥을 먹듯,
술잔을 수직으로 들어올려 일직선으로 갖다가 마신다.
한참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안주가 남았으니 한 주전자 더하지.”
그러다가 안주가 떨어지먼 “술이 남았으니 안주 한 접시 더하지.” 이래서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마신다.
서명택 시장의 음주 행태도 특이하다. 도 내무국장으로 있을 때 퇴근해서 귀가하다가 적십자사 앞까지
오면 상체가 좌우로 흔들흔들 한다. 몇몇 과계장들이 따라오다가 그 눈치를 알아차리고 “요선동으로
가시지요.”하면 씩 웃고는 우회전을 한다.
상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자택이 있는 왼쪽으로 갈까, 대포집이 있는 오른쪽으로 갈까하는 제스처인데,
내심 왼쪽보다는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 과계장들이 오른쪽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요선동 첫째 대포집에 들린 서 국장은 한두 잔을 들고는 곧 나온다. 그리고는 그 다음 집, 이렇게 해서
요선동, 낙원동, 중앙시장 뒷골목까지 모든 대포집을 싹쓸이해야 직성이 풀린다.
술 섰다판도 있다. 박종성 지사가 회계과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정초가 되면 의레 교동에 있는 자택으로 회계과원을 초청해서 주연을 베푸는데, 그 당시 과장이하 모두가
무량대음이어서 무진장으로 마시다 가는 술 섰다판이 벌어진다.
이것은 글라스에 정종을 하나 가득 따르고는 투전판에서처럼 자신이 있으면 “섰다”하고 외치는데, 술이
센 이들만이 일제히 마신다. 이것을 두 번 세 번 되풀이 하면 하나 둘 탈락하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남는
사람은 주량의 다과보다는 오기와 미련한 자가 마지막까지 버틴다. 나도 남에게 지지 않는 성미안지라
영선계의 이용상과 최후까지 대결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괴팍한 음주법은 아무래도 군사문화에서 유래한 것 같다.
5·16 혁명 후 2대째 현역 도백인 이 용 소장은, 가끔 요정 미라도에서 국과장 등과 술자리를 같이 하는데,
술이 몇 순배 돌은 다음에는 국과장을 한 사람씩 자기 앞으로 불러 앉히고 화채그릇에다 정종을 가득
따른 후 단숨에 마시게 한다. 그래서 슬금슬금 도망을 치거나, 김원희 사회과장은 술에 취해 자기도
모르고 이 용 지사의 엉덩이를 발로 차기도 했다.
박경원 지사는 ‘노,털,카,찡,떼’ 가 전매특허이다, 이것은 글라스로 정종을 마시는데, 술을 마신 후 글라스
를 식탁에 놓으면 벌주로 한잔을 더 마셔야 한다. 그뿐 아니라 술을 마신 후 술잔을 털어도 안 되고, 술을
마시다가 입에서 떼었다가 마셔도 벌주를 마시게 된다.
내가 박 지사가 주는 글라스를 단숨에 마시고 평소의 습관대로 잔을 털었더니 털었다고 벌주 한잔을 더
마셨는데, 이번에는 낯을 찡그렸다고 또 마시게 한다. 박 지사는 어떻게든지 트집을 잡아 강제로 술을
많이 마시게 함으로서 그 어떤 희열을 느끼는 모양이다.
예비역 소령의 한동석 원주시장의 음주법도 특이하다. 글라스에 정종을 가득 따른 후 고개를 제치고
글라스를 입에 대지 않은 채 술을 흘려보내야 한다.
대개는 재채기를 하면서 마신 술을 토하거나 술잔을 입에다 대고 마시게 되는데, 그러면 벌주로 새로이
또 마셔야 한다.
연암 박지원(燕岩 朴趾源)의 기행문집 ‘열하일기’에 보면 중국에 가는 사신 행차를 따랄 북경에 가서
중국의 명사들과 교환(交驩)을 하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들과 술을 마셔보니 잔이 너무 작아,
우리 막걸리 사발같이 큰 주발을 가져오게 하여 단숨에 주르륵 마셔 버렸다. 자기 생각에 그런 식으로
마시면 중국인들이 굉장한 주객이라고 찬탄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비꼬아 ‘非飮也, 是灌也’라고 하였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논에 물을 대는 것과 같다’는 평이다.
한동석 시장의 음주법이야말로 ‘是灌也’라 아니할 수 없다.
이건영 속초시장의 주법도 특이하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술을 적게 받거나, 다 마신 것처럼
술을 재떨이나 다른 그릇에 따르는 일이 있는데, 이 시장은 그러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글라스를 쥔 채
상대방과 팔짱을 끼고 같이 쭉 들이킨다. 그러니 술이 약한 사람도 안 마실 수 없게 된다.
‘패튼 대전차군단’이란 영화를 보면, 2차대전 당시 사하라사막의 격전 후 패튼 장군이 전승축하연에서
동료 장군과 축배를 나눌 때에 팔을 엇바꾸어 잔을 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미군 사이에 관행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건웅 시장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으레 이런 술을 들었다.
5·16혁명을 전후해서 우리 도의 내무국장을 지낸 허 련 국장의 음주법도 특이하다. 허 국장은 주석에서
술잔이 몇 순배 돈 다음에는 좌정한 일동의 술잔을 모두 비우고 어느 한 사람 앞으로 모아 놓고 술을
따라서 전부 마시게 한다. 이것을 TOT라고 하는데, 모든 잔을 다 마시면 빈 잔을 바로 옆 사람에게
돌려서 마시게 한다. 이런 식으로 한 바퀴 돌고 또 돈다. 인원이 4~5명 정도일 때에는 여러 번 돌게
되지만 10여 명이나 되면 한두 번 도는 게 고작이다.
미련한 폭주법의 압권(壓卷)은 김동석 삼척군수의 임관식 음주법이다. 정초에 과계장을 군수 관사에
모아 놓고 주연을 베푸는데, 술잔이 몇 순배 돌은 다음 화채그릇에다 정종을 하나 가득 따른 후 “지금
부터 임관시험을 보겠소. 이 술을 단숨에 마시면 소위로 임관이 되는 것이오.”하고 자기가 먼저 쭉
마신다. 작은 잔으로 이미 여러 잔을 마신 후여서 한 대접도 못 마시는 사람, 한 대접을 겨우 마시는
사람, 아예 집으로 도망가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그래도 소위로 임관된 사람이 더러 있다.
한 바퀴 돈 다음 김 군수는 또 한 대접을 마시고는 “두 대접을 마시면 중위가 되는 것이다.”하고 또
돌린다. 두 번째는 더 많은 사람이 탈락을 한다. 이렇게 해서 대위로 승진하고 다시 소령까지 승진한
사람은 김 군수와 김인출 건설과장 단 두 사람뿐이다. 김 군수는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원래가
무량대음이어서 거뜬히 중령으로 승진했다. 김 과장은 춘천농고 재학시절부터 마라톤 선수 생활을
한 악바리여서, ‘내가 질소냐’ 하고 또 한 대접을 마시다가 중도에서 기권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김인출 건설과장은 위장장애로 세상을 떴는데, 동료들은 그 임관식 술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쑥덕공론을 했었다.
술을 마실 때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도가 지나면 술이 술을 먹게 되고 종래는 술이 사람을
먹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방향감각을 잃게 되고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전후 사정을 판별하지 못한다.
도청이 수복한 직후의 일이다. 공보과 이부영 공보계장이 만취가 되어 교동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 길목에 문돈식 춘천방송국장이 살고 있는데 문 국장이 아침 일찍 일어나 닭장에 가 보았더니 누군
가가 누워있었다. 문 국장은 도둑인 줄 알고 몽둥이를 들고 들어가 보니 전부터 잘 아는 이부영 공보
계장이 아닌가. 깜짝 놀란 문 국장이 이 계장을 깨워 집으로 보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주당
간에 전해오고 있다.
이런 폭주가가 들끓는 판국에 가장 애를 먹는 사람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다.
지원용 양양군수는 심한 당뇨병으로 밀밭에도 못가는 위인이어서 주당들이 아예 제쳐놓으니 다행
이지만, 조금은 마시기는 하지만 아주 약한 사람이 문제이다.
김명한 강릉시장은 술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술좌석에는 절주를 하느라 애를 쓴다. 그러나 김 시장이
직접 주관하는 주석이나 그 외 중요한 석상에서는 술잔이 자주 돌아와서 질색이다.
그리하여 술 안 마시는 묘안을 하나 창안해냈다. 그것은 접대부와 미리 짜고 술 주전자에다 술 대신
보리차를 넣어서 그것을 남이 눈치 채지 않도록 마신다. 그것이 한번은 어떻게 잘못되어 박종성
지사에게 발각되어 호되게 질책을 당한 일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가짜 술의 덕을 톡톡히 본 적이 있다. 내가 삼척군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강릉에서 여러
인사들의 주연이 베풀어졌는데 나도 거기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바쁜 일이 있어서 예정 시간보다 늦게 참석을 했다. 그랬더니 벌주로 후래 3 배를
하라고 아우성이다. 할 수 없이 맥주 글라스로 정종 한잔을 단숨에 마셨다. 그런데 또 마시라고 한다.
그때 나는 김명한 강릉시장 옆에 앉아있었는데 믿는 데가 있어서 나는 김 시장 옆에 있는 아가씨에게
잔을 내밀고 따르라고 하니 망설인다. 김 시장이 눈짓을 하니 술을 따른다.
나는 간신히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마셨다. 좌중은 또 한 잔 마시라고 야단이다. 더 못 마시겠다고 짐짓
사양을 했지만 막무가내이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또 한 잔을 받아 오만상을 찌푸리며 마셨다.
그제서야 좌중은 됐다 하며 박수를 친다. 그런 다음부터는 작은 정종 잔으로 끝까지 대작을 하였으며
나는 본의 아니게 무량대음가가 되었다.
연회가 있을 때마다 술로 말미암아 곤욕을 치르던 김명한 시장이 속초시에 재직하고 있을 때에 기발한
주도근대화(酒道近代化) 3원칙을 만든 일이 있다.
1. 무리하게 권하지 말고 적당히 마십시다.
2. 조용히 정답게 마십시다.
3. 술 마신 다음 곧바로 가십시다.
술은 잔을 주거니 받거지 하며 취하도록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주당이 더 많아서인지, 김명한 시장의
주도근대화 3원칙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시들해졌다. (강원행우)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大 선배님들의 음주문화가 내가 공직생활 할때까지 이어졌군요.
요즘은 많이 좋와졌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