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문이 열리고 아내는 이동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빡빡 깎은 아내의 표정은 굳어 있고 시선은 천장에 고정되어 있다. 수술실의 무거운 분위기는 아내를 더욱 긴장시키고 가족들에게도 덩달아 불안감을 안겨 준다.
내가 아내의 침대를 수술실 안으로 밀어 넣고 나오는데 아들이 “무슨 말씀이라도 좀 하고 나오셔야지요.”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그렇다, 이것이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온대서야 되겠는가. 수술실로 다시 들어갔다. 무언가 한 마디는 해야겠는데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이 적합한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모기소리만 하게 떠듬떠듬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
수술실 문을 나서니 아들이 내 얼굴을 쳐다보는데 나는 애써 외면하고 복도 의자에 앉았다. 오래전부터 아내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여 여러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결국 큰 병원에서 뇌수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머리에 물이 고여 뇌신경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두통이 심하고 동작도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머릿속에 호스를 꽂고 그 호스가 가슴과 옆구리를 통과하여 신장까지 내려가게 해 주면 뇌 속의 물이 정상적으로 빠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호스는 평생 몸속에 달고 다녀야 한단다. 그래서 수술은 쉽지 않고, 후유증이 있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복도 의자에 앉아 벽 위의 전자 안내판을 쳐다본다. ‘수술 중’이라는 빨간 불이 켜져 있고 그 아래에 아내의 이름이 나와 있다. 안에서는 정상적으로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빨간 불을 쳐다보고 있는 내 마음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홍수처럼 소용돌이친다. 지난날, 아내에게 요구만 하고 나무라기만 했던 일들이 죄의식으로 다가온다. 언제나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했던 아내의 허물은 온데간데없고 내 잘못만 크게 부각되어 떠오른다. 혼자 고결한 척 성가신 일들은 아내에게 떠넘긴 채, 아내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처럼 여겨 왔던 긴 세월, 그것은 내가 아내보다 더 잘났다는 교만과 독선이 아니었던가. 그동안 그와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가져 보지 못했는데 위험한 때를 만나자 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된다.
군대에 갔을 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깨쳤고, 갑자기 내게 온 백혈병으로 죽음과 마주했을 때, 이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내의 모습을 보고 인명의 존귀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광판에 표시된 아내의 이름이 ‘회복 중’으로 넘어갔다. 그래도 가슴속에서는 참회의 채찍이 멈출 줄을 모른다. 회복실에서 마취가 깨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데, 걱정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낮은 곳에서 아내를 쳐다보기는 처음이다. 나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아이 셋을 데리고 친정으로 떠나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른다. 신은 내게 더 많은 고통을 주어야 하는데, 선량한 사람이 오히려 고통을 받다니…….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빨간 전광판에서 읽어 나간다. 회복 중이라는 표시판에서 아내의 이름이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그 이름이 지워지면서 보호자를 불러 침상을 밀며 나가고 있는데.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보호자를 찾는다. 좋은 결과인지 그렇지 않은 결과인지 호명하는 간호사의 표정을 살펴본다. 다행히 침상이 그의 뒤에서 나오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아직 의식이 덜 깬 아내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수술은 잘된 것처럼 보였다. 병실로 옮긴 뒤, 조금 있으니 아내의 의식이 돌아왔다. 새 세상을 다시 보는 듯한 그의 눈빛이 어린아이 같다.
밤이 늦어, 간병인에게 병실을 맡겨 놓고 집으로 왔다. 집 안은 가을걷이를 끝낸 빈 들판같이 황량하다. 자리에 누우니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누운 채 아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장롱을 만져 본다. 가끔 아내가 마른 천으로 윤기를 내려고 닦고 닦고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손이 닿던 곳, 그가 애정을 쏟던 것들이 이렇게 소중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혼자 누워 있으니 외로움이 물살처럼 밀려온다. 자정을 넘기고 고뇌의 물결이 잔잔해지자 그 옛날, 그와 처음 맞선을 보던 초기의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신은 내가 초심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왜 이렇게 험난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야 그 길을 조금씩 열어 주시는지 모르겠다.
- 『산수화 뒤에서』 중에서
(견일영 지음)
첫댓글 아내의 병상을 바라보면 이렇게 참회의 생각을 글로 옮겨 놓은 저자가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일곱 번의 수술을 할 때도 혼자 더니면서 검사하고 입원 수속 내가 다하고 나면 병실에 나타난 사람
겉으로 한 마디 말없이 쳐다 보고 있기만한 남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 뭘해요~~
그래서인지 난 남편이 밉고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