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이유는 스님들께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곳이라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느껴보고 싶어서이고,
둘째 이유는 눈 때문에 두 번을 돌아서 나온 서운함이 남아서일겁니다.
작년에 다녀온 모습인데 아마 지금도 눈이 많이 쌓여 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초입에는 눈이 살짜기 녹아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앞만보고 달렸습니다.
한참을 가니 인가와 상점이 보이면서 눈이 더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또 허락을 하시지 않는구나 하는 마음에 못내 아쉬워하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수도암까지 차가 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갈 수 있을거라며 가 보라고 했습니다. 마침 앞에 경운기도 가고 해서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계곡의 바위들도 지붕도 하이얀 눈이 떨어질세라 숨죽이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새하얀 눈은 더더욱 빛나기만 합니다.
조금 올라가니 눈이 옆으로 치워진 마알간 길이 나왔습니다. 아마 스님들께서 이른 새벽에 울력을 하셨나봅니다.
나뭇가지들은 힘겨웠는지 이미 눈을 다 털어내고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눈이 많이 내렸나봅니다.
요사채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하얀 눈들이 거추장스러운 듯 널브러져 있어 보기가 그렇지만
그들이 나무에 내려 앉아 눈꽃이 되었을 땐 참으로 고왔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해인사 백련암에서 3천배 기도를 끝내고 나오니 세상이 눈으로 온통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특히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순백의 눈꽃들은 육체적인 고통을 충분히 잊게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곳 산새들은 공양주 보살을 알아보는지, 아니면 먹이 냄새를 맡은 것인지
보이지 않던 새들이 어느새 요란을 떨며 나타나 조용하던 경내가 순간 시끌벅적합니다. 그것도 잠시 산사는 미동도 않고 고요히 선정 속에 잠겨있는 듯 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시야를 넓혀갔습니다.
저기 위에 소중한 분이 분명 계실 것 같아
망설임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습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며 내음을 맡아보았습니다.
무색무취의 싸아한 향기가
부질없는 상념들의 파편을 날려버린 듯,
머리 속이 하얗게 맑아졌습니다.
아!!! 정말 기운이 맑았습니다.
그 어떠한 탁기도 느낄수가 없었습니다.
세상과 떨어져 일체의 고를 잊고서 일념으로 화두를 잡고 수행정진해서일까?
비록 그들의 꺼죽은 갈라지고 거칠거칠하여
윤기를 잃어갔지만, 그 속에서 그들의
담백하고 욕심없는 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법당에서 서가모니불 정근하는 소리가 허공을 울립니다.
마음 속으로 따라 외어봅니다.
'서가모니불, 서가모니불.......'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밖에서 인사드렸습니다.
몸돌에 새겨진 부처님의 모습이 많이 마모되었지만 그만큼 공부도 깊어졌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겨울 방학 땐 산사에서 일주일만 머물다 내려왔습니다.
소띠라서 그런지 올해는 더 많은 일을 해야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래서 자주 출근할 일이 잦아져 한가로이 절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께서 서운해 하셨지만, 나의 처지를 아시고 내려보내주셨습니다.
지난 여름엔 삼칠일 기도를 하며 채공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채공을 살면 지혜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오신채를 가리며 야채뿐인 한정된 재료로
스님들의 입맛을 헤아리기위해 마을에서 먹던 음식을 떠올려
비슷하게 맛을 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해제하고 오신 여러 스님들과 우리 스님의 은사스님이신
불필 스님의 공양을 올리는 큰 일을 치루었거든요.
우리 스님께서 긴장을 많이 하셨는데,
불필스님께서 아주 흡족해하셔서 마음을 놓았지요.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생기네요.
살면 살수록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듭니다.
바른 생각과 바른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말입니다.
절에 가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새벽 예불이 마치면 스님과 차 한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불법을 알게 되는 짧은 시간이 큰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어느 날
"스님, 제가 그 동안 헛되이 살지 않았나봅니더."
"많은 사람들이 제가 잘 되기를 바라고, 주변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니 이런 좋은 일이 있나봅니더."
"제가 만약에 젊은 날에 허투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싶네예."
"그래, 다남아, 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정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40대에 열심히 마음을 닦으라고 하는 이유가,
"무의식의 제 8식인 아뢰야식에 바른 생각들을 깊게 새겨 넣으면 다음 생엔 그 생각으로 살게 되거든."
"이 생이 마지막이 아니고 내생이 있기때문에, 인과를 두려워하고 열심히 닦으며 살아야 한데이."
"스님, 다음 생엔 저도 스님이 될랍니더."
그렇게 마음으로 원을 세우면 될 수 있을까?
스님으로부터 전해 듣는 성철 스님의 일화는
정말 통쾌하고 마치 영화 속의 이야기 같아
들어도 들어도 자꾸 듣고싶어집니다.
방학이 되어 백련암에 기도하러 올라오신 우리 스님이
새해를 맞아 성철 큰 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큰 스님 세배 받으시이소."하니 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새해 첫날 부터 가씨나 한테 절 받으면 재수 업써."
하시며 홱 되돌아 나가셨답니다.
큰 스님께 무시당하고 서러워 한참을 엉엉 울었다더군요.
"스님, 큰 스님께서 그렇게 여자를 싫어했습니꺼?"
"그래, 참말로 싫어했다."
제 생각엔 수도하는 데에 제일 방해되는 것이 애욕이기 때문에 여자를 멀리해야 제대로 공부 할 수 있어서
의도적으로 그랬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죽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런 것이 하나뿐이기 다행이지,
두 개 있으면 성불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셨을까요.
다음 생에 제대로 공부하려면 남자로 태어나야되는데....
스님께서 해인사에 계실 때, 걸어서 수도암까지 갔다고 하셨습니다. 환한 보름달을 안고서 능선을 타고 걸어서 수도암까지 가는 길이 참 아름다웠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가야산 자락인가봅니다.
수수한 석등이 이곳과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약광전 앞의 단아한 삼층탑입니다.
약광전을 가려니 발이 눈에 푹푹 빠져
신발 안으로 찬 기운이 스며듭니다.
생로병사를 벗어 날 길 없는 우리 인생!!
저는 다른 건 무섭지 않는데
아파서 병원 가는 것이 제일 싫습니다.
병상에서 20년을 감옥살이 하듯 살다가신 친정엄마를 보니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라고 한 루이제 린저의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죽을때까지 열심히 일하다 때가 되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님께서는 열심히 지심귀명례하면 그리 될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약사불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죽으려고 날 받아놓고 절에서 죽는 꿈을 꾸었는데
죽기 전에 제가 입던 깨끗한 옷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고요히 눈을 감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처럼 내가 죽는 날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럴려면 열심히 비우고 비워서 없음의 진리를 깨달아야겠지요.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은 집착하고 근심한다. 집착이 없는 이는 근심거리가 없다.
사람들은 내 것이라고 집착한 물건 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변하고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집착과 욕망의 집에 머물러 있지 말라.
내 것이라고 집착하여 욕심 부리는 사람은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온함을 얻은 성자들은 소유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숫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