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기행 - 원나라 실세황후가 된 고려여인, 기황후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5. 3.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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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기행 - 원나라 실세황후가 된 고려여인, 기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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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30. 18:17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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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공녀(貢女)에서 元나라 황후가 되다
파죽지세로 일어나 그 누구도 당할 자 없었던 몽골제국이 처음 침입한 것은 1231년(고종 18년)으로 그 후 모두 7차례나 침입했다. 고려는 30여 년간 꿋꿋이 항거하였지만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고려는 정복한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완전히 복속되지 않고 자체적인 국호와 정권을 인정받는 독립국가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제국이었던 원나라의 테두리 안에 들어간 100여 년 동안 고려는 원조정으로부터 수많은 내정간섭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왕자들은 인질로 원나라에 가야만 했고, 왕은 원 조정에서 마음대로 갈아치웠으며, 혼인 통교를 앞세워 원나라 공주가 고려의 왕비가 되어 들어와 고려 정치에 간섭하는 일이 생겼다. 한반도의 북쪽 땅은 원나라의 직접 통치구역이 되었고 원나라의 정복 전쟁을 돕는다는 명분하에 수많은 물자와 군사가 약탈에 가깝게 동원되어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원나라는 고려에 <공녀,貢女>라는 매우 야만적인 요구를 해왔다. 공녀란 말 그대로 여자를 공물로 바치는 것이다. 원나라의 공녀 요구는 80년간 정사에 남아 있는 것만 50여 회에 이르고 왕실이나 귀족이 개인적으로 요구한 일도 허다하였다고 한다. 원의 공녀 요구 이유는 유목민족 출신인 원나라 왕실에 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외에도 귀족·고관 심지어는 군인 집단 등의 혼인을 위해 많은 수의 여자를 필요로 하기도 하였다. 공녀는 고려 전체에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공녀로 끌려갈 때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목을 매 자살하는 어린 소녀들도 있습니다.” 원나라의 간섭이 극에 달했던 1335년. 고려 문신 이곡(李穀·1298~1351)이 올린 상소문의 일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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