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日報사가 主관하는 日本속에 韓 民族史 探訪이라는 교사들을 위한 탐방단에 일반인으로 9월11일부터 16일까지 5박6일간 참
가하였는데 일본은 6번 방문 했지만 3번은 등산이 목적이었고 관광은 이번이 3번째 인데 일반관광은 목적없이 그냥 구경 만 하고 오는데 이번 여행은 우리민족의 자취를 ?아보는 여행이라 기대를 갖고 참석했다.
釜山에서 배를타고 후꾸오까의 하까다(博多)항에 상륙 신라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거점 인 다자이후(大宰府)를거쳐 백제와의 연결고리 후나야마(船山) 고분그리고 신라의 凡鐘이 있는 우사신궁(宇佐神宮),국가 지정 명승지 우미지고쿠(海地獄),일본의 최대 石佛群 우스키(臼杵) 그리고 규수의 상징인 阿蘇山을 탐방후 일본의 지중해인 세토 나이카이( 瀨戶內海 ) 를 경유 오사카에 상륙 나라의 도타이지(東大寺).호류지(法隆寺),교토의 코류지(廣隆寺)를본후 오사카城을 마지막으로 釜山으로 돌아오는 탐방 여행이다.
곳곳에서 우리문화의 흔적을 찾아볼수 있었다
특히 후꾸오까의후나야마 고군 群을 보니 백제 무령王陵의 축소판을 보는것 같았고 출토된 유물은 며칠 전 국립발물관에서 본 백제 유물과 똑같아서 마치 국립박물관에 온듯한 착각에 빠졌다.
온천으로 유명한 베푸의 오이타지역의 우사신궁안에 있는 신라의 범종은 우리나라 절에있는 凡 鍾과 같은데 일본에서는 특별전시 까지하고 난리 법석이다
입장료도 300엔인데 우리돈으로 4500원이다.비싸다.
鐘에는 글씨며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나라 鐘하고 똑같다.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왔는지 모르는데 혹시 일제 강점기에 훔쳐다놓은 게아닌지 같이 간 해설하는 일본사 전문교수에게 물으니 아니란다 .믿을수 밖에.
.神宮은 일본천황 을모신 곳이고 神社는 그아래 사람이라고한다.이제까지는 같은 걸로 알았는데..그래서 모르면 공부하라는게 옳은 소리란 걸 알았다.
그런데 신으로 모신 천횡은 백제, 가야에서 건너온 우리 민족이라고 한다.그런사람들이 임금이 되었든 나라인데 왜구가되어 노락질, 終局에는 우리나라까지 집어먹고,
요사이는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훔쳐간 문화재도 인심쓰는 척 몇점주는 걸 보면서 ..
하긴 형제간에도 재산때문에 싸우고 하는 세상 우리 민족의 후손이 세운 나라(?)라고 우리를 보아 줄 리 없으니까.
제주감귤나무는 육지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하듯이,
우스키석불군의 석불은 우리나라 서산의 마애 석불과 같다고 한다 여러 경황으로 보아.백제사람이 건너와 만든것 이 分明하다고한다. .
저녘 내내 배를 타고 일본내해(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가는데 바다가 잔잔하다.
도중에 세토나이카이를가로 지르는 총길이13.1km의 세토대교밑을 지났는데 무척길다
.인천대교는 18.38km라 길지만 다리위로 만 버스를 타고 지났는데 세토대교밑을 지나니 규모가 대단하다
.오사카 까지 가는동안 꽤 큰다리 들이 3개나 된다 .
그런데 다리 하나가 여러 섬를 거치기 때문에 다리가 여럿이 있는것처럼보인다
.어떤 다리는 교각 사이가 2km로 세계에서 제일 길다고 한다 또 어떤 다리위로는 전철이 달린다..
내해로 가니 좁았다 넓었다 해서 배의속도가 느리다 .
일본 내해는 처음 그것도 크루즈를타고 가니 편리 하고 구경거리도 많다.
일본배는 후지마루 라고 2만3000톤급인데 승객만 700여명이 탔는데 크긴 크다.
라운지 ,카페, 룸사롱 ,상점, 다다미방,바둑실 도서실 수영장, 헬스실 .특히 목욕탕 사우나실 ,세탁실,세탁물 건조실, 안마실 .극장. 대강당은1000여명이 들어갈수있고 오래된 배인데 8만톤급의 크루즈는 아니 지만 아쉬운 대로 갖추어 있다.
식당도 한번에 300명이 식사를 동시에 할수있다.
나는 제주도 한라산 등반시 인천에서 크루즈선" 오 하마나"호를 서너번 타 보았지만 그배의 시설은 저리 가라다.그배도 일본서 사온 중고선이 였다..
금강산 갈때도 타 보았지만. 하여튼 후지마루는 편리하게 되어있다.
배는 밤새도록 달려 새벽 오사까부두에 도착 아침을 먹고 15대의 버스에 분승 시간차를 갖고 a,b조로구분 탐방지로 출발하여
먼저 교토의 東大寺(토다이지)에 도착하였다.
대불전과 사슴으로 유명한 절이다
대불전은 단일 목조 건물로는 세계 최대이며 그안에있는 청동불상도 높이가 16미터,무게가 425톤이니 세계 최고 란다
.하여튼 크기는 크다 .
사슴들이 많이 방목되어 있는데 사람한테 다가 와서는 먹이를 주면 받아 먹 는다. 신기하다.
이 절도 결국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도움으로 건립 되었다고한다.씁쓸하다.
다음은 우리가 역사 책에서 배운 유명한 法隆寺인데
고구려 중인 담징이 건너와 그렸다는 壁畵를 볼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는데 1949년도에 불이나서 법당이 다 타버렸고 지금 건물은 새로 지었으며 벽화도 모두 유실 되어 사진으로 복원한 것이 란다.
꼭 한번 보려고 했는데.더욱 충격적인 것은 법륭사 금당 벽화는 담징이 그린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같이 간 일본역사 전문교수는 설명중 담징이 그렸다는 증거가 없다 고 한다.
단지 국사교과서 저자의 한 사람인 우리가 잘 아는 李洪烈 교수가 담징이 그리지 않았나 하는 소리를 했는데 담징이 그렸다고 교과서에 기록, 우린 그렇게 배웠다니 한심하다.
그래서 귀국후 국사 편찬위원회며 교과부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우물 쭈물하더니 차후 알려 주겠다고 하고는 이제까지 함흥 차사다.
아직도 교과서에는 그대로 되어 있다고한다.한심한 나라다 요사이 국사를 선택으로 하느니 마느니 하는 판국에 올바로 가르쳐야 할터인데 이러 다가는 단군할아버지가 중국사람인 줄 아는 후손이 나올가 보아 두렵다.
일본의 聖德太子는 우리도 역사 시간에 배워서 잘아는 데 일본에서는 우러러 모시고 불교를 일으킨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
廣隆寺에 가니 유명한 "미륵보살 반가유像"이 있는데 일본國寶1호란다. 어쩌면 그렇게도 우리나라 국립박물관것과 똑 같은지 놀랐다. 불상 앞에는 별도로 의자를 놓고 사람이 감시하고 있었다.
그앞에 만 촛불과 제물 불전함이 놓여 있었다
.몇년전 일본의 어느 대학생이 미륵보살 반가유상의 예술적 아름다움에 반해 불상을 껴안으려고 하 다가 실수로 불상의 손가락이 부러진 사건이 발생하여 본래의 진열 위치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감시를 한다고 한다
.우스운사실은 그 불상이 자가네가 만든것이라고 우기다가 어느교수가 부서진 손가락 가루를 분석 그 목재가 일본에는 자라지 않는 한반도 적송이라고 해서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이라고 발표하니 쉬쉬했다고 한다.
일본에는 적송이 자라지 않는다나..한국 문화에 대한 열등감은 한국 것이라면 무조건 감추려고 한다나..
어디를 가도 우리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흘러간 노래만 부른다고 과거가 돌아 오지않는다.
독도가 자가네 땅이라고 우겨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 한탄스럽다.
마지막 날은 오사카 성을 탐방했다
여러분도 다 한번은 갔다 왔을 것이니 긴 설명은 생략하고 단지 오사카성이 벼락을 5번인가 맞고 화재로 소실되어 1939년에 현재의시멘트로 복원했다고 한다.
벼락이 잦은 것은.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여서 하느님이 벌주시는 것이 아닌가 셍각이든다.
건물은 모두가 토요토미의 기념관이다.
나는 건물 뒤편에 있다는 토요토미히데오(풍신수길이 늦동이 아들)가 도꾸가와이에야스군에게 쫓겨 성의 빈터에서 자기어머니와 함께 자결했다는 곳으로 갔다
비석에는 히데오가 자결한 곳이라는 비석과 안내판 그리고 누군가가 갔다 놓은 음료수잔이 놓여있엇다
.난 죄 없는 우리나라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으니 자손이 죄 받는거라고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는데도 한국말을 몰라서인지 못들어서인지 아무도 시비거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 아무일없이 그곳에서 빠져 나와 버스 를 타고 배로귀환했다.
일본내에는 우리문화유산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그런데 과거의 찬란한 문화를 지닌 우리가 현재는 일본보다 한참 뒤 떨어진 나라로 전락해서 눈부신 속도로 발전을 했다고 하는 데도 따라 가려면 30년이 걸린다는소리를 들으니 씁씁음하다.
우리가 쪽바리 라고 하고 말 끝 마다 일본놈이라고 하지민 배울점도 많다.
우선어디를가나 깨끗하다.
그리고 질서를 잘지킨다.
특히 교통 법규를 지키는것은 제읾 먼저 본받아야한다.기간중 교통사고는 한 건도 못 보았고, 불법주차를 한대도 못보았다
.그리고 시골길에서도 신호위반을 하나도 못보았다
도로폭이 좁아 차선이 2미터란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이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도 고려 한것 아닌지..
쓸데없이 수요는 생각치않고 고속도로만 건설 차량이 잘 안 다녀 적자 투성인 고속도로가 많은 것이 우리 실정 이라던데 이런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무엇이든지 크게 주먹구구로 업적을 과시하려는 전시행정은 지양해야하지않을까하는생각을해본다.
일본 사람의 친절은 몸에 벤것같다.가게앞을 지나도 인사 .배에서 내리면 줄서서 인사 ,승선하려면 줄서서 인사 그리고 마지막 날 오사카 부두에서는 밴드까지 동원, 버쓰기사랑, 여행사 직원들이 올드랭사인 연주속에 배가 항구에서 멀어 질때 까지 손을 흔든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출국장까지나와서 인사를한다.인사해서 뺨 맞는법없다는말, 웃는얼굴에 침 못?는다라는말이 실감난다.
백제지원군본부가있던 규수정청자리인 다이자후터의비석,신라공격을위한 거점으로 주위에 산성과 바다쪽에 하천을 이용한 水城이 있다.이건 백제풍납토성과 건축방식이 같다고한다.![](https://t1.daumcdn.net/cfile/cafe/180C01344CD71F921A)
후나야마 고분
![](https://t1.daumcdn.net/cfile/cafe/2048C4354CD71FB629)
베푸지역은 온통 온천 수증기로 덮여 있네요 .우리나리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곳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BF1344CD71FDC1A)
신라의 범종
![](https://t1.daumcdn.net/cfile/cafe/154988364CD7200411)
베푸의 해지옥 온천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799354CD7201E20)
석불군
![](https://t1.daumcdn.net/cfile/cafe/150C48344CD7203B14)
석불군
![](https://t1.daumcdn.net/cfile/cafe/1647A1354CD7205C2F)
유명한 법륭사 금당 우리나라 속리산 법주사 생각이 나네요.그런데 불이나서귀중한 담징이 그렸다는 벽화가 없어 졌다니, 하긴 담징이 그렸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니 70년동안 속아 살았네요 벽화가있는.엽서만 사왔지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66492334CD720CC19)
동대사내의 방목사슴들 사람을 잘 따르네요 남산 사슴은 멀리서 멀뚱멀뚱 쳐다 만 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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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 법당 불이나서 다시지었다나. 단일 건물로는 세계최대이고 그 안에 청동불상도 세계최대라네요.그런데 왜 나쁜짓은 도 맡아 하는지?
![](https://t1.daumcdn.net/cfile/cafe/15631F334CD7211527)
신사인데 한국사람을 모신다고 하데요
![](https://t1.daumcdn.net/cfile/cafe/146366334CD7215136)
절을 하도 많이 다녀 아라숭한데 범종 앞인데 하도 신주 모시듯해서![](https://t1.daumcdn.net/cfile/cafe/1348C4354CD7217F2A)
오사카성 벼락도 여러번 맞고 불도나서 새로 지었는데 풍신수길이 기념관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64C8334CD721B52B)
풍신수길이의 아들이 어머니와함께 덕천가강에게 쫓겨 자결한곳 비 석이 외롭게 서있다.사람이 죄를지면 그 자식에게도 돌아간다 는 교훈을 일깨운다. 김정일이도 그걸 지금이 라도 알았으면 하는미음이 간절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0D04374CD721F00F)
우리가 타고 다니던 버스기사와 밴드의환송식
![](https://t1.daumcdn.net/cfile/cafe/15475E354CD7228117)
첫댓글 위 글은 본인이 오래전에 우리육사가페에 올렸던 글인데 심심풀이로 한번 보시라고 옮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