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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 드리며 살아요 = 민수기12;1-16(221106)
부부는 부창부수(夫唱婦隨)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같이 걸어가다가 아담에게 물었습니다.
“하와가 맘에 드느냐?”
아담은 “그럼요,”라고 대답하면서 “하와의 피부는 어쩜 그렇게 부드러운 것이죠?”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야 네가 하와를 사랑할 것 아니냐?”
아담은 “하와의 몸매는 어쩜 그렇게 아름답죠?”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면서, “그래야 네가 하와를 사랑할 것 아니냐?”라고 하시는 겁니다.
아담은 다시 한번 “그렇지만 하와는 왜 그렇게 멍청한 거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몰라서 묻니? 하와가 멍청해야 널 사랑할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부를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합니다.
곧 남편의 뜻에 아내가 따라가는 부부의 합당한 도리라는 의미입니다.
하와가 똑똑하면 남편의 뜻을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와를 아담보다는 덜 똑똑하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피부와 몸매는 아담보다 더 아름답고 보드랍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은 없습니다.
사실은 부부 자신도 잘 모릅니다.
부부들 자신도 왜 그러는지 말 모르기 때문에 늘 아웅다웅 다투면서 부부싸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부관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그 남편에 그 아내를 만나게 하시고 부부의 울타리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부부를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됩니다.
부부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서로 손잡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롯 핫다아와를 떠나서 하세롯(Hazeroth)이란 지역에 진을 치게 된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라고 소개한 이후,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전혀 기록하지 않는다.
모세가 성경을 기록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내 십보라의 근황에 대하여 기록할 만도 한데, 전혀 십보라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십보라가 어떻게 살았는지, 언제 죽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떠나서 하세롯이란 지역에 진을 치는 것은 시내 광야를 떠난 지 많은 기간이 지난 때가 아니다.
하세롯 지역을 떠나서 바란 광야에서 정탐군 이야기가 기록되고, 바란 광야 사건으로 인하여 광야 40년 생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하세롯이라는 지역은 시내 광야를 떠난 지 불과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을 때에 있었던 사건이다.
십보라가 살아 있는지, 아니 죽었다면 언제 죽었는지 십보라에 대하여 전혀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세롯에 진을 치고 있던 때에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를 맞이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절에서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후처를 얻었다면 십보라가 죽은 이후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십보라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첩으로 구스 여인을 취할 수는 있지만, 모세라는 사람의 인격과 신앙의 모습을 보면 구스 여인을 마냥 첩으로 취했다고 단정하기에는 뭔가 무리수가 될 수 있다.
십보라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십보라가 죽은 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출애굽한 지 근 1년 1달 뒤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향하여 시내 광야를 떠나서 행진을 시작하면서 하세롯까지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세는 십보라가 죽은 이후에 후처로 구스 여인을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스(Cushite)라는 지역은 오늘날 이집트 북부지역에 있는 ‘리비아’라는 나라이다.
함의 장자가 구스이다.
함의 장자 구스로 인하여 생겨난 민족이 구스 민족이다.
구스 민족에게서 니므롯이 탄생하고 당대에 최고의 사냥꾼이 되면서 구스를 떠나서 셈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갈대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스스로 왕이 되고, 바벨탑 사건을 주동하였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죽으면서 태양신이 되고, 니므롯의 부인인 세미라미스는 달신이 되고, 유복자인 담무스는 별신이 되면서 일월성신의 바벨론전통종교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 된다.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히브리민족대이동을 당행할 때, 중다한 잡족들이 동행하게 되면서 구스 여인도 히브리민족대이동에 동참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로 맞이하는 일이 아론과 미리암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만큼 아론과 미리암에게 좋지 않은 일이었을까?
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로 취한 것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① 들으시는 하나님.
사실은 모세의 본처인 십보라도 미디안 여인으로 이방인 여인이고, 후처로 맞이한 여인은 구스 여인도 이방인 여인이다.
둘 다 혈통적으로 야곱의 후손들이 아니다.
곧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미디안 여인이나 구스 여인은 적통(嫡統)이 될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십보라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십보라 대신에 다른 후처를 맞이해야 한다면 같은 이스라엘 여인들 중에서 취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적통개념(嫡統槪念) 때문에 아론과 미리암의 심기에 불편함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이란 존재는 적통이라는 개념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왕실에서도 정실부인인 중전의 태에서 태어나야만 인정받고, 후궁이나 빈에게서 태어나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첩에서 태어난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을 정도로 적통, 그야말로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에게는 온갖 호사를 누리도록 하지만, 후처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2절에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하면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로 취한 것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다.
히브리민족의 지도자 그룹이 아닌 가족의 개념으로 보면 미리암이 누나이고, 아론이 형이고, 모세가 막내이다.
혈통적으로 누나는 누나이고 형은 형이고 동생은 동생일 뿐이다.
비록 서로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형제지간의 위계질서로 본다면 모세가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할 때는 모세가 애굽의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3남매가 서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었고, 서로 소통하는 관계에 있는 처지이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로 취하려고 하면 마땅히 먼저 미리암 누나와 아론 형님과 논의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기분 나쁜 감정이 들어 있는 것이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에게 후처를 취하는 것은 가족의 일원이 되는 일인데, 왜 우리들과 논의하지도 않고 너 독단적으로 그렇게 결정했느냐? 라고 책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의 불평, 책망하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미리암과 아론이 기분 나빠하는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소리 내어 하는 말도 잘 들으시는 분이다.
세상의 온갖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석상과 주상과 목상과 같은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니고는 있지만, 만들어진 무생명체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소리뿐만 아니라 온갖 피조물들의 소리들도 다 들으실 수 있는 살아계시는 분이다.
하늘 아버지는 하나님으로 신성이시지만, 분명히 인격적인 인성도 지니신 분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동물들의 울음소리, 식물들의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다.
심지어는 무생물들의 소리까지도 들으시는 분이다.
누가복음19:40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무생물인 돌들도 소리 지른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말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백성들의 속 마음도 들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평상시에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듣고 계시는 분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이 하는 말이나 심지어는 우리들의 속삭임도, 중얼중얼하는 소리도, 생각과 마음까지도 다 듣고 계시는 분이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서 좋은 소리, 감사를 올려드리는 소리,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나누고 베푸는 소리를 많이 들으실 수 있도록 우리들의 삶 자체가 거룩한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② 인정하시고 세워주시는 하나님.
미리암과 아론이 심기가 불편한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4절에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면서 “너희 세 사람은 회막으로 나아오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세 사람이 하나님의 집인 회막, 성막으로 나아온다.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부터 성막 지성소에 강림하신다.
하나님은 다시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6-8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모세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미리암이나 아론이나 여타 선지자들에게는 긴가민가 잘 분별하지 못하도록 환상이나 꿈이나 은밀하게 말할 수 있지만, 모세에게만큼은 분명하게, 명백하게, 명확하게, 정확하게 알아듣고 분별할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왜 모세의 행위를 비방하고 있느냐? 라고 책망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 대하여 3절에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라고 평가하고 계신다.
7절에서는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라고 평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세에 대하여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요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비록 누나요 형이라 할지라도, 아니 부모가 되더라도 모세를 비방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시는 것이다.
모세를 향하여 비방하는 행위에는 곧 나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는 꼴과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시고 세워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인정해 주시고, 모세를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자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은 온전하게 하나님만을 위하여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정하시고 세워주신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의 권위도 인정해 주시고 세워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사회는 신앙인의 권위가 급격하게 추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바로 우리 신앙인들이 신앙인답게 살지 못한 결과이다.
전에는 적어도 신앙인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을 수 있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진짜 국산콩으로 메주를 써도 믿어주지 않는 세대가 되고 말았다.
이젠 신앙인들이 신앙인답게 살아서 옛날만큼은 아닐지라도 실추한 신앙인들의 권위가 회복되는 날이 속히 찾아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다.
③ 징벌하시면서 경고하시는 하나님.
9-10절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진노하였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결과 미리암은 악성피부병이 발병하게 된다.
악성피부병이 발병하게 되면 부정하게 되어 이스라엘 진영을 떠나야 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론이 모세에게 “슬프도다. 내 주여.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하여 죄를 지었으나 청하건대 그 벌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가 살이 반이나 썩어 모태로부터 죽어서 나온 자 같이 되지 않게 하소서.”라고 간청하면서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자백하게 된다.
모세는 누나가 악성피부병에 걸려서 부정하게 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바뀐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저린다.
미리암 누나를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간구한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1주일 동안 진영 밖에서 지내고 악성피부병을 고치고 정결케 해야 돌아올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악성피부병을 주시기도 하시고, 치료해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서 미리암에게 악성피부병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면서 미리암에게 악성피부병도 고쳐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암은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행위를 저지름으로 인하여 악성피부병에 걸렸기 때문에 1주일 동안 이스라엘 진영을 떠나서 죄의 값을 치르고 돌아오도록 말씀하시는 것이다.
미리암이 1주일 동안 진영 밖에서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행진하지 않고 하세롯이라는 곳에서 머물도록 한다.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악성피부병으로 징벌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 리더쉽에게 대항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계신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 리더쉽을 대항하면 그를 세운 여호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업신여기는 죄로 간주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아론과 미리암이 똑같이 구스 여인을 후처로 맞이한 모세를 비방하는 죄를 저질렀는데, 왜 하나님은 아론에게는 아무런 징계도 내리지 않고, 미리암에게만 악성피부병이 발병되도록 징계하시는 것일까?
물론 아론도 육신의 징계만 받지 않았을 뿐, 영적으로, 심적으로 많은 징계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론은 육신적으로는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는데, 미리암은 사람으로 가장 수치스러운 악성피부병에 걸려서 1주일 동안 진영을 떠나서 마치 감옥살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론도 악성피부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론은 대제사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위임받은 사람이다.
대제사장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대리권자이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악성피부병에 걸린다면 하나님 자체가 악성피부병에 걸리는 꼴과 똑같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악성피부병의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아론은 악성피부병에 걸리면 안 되는 것이다.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아론의 후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워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직임을 맡기기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언약했기 때문에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내는 엄청안 죄악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징계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미리암은 이스라엘 모든 여성들의 대표자가 되는 여선지자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암에는 악성피부병에 걸리는 징계를 내리시는 것이다.
아론은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아론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세를 비방함으로 인하여 누나가 악성피부병에 걸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과 생각에 많은 고민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비록 몸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누나처럼 악성피부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마음과 영혼과 생각이 악성피부병에 걸린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건, 누구 앞에서건 늘 경각심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한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후처로 취한 사건을 누나인 미리암이나 형인 아론의 심기가 불편하여 모세를 비방하면서 생겨난 사건은 결국 누나인 미리암이나 형인 아론이 모세를 온전한 권위자로 세워 드리지 못함에 따라서 발생한 사건이다.
미리암이나 아론이 비록 육신적으로 자신들의 동생이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의 영적인 권위를 그대로 인정하고 세워 드렸다면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리암과 아론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인 권위를 온전하게 인정하고 세워주지 못함에 따라서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사건을 용납하지 못하고 비방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 대하여 온유함이 온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하나님의 집에 충성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세워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세워주심같이 아무리 형제지간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세워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인 사역자들의 리더쉽을 인정해 드리고 세워드릴 수 있을까?
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세워 드려야 한다.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을 주관하고 다스리시고 간섭하시고 통제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연관되지 않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과 연관되지 않는 일들은 단 하나도 없다.
교회와 가정과 생업 터전에서 일어나는 일들 하나하나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일들도,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하나가 하나님과 연관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미미하여 아무렇지도 않다고, 시시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들에서부터 너무나 큰 일들까지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인정하고 높여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 사람의 귀함을 인정하고 세워 드려야 한다.
자기 자신이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귀함도 인정하고 세워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려는 악한 죄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업신여기면서 비난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악한 존재인데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 정도라도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기는 악한 죄성에서 떠나야 한다.
다른 사람의 귀함과 소중함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의 귀함과 소중함을 인정해 달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행태인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낮고 천한 사람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워 드려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찬송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업신여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매우 소중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하찮은 쓰레기처럼 취급하고 업신여기려는 죄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사람의 귀함을 인정하고 세워 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세워줄 수 있어야 우리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자신보다 뭔가 모자란 사람처럼 취급하면서 하대하고 업신여기고 비방하고 비난하면 우리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 수 없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을 인간의 자리로, 각종 짐승과 식물을 피조물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괜히 반려동물이니, 반려식물이니 하면서 동물이나 식물을 인간의 자리로 떠받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께서 엄정하게 남녀의 관계로 만들어주셨는데도, 이상야릇하게 성(性)을 자기 자신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성애를 주장하고 부추기는 죄악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귀신놀이를 하나의 위대한 문화라도 되는 것처럼 추앙하는 악행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는 바로 귀신놀이에서 유래한 참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오직 삼위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로, 하나님의 권위로 돌려드리고, 인간은 인간의 자리로, 동물은 동물의 자리로, 식물은 식물의 자리로, 남성은 남성의 자리로, 여성은 여성의 자리로 본래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자연의 위치와 자리로 돌아가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믿음으로 순종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멘.